118화 하극상
- 크하하핫!
이찬수가 웃기 시작했다. 배까지 부여잡고 크게 웃어댔다.
그 모습을 본 김상훈이 인상을 썼다.
“왜 웃으세요?”
- 야, 너 진짜 또라이 아니냐?
“제가 왜요?”
- 정신교육을 시킨다고? 네가?
“예. 이대로 가면 진짜 큰일 날 거 같아서요.”
- 너 국가대표가 된 지 얼마나 됐지?
“5월에 됐으니까 이제 한 달 정도 됐네요.”
- 정확히 계산하면 한 달도 안됐잖아.
“뭐, 그렇긴 하죠.”
- 상훈아, 생각해봐. 국가대표가 된 지 한 달도 안 된 놈이 정신교육을 하겠다고 까불면, 다른 선수들이 감사합니다~! 하고 따를까?
“안 따르겠죠.”
- 근데 정신교육을 시키겠다고?
“예.”
- ……어떻게?
이찬수의 표정이 변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알지만, 김상훈의 분위기가 너무 진지했기 때문이다.
그때, 김상훈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다 방법이 있죠.”
- 뭐? 도대체 뭔 생각이야?
“지켜보시죠.”
이찬수와 대화를 마친 김상훈은 팀의 최고참이자 주장인, 기성영을 찾아갔다.
똑똑-!
“누구세요?”
“저 김상훈입니다.”
“어? 상훈이? 잠시만.”
이윽고 기성영이 호텔 문을 열었다.
커다란 키에 모델 같은 비주얼을 지닌 그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았을 정도로 실력 있는 선수였다.
김상훈과는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지만, 그와 친한 손홍민 덕에 조금의 친분은 있는 상태였다.
“안녕하세요.”
“오~! 우리 에이스 아니야? 일단 들어와.”
기성영은 김상훈을 반갑게 맞이했다.
김상훈 역시 평소와는 다른 깍듯한 모습으로 그를 대했다.
두 남자는 간단한 농담을 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풀었다.
그리고 잠시 후, 기성영이 진지한 얼굴로 질문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김상훈 역시 더 이상 시간을 끌 생각이 없었다.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팀의 분위기를 바꿔야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분위기를?”
“예. 건방지게 보이실 수 있지만, 제 생각에는 지금 대표팀은 정신상태가 썩어빠진 것 같거든요.”
갑작스러운 거친 말에, 기성영이 인상을 정색했다.
“뭐?”
“솔직히 이대로는 16강도 힘들 것 같아요.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요?”
“…….”
기성영은 아무 말이 없었다.
다만, 조금도 기죽지 않고 할 말을 다하는 김상훈을 쳐다봤다.
이윽고 기성영은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 너 진짜 미친놈이네?”
그 즉시, 김상훈도 씨익 미소를 지었다.
“역시, 제가 사람을 잘 찾아온 것 같네요.”
“으하하하! 뭐라는 거야.”
“선후배 관계 같은 것보다는 실력을 우선시 하는 것.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
“제가 본 기성영 선수는 그런 사람 같았거든요.”
“그건 제대로 보긴 했네.”
기성영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으니까.
어린 시절부터 해외에서 유학을 하며 축구를 해온 그에게, 대한민국의 선후배관계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김상훈은, 그런 기성영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형을 찾아온 거예요.”
실실 웃으며 말하는 김상훈을 본 기성영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동시에 그가 질문했다.
“그래, 내가 뭘 도와주면 되는데?”
***
현재 대한민국 대표팀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선수들의 경기력 때문이었다.
절대 나와서는 안 되는 패스미스가 너무 많았고, 수비력이 너무 부족했다.
결정적인 상황에서의 마무리도 좋지 못했다.
당연하게도 대표팀의 경기력에 대한 자극적인 기사들이 생겨났고, 국민들은 대표팀을 비난했다.
반면, 대표팀의 분위기는 좋았다.
선수들은 훈련 중에도 서슴없이 장난을 쳤고, 코치들도 그것에 터치를 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훈련장 안에 커다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 이 새끼야?!”
소리를 지른 남자는 기성영이었다.
그는 붉어진 얼굴로 한 남자를 노려봤다.
당장이라도 주먹을 휘두를 것 같은 기성영을 마주한 그 남자는, 바로 김상훈이었다.
“제 말이 틀렸어요?”
김상훈은 그런 기성영의 기세에 조금도 눌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가며 눈을 치켜떴다.
“이 새끼가……!”
“새끼, 새끼하지 마시죠. 기분 더러우니까.”
두 남자가 당장이라도 몸싸움을 할 것처럼 행동하자, 주변에 있던 선수들과 관계자들이 달려왔다.
모두 놀란 표정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장난을 치고 친하게 지냈던 두 남자가, 갑자기 싸우기 시작했으니까.
그것도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더불어.
대표팀의 분위기상 선배에게 대드는 것은 쉽게 나올 수 없는 일이었다.
과거, 이찬수가 하극상을 일으킨 적이 있기는 했지만, 그 이후에는 별다른 일이 벌어진 적이 없었다.
그만큼 대한민국 대표팀 내에서 후배가 선배에게 대드는 행위는 쉽게 볼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지금, 김상훈이 펼치는 하극상에 선수들과 관계자들은 충격을 먹은 상태였다.
그리고 김상훈은 더욱 날뛰기 시작했다.
“막말로 지금 대표팀 수준이 이게 말이 됩니까? 이 따위로 하다간 16강은 개뿔, 개망신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인 수준이라고요.”
“이 새끼가! 말조심 안 해?”
“할 말은 해야겠는데요? 최소한 실력이 부족하면 열심히 라도 하던가! 도대체 훈련 때 농담 따먹기를 왜 하고, 왜 대충대충 뛰는 거예요? 형이 주장이면 주장답게 이런 선수들을 잡아야하는 거 아닙니까?”
그때였다.
가만히 지켜보던 관계자들과 선수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그때, 가장 먼저 나선 선수는 구자천이었다.
구자천은 기성영과는 친구사이로, 그 역시 대표팀의 최고참 선수였다.
“야 이 새끼야. 너 미쳤냐? 요즘 축구 좀 잘한다고 뵈는 게 없어? 어?!”
눈을 부릅뜨고 소리치는 구자천의 모습은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김상훈은 조금도 겁내지 않았다.
“아니, 자천이 형. 꼰대에요? 왜 제 얘기도 안 들어보고 욕을 하세요?”
“뭐? 이런 미친놈이! 네가 지금 하는 행동을 봐! 갓 대표팀에 들어온 놈이 주장한테 대드는 게 말이 돼?”
“말이 안 될 게 있나요? 그리고 제가 뭘 대들었죠? 제 생각을 얘기도 못하나요? 자천 형도 독일에서 오래 뛰고 있으면서 그렇게 마인드가 닫혀있으세요?”
“아 진짜 이 새끼가!”
더 이상 참지 못한 구자천이 김상훈을 향해 덤벼들려고 할 때, 모든 선수들이 그를 뜯어말렸다.
동시에 많은 선수들이 김상훈을 향해 소리쳤다.
“너 이 새끼야. 건방지게 굴지 마.”
“야, 상훈아.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빨리 성영이 형이랑 자천이 형한테 사과드려.”
“너 왜 그래? 뭐 잘못 먹었어?”
“형! 왜 그러세요? 그러지 마세요.”
이렇듯 김상훈은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한 마디씩을 들었다.
하지만 그는 표정조차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저는 잘못한 게 없습니다. 다들 진심으로 제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세요? 예? 이 따위로 하면 월드컵에서 개죽 쓰듯, 죽 쓰고 한국으로 돌아올 것 같은데, 아닌가요? 막말로 전 경기들에서 제가 골 안 넣었으면 어떻게 됐을 것 같아요?”
그 말에 선수들이 침묵했다.
동시에 그들은 생각했다.
만약 김상훈이 없었다면?
세네갈 전을 제외한 다른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
확신이 없었다. 때문에 그들의 침묵은 길어졌다.
그때였다.
조용히 사태를 지켜보던 기성영이 침묵을 깼다.
“그만!”
모든 선수들이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기성영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김상훈을 보며 말했다.
“그래서 16강에 올라갈 방법은 있는 거야?”
그 순간, 김상훈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원하는 질문이 나왔기 때문이다.
“예. 당연히 있죠.”
방법이 있다는 말.
김상훈의 그 말에 모든 선수들이 집중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선수들 모두 월드컵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싶은 열망이 있었으니까.
그들 모두 명예로운 결과를 만들고 싶었으니까.
- 하…… 이 미친놈.
16강에 오르는 것이 힘들 정도로 경기력이 좋지 못한 팀이, 갑자기 경기력이 좋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상황에서 김상훈이 어떤 말을 할지 알고 있던 이찬수는, 스스로의 이마를 짚고 눈을 감았다.
이윽고 김상훈이 입을 열었다.
“일단…….”
그는 말끝을 늘리며, 다른 선수들의 주목을 이끌어냈다.
물론 철저히 계산된 행동이었다.
수만 명의 시청자들을 이끌고 방송을 하며 최고의 위치에 있던 그에게, 고작 몇 십 명의 이목을 끄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잠시 후, 김상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정신 상태를 고쳐먹어야 합니다.”
***
이찬수, 현역시절의 그는 선후배 상관없이 할 말이 있으면 꼭 하는 남자였다.
좋게 말하면 솔직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을 가졌고.
나쁘게 말하면 싸가지가 없었다.
당연하게도 다른 선수들과 많은 마찰이 있었다.
앞뒤를 재지 않고, 막나가는 선수로 유명했던 이찬수.
지금 이 순간, 그는 놀란 얼굴로 김상훈을 바라봤다.
- 야 이 미친놈아! 그런 식으로 말을 하면……!
그런 이찬수조차 놀랄 정도의 말이었다.
기껏 선수들을 모아놓고 하는 말이 정신 상태를 고쳐먹어야 한다는 것이라니!
비슷한 말을 할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말을 할 줄은 그 역시 몰랐다.
선수들이 주먹을 휘두르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리고 지금, 선수들은 붉어진 얼굴로 김상훈을 향해 달려들려고 했다.
그때였다.
한 남자가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전부 조용!”
선수들이 고개를 돌려, 소리를 친 남자를 바라봤다.
그곳에 서 있는 남자는 신태웅 감독이었다.
지금까지 조용히 서 있던 그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내 생각도 김상훈과 같다.”
신태웅 감독의 그 말에 당장이라도 주먹을 휘두를 것 같던 선수들이 당황했다.
동시에 벙찐 얼굴로 감독을 바라봤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당황스럽겠지만, 진심이다.”
그 말을 들은 김상훈의 입꼬리가 높이 치솟았다.
그 모습을 본 신태웅 감독은 고개를 돌린 뒤, 다시 선수들을 바라봤다.
“나 역시 자존심이 상하지만, 지금까지 평가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김상훈의 개인 활약이 컸다. 하지만 너희들도 알겠지만, 축구는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단적인 예로 세네갈 전을 보면 알 수 있지. 김상훈이 골을 넣었고,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우린 졌다. 그게 무엇을 의미할까?”
“다른 선수들이 형편없이 못했다는 거죠.”
신태웅 감독의 말에 김상훈이 툭- 대답했다.
다른 선수들에게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얄밉게 보였다.
“형편없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안일한 패스,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지는 집중력만큼은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역시~! 감독님이 뭘 좀 아신다니까?”
김상훈을 다시 한 번 얄밉게 말을 툭- 뱉었다.
으득!
그 행동에 선수들이 이를 갈았다.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그때, 신태웅 감독이 크게 소리쳤다.
“이런 젠장! 우리가 프로 데뷔 2년 차인 놈한테 이딴 소리를 들어야 되는 거냐? 어?!”
눈을 붉게 물들인 채, 소리를 질러대는 신태웅 감독의 모습.
그 모습에 선수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나 역시 자존심이 너무 상한다.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의 말이 틀린 것이 없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하고, 이놈이 없으면 진짜로 16강은 쳐다보지도 못할 것 같아서 자존심이 상한다고…….”
그때, 신태웅 감독은 목소리를 낮게 깐 채로 마지막 말을 남겼다.
“앞으로 훈련에서 장난은 금지다. 훈련도 실전처럼 한다. 활동량이 적은 선수는 쓰지 않는다. 개인기량은 부족해도 미친 듯이 뛰는 모습은 보여라. 그리고 최소한…… 이 새끼한테 다시는 이딴 소리를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을 마친 신태웅 감독은 붉게 물든 눈으로 김상훈을 노려본 뒤, 자리를 떴다.
***
야심한 밤, 한 호텔 객실의 문이 열렸다.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간 사람은 김상훈이었다.
“어! 왔어?”
“왔니?”
김상훈을 맞이하는 사람은 두 명의 남자였다.
“예. 감독님, 성영이 형.”
신태웅 감독과 기성영, 그들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김상훈을 바라봤다.
그때, 김상훈이 실실 웃으며 질문했다.
“왜들 그렇게 표정이 어두우세요? 뭔 일 있어요?”
“……진짜 괜찮냐? 다른 애들이 다 너를 싫어할 텐데.”
신태웅 감독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김상훈은 손을 휘휘 내저으며 대답했다.
“에이~! 뭐 어떻습니까. 나중에 화해하면 되죠.”
그러자 옆에 있던 기성영이 작게 중얼거렸다.
“대표팀에 있는 동안 많이 힘들어질 텐데…….”
그 걱정 어린 말에 김상훈은 실실대며 웃었다.
“제가 선택한 겁니다. 이렇게 해서 대표팀의 경기력이 좋아지면, 전 그걸로 만족합니다. 그나저나…… 신태웅 감독님이랑 성영이 형 연기력이 장난 아니시던데요? 저야 뭐 방송을 오래해서 기본적인 연기력이 있다지만, 감독님이랑 형은…… 어우! 진짜 연기자인 줄 알았어요. 소름이 다 돋았다니까요?”
김상훈의 말 그대로였다.
오늘 훈련장에서 있던 일은 김상훈과 신태웅 감독, 기성영이 미리 약속을 한 연기였다.
기성영을 포섭한 김상훈이, 신태웅 감독까지 포섭한 뒤 펼친 일이었다.
3류 영화에서 나올 법한 매우 극단적인 방법이었지만, 김상훈은 이 방법밖에는 없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실행한 것이다.
마지막 월드컵이라는 생각을 가진 기성영과, 국민들에게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싶은 신태웅 감독 역시 최선을 다해서 동참한 일이었고.
김상훈이 철저한 악역이 되고, 그것을 원동력으로 선수들의 정신력을 끌어올리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신태웅 감독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김상훈을 바라봤다.
다만, 김상훈은 아무런 걱정이 없다는 듯 실실 웃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럼, 저는 이만 꿀잠 자러 가보겠습니다!”
그 순간, 이찬수는 멍한 얼굴로 김상훈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 너는…… 진짜 역대급 미친놈이야.
그리고 며칠 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러시아 월드컵을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