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블루 박스에서 나온 것
추가 시간이 1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온두라스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끄떡하면 바닥에 눕고, 엄살을 부리던 선수들이 열정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았고, 대한민국을 강력하게 압박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후반전에 투입된 김상훈과 손홍민이 3골을 넣으며, 역전을 해버렸으니까.
이대로 가다간 온두라스는 경기에서 패배하게 될 판이었으니까.
갑자기 총 공세를 펼치는 온두라스의 공격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다만, 그들의 공격을 허무할 정도로 쉽게 막아내는 선수가 있었다.
온두라스 공격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미드필더, 카를로스와 메히아.
두 선수가 패스를 주고받는 공간 사이로 한 남자가 슬라이딩을 했다.
촤아악-!
남자는 정확하게 패스를 끊어냈다.
동시에 괴상한 소리를 냈다.
“촤르르르르!”
공을 끊어낸 남자, 김상훈은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그런 그에게 온두라스의 윙어 마르티네스가 달려들었다.
“어딜!”
몸을 일으킨 김상훈은 몸을 돌리며 마르티네스의 차징을 강하게 받아냈다.
퍼억-!
그러자 오히려 밀려난 것은 마르티네스였다.
“크윽!”
고통스러운 신음을 들으며, 김상훈은 공을 몰고 전진했다.
빠르게 고개를 돌리며 시야를 확인한 그는, 한 선수를 힐끗 바라봤다.
“여깄네?”
지금 이 순간, 김상훈의 눈에 보인 선수는 온두라스의 로페스였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침대축구를 보여준 선수였다.
그 선수를 본 김상훈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너 잘 걸렸다.”
그 즉시 김상훈은 패스를 할 것처럼, 사이드에 빠져 있는 이승운을 향해 외쳤다.
“승운아! 뛰어!”
동시에 이승운이 빠른 속도로 쇄도했다.
순간적으로 온두라스 선수들의 시선이 이승운을 향해 돌아갔다.
그때였다.
김상훈은 강력하게 공을 때려버렸다.
“정확한 슈팅!”
원하는 곳에 슈팅을 때릴 수 있는 스킬까지 사용했다.
쉬이이이익-!
그때, 고개를 돌렸던 로페스가 다시 김상훈을 바라봤다.
아니, 바라보려 했다.
그 순간 그는 눈앞에 있는 공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젠장!”
퍼억-!
김상훈이 때린 슈팅은 너무나도 정확하게, 로페스의 안면을 강타했다.
그 즉시, 로페스의 몸은 스르륵- 허물어졌다.
기절해버린 것이다.
김상훈은 로페스를 맞고 튕겨 나온 공을 멀리 차버렸다.
동시에 울상을 지으며 로페스를 향해 달려갔다.
“이봐, 로페스! 괜찮아?!”
기절한 로페스에게 다가간 그는 빠르게 응급조치를 취했다.
그럴 일은 거의 없지만,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빨리! 여기 빨리 와주세요!”
김상훈은 격렬하게 손짓을 하며 응급구조대원들을 불러냈고, 로페스는 구조대원의 부축을 받으며 나갔다.
온두라스 선수들은 항의를 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 슬픈 표정을 지은 채로 서 있는 김상훈이 보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일부러 로페스를 맞춘 줄 알았지만, 이내 적극적으로 응급조치를 하는 김상훈의 모습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주심이 휘슬을 불고 경기가 종료됐음을 알렸다.
그때까지도 김상훈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관중들은 슬픈 얼굴로 작게 중얼거렸다.
“어떡해…… 상훈이 오빠 놀랐나봐…….”
“김상훈은 마음씨도 착하네.”
“저렇게 인성이 좋으니까 성공하는 건가? 대단하네.”
“순식간에 기절한 선수한테 가서 응급조치 하는 거 봤어? 나는 무슨 의사인 줄 알았다니까?”
“남자인 내가 봐도 반할 거 같아.”
“어? 지금 우는 건가?”
“헐…… 죄책감 때문에 우나봐…….”
잠시 후, 관중들은 김상훈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김상훈 힘내라! 네 잘못이 아니야!”
“실수할 수도 있지 왜 울고 그래? 울지 마!”
“김상훈 멋있다!”
그리고 그 순간, 김상훈은 관중들의 응원을 들으며 경기장 밖으로 퇴장했다.
그때였다.
그의 옆에 있던 이찬수가 질문했다.
- 어떻게 연기가 더 늘었냐? 나 이번엔 진짜 소름 돋았잖아.
그 목소리를 들은 김상훈은 이찬수를 힐끗 바라봤다.
잠시 후, 주변을 둘러본 그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직 멀었어요.”
- 멀었다고? 연기 미쳤던데?
“눈물을 진짜 흘렸어야 됐는데, 안 나오더라고요.”
- 역시……! 너 아까 상대 선수 공으로 맞추고, 슬픈 표정 지은 거 다 연기였지?
“당연하죠. 침대 축구하는 꼬라지를 보니까 못 참겠더라고요.”
- 으…… 무서운 놈! 근데 연기는 왜 한 거야?
“이미지 관리요.”
- 뭐?
이찬수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러자 김상훈이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더러운 플레이를 한 선수의 얼굴도 깠는데, 상대 선수의 부상까지 걱정하는 착한 이미지까지 만들고 싶었으니까요. 이런 게 정말 일석이조죠!”
이찬수를 보며 실실 웃던 김상훈이 갑자기 고개를 푹- 숙였다.
주변에 관계자들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 진짜 무서운 놈이라니까…….
***
경기를 마친 김상훈은 몇몇 동료들과 호텔로 향했다.
하루 휴가를 받은 몇몇 선수들은 각자 즐거운 시간을 보내러 갔지만, 김상훈은 밖에 나가지 않고 숙소로 향했다.
4일 뒤에 있을 평가전을 대비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동료들과의 호흡이 중요했고, 지금 같은 휴식시간에는 자유롭게 행동해도 무방했다.
그가 숙소로 들어온 이유는 간단했다.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보상으로 50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
[현재 보유하신 포인트는 9120p입니다.]
보상을 확인하고, 박스를 까는 것.
김상훈에게는 휴식을 취하고 노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었다.
보상을 확인한 김상훈은 곧바로 눈앞에 있는 박스들을 바라봤다.
[블루 박스]
[네이비 박스]
각각 4만 포인트와 8만 포인트라는 엄청난 몸값을 가진 박스들.
김상훈은 온두라스 전이 펼쳐지기 전에 얻은 이 박스들을 아껴두고 있었다.
그는 원래, 온두라스 전을 뛰기 전에 박스들을 전부 오픈하려 했었다.
하지만, 그 전에 오픈했던 박스들에서 충분히 좋은 스킬과 아이템이 나왔기 때문에 잠시 보류해뒀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김상훈은 총 12만 포인트짜리의 박스를 까기 위해 호텔의 침대 위에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을 본 이찬수 역시 반응했다.
- 오! 드디어 그거 까는 거야?
“예. 그러려고요.”
- 오오~! 나는 네가 하도 안 까서, 숙성이라도 시키는 줄 알았지.
“예? 무슨 소고기도 아니고…….”
-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인마. 그래서 뭐부터 까려고?
“당연히…….”
이찬수의 말에 대답하던 김상훈은 두 개의 값비싼 박스를 힐끗- 바라봤다.
이윽고 그는 이찬수를 보며 대답했다.
“제물부터 깔아야죠.”
- 제물? 싼 거부터 깐 뒤에 비싼 거 까는 거 말하는 거지?
“예.”
- 그거 다 미신이잖아.
“체감 상 그래야 더 잘 뜨는 것 같더라고요.”
대답을 마친 김상훈은 5천 포인트를 사용해서 오렌지 박스를 구매했다.
[현재 남은 포인트는 4120p입니다.]
“바로 오픈해줘!”
잠시 후, 오렌지 박스가 회전을 멈췄다.
[스킬 보호기]
- 등급 : 골드(Gold)
- 효과 : ‘합성’스킬을 사용 시, 확률을 100%로 바꿔줍니다.(3회 사용 시 소멸.)
그 즉시 두 남자가 반응했다.
“응?”
- 어?
“이건…….”
- 좋은 거 같은데?
“진짜 엄청 좋은데요?”
***
온두라스 전이 펼쳐진 오늘.
대한민국은 난리가 났다.
각종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가 김상훈으로 도배가 됐고.
기사 또한 김상훈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후반 75분에 투입된 김상훈, 2골 1어시스트로 영웅이 되다.」
「김상훈, ‘동료들이 잘해줘서 경기가 잘 풀린 것 같다.’며 겸손한 모습까지?!」
「온두라스의 카를로스 라몬 타보라 감독, ‘오늘, 김상훈은 리오넬 메시 같았다.’」
「손홍민, ‘상훈이 형은 진짜 괴물이다. 내가 본, 그 어떤 선수보다도 축구를 잘한다.’」
기사뿐만이 아니었다.
각종 SNS와 커뮤니티 사이트에도 김상훈의 골과 어시스트 장면이 주를 이뤘다.
당연하게도 축구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김상훈이라는 이름을 알게 됐다.
“김상훈이 그렇게 잘한다며?”
“오늘은 김상훈 하이라이트를 보고 자야겠다.”
“K리그에서 59골 19어시스트를 했다고? 이런 미친!”
“오늘부터 김상훈이 나오는 경기는 꼭 챙겨봐야겠다.”
그리고 지금, 관계자들과 회의를 하던 신태웅 감독 역시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잘할 줄은 알았지만, 대표팀에서도 이 정도 실력을 보여줄 줄이야…….”
신태웅 감독의 말에 근처에 있던 코치들이 대답했다.
“우리는 정말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습니다. 과연 토트넘의 에이스라더니, 클래스가 다르네요.”
“다양한 포지션에서 뛸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합니다. 중앙 미드필더뿐만 아니라, 윙어와 스트라이커로도 뛸 수 있는 선수에요.”
“제 생각에는 풀백이나 윙백으로도 충분히 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김상훈은 수비력도 대단한 선수입니다.”
코치들과 대화를 나누던 신태웅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생각했다.
‘잘하면…….’
김상훈이 있다면 충분히 좋은 성적을 낼 수도 있겠다고.
조금의 운까지 따른다면, 월드컵에서 아주 좋은 성적을 낼 수도 있겠다고.
잠시 후, 생각을 마친 신태웅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그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다음 경기에서 쓸 전술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
스킬 보호기를 얻은 김상훈은 근질거리는 마음을 다스렸다.
- 표정이 왜 그러냐? 똥 마려워?
“당장 합성을 하고 싶은데 박스부터 까려니, 근질근질해서요.”
- 그러면 합성부터 하면 되잖아.
“합성하기 더 좋은 스킬들이 뜰 수도 있잖아요.”
- 박스를 빨리 까고 합성을 하면 되겠네.
“예. 근데 빨리 까기에는 너무 비싼 녀석들이라서요.”
말을 하던 김상훈이 웃음을 꾹- 참았다.
사실 그는 이미 박스를 오픈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찬수를 놀리는 게 너무 재밌어서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던 것이다.
- 미친놈.
“아니, 왜 욕을 하고 그러세요?”
- 자꾸 답답하게 굴잖아.
“제 성격, 존중해주시죠?”
- 내가 왜?
“사랑하는 제자잖아요.”
- 뭣 까는 소리 그만하고, 박스나 까.
“예압!”
김상훈은 빠르게 박스를 오픈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더 장난을 치면, 이찬수가 진짜로 화를 낼 것 같았기 때문이다.
[블루 박스를 오픈합니다.]
먼저 오픈한 것은 당연히 가격이 더 낮은 블루 박스였다.
그곳에서 나온 것은.
[호나우지뉴의 개인기(L)]
레전드 등급의 스킬이었다.
“으억!”
- 헐!
두 남자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곧바로 가장 비싼 박스인 네이비 박스를 오픈하려던 김상훈은, 모든 행동을 멈췄다.
너무 놀라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는 눈앞에 보이는 스킬을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게 뜨다니…….”
블루 박스는 4만 포인트라는 엄청난 가격을 지닌 녀석이었다.
하지만 김상훈은 블루 박스를 초라해보이게 만드는 네이비 박스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는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비교적 기대치가 낮았던 블루 박스에서 대박이 터져버렸다.
엄청난 스킬이 떴기 때문일까?
이찬수 역시 크게 당황해서 소리쳤다.
- 이런 미친! 호나우지뉴?! 빠, 빨리 정보 확인해봐!
“……예, 예!”
정신을 차린 김상훈은 곧바로 시스템을 불렀다.
“시스템! 호나우지뉴의 개인기, 정보 확인 좀!”
시스템의 반응은 빨랐다.
곧바로 그의 눈앞에 스킬 정보를 띄웠다.
[호나우지뉴의 개인기]
- 등급 : 레전드(Legend)
- 효과 : 브라질의 레전드 호나우지뉴, 그의 개인기술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무려 레전드 등급의 스킬이었다.
하지만, 그 효과는 겉으로 보기엔 조금 애매하게 보였다.
다른 레전드 스킬과는 달리, 직접적으로 능력치를 올려주거나 각종 능력을 대폭 상승시켜주는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상훈과 이찬수는 조금도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 남자는 입을 쩍- 벌리고 스킬을 바라봤다.
- 설마 했는데, 진짜야……?
“호나우지뉴의 개인기를 다 쓸 수 있다니…… 이건 진짜…….”
- 웬만한 레전드 스킬보다 훨씬 좋은데?
“그러니까요. 진짜 대박이네요.”
- 그래서 느낌이 어떤 데? 호나우지뉴의 개인기가 머릿속에 스쳐지나가기라도 해?
“예. 그냥 제 몸이랑 머릿속에 박힌 느낌이에요. 마치 원래부터 이 개인기들을 쓸 수 있었던 것처럼…….”
- ……미쳤군.
잠시 이야기를 나눈 두 남자는 네이비 박스를 까는 것도 잊은 채, 곧바로 호텔 밖을 빠져나갔다.
야밤에 시작된 훈련타임이었다.
4일 뒤인, 2018년 6월 1일 금요일.
월드컵을 앞둔 대한민국은 보스니아와의 평가전을 치르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김상훈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커다란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 몇 골이나 넣을 거냐?
갑작스러운 이찬수의 질문에 김상훈이 웃음을 터트렸다.
잠시 후, 웃음을 멈춘 김상훈이 되물었다.
“그 질문 오랜만에 받네요?”
- 네가 최근에 사기 스킬을 얻었으니까. 그것도 두 개나.
“인정 안 할 수가 없네요. 호나우지뉴의 개인기 스킬도 진짜 너무 좋고…….”
- 어제 뽑은 그것도 정말 개사기지.
“크힠큭!”
그 순간, 김상훈은 실실 웃기 시작했다.
그만큼 기분 좋은 일이었다.
어젯밤, 드디어 네이비 박스를 오픈한 김상훈은 또 하나의 스킬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최근에 얻은 두 개의 스킬을, 보스니아와의 경기에서 사용할 생각이었다.
- 그만 좀 웃어! 그리고 몇 골이나 넣을 거냐고!
몇 골을 넣을 것이냐는 이찬수의 질문.
그 질문에 김상훈은 손가락 5개를 펼쳤다.
- 5골? 그게 될 거 같아?
“보여드릴게요.”
김상훈, 그는 5골을 예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