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첼시(3)
프리미어리그에서 펼쳐지는 토트넘과 첼시의 경기.
전반전을 치열하게 마친 양 팀의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2대 1로 승부가 크게 기울지 않은 상황에서 관중들은 선수들만큼이나 뜨거운 함성을 지르며 서로의 팀을 응원했다.
- 뭘 어쩌려고?
라커룸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김상훈을 향해 이찬수가 질문했다.
“뭐가요?”
- 미친놈이 되겠다면서? 그게 무슨 말인데? 내가 알기로는 너는 지금도 미친놈인데, 어떻게 또 미친놈이 된다는 거야?
“······제가 왜 미친놈이에요?”
- 몰라서 물어?
“······알죠.”
- ·······그래서 어떻게 플레이 하려고?
“간단하죠 뭐.”
- 아~! 그러니까 어떻게 할 거냐고!
“직접 보시죠. 흐흐흐!”
- 이런 젠장!
잠시 후, 오직 승리만을 생각하는 양 팀 선수들이 그라운드 위에 올라섰다.
이윽고 주심의 휘슬과 함께 후반전이 시작됐다.
삐익-! 삑!
첼시의 세스크 파브레가스는 스페인 리그와 영국 리그를 모두 경험한 베테랑 미드필더다.
그것을 증명하듯, 그는 지금 날카로운 패스를 모라타가 달리는 공간을 향해 찔러 넣었다.
겉으로 보면 공을 가볍게 톡-하고 차는, 아주 성의 없게 보이는 패스였지만 그 결과는 달랐다.
파브레가스의 패스는 모라타가 달리고 있는 바로 앞 공간에 뚝-하고 떨어졌다.
그리고 모라타는 토트넘의 오프사이드 트랩을 뚫고 단신으로 골키퍼 근처까지 달리고 있었다.
토트넘 수비들이 그런 모라타를 쫓았지만, 그들 역시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투욱-!
폼이 좋지 않은 모라타지만, 이런 좋은 패스를 놓칠만한 선수는 아니었다.
부드럽게 공을 트래핑 한 모라타는 망설임 없이 골대를 향해 슈팅을 때렸다.
퍼엉-!
위고 요리스가 곧바로 몸을 날렸지만, 공격수가 가까운 거리에서 때린 슈팅을 막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철렁-!
“우아아아아!”
골을 넣은 모라타는 최근 부진했던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려는 듯 팬들을 향해 뜨겁게 포효했다.
후반전이 시작된 지 3분 만에 터진 골이었다.
단숨에 2대 2가 되어버린 상황.
그런 상황에서 김상훈은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 세레머니를 하고 있는 모라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김상훈을 향해 이찬수가 질문했다.
- 왜 그렇게 느끼하게 쳐다보냐?
“느끼하다뇨? 그냥 쳐다본 건데요.”
- 그니까 왜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냐고~! 나는 네가 그런 눈빛을 할 때마다 불안해 죽겠어.
“이미 죽으셨잖······ 아, 죄송합니다.”
- 미쳤냐?
“죄송합니다. 저는 그냥 모라타가 웃겨서 쳐다봤어요.”
- ····웃기다고? 뭐가?
“금방 다시 골을 먹힐 것도 모르고 저렇게 좋아하고 있으니까요.”
- 골을 먹힌다고? 누구한테? 너한테?
“당연하죠.”
말을 마친 김상훈이 조용히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는 반투명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주 반가운 메시지들이었다.
[힐링을 사용하셨습니다.]
[체력이 6만큼 회복되었습니다.]
[강철 체력을 사용하셨습니다.]
[10분간 체력이 소모되지 않습니다.]
- 허! 제대로 날뛰려고 작정했구만?
“예. 쇼 타임, 시작입니다.”
이찬수의 질문에 대답한 김상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반전에 비해 훨씬 활발한 움직임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체력 안배를 전혀 하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다만, 달라진 김상훈의 움직임 때문에 첼시 선수들까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킴을 막아! 오른발로 슈팅을 때리지 못하게 만들어야 돼! 강하게 압박해서 드리블을 할 여유를 주지 마!”
첼시의 파브레가스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댔다.
김상훈을 막던 선수들이 그런 파브레가스의 목소리를 듣고 더욱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상훈은 강하게 압박이 들어오기도 전에 근처에 있는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그 결과.
퍼억-!
“으악!”
첼시의 은골로 캉테에게 태클을 당한 김상훈이 잔디 위에 주저앉았다.
삐익-!
이미 공을 동료에게 넘긴 뒤에 들어온 태클이었기에 주심은 캉테에게 옐로우 카드를 내밀었다.
“······.”
은골로 캉테는 그런 주심에게 아무런 말없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그런 캉테를 힐끗 쳐다본 김상훈이 이내 에릭센에게 다가갔다.
“킴? 왜?”
“에릭센, 그거 하자.”
“그거? 음······ 하긴 뭐, 거리가 별로 멀지 않으니까 너라면 가능하겠다.”
잠시 후, 에릭센과 김상훈이 공 하나를 놓고 프리킥을 차기 위해 섰다.
그들의 앞에는 선수들로 이뤄진 벽이 있었고, 더 나아가 첼시의 골키퍼 카바예로가 이를 악문 채, 김상훈을 노려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카바예로의 머릿속은 터질 듯 복잡한 상태였다.
‘직접 슈팅을 때리려나? 아니면 간접 프리킥······? 아! 기습적으로 땅볼로 때리는 거 아니야?’
카바예로가 이토록 긴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최근 김상훈의 프리킥 능력은 리그 내에서 정평이 나 있고, 카바예로 역시 전반전에 김상훈의 슈팅력을 직접 느껴봤기 때문이다.
“후욱~! 후우~!”
축축해진 손바닥을 말리기 위해, 장갑 안에 입으로 바람을 넣은 카바예로가 이내 생각을 멈추고, 자세를 잡았다.
상대가 어떤 슈팅을 때리든, 막아내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런 카바예로가 지키는 골문을 향해,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직접 슈팅을 때릴 것처럼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공의 바로 앞에 다가간 에릭센은 다리를 크게 휘둘렀다.
그 누가 봐도 슈팅을 때릴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건 페인팅이었다.
에릭센은 그의 발이 공에 닿기 직전, 다리에 힘을 빼고 공의 방향을 바꿨다.
투욱-!
그 순간, 김상훈은 그의 발 앞으로 굴러 들어오는 공을 향해 달렸다.
미리 짜놓은 플레이였기 때문일까?
에릭센과 김상훈의 움직임은 조금의 이질감도 없이 부드럽게 이어졌다.
이윽고 공을 앞에 둔 김상훈이 다리를 휘둘렀다.
“정확한 슈팅.”
뻐엉-!
유연하게 쭈욱-뻗은 김상훈의 다리가 휘둘러지며 공을 때려냈다.
동시에 앞에 서 있던 선수들이 공을 막아내기 위해 높게 점프했다.
휘익-!
많은 선수들이 프리킥을 찰 때, 어려워하는 것이 있다.
선수들로 이뤄진 벽을 넘기는 것.
그 벽을 아슬아슬하게 넘기면서 골대 구석에 공을 꽂아 넣는 것.
이 두 가지가 프리킥을 차는 선수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들이었다.
물론 그것은 김상훈에게도 포함되는 말이었다.
때문에 김상훈은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에릭센이 직접 슈팅을 때리는 척을 하며 한 번 페이크를 넣었고, 벽이 세워진 왼쪽 구석이 아닌, 골키퍼의 위치와 가까운 오른쪽 구석으로 슈팅을 때렸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각이 너무 좁았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은 보통 잘 선택하지 않는 코스였다.
하지만 김상훈에게 각이 좁고, 정확하게 때리기 어렵다는 문제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정확한 슈팅]
- 등급 : 히어로(hero)
- 효과 : 체력을 랜덤으로 1에서 20까지 소모해서 원하는 곳에 슈팅을 할 수 있습니다.
히어로 등급이지만, 그 이상의 효율을 보여주는 스킬.
김상훈에게는 그런 정확한 슈팅 스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김상훈의 슈팅은 지금, 카바예로가 막고 있는 골대를 향해 맹렬하게 날아가고 있었다.
“이익!”
카바예로는 몸을 날린 순간 직감했다.
이 슈팅은 골이 될 것이라는 것을.
김상훈의 슈팅을 막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그런 카바예로의 직감은 정확했다.
모든 힘을 다해 몸을 날렸지만, 카바예로는 골대 구석으로 꽂히는 공을 막아내지 못했다.
텅-!
김상훈이 때려낸 슈팅은 골대 오른쪽 상단 구석, 그것도 골대를 스치며 굴절됐다.
당연하게도 골키퍼가 막을 수 없는 슈팅이었다.
철렁-!
동시에 골을 넣은 김상훈이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고 코너킥 라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으, 으악! 내 눈!
이찬수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짜증을 냈지만, 김상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티셔츠를 흔들며 양 무릎을 잔디에 댄 채, 슬라이딩을 하기 시작했다.
촤자자자자자작!
더불어 김상훈은 그를 향해 함성을 지르고 있는 팬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촤아아아아! 촤라라라랏~! 촤아!”
당연하게도 이찬수는 그런 김상훈을 향해 욕을 하기 시작했다.
- 이 미친놈아! 빨리 옷 입으라고! 몸도 저질인 새끼가 왜 이러는 거야 도대체?
사실, 이찬수의 말처럼 김상훈의 몸이 크게 저질은 아니었다.
각종 물약을 섭취하고, 매일 강도 높은 트레이닝을 거친 김상훈은 제법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세레머니를 마친 김상훈이 자리로 돌아갈 때, 그를 기다리던 주심이 다가왔다.
“한 번만 더 그러면 퇴장이야.”
“알겠습니다.”
심판에게 옐로우 카드를 받은 김상훈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카드를 받을 것을 알고 한 세레머니였기 때문이다.
- 쓸데없이 카드를 뭐하러 받냐?
“예? 쓸데가 없다뇨?”
이찬수의 질문에 김상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 카드만 받았잖아. 왜 손해 보는 짓을 하냐는 말이야.
“손해를 보다니요. 저기 보세요.”
- ······?!
이찬수는 김상훈이 가리키는 첼시 선수들을 바라봤다.
동시에 이찬수의 눈이 커졌다. 너무 놀라버렸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이 순간 첼시 선수들은 단 한 선수도 빠짐없이 김상훈을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그때, 김상훈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이찬수의 도발(J)을 사용하셨습니다.]
[첼시의 모든 선수들이 약이 올랐습니다.]
- 너, 너?! 설마······ 이걸 노린 거냐?
이찬수의 질문에 김상훈이 낄낄대며 웃기 시작했다.
“크힠큭! 큭큭큭큭!”
- 아, 아오! 그렇게 소름 돋게 웃지 좀 말고오~! 쫌! 대답이나 하라고오!
“당연하죠. 제가 말했잖아요. 후반전에 제대로 보여드린다고.”
- ······소름 돋는 새끼.
“칭찬 감사합니다~!”
이찬수의 도발 스킬은 조커(Joker)라는 높은 등급에 맞게 그 효과가 확실했다.
도발이 걸린 이후로 첼시 선수들은 유난히 김상훈에게 거친 플레이를 펼쳤다.
퍼억-!
“어억! 심판! 카드! 카드!”
강한 태클에 당한 김상훈이 바닥을 뒹굴며 ‘카드’라는 단어를 외쳤다.
그에게 다가온 캉테가 입술을 꼬옥-깨물며 김상훈의 손을 잡고 손을 내밀었다.
인성이 좋기로 유명한 캉테는 도발을 당한 상태에서도 화를 꾹 참고 김상훈을 일으켜주려고 했다.
그런 캉테의 모습에 김상훈이 민망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 캉테 쟤는 그라운드의 천사라는 별명이 너무 잘 어울리네. 너랑은 전혀 다른 인성을 가지고 있어.
“예? 제가 뭐가 어때서요?”
- 너?
“예.”
- 야비하고, 음흉하고, 치사하고, 지저분하고, 싸가지 없고, 재수없는 놈이지.
“······너무하시네.”
이번 프리킥 역시 조금 전과 똑같은 패턴이었다.
에릭센이 굴려준 공을 김상훈이 정확한 슈팅으로 때리는 것.
알고도 당할 수 있는 무서운 패턴이었지만, 카바예로는 미리 공이 날아오는 위치로 이동을 했던 상태였다.
정확하게 김상훈의 슈팅을 예측한 카바예로가 이번에는 멋진 선방을 해냈다.
퍼엉-!
카바예로가 쳐낸 공을 잡은 선수는 요즘 폼이 좋은 델레 알리였다.
델레 알리는 크리스티안 에릭센과 2대 1패스로 파브레가스를 제친 뒤, 빠른 속도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런 알리에게는 은골로 캉테가 빠르게 달라붙었다.
델레 알리는 캉테의 압박에 힘겨워했지만 끝까지 공을 뺏기지 않고 버텨냈다.
투욱-!
그런 델레 알리가 손홍민을 향해 패스했다.
공을 잡은 손홍민은 슈팅 각을 보며 짧게 드리블을 치다가 각이 나오지 않자, 뒤에서 달려오는 선수를 향해 공을 패스했다.
그 순간, 달려오던 그 선수는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곧바로 슈팅을 때렸다.
“정확한 슈팅!”
뻐엉-!
김상훈의 슈팅 능력을 충분히 경험한 첼시 선수들은 그가 슈팅을 때리자마자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안토니오 뤼디거가 몸을 날렸고, 크리스텐슨 역시 몸을 날렸다.
아스필리쿠에타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퍼억-!
결국 김상훈의 슈팅은 아스필리쿠에타의 몸에 맞고 페널티 에어리어 밖으로 튕겨 나왔다.
최고의 팀 중 하나인 첼시의 선수들이 자존심을 버려가며 김상훈의 슈팅을 막아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튕겨 나온 공은 김상훈이 서 있던 곳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옳거니~!”
그리고, 날아오는 공을 바라보던 김상훈은 실실 웃으며 스킬을 사용했다.
“정확한 슈팅!”
허리 높이로 떨어지는 공을 향해 휘둘러진 김상훈의 발은 정확한 임팩트로 슈팅을 때려냈다.
날아오는 힘과 정확한 임팩트가 만났기 때문일까?
김상훈의 발이 공과 닿음과 동시에 커다란 소리가 터져 나왔다.
퍼엉-!
슈팅의 속도 또한 엄청났다.
게다가 첼시의 수비수들은 이제야 몸을 일으킨 상황.
그들은 공을 향해 다시 몸을 날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철렁-!
“······허허.”
카바예로는 허탈함이 가득한 웃음을 낮게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야에는 골대 안에서 그물을 흔들고 있는 공 하나가 보였다.
“무슨······ 슈팅이······.”
카바예로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너무 빠른 슈팅에 반응조차 하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는 행동이었다.
그런 카바예로의 귀에 죽을 만큼 듣기 싫었던 목소리가 들렸다.
유난히 커다랗고 재수 없는 목소리였다.
“촤르르르르르르~! 촤라라라랏! 촤아아~!”
***
“슬슬 킴을 빼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그의 옆에서 조심스럽게 말하는 코치를 바라봤다.
잠시 턱을 쓰다듬던 그는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맞는 말일세.”
물론 포체티노 감독 역시 김상훈을 교체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후반 78분으로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고, 현재 김상훈은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축구는 끝이 나기 전까지 그 결과를 알 수 없는 스포츠였기 때문에 포체티노 감독의 얼굴에는 여전히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틀 뒤, 토트넘에게는 아주 중요한, 꼭 이겨야만 하는 경기가 잡혀있었으니까.
그 팀을 상대하려면 최고의 컨디션인 김상훈이 필요했으니까.
더군다나 그 팀은.
세계 최강의 팀 중 하나로 꼽히는 팀이었으니까.
‘····무조건 이겨야 돼.’
지금 이 순간 포체티노 감독의 머릿속에는.
이틀 뒤에 열릴, 챔피언스 리그 8강전에 대한 생각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