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첼시(2)
안토니오 뤼디거의 앞에 선 김상훈이 현란하게 헛다리를 짚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는 상체를 흔들며 뤼디거의 집중력을 흩어놓으려 했다.
다만, 뤼디거는 그런 움직임에 쉽게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역시나 클래스 있는 선수였다.
하지만 김상훈의 드리블은 끝이 아니었다.
휘익-!
급하게 오른쪽으로 치고 들어가는 척을 하며 다시 한 번 뤼디거를 흔들었다.
뤼디거 역시 그런 김상훈의 움직임에 아예 반응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때문에 뤼디거는 김상훈의 무게 중심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때, 오른쪽으로 공을 친 김상훈이 다시 오른발로 공을 끌고 왼쪽발로 공을 치고 나갔다.
단숨에 방향전환을 하는 팬텀드리블이었다.
“어딜!”
안토니오 뤼디거는 순간적으로 김상훈의 움직임을 놓쳤음에도 재빠르게 몸을 움직여서 김상훈을 따라잡았다.
그때였다.
급격하게 속도를 죽인 김상훈이 갑작스러운 턴을 했다.
휘익-!
예상치 못한 움직임에 뤼디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슨 드리블이·····!’
결국 안토니오 뤼디거는 중심을 잃고 잔디 위에 미끄러졌다.
“뤼디거!”
첼시의 수비수 크리스텐슨이 놀란 눈으로 뤼디거와 김상훈을 바라봤다.
뤼디거가 뚫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크리스텐슨과 첼시 관계자들이 분석한 김상훈은 나쁘지 않은 드리블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처럼 안토니오 뤼디거를 제칠 정도는 절대 아니었으니까.
크리스텐슨이 슈팅을 막기 위해 다급하게 튀어 나왔지만, 뤼디거를 제친 김상훈의 다리는 이미 공을 향해 휘둘러지고 있었다.
휘익-!
“정확한 슈팅.”
첼시의 골키퍼 카바예로의 반응은 빨랐다.
김상훈의 슈팅이 날아올 코스도 정확히 예측했고, 확신을 갖고 몸을 날렸다.
하지만 카바예로는 알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 김상훈의 귀에는 시스템 메시지가 울리고 있다는 것을.
[정확한 슈팅(H)이 발동됩니다.]
[캐논 슈터(G)가 발동됩니다.]
너무나도 정확하고 미친 듯한 파워를 지닌 슈팅이었다는 것을.
그 사실을 알지 못한 것에 대한 결과는 처참했다.
“으헉!”
골대 구석으로 빨려 들어가는 공을 향해 손을 뻗은 카바예로의 눈이 커졌다.
손끝에만 공이 걸려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믿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슈팅이 그의 손가락을 밀어내며 골대 구석으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철렁-!
전반 10분 만에 터진 김상훈의 골이었다.
***
“촤아~!”
첼시 선수들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괴성을 지르고 있는 선수를 바라봤다.
그들은 지금 상황파악이 잘 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필드 위에서 미친놈처럼 괴성을 지르고 있는 선수의 플레이가 이상했으니까.
첼시 선수들이 경기 전에 받은 분석내용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이런 젠장! 저 새끼가 드리블을 저렇게 잘한다는 말은 없었잖아!”
첼시의 에당 아자르가 인상을 찌푸렸다.
최고의 드리블러 중 하나인 아자르는 김상훈의 드리블 수준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저건 나랑 비교해도 떨어지는 수준이 아니잖아······.”
당연하게도 아자르는 김상훈이 그와 같은 드리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첼시 선수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김상훈은 지금, 한 남자의 폭풍 잔소리를 듣고 있었다.
- 거기서 왜 그런 무리한 동작을 해? 그런 동작을 하면 무릎에 무리가 가는 거 몰라? 부상확률 줄여주는 스킬 생기고, 연골 보호 드링크 좀 마셨다고 몸 막 쓰는 거야?
“그런 건 아니고······.”
- 방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런 무리한 드리블을 할 필요가 없었어. 그냥 상체 페인트 잘 넣고, 순간적으로 방향전환만 확실하게 했어도 충분히 제칠 수 있었다고.
“다음엔 꼭 그렇게 할게요.”
- ········그래. 네가 부상을 당했었던 것을 잊지 마. 축구 짧게 할 거 아니잖아.
“예. 알겠습니다.”
평소와 달리 조금의 장난기도 없이 화를 내는 이찬수를 보며 김상훈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당연하게도 말대꾸는 없었다.
김상훈에게는 진심으로 그를 걱정하는 이찬수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때, 괜히 민망해진 이찬수가 소리를 빼액 질러댔다.
- 에잉~! 싸가지 없는 놈!
“예? 갑자기요?”
- 그래 이 새꺄! 싸가지가 없으니까 그렇게 비효율적인 드리블이나 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게 무슨 논리죠······?”
- 어른이 말하면 쫌! 그냥 죄송합니다~ 하면 되는 거야. 알겠어?!
“·····너무 꼰대신데?”
- 뭐 이 새꺄?
“정말······ 이찬수 선수는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 경기에 집중이나 해!
“아, 예!”
다시금 경기에 집중하기 시작한 김상훈은 오른쪽 미드필더 자리에서 동료들과 패스를 이어받기 시작했다.
오늘 김상훈의 안정감은 대단했다.
그의 발을 떠난 공은 정확하게 동료에게 향했고, 첼시의 수비가 달라붙어도 절대 공을 빼앗기지 않았다.
퍼억-!
“윽!”
안토니오 뤼디거의 깊은 태클에 김상훈이 발목을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삐익-!
주심이 반칙을 선언하며 뤼디거에게 옐로우 카드를 내밀었다.
그럼에도 김상훈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어윽! 으아아아악!”
- 야. 야! 안 쪽팔리냐? 쟤 이미 카드 받았어. 그만하고 일어나지 그래? 아까 보니까 별로 아플 거 같지도 않던데.
그런 이찬수의 말에 오만상을 찌푸리던 김상훈이 실눈을 뜨고 주변을 바라봤다.
이윽고 그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찬수를 불렀다.
“······이찬수 선수.”
- 왜 인마.
“쟤 카드 받았어요?”
- 그래. 그니까 엄살 그만부리고 일어나. 어우!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리네. 네가 무슨 네이마르야? 도대체 왜 그러냐?
“······크흠!”
자리에서 일어난 김상훈이 엉덩이를 탁탁-턴 뒤, 자리에서 일어나자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다가왔다.
“킴, 다리 괜찮아? 아프면 내가 차고.”
“아주 멀쩡해. 이번 거는 내가 차게 해줘. 물론 다음엔 네가 차고.”
“······알겠어. 멋진 킥 보여 달라고.”
“당연하지.”
애초에 아픈 곳이 없었으니 프리킥을 차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잔디 위에 공을 내려놓은 김상훈이 천천히 뒷걸음질을 친 뒤, 골대와의 거리를 가늠했다.
잠시 후, 공을 찰 방향까지 모두 정한 김상훈이 자세를 잡았다.
간접 프리킥을 하려는 페이크는 넣지 않았다.
이미 김상훈의 프리킥 실력은 리그에서 충분히 알려져 있는 상황.
되도 않는 속임수가 통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김상훈은 대놓고 슈팅을 때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로지 공에만 집중한 채,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렸다.
- 어디로 차려고?
“왼쪽 구석이요. 각도상 저쪽을 노리면 못 막을 거 같아요.”
- 코스는 잘 생각했네. 긴장하지 말고 몸에 힘 들어가지 않게 정신 차리고, 숨 참는 거 잊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이찬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김상훈이 이윽고 그라운드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
토트넘을 응원하는 관중들이 자리에서 벌떡-일어났다.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를 것 같던 그들은 스스로의 입을 막은 채, 그라운드 위에서 달리고 있는 선수를 바라봤다.
자리에서 일어선 모든 관중들이 그 선수를 향해 기대감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프리킥을 하고 있는 선수는 무서울 정도로 정확한 프리킥 성공률을 보여주고 있는 선수였으니까.
매 경기, 골을 터트리고 있는 말도 안 되는 선수였으니까.
이윽고 그 선수가 멈춰진 공을 향해 다리를 휘둘렀다.
그의 발이 공에 닿았을 때, 커다란 소리가 필드 위에 울려 퍼졌다.
뻐엉-!
쭈욱-뻗어나간 공은 선수들로 세워진 벽을 아슬아슬하게 넘긴 뒤, 계속해서 빠른 속도로 골대를 향해 날아갔다.
공의 움직임은 역시나 지저분했다.
끈임 없이 상하좌우로 흔들리며 첼시의 골키퍼 카바예로의 집중력을 흩트렸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카바예로는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은 채로 몸을 날렸다.
‘무조건 막는다!’
공의 지저분한 움직임으로 보아 프리킥을 찬 선수, 김상훈의 슈팅이 무회전이라는 것은 이미 눈치를 챈 상황.
카바예로는 공을 끝까지 보며 손을 뻗었다.
파앙-!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몸을 날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카바예로의 실력이 그만큼 뛰어났던 것일까?
결과적으로 카바예로는 김상훈의 프리킥을 막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그것도 아주 멋진 선방이었다.
당연하게도 이번에는 첼시의 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 카바예로 오늘 뭐야? 미친 거 아니야?!
“카바예로로오오오! 멋진 슈퍼 세이브였어!
“이야아아아아아! 첼시! 역전 가자!”
하지만, 그들의 함성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카바예로가 간신히 쳐낸 공이 김상훈에게서 멀지 않은 곳으로 날아가고 있었고.
그 공을 향해 김상훈이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김상훈이 날아오는 공을 향해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정확한 슈팅!”
외침과 동시에 오른쪽 다리를 하늘을 향해 쫘악-뻗으며 공을 차냈다.
마치 공중에 뜬 발레 선수와도 같은 자세였지만, 그의 발에 받은 공은 제법 빠른 속도로 골대를 향해 날아갔다.
“뭐, 뭐야!”
간신히 중심을 잡은 카바예로가 몸을 날렸지만, 김상훈이 때린 슈팅은 골대 오른쪽 구석으로 그대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골과 동시에 김상훈이 커다란 목청으로 소리를 질렀다.
“촤아~!”
그 순간, 양 팀의 관중석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첼시의 관중들은 찬물이라도 맞은 듯 얼어붙었고, 토트넘의 관중들은 불이라도 지핀 듯 뜨거운 함성을 쏟아냈다.
- 무슨 다리가 그렇게 찢어지냐? 네가 무슨 발레 선수야 뭐야?
“유연한 몸 스킬 때문인 거 같아요. 설마 했는데, 이게 되네요.”
골을 넣고 이찬수와 떠들던 김상훈은 갑자기 몸을 짓누르는 무게감에 고개를 돌렸다.
“뭐, 뭐야?!”
“혀어엉! 진짜 뭐예요! 미친 거 같아요! 하하하하!”
김상훈은 그의 등에 매달린 손홍민을 업은 채, 말했다.
“세레머니 한 번 가자!”
“그거요?!”
“당연하지.”
“하나, 둘, 셋!”
손홍민의 카운트가 끝날 때, 두 선수는 동시에 크게 외쳤다.
“촤라라라랏! 촤아!”
전반 28분 만에 2골을 먹힌 첼시 선수들은 허탈한 얼굴로 세레머니를 하고 있는 두 남자를 바라봤다.
하지만 첼시는 위닝 멘탈리티를 지닌 팀이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첼시 선수들의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비록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긴 했지만, 오늘 첼시는 결코 토트넘에게 질 생각이 없었다.
투욱-! 툭-!
첼시의 모지스와 파브레가스가 2대 1패스로 에릭센을 가볍게 제쳤다.
힐끗-전방을 본 파브레가스가 날카로운 패스로 윌리안을 향해 스루패스를 찔러 넣었다.
그런 파브레가스의 패스를 데이비스가 태클로 끊어내려 했지만, 실패했다.
타앗-!
공을 잡은 윌리안이 빠른 속도로 오른쪽 사이드로 달렸다. 계속해서 드리블을 하던 윌리안이 움직임을 멈췄다.
토트넘의 수비수 얀 베르통언이 그의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툭! 툭!
베르통언의 앞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이던 윌리안이 뒤에서 달려오는 캉테를 향해 패스했다.
달려오던 캉테는 그대로 슈팅을 때렸다.
퍼엉-!
하지만 캉테는 슈팅은 조금 허무할 정도로 골대를 벗어났다.
“으으·····!”
캉테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스스로의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런 캉테를 본 이찬수가 웃음을 터트렸다.
- 크하하하하! 캉테 쟤는 왜 볼 때마다 저렇게 귀엽지?
“그러게요. 실물로 보니까 완전 귀엽네요. 괜히 사람들이 캉요미(캉테 귀요미)라고 하는 게 아니었네요.”
- 근데 쟤 조심해라. 축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는 놈이니까.
“알겠습니다. 캉테는 뭐, 당연히 조심해야할 선수죠.”
말을 마친 김상훈이 묘한 눈으로 검은 피부에 아주 작은 체구를 지닌 선수, 캉테를 바라봤다.
은골로 캉테.
168cm라는 작은 체구를 지닌 그는 겉모습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선수다.
믿을 수 없는, 경이로운 활동량과 높은 축구 지능을 지닌 그는 팀에게 헌신하는 플레이로 경기장을 지배하는 대단한 선수였다.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이자 첼시의 핵심 선수!
그게 바로 은골로 캉테라는 선수였다.
그런 캉테가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왜 첼시의 핵심 선수인지 증명하고 있었다.
타악-!
은골로 캉테는 무사 뎀벨레가 델레 알리에게 보낸 패스를 날카로운 태클로 중간에 끊어냈다.
세계 최정상급 볼커팅 능력을 지닌, 캉테이기에 가능한 플레이였다.
볼을 끊어낸 캉테가 곧바로 파브레가스를 향해 공을 패스했다.
탓-!
베테랑 미드필더이자 정상급 패스능력을 지닌 파브레가스는 곧바로 사이드로 빠져서 질주하고 있는 아자르를 향해 긴 패스를 뿌렸다.
뻐엉-!
엄청난 속도로 달리던 아자르는 코너킥 라인 근처에서 공을 잡아냈다.
투욱!
부드러운 퍼스트 터치로 공을 떨어뜨린 아자르는 자신감 있는 드리블로 토트넘의 수비진을 흔들기 시작했다.
트리피어가 그런 아자르를 막기 위해 강하게 몸을 부딪쳤지만, 아자르는 여우처럼 부드러운 턴을 해서 트리피어를 제쳐냈다.
빠르게 역습을 당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일까?
토트넘의 수비진은 아자르의 드리블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촤아악-!
최근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산체스 역시 아자르의 슈팅 페이크에 허공에 태클을 하며 바닥을 뒹굴었다.
“이런 젠장!”
뒤늦게 얀 베르통언이 달려들었지만, 아자르는 이미 빠른 타이밍에 슈팅을 때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에당 아자르의 슈팅에 위고 요리스는 조금도 반응하지 못했다.
철렁-!
첼시의 에이스, 아자르의 골로 스코어가 2대 1이 됐다.
더불어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전반전이 종료됐다.
당연하게도 양 팀의 분위기가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실실 웃고 있는 김상훈을 향해 이찬수가 질문했다.
- 상훈아, 너는 팀이 골을 먹혔는데 왜 웃고 있냐?
“기대가 돼서요.”
- 응? 뭐가 기대가 돼?
“제가 이제부터 미친놈처럼 플레이를 할 건데, 첼시는 그걸 어떻게 막을지, 과연 저를 막아줄 수 있을지, 그게 너무 기대가 되네요.”
- ·······진짜 미친 새끼.
김상훈, 그가 오늘 경기에서 제대로 미친놈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후반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