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그 남자의 플레이
3대 0으로 밀리는 상황이지만, 스완지 시티는 교체카드를 사용하지 않았다.
전술적으로만 조금 더 공격적으로 나설 뿐이었다.
그런 스완지를 상대로 토트넘은 전반전과 같은 선수, 같은 전술로 후반전을 맞이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토트넘의 포체티노 감독 역시 FA컵 준결승을 앞둔 상태에서 선수를 교체하는 모험을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게다가 오늘 선발 출전한 선수들은 최고의 컨디션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포체티노 감독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한 선수가 잔뜩 신이 난 얼굴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전반전보다 컨디션이 더욱 좋아 보이는군.’
포체티노 감독의 시선을 받던 남자, 김상훈의 몸에 빙의한 이찬수는 시스템을 호출하고 있었다.
[힐링(G)을 사용하셨습니다.]
[체력이 8만큼 회복됩니다.]
[강철 체력(H)을 사용합니다.]
[10분간 체력이 소모되지 않습니다.]
그를 더욱 날뛸 수 있게 만들어주는 스킬들을 사용했다.
때문에 이찬수는 지금 마음껏 폭주하기 직전이었다.
“시작해보자고~!”
그때, 그런 이찬수의 머릿속에 김상훈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시죠? 10분이 지나면 페이스 조절 하셔야 돼요?’
“알았어 인마. 내가 무슨 아마추어도 아니고!”
‘그런 분 덕에 지금까지 몇 번이나 기절한지 모르겠네요.’
“······조심한다고.”
‘옙~! 그러면 클라쓰 한 번 보여주시죠!’
“분명히 놀라서 지릴 거니까. 팬티 갈아입을 준비나 하고 있어.”
‘······.’
말을 마친 이찬수가 전방으로 쇄도했다.
그의 육체가 아니었음에도, 이찬수는 완벽하게 김상훈의 몸을 컨트롤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김상훈과 꾸준히 빙의를 하며 적응을 해왔으니까.
이제는 김상훈의 몸을 자신의 몸처럼 사용이 가능해진 이찬수였다.
투욱-! 휘익-!
이찬수는 에릭센이 찔러준 패스를 발끝으로 툭-차서 몸을 돌렸다.
그러자 공이 공중에 떠서 그를 막으려던 올손의 몸을 넘겨버렸다.
몸을 돌린 이찬수는 공중에 뜬 공을 무릎으로 툭 쳐놓은 뒤, 계속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퍼스트 터치만으로 선수 한 명을 제쳐버리는 이찬수의 전매특허 기술 중 하나가 펼쳐진 순간이었다.
“이건 또 뭐야?!”
놀란 스완지의 올손이 다급하게 이찬수를 막기 위해 달려왔다.
이찬수는 올손이 다가오는 것을 봤음에도 속도를 높이거나 패스를 하지 않았다.
마치 그가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마침내 이찬수에게 다가온 올손이 몸을 부딪치려 했다.
타앗-!
그때, 이찬수는 갑자기 속도를 높여서 앞으로 치고 나가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당연하게도 올손 역시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그 선택은 이찬수가 원했던 것이다.
급정지를 한 뒤, 부드럽게 마르세유 턴을 하는 이찬수의 움직임에 중심을 잃은 올손이 제자리에 철퍽-넘어졌다.
“이익!”
올손이 붉어진 얼굴로 몸을 일으켰지만, 이찬수는 더 이상 그를 데리고 놀 생각이 없었다.
“정확한 슈팅.”
때문에 이찬수는 망설임 없이 슈팅을 때렸다.
뻐엉-! 철렁-!
골망을 뒤흔드는 공을 본 이찬수는 피식 미소를 지은 뒤, 별다른 세레머니 없이 그의 자리로 돌아갔다.
아주 시크한 모습이었다.
‘세레머니 왜 안 하세요?’
“5골 넣고 하려고.”
‘······헐.’
골을 넣은 뒤에도 이찬수는 계속해서 날뛰기 시작했다.
각종 드리블 기술이 다 튀어나왔다.
그의 화려한 드리블에 토트넘 동료들 또한 입을 쩍 벌린 채, 그를 바라봤다.
패스는 꼭 필요한 순간에만 했고, 오로지 드리블이었지만 동료들은 아무도 불만을 갖지 않았다.
‘이, 이런 미친! 이런 게 내 몸으로 되는 거였어?’
“드리블 스킬을 얻어서 그런가? 다른 때보다 잘 되네.”
공을 절대 빼앗기질 않았고, 상대 진형을 계속해서 휘저었다.
한두 명을 제치는 것을 아주 쉽게 했다. 공을 발에 달고 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흡사 메시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투욱-! 툭!
에릭센과의 2대 1패스로 스완지의 중앙 수비수 바틀리를 제친 이찬수는 어느새 다가온 모슨까지 슈팅 페이크로 제쳐냈다.
이윽고 달려오는 노르드펠트의 키를 넘기는 칩 슛으로 다시 한 번 골망을 흔들었다.
철렁-!
그 순간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강철 체력 스킬의 제한시간이 끝났습니다.]
[강철 체력 효과가 종료됩니다.]
동시에 이찬수가 심호흡을 내뱉었다.
“스읍····· 후우·····! 이제 좀 영리하게 플레이해야겠네.”
‘오~ 웬일로 바로 정신을 차리시네요?’
“이 새끼가······! 내가 무슨 애냐? 아오! 내가 나이가 몇 갠데······.”
‘하시는 행동은······ 크흠!’
“조용히 하자.”
‘예에~!’
실제로 이찬수의 플레이는 강철 체력 스킬의 시간이 종료됨과 동시에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차분해졌다.
방금 전까지는 폭주기관차 그 자체였다면 지금은 아주 노련한 월드클래스 베테랑 플레이어 그 자체가 되었다.
오른쪽 공격수 자리에서 뛰던 이찬수는 어느 순간에는 훨씬 아래 진형까지 내려와서 에릭센과 함께 토트넘의 빌드업을 이끌었고, 역습을 당할 때는 이를 악물고 뛰어서 수비에 가담했다.
수비력 역시 놀랄 만한 수준이었다.
촤악-!
깔끔한 슬라이딩 태클로 역습을 펼치던 스완지의 클루카스의 공을 뺏어낸 이찬수는 곧바로 반대편 대각에 있는 에릭 라멜라에게 롱패스를 뿌렸다.
퍼엉-!
사비 에르난데스의 패스 스킬과 이찬수의 경험이 쌓인 날카롭고 정확한 패스가 라멜라가 달리는 공간으로 정확하게 배달됐다.
타악-!
트래핑 능력이 좋은 라멜라가 안정적으로 공을 잡은 뒤,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전진했다.
라멜라는 그의 앞에 선 스완지의 수비수 판 더 호른의 앞에서 상체 페인팅을 넣은 뒤, 무리한 돌파를 시도하지 않고 뒤에서 달려오는 에릭센에게 공을 돌렸다.
탓-!
공을 잡은 에릭센은 오늘 원톱 공격수로 나온 손홍민에게 공을 패스했다. 제대로 연결되기만 한다면 단숨에 좋은 기회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팍-!
공을 잡기 위해 발을 뻗은 손홍민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
중요한 순간에 볼터치가 너무 길었기 때문.
때문에 손홍민은 그의 근처에 있던 바틀리와 공을 잡아내기 위해 경쟁해야했다.
하지만 바틀리의 몸싸움에 힘겨워하며 결국 손홍민은 공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때, 역습을 진행하려는 바틀리에게 날카로운 태클을 하는 남자가 있었다.
퍼억-!
“으억!”
정확하게 공을 향해 들어간 태클.
때문에 항의를 하는 바틀리를 보면서도 주심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태클을 한 남자는 빠르게 전방으로 치고 들어가면서 외쳤다.
“홍민아, 형이야~! 편하게 해.”
당연하게도 남자는 이찬수였다.
현역시절 훈련을 할 때, 메시에게도 여러 번 태클을 성공할 정도로 그의 태클 능력은 뛰어난 수준이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스완지의 선수들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 포체티노 감독 역시 이찬수를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 뭐야?! 훈련 때는 보여준 적도 없는 태클을·····.”
훈련 때 전혀 보여준 적이 없던 태클이었고, 저런 움직임 또한 보여준 적이 없었다.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마치 베테랑 수비수 같잖아?”
그 믿을 수 없는 움직임들을 보며, 포체티노 감독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도대체 얼마나 나를 놀라게 하려는 건지·····.”
***
전방으로 치고 들어가던 이찬수의 앞에는 오로지 스완지의 골키퍼 노르드펠트만이 남아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노르드펠트는 반쯤은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도대체 뭐야······.’
전반전에 보여준 움직임만으로도 스완지를 끔찍하게 괴롭혔던 김상훈이었지만, 후반전의 그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괴물.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선수는 괴물 그 자체였다.
‘왜 이렇게 커 보이는 거야······!’
노르드펠트는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물고, 마음을 다잡아봤지만 계속해서 떨리는 다리를 멈추는 데는 실패했다.
이찬수는 빙그레 웃으며 천천히 공을 몰고 전진했다.
그의 움직임에는 조금도 조급함이 묻어나오지 않았다.
“크하핫! 새끼, 쫄았네.”
베테랑인 이찬수는 노르드펠트의 얼굴만 봐도 그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
겁을 잔뜩 먹은 모습이었다.
저런 골키퍼를 상대로 골을 넣는 것은 그에게는 아주 쉬운 일이었다.
휘익-!
2.5m······. 2m·····.
이윽고 골키퍼와의 거리가 1m까지 가까워졌을 때, 이찬수는 다리를 휘둘렀다.
휘익-!
슈팅 페이크.
그런 이찬수의 동작에 노르드펠트가 크게 움찔거렸다.
페이크에 속지 않고 간신히 참아냈지만, 노르드펠트의 얼굴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 노르드펠트를 보며 이찬수는 가볍게 헛다리를 짚었다.
첫 페이크가 통하지 않았지만, 그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찬수는 골키퍼와 1대 1상황에서 골을 넣는 방법을 너무나도 많이 알고 있었으니까.
넣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헛다리를 짚던 이찬수는 어느새 노르드펠트의 바로 근처까지 다가가 있었다.
손을 내밀면 공을 잡을 수 있을 정도의 거리.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노르드펠트는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무거운 중압감이 그를 짓눌렀다. 그때, 이찬수가 마르세유 턴으로 노르드펠트를 제치려는 움직임을 취했다.
그 움직임에 노르드펠트는 곧바로 반응했다.
‘이번엔 진짜다!’
하지만 그런 노르드펠트의 판단은 최악의 판단이 되었다.
이찬수의 마르세유 턴.
그것 역시 페이크였으니까.
마르세유 턴을 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으니까.
투욱-! 툭-!
턴을 할 것처럼 페이크를 넣은 이찬수는 노르드펠트가 공을 빼앗기 위해 몸을 날리는 것을 보며 씨익 웃었다.
동시에 그는 가벼운 두 번의 터치로 노르드펠트의 가랑이 사이로 공을 통과시켰다.
“아!”
놀란 노르드펠트가 고개를 훽-돌려서 뒤를 돌아봤다.
그런 노르드펠트의 시야에는 천천히 공을 몰고 골대로 걸어 들어가는 선수의 등이 보였다.
후반전에 투입된 이찬수의 3번 째 골이었다.
‘이찬수 선수 적당히 하시는 게······? 이러다가 도핑검사 오지게 받을 것 같다고요.’
“아직 멀었어. 인마.”
골대까지 공을 몰고 들어간 이찬수가 공을 들고 팔과 옆구리 사이에 낀 채, 그라운드의 중앙까지 달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아깝다는 것을 표현하는 행동이었다.
더욱 많은 골을 넣겠다는 행동이었다.
당연하게도 리버티 스타디움 안에 있던 토트넘 팬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 킴상후우우우우우운!”
“미쳤다아아아! 왜 저렇게 잘하는 거야?!”
“우오오오오오! 우오오오오오! 저거 골 더 넣겠다는 제스처 맞지?”
“그게 아니면 뭐겠어?! 진짜 미친 거 같아. 킴은 정말 토트넘의 보물이야! 하하하하하하!”
지금 이 순간, 벤치에 앉아있던 토트넘 선수들 역시 서로를 바라보며 웃기 시작했다.
허탈한 웃음이었다.
“킴은 왜 실전만 되면 더 잘하는 거야?”
“몰라. 그냥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 훈련 때도 잘하긴 하는데······.”
“맞아. 실전에서의 킴은 아예 다른 사람인 거 같아. 특히 방금 보여준 모습은 훈련에서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던 거잖아.”
“킴의 정체가 뭘까? 나는 이제 스완지가 불쌍해지려해.”
“오늘의 킴은 정말······ 수준이 달라 보여.”
“분위기도 달라졌어. 전반전에는 감독님이랑 세레머니를 하더니, 지금은 3골을 넣을 동안 세레머니도 안 하고 있어.”
“더 많은 골을 넣겠다는 거지.”
“······미쳤군.”
벤치에 앉은 토트넘 선수들이 김상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김상훈의 몸에 빙의한 이찬수는 여전히 경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동료들과 빠른 패스를 이어가며 득점 기회를 노렸다.
‘와····· 진짜 5골 넣겠다는 마인드이신가보네요?’
“당연한 거 아니냐? 잘 보고 있어. 2골 남았다.”
하지만 그런 이찬수의 바람은 이어지지 않았다.
후반 77분, 승리를 확신한 포체티노 감독이 토트넘에 변화를 줬기 때문이다.
“뭐야?!”
이찬수가 인상을 찌푸렸다.
교체되는 멤버 명단에 ‘김상훈’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 이찬수는, 피식 웃으며 교체를 위해 벤치를 향해 터벅터벅 걸었다.
‘아···· 아쉽네요.’
“어쩔 수 없지. 감독 입장에서는 주요 선수들 체력 관리를 시키는 것이 중요한 일이니까. 그리고 더 뛰게 했다가 선수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머리 아파지니까.”
‘······그러네요.’
교체된 선수는 김상훈과 손홍민이었다.
김상훈을 대신해서 루카스 모우라가 투입되었고, 손홍민 대신 요렌테가 투입되었다.
‘근데 이찬수 선수.’
“왜?”
‘벤치에 앉아서 웬만하면 말을······.’
“말 아끼라고?”
‘저랑 말투가 너무 다르시니까요.’
“와~! 이제 스승 입도 막아버리네. 아주 멋진 놈이야!”
‘그게 아니라······ 평소에 욕을 너무 많이 하시니까 괜히 오해받을까봐 그러죠.’
“알겠어 인마. 알아서 어련히 잘해줄게.”
‘어우~ 왜 이렇게 불안할까요?’
“도발하는 거야? 당장 관중석에 뛰어들어서 춤이라도 출까?”
‘아! 죄송, 죄송해요!’
“조심하자고.”
“아~ 예!”
그때, 벤치에 자리를 잡은 손홍민이 이찬수를 향해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형! 오늘 진짜 쩔었어요! 도대체 형 정체가 뭐예요? 그 슬라이딩 태클은 훈련에서도 안 보여줬던 거잖아요.”
그런 손홍민의 질문에 이찬수는 아무런 대답 없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 아! 비밀이에요? 그럼 어쩔 수 없죠.”
지금 이 순간 이찬수는 김상훈의 부탁대로 말을 최대한 아낄 생각이었다.
하지만 입이 너무 근질거려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아껴뒀던 비장의 무기지.”
“예?”
동시에 김상훈의 잔소리가 이찬수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
경기를 마치고 숙소에 도착한 김상훈이 평소와는 달리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서 앉아있던 이찬수의 표정 역시 비슷했다.
“이걸 어떻게 사용해야 될까요?”
- ······그러게나 말이다. 자칫 잘못하면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는 거라서.
“후우······! 운만 잘 따라주면 되게 괜찮은 스킬인 것 같은데 말이죠.”
- 근데 너무 도박성이 짙어.
“그래서 고민중이에요.”
- 뭐? 이걸 쓴다고?
“예.”
- 상훈아! 다시 한 번 생각해봐. 너무 위험하잖아!
“인생 뭐 있습니까. 일단 질러보는 거죠.”
스완지 시티와의 경기가 끝난 뒤에 박스를 오픈한 김상훈은 하나의 스킬을 얻게 됐다.
그리고 김상훈은 지금 이 순간, 그 위험천만한 스킬을 사용할 준비를 끝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