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유벤투스(1)
별들의 전쟁이라 불리는 UEFA 챔피언스 리그.
챔피언스 리그에 오르는 팀들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팀들이다.
당연하게도 그곳에서 우승하는 팀은 최고의 명예를 얻은 것과도 같다.
토트넘은 그런 챔피언스 리그 16강에서 유벤투스를 만나 2:2로 1차전을 마무리 지은 상태였다.
그리고 2018년 3월 8일 목요일.
바로 오늘, 토트넘은 유벤투스를 상대로 8강으로 오를 팀을 정하는 16강 2차전을 맞이하는 날이다.
“흠······.”
토트넘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창백한 얼굴로 턱을 쓰다듬었다.
그 역시 떠오르는 명장이라 불리고, 프리미어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지만, 챔피언스 리그 8강을 앞둔다는 것은 또 다른 중압감이 느껴졌다.
그만큼 챔피언스 리그는 감독에게도 큰 욕심이 나는 리그였다.
포체티노 감독이 이토록 긴장하는 이유는 꼭 챔피언스 리그여서만은 아니었다.
세리에A의 최강 팀, 유벤투스를 상대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포체티노 감독을 긴장시키는 진짜 이유였다.
세리에A 우승 33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5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2회.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 7회.
더 나열하자면 너무나도 많은 기록을 세우고 있는 자타공인 세계 최강의 팀 중 하나.
세리에A에서 6시즌 연속 우승을 기록 중인 이탈리아 리그 최강 팀.
그런 유벤투스를 상대로 긴장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힘든 싸움이 되겠군.’
그라운드 위에 선 유벤투스 선수들을 바라보며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이 입술을 깨물었다.
쉽지 않은 경기가 될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그는 팀을 믿을 뿐이었다.
***
‘저 녀석이 김상훈이군.’
지오르지오 키엘리니.
유벤투스의 차기 주장이 될 남자이자, 팀의 레전드인 그는 명실상부 월드클래스 수비수다.
그런 키엘리니가 지금 이 순간 어깨춤을 추며 그라운드에 올라선 김상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쉬지 않고 무언가를 떠들어대고, 어깨를 들썩대는 그를 바라보며 키엘리니의 눈빛이 변했다.
‘아주 여유 있어 보이는군.’
동시에 키엘리니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저 애송이 녀석에게 제대로 교육을 해줘야겠구만.’
요즘 최고의 기량을 뽐내고 있는 선수 중 하나인 김상훈.
그에 대한 분석을 키엘리니는 이미 끝마쳤다.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주 만약, 내가 뚫린다고 해도·······.’
고개를 돌린 키엘리니의 시선이 향한 곳.
그곳에는 큰 키에 푸근한 인상을 지닌 남자가 서 있었다.
하지만 그는 외모만으로 판단을 할 수 있는 남자가 절대 아니었다.
‘······부폰이 있으니까.’
유벤투스의 수호신이자, 이탈리아의 수호신.
현역으로 뛰는 레전드이자, 골키퍼계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인물.
골키퍼로서 모든 능력이 뛰어나지만, 특히 1대1 상황에서의 대처 능력은 그 누구도 따라오기 힘들 정도로 대단한 선수.
그게 바로 잔루이지 부폰이라는 남자였다.
부폰을 본 키엘리니는 마음이 더욱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그는 다시 한 번 김상훈을 바라봤다.
흠칫!
‘뭐, 뭐야?!’
키엘리니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토트넘에서 뛰는 애송이, 김상훈이 그를 빤히 쳐다보며 실실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나를 보고 웃고 있는 거야?’
키엘리니가 팔뚝에 솟아오른 닭살을 바라볼 때, 서로를 향해 악수를 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일렬로 선 선수들이 차례로 악수를 하며 암묵적으로 페어플레이를 약속했다.
동시에 양 팀 선수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승부욕을 드러냈다.
유벤투스 선수들과 악수를 하던 김상훈은 경기 시작 전, 이찬수가 해줬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 키엘리니는 대부분의 선수들을 지보다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어. 근데 실제로 다른 선수들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좋아. 자, 이런 선수를 어떻게 공략해야할까?
“······글쎄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존나 도발하는 거지.
“예?”
- 자, 잘 생각해봐. 좆밥이라고 생각했던 선수가 뜬금없이 보자마자 실실 쪼개면서 도발을 해. 그럼 기분이 어떨 거 같냐?
“······아주 더럽겠죠.”
- 빙고! 이제 네가 키엘리니를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알겠지?
“예. 너무 잘 알 거 같아서 벌써부터 얼굴이 화끈거리네요.”
회상을 마친 김상훈은 그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키엘리니를 바라봤다.
실제로 마주친 키엘리니는 커다란 키에 강인해 보이는 외모를 지닌 남자였다. 마주보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는 그에게 김상훈이 말을 걸었다.
아주 친근한 말투였다.
“어이~ 키엘리니. 네가 그렇게 잘 한다며?”
키엘리니의 눈이 커졌다.
순간적으로 너무 놀라버렸다.
토트넘의 애송이가 자신을 부를 것이란 것을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가 유창한 이탈리아어로 말을 걸 것이라는 것은 더더욱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키엘리니는 베테랑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재빠르게 표정을 숨겼다.
더 이상 별다른 도발이 없다면 김상훈을 무시할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별다른 도발이 있었다.
“오늘 털릴 준비는 됐지? 엉? 네가 수비를 제법 한다고 하니까 나는 오늘 딱 두 골만 넣을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해?”
도발, 그것도 유창한 이탈리아어로 쏘아대는 도발이었다.
‘이 새끼가!’
키엘리니는 실실 웃어대는 김상훈의 얼굴에 당장이라도 주먹을 꽂아 넣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참아냈다.
다만 키엘리니 역시 나이가 들며 성질을 많이 죽였다지만, 그는 다혈질 성격을 지닌 파이터형 수비수였다.
결국 참지 못한 키엘리니가 김상훈을 향해 거친 말을 내뱉었다.
“오늘 지옥을 맛보게 될 거다. 애송아!”
“하하! 기대할게~?”
김상훈은 크게 웃으며 화가 난 키엘리니를 지나쳤다.
동시에 그는 그라운드 위에서 둥둥 떠다니는 반투명한 남자를 향해 익살스러운 윙크를 보냈다.
- 어우~ 내가 시켰지만, 존나 재수 없네.
***
[5경기 부상 방지(S)효과가 적용됩니다.]
[5경기를 진행할 동안 부상을 당하지 않습니다.]
김상훈은 시스템 메시지를 들으며 가볍게 발목을 돌렸다.
예전이었으면 발목을 돌릴 때마다 우드득-소리가 났을 텐데, 지금은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최근에 먹었던 뼈가 튼튼 빼빼로의 효과 때문이었을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김상훈은 어찌됐든 좋은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뼈가 좀 튼튼해지긴 한 건가? 발목에서 소리가 안 나네.”
김상훈이 발목을 돌리며 중얼거리고 있을 때, 주심이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을 불었다.
오늘 토트넘은 유벤투스를 상대로 4-3-3 포메이션을 준비했고, 요리스, 트리피어, 산체스, 베르통언, 데이비스, 뎀벨레, 김상훈, 에릭센, 알리, 케인, 손홍민을 선발 출전시켰다.
베스트 멤버로 선발진을 꾸린 토트넘과 마찬가지로 유벤투스 역시 부폰, 산드로, 키엘리니, 베나티아, 바르잘리, 마투이디, 퍄니치, 케디라, 코스타, 이과인, 디발라를 선발진으로 꾸리며 베스트 멤버를 내세웠다.
사실, 토트넘 선수들이 최근 좋은 기세를 타고 있다고는 하지만 객관적인 전력으로 따지면 유벤투스 선수들의 이름값이 더욱 높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토트넘 선수들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은 표정이었다.
위축될 필요가 없었다.
그들 역시 최고의 리그인 프리미어리그에서 최상위권 순위를 기록하고 있는 팀이었으니까.
토트넘에는 최근 미친 듯이 골을 넣고 있는 김상훈이 있었으니까.
불과 몇 경기 만에 팀의 에이스가 된 김상훈이 4-3-3포메이션의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서 동료들에게 공을 배급하기 시작했다.
정확한 패스와 뛰어난 탈압박을 가진 김상훈을 유벤투스 선수들은 강한 압박으로 막으려 했다.
하지만, 패스가 좋은 김상훈과 크리스티안 에릭센 콤비가 펼치는 빌드업을 막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좀 더 강하게 압박해! 반칙을 두려워하지 마!”
토트넘의 패스플레이에 버거워하는 동료들을 향해 키엘리니가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목소리를 들은 마투이디와 케디라가 각각 김상훈과 에릭센에게 더욱 강하게 압박을 했다.
퍼억-!
“악!”
케디라의 차징에 에릭센이 잔디 위에 뒹굴었다.
삑-!
“좋아! 잘하고 있어! 더욱 강하게 압박해!”
키엘리니는 그런 케디라에게 다가와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했다.
실제로 상대팀 선수가 좋은 기회를 얻기 전에 카드를 받지 않는 반칙으로 끊는 것은 팀에게 도움이 되는 플레이였다.
게다가 심판이 반칙을 선언한 자리도 골대와는 43m로 아주 먼 거리였다.
다만, 키엘리니는 알지 못했다.
토트넘에는 먼 거리에서도 위협적인 프리킥을 찰 수 있는 선수가 있다는 것을.
프리킥 스페셜 리스트인 주닝요의 능력을 갖고 있는 선수가 있다는 것을.
“후우~!”
심호흡을 한 김상훈은 눈앞에 있는 공과 저 멀리 보이는 골대를 바라봤다.
그 후에 선수들로 이뤄진 벽을 바라봤다.
동시에 머릿속으로 계산을 마쳤다.
생각을 마친 김상훈이 공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빠르게 휘둘러진 그의 다리가 공에 맞자마자 큰 소음이 터져 나왔다.
뻐엉-!
그의 발을 떠난 공이 일직선으로 골대의 왼쪽 구석을 향해 쏘아져나갔다.
완벽한 무회전 슈팅이 골대 안으로 파고들기 위해 미친 듯한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공의 움직임 역시 굉장히 지저분했다.
회전이 거의 없기 때문에 만들어진 움직임이었다.
당연하게도 골키퍼로서는 막아내기 힘든 공이었지만, 유벤투스의 골키퍼는 과감하게 몸을 날렸다.
하지만 공은 완벽에 가깝게 골대 구석을 향했다.
그것을 본 토트넘 선수들은 골이 될 것이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퍼억-!
유벤투스의 골키퍼가 그 불가능해보이던 선방을 해버렸다.
잔루이지 부폰.
그가 왜 유벤투스의 수호신인지를 알려주는 선방이었다.
“······와! 이걸 막는다고?”
김상훈이 혀를 내둘렀다.
그 역시 당연히 골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완벽한 슈팅이었지만, 그 슈팅을 부폰이 막아냈다.
그런 김상훈에게 이찬수가 말했다.
- 저 양반, 부폰이잖아.
“레전드는 레전드네요.”
- 괜히 21세기 최고의 골키퍼로 뽑혔던 선수겠냐.
“하긴, 근데 오히려 좋네요.”
- 응?
갑자기 좋다고?
김상훈의 말에 이찬수의 눈이 커졌다.
그런 이찬수를 바라보던 김상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무 쉬우면 재미없잖아요. 저 정도는 막아줘야 골 넣을 맛이 나죠.”
- 그, 그러냐?
“이찬수 선수는 현역 시절 때 안 그러셨어요? 방금 저처럼 아깝게 골 못 넣으면 막 좌절하고 그랬어요?”
- 뭐, 뭔 개소리여?! 나도 당연히 오히려 좋았지!
“에이~ 아닌 거 같은데?”
- 맞다니까? 그리고 은근히 말 놓지 마라.
“예? 제가 언제 말을 놨다고······ 괜히 말 돌리시는 거 아니에요?”
- 닥치고 경기에나 집중해!
“예엡~!”
- 말꼬리 늘리지 마라. 진짜 패고 싶으니까.
“저는 이찬수 선수의 사랑의 매라면 언제든지 맞을 준비가 되었답니다.”
- 이 씹새가! 내가 귀신만 아니었으면 넌 진짜 뒈지게 맞는 건데······!
“저도 이찬수 선수한테 사랑의 매를 맞고 지금보다 더 정신을 차리고 싶은데······.”
- 아오!
“크힠큭!”
- 웃지 마!
“푸흐흐흐······!”
- 웃지 말라고 했다?!
“안 웃었어요······. 프흐··· 프흐흐······!”
- 아오! 이 새끼를 진짜! 어우! 열 받아!
***
잔루이지 부폰이 엄청난 슈퍼세이브를 해냈지만, 공을 잡아내지는 못했다.
그가 쳐낸 공은 골대 뒤로 넘어갔고, 심판은 코너킥을 선언했다.
“마크 놓치지 마! 정신 똑바로 차려!”
“거기! 선수 제대로 막아!”
“심판! 여기 자꾸만 옷을 잡는다고요!”
골을 넣기 위해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선수들과 그것을 막기 위해 몸싸움을 하는 선수들.
그들로 인해 유벤투스의 패널티 에어리어 안은 거친 전쟁터가 되어 있었다.
코너킥을 준비하고 있는 선수는 크리스티안 에릭센이었고,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는 토트넘에서도 장신에 속하는 해리 케인, 다빈손 산체스, 얀 베르통언 등이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받치는 2선에는 김상훈과 손홍민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퍼엉-!
정확한 패싱 능력을 가진 에릭센이 중앙에 있는 선수들을 겨냥하며 코너킥을 찼다.
쉬이이익-!
길게 뻗어져 나간 공을 향해 모든 선수들이 점프 했다.
그들 중, 공이 떨어지는 곳에 위치한 선수는 유벤투스의 키엘리니와 토트넘의 해리 케인이었다.
거의 동시에 점프를 한 두 선수지만, 헤딩 경합에서 이겨낸 선수는 키엘리니였다.
“크윽-!”
키엘리니의 강력한 헤딩경합에 밀린 해리 케인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 역시 몸싸움과 공중볼 경합에는 자신이 있는 선수였지만, 직접 부딪쳐본 키엘리니는 수준이 다른 선수였다.
그런 키엘리니가 머리로 걷어낸 공이 골대 뒤쪽이 아닌, 전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그곳에 서 있던 선수는 손홍민이었다.
탓-!
공을 잡은 손홍민이 가볍게 공을 살짝 앞으로 친 뒤에 슈팅을 때렸다.
뻐엉-!
슈팅 능력만큼은 EPL 최상위권이라고 할 수 있는 선수가 손홍민이다.
게다가 그런 손홍민이 지금 이 순간 공을 잡고 슈팅을 때린 장소는 그가 평소에 아주 좋아하는 위치였다.
팬들 사이에서는 손홍민 존(Zone)이라고 불릴 정도로 높은 골 결정력을 보여주는 위치.
손홍민의 발을 떠난 슈팅이 엄청난 속도로 골대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러나.
퍼엉-!
유벤투스의 수호신, 잔루이지 부폰이 그 슈팅을 향해 몸을 날려 막아냈다.
다시 한 번 터진 부폰의 슈퍼세이브였다.
손홍민이 머리를 감싸쥐며 아쉬워했지만, 공격은 끝이 난 것이 아니었다.
부폰이 쳐낸 공을 향해 달려들고 있는 선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선수는 먹이를 노리는 야수처럼 공을 향해 달렸다.
동시에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순간 가속, 정확한 슈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