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허더즈필드(2)
휘익-!
위고 요리스가 몸을 날렸다.
물론 모니의 슈팅 궤적을 보고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제발!’
그저 간절한 마음과 모니의 공을 차기 전 동작을 보고 방향을 예측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요리스의 간절함에도 빠르게 날아간 슈팅은 그의 몸과는 반대편으로 향했다.
철렁-!
“아······!”
골을 먹힌 위고 요리스의 입에서 짙은 침음이 흘러나왔다.
패널티킥을 내준 얀 베르통언 역시 고개를 숙였다.
토트넘의 다른 선수들 역시 아쉬운 표정으로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때, 한 선수가 박수를 크게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짝!
동시에 고함을 질렀다.
“다들 정신 차려! 이제 한 골 먹혔는데 표정들이 왜 그래?! 아직 경기 초반이잖아! 힘내자고!”
과할 정도로 파이팅이 넘치는 선수.
유난히 자신감이 과한 선수.
바로 김상훈이었다.
그런 김상훈을 보며 토트넘 선수들은 피식 웃었고, 에릭 라멜라는 인상을 찌푸렸다.
“······저 새끼 진짜 뭐야?!”
다만 그 역시 지금 김상훈이 하는 행동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라멜라 역시 프로였고, 토트넘을 사랑하는 선수였다.
당연히 그도 팀의 승리를 바랐고, 팀의 사기를 올려주는 행동이 싫지는 않았다.
다만, 그 선수가 김상훈이라는 것.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선수가 너무 나댄다는 것이 그의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었다.
“어이~! 라멜라!”
“······?”
라멜라는 갑자기 그를 부르는 김상훈을 바라봤다.
김상훈은 엄지를 치켜 올린 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치고 있었다.
“작품 하나 만들어 보자고?!”
그런 김상훈의 말에 에릭 라멜라는 스스로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하······! 저 미친놈, 쪽팔리지도 않나?”
***
공을 받은 김상훈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그를 향해 허더즈필드의 선수 두 명이 달라붙었다.
김상훈이 위협적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이뤄지는 마크였다.
이런 상황에서 김상훈은 욕심을 부릴 생각이 없었다.
툭-!
바로 라멜라에게 패스한 김상훈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런 젠장!’
공을 받은 라멜라는 짜증을 내면서도 다시 김상훈에게 리턴패스를 했다.
어쩔 수 없었다.
그의 시야에서 가장 공을 주기 좋게 움직이고 있는 선수가 김상훈이었으니까.
툭-!
라멜라가 가볍게 찍어 찬 공이 패널티 라인 안쪽으로 쇄도하는 김상훈에게 날아갔다.
김상훈은 발등으로 가볍게 공을 잡아낸 뒤, 곧바로 왼쪽을 향해 패스했다. 아주 약하지만 정확한 패스였다.
데구르르-!
공이 굴러가는 공간으로 달려오고 있는 선수는 해리 케인이었다.
골대 앞에서 굴러오는 공을 맞추는 것.
EPL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인 해리 케인에게는 아주 쉬운 일이었다.
탁-!
해리 케인은 마치 패스를 하듯, 정확하게 골대 구석으로 공을 보냈다.
철렁-!
김상훈의 어시스트에 이은 해리 케인의 골로 양 팀의 스코어가 1:1이 됐다.
세레머니를 하는 해리 케인에게 달려간 김상훈의 눈에 라멜라가 보였다.
그래서 김상훈은 그에게 다가갔다.
“라멜라! 패스 기가 막힌데?”
김상훈이 라멜라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머리를 쓰다듬자, 라멜라가 작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손 치워라.”
그런 라멜라의 반응에 김상훈은 다급하게 손을 떼며 말했다.
“하하! 쑥스러워하기는! 다음에도 좋은 패스 부탁한다.”
“말 좀 걸지 마!”
***
사비 에르난데스의 패스 능력을 장착한 김상훈의 질 좋은 패스가 계속해서 허더스필드의 수비진을 괴롭혔다.
오늘의 김상훈은 그를 상대하는 선수들에게는 아주 얄미운 존재였다.
워낙 슈팅능력이 좋기 때문에 공을 잡기만 하면 압박을 해야 했고, 압박을 하러 다가가면 주변에 있던 동료들에게 정확한 패스를 건넸다.
툭-! 투욱-!
빠른 템포에도 불구하고 김상훈의 패스는 조금의 오차도 없이 동료들의 발 앞으로 향했다.
무서울 정도로 정확한 패스였다.
허더즈필드 선수들은 결국 전반 30분이 지나자 급속도로 지쳐갔다.
압박이 조금 헐거워지는 것이 느껴지자, 김상훈은 곧바로 과감한 슈팅을 때렸다.
오늘의 첫 슈팅이었기 때문에 그의 슈팅에는 캐논 슈터의 효과가 깃들어 있었다.
“정확한 슈팅.”
뻐엉-!
쏜살같이 쏘아져나가는 공을 보며 김상훈은 골이 될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슈팅을 하기 전까지가 힘들지, 슈팅을 정확하고 강하게 때리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기 때문.
하지만, 변수가 생겼다.
그의 슈팅이 높게 뜨기 전, 허더즈필드의 중앙미드필더 호그가 몸을 날려서 슈팅을 막아내 버린 것이다.
퍼억-!
복부로 공을 막아낸 호그가 이를 악물고 버텨보려 했지만, 결국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으······어·····!”
어떻게든 일어나려했지만, 호그는 일어설 수가 없었다.
숨이 턱-하고 막혔고,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고통스러워하는 호그에게 다가간 김상훈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건넸다.
“······괜찮아요? 많이 아파요?”
- 우와~! 진짜 가식적이다. 나 방금 소름 돋은 거 알아? 어?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또 보여주기식 착한 척이야? 그리고 방금 너 로봇 같았던 거 알아?
“······크흠!”
이찬수의 말을 애써 무시한 채, 김상훈은 계속해서 호그를 걱정했다.
이제는 눈시울까지 붉혀가며 호그를 바라봤다.
그 모습을 보던 토트넘의 팬들은 김상훈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봤다.
“······저기 김상훈 좀 봐봐!”
“왜?”
“상대 선수를 다치게 한 게 너무 미안해서 눈물을 흘리려고 하잖아.”
“아······! 축구를 잘하는데 착하기까지 하다고?”
“정말 마음이 여린가봐······. 우리가 응원하자.”
“그래!”
그런 김상훈의 모습에 화를 내려던 허더즈필드의 팬들마저 씁쓸한 표정으로 김상훈의 매너에 박수를 보냈다.
지금 이 순간 상대 팀 팬들에게 박수를 받고, 토트넘 팬들에게는 뜨거운 응원을 받는 남자는 마치 눈물을 숨기려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 너 뭐하냐?
이찬수의 질문에 김상훈이 아주 작은,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대답했다.
“······표정관리를 못하겠어서요.”
- 어휴! 이 새끼의 실체를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데!
결국 호그는 데포트레와 교체되어 그라운드를 빠져나갔다.
새로 투입된 데포트레는 활발하게 움직이며 분위기를 가져오고자 노력했다.
토트넘 역시 최선을 다하며 분위기를 넘겨주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서 양 팀이 치열하게 겨루던 전반전이 끝이 났고, 이윽고 후반전이 시작됐다.
툭-!
테포트레의 패스를 받은 하데르조나이가 윌리엄스를 향해 패스했다.
뎀벨레가 윌리엄스를 압박했지만, 윌리엄스는 뎀벨레의 압박을 벗어난 뒤, 반 라 파라가 달리고 있는 공간으로 스루패스를 찔러줬다.
패싱능력이 좋은 윌리엄스의 스루패스는 날카롭게 공간을 파고들었고, 반 라 파라는 안정적으로 패스를 받아냈다.
‘모니!’
공을 잡은 반 라 파라는 곧바로 중앙에 있던 모니에게 크로스를 올렸다. 빠르고 날카로운 크로스였다.
“산체스 정신 차려!”
얀 베르통언이 순간적으로 모니를 놓쳐버린 산체스에게 소리쳤다.
토트넘의 중앙수비수 다빈손 산체스는 23살의 어린나이에도 근래 꾸준히 출전하며 실력을 증명하고 있는 선수였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한 그는 가끔씩 큰 실수를 하곤 했다.
지금 역시 그러했다.
날카로운 크로스가 올라오고 있는 상황에서 허더즈필드의 스트라이커를 놓쳐버렸다는 것.
그건 아주 큰 실수였다.
그리고 그 실수는 곧바로 골로 연결됐다.
출렁-!
멋진 헤딩슈팅으로 골을 넣은 모니는 양손을 지르며 팬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
“우어어어어어!”
“모니! 모니! 모니!”
“모~~~~~니!”
“모니! 한 골 더 가자!”
토트넘의 홈구장임에도 허더즈필드의 팬들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열정적인 응원을 펼쳤다.
오히려 홈구장에서 경기가 펼쳐질 때보다 훨씬 뜨거운 응원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현재 프리미어리그 최상위권 순위를 유지하고 있는 토트넘을 상대로 2:1로 앞서고 있었으니까.
분위기를 끌어올리기에 너무나 좋은 골을 넣어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만큼 한번 뜨겁게 달아오른 팬들의 열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선수들 역시 한 번 기세를 타면 끝까지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런 열기와 기세를 단숨에 부숴버리는 남자가 있었다.
뻐엉-!
그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나온 슈팅이었다.
갑작스러운 슈팅에 허더즈필드 선수들이 고개를 돌려 골대를 바라봤다.
“뭐, 뭐야?!”
허더즈필드의 골키퍼 로슬이 당혹스런 음성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는 단숨에 당혹감을 지운 뒤, 이를 악물고 날아오는 공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런 로슬의 최선을 다한 다이빙에도 공은 여지없이 골대로 꽂혀버렸다.
“촤아아~! 촤차차차짜아~!”
너무나 쉽게 골을 넣은 김상훈은 입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골대 안에 있던 공을 들고 중앙라인으로 달려갔다.
“빨리 빨리 시작합시다!”
이제 2대2 상황이기 때문에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낄 생각이었다.
김상훈은 오늘 경기에서 질 생각이 전혀 없었다.
더군다나 김상훈은 오늘 경기에서 후반 60분대에 교체되는 것이 확실시 되어있는 상황.
그에게는 많은 시간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찬수 선수!”
후반전 60분까지 10분가량 남았을 때, 김상훈이 마치 드론처럼 허공에 떠다니던 이찬수를 불렀다.
- 왜 인마.
“오랜만에 한 번 뛰셔야죠?”
- 빙의 하자고?
“예.”
- 너 괜히 교체되기 전까지 골 넣을 자신 없으니까 나한테 떠넘기는 거 아니야?
“에이~ 그게 무슨 서운한 말씀이십니까. 저는 자신 있어요. 근데 또 실전에서 이찬수 선수 경기 본 지가 너무 오래 됐잖아요.”
- 그래, 속아준다.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이찬수와의 빙의는 김상훈에게 큰 도움이 되는 일이다.
기록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찬수의 패스, 슈팅, 드리블, 시야, 호흡, 판단력 등, 모든 움직임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김상훈에게는 엄청난 도움이 된다.
때문에 김상훈은 이찬수와의 빙의에 거리낌이 없었다.
“시스템, 빙의할게.”
[빙의에 동의하시겠습니까?]
“그래, 동의할게.”
빙의에 동의하자, 곧바로 경고음과 함께 메시지가 떠올랐다.
[경고! 빙의 시 신체에 무리가 올 수 있습니다.]
[경고! 빙의 상태에서는 체력이 2배 빨리 소모됩니다.]
[경고! 빙의 시 신체의 제어권이 체력이 모두 소모 될 동안 이찬수에게 넘어갑니다.]
체력이 빠르게 소모되고 신체에 무리가 올 수 있지만, 김상훈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빙의 시 아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찬수에게 몸을 넘긴 김상훈, 그의 눈앞에는 반투명한 스킬 정보 창이 떠 있었다.
[강철 체력]
- 등급 : 히어로(H)
- 효과 : 강철 체력 사용 시, 10분간 체력이 소모되지 않습니다.(하루 1회 사용가능.)
10분간 체력이 소모되지 않게 만들어주는 강철 체력 스킬.
이 스킬은 빙의와는 찰떡궁합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더불어 김상훈의 걱정을 덜어주는 스킬이 하나 더 있었다.
그 스킬을 바라보던 이찬수가 질문했다.
“이것도 지금 쓸까?”
‘당연하죠.’
바보가 아니라면 쓰지 않을 이유가 없는 그 스킬.
지금 이 순간 김상훈과 이찬수는 최근에 구입했던 옐로우 박스에서 나온 신상 스킬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