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크리스탈 팰리스(2)
크리스탈 팰리스와 맞붙게 된 토트넘 선수들은 상대팀의 홈구장에 와있음에도 조금도 주눅이 든 모습이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얼굴에서는 자신감이 넘쳤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토트넘은 프리미어리그 2위를 기록 중이고, 최근 경기에서 로치데일AFC를 8대 1로 이기며 강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다만, 그런 토트넘을 상대하는 크리스탈 팰리스 선수들 역시 들뜬 얼굴로 승부욕을 불태웠다.
감독들의 심리전도 만만치 않았다.
크리스탈 팰리스의 로이 호지슨 감독은 최근 좋은 모습을 보인 벤테케를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앞세운 4-3-3 포메이션을 들고 왔고, 토트넘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케인을 최전방 공격수로 앞세운 4-2-3-1 포메이션으로 공격적으로 몰아치는 전술을 준비해왔다.
최근 좋은 기세를 보여주고 있는 두 팀이 맞붙는 경기였기 때문일까?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선수들의 신경전이 대단했다.
삐이익-!
빠르게 공을 돌리는 케인과 알리를 향해 벤테케와 알렉산더 소를로스가 강하게 몸싸움을 걸었다.
퍼억-!
“악!”
단단한 피지컬을 지닌 벤테케가 강하게 몸을 부딪치자 델레 알리가 바닥을 뒹굴었다.
“반칙이잖아요!”
알리가 다리를 부여잡으며 심판을 바라봤지만, 심판은 고개를 저었다. 반칙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델레 알리는 억울한 표정으로 이를 악 물었지만, 더 이상 항의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심판마다 파울을 주는 기준이 달랐으니까.
공을 빼앗은 크리스탈 팰리스 선수들은 본인들의 진영에서 안전하게 공을 돌렸다.
벤테케가 소를로스에게 패스했고, 소를로스가 밀리보예비치에게 다시 공을 넘겼다.
그때, 밀리보예비치에게 빠르게 달려드는 선수가 있었다.
활동량이 좋은 선수이자 EPL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인 해리 케인이었다.
해리 케인의 압박에 밀리보예비치가 다급하게 제임스 맥아더에게 패스했다.
그때, 밀리보예비치의 패스 경로를 예측하고 맥아더에게 달려드는 선수가 있었다.
“촤앗~!”
그 선수는 김상훈이었다.
김상훈은 과감한 슬라이딩으로 맥아더에게 패스가 가기 전에, 공을 끊어냈다.
세밀한 분석에 의한 환상적인 컷팅이었다.
공을 끊어낸 김상훈의 눈에 전방으로 뛰어가는 케인이 보였지만, 패스를 넣지는 않았다.
케인에게 패스를 주더라도 주변에 너무 많은 상대 선수들이 진을 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빼앗길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김상훈이 선택한 것은 과감한 슈팅이었다.
“정확한 슈팅!”
크리스탈 팰리스 선수들은 프리미어리그에서 살아남고 있는 실력 있는 선수들이다.
그만큼 그들은 축구를 열심히 했고, 상대의 정보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에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토트넘의 신입 선수인 김상훈의 중거리 슛이 위협적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오늘 경기에서 김상훈에게 슈팅 찬스를 주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김상훈이 밀리보예비치의 패스를 중간에 끊어낼 것이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 결과, 지금 이 순간 김상훈은 노마크 상태로 슈팅을 때려내고 있었다.
뻐어엉-!
정확한 슈팅과 캐논 슈터 스킬이 적용된 김상훈의 슈팅은 여지없이 골대의 구석으로 쏘아져나갔다. 거리가 멀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정확하게 골대의 구석으로 향하는 슈팅은 골키퍼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막기 어려웠다.
그것을 증명하듯 크리스탈 팰리스의 골키퍼 웨인 헤네시가 몸을 날렸지만, 공은 야속하게도 그의 손끝을 지나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이후에는 당연하게도 골을 넣은 김상훈의 세레머니 타임이었다.
“촤아아!”
골을 넣은 김상훈은 동료들과 셀레브레이션을 한 뒤, 곧바로 벤치 근처로 달려갔다.
그런 김상훈을 축하하기 위해 달려든 남자가 있었다.
“형! 진짜 쩔었어요!”
“홍민아~! 고맙다.”
가장 뜨겁게 김상훈을 축하해주는 남자는 손홍민이었다.
***
1:0으로 토트넘이 앞서기 시작하면서 크리스탈 팰리스의 감독 로이 호지슨의 눈빛이 변했다.
‘김상훈의 슈팅을 조심하라고 그렇게 말했거늘!’
이대로는 안 된다. 조금의 틈만 있어도 위협적인 슈팅을 때리는 김상훈을 막아야 한다.
생각을 마친 로이 호지슨은 왼쪽 미드필더로 출전한 리에데발트를 불렀다.
“리에데발트.”
“예, 감독님.”
“오늘 자네의 역할은 김상훈에게 여유를 주지 않는 것이야. 그의 공을 뺏을 필요는 없다. 그의 패스와 슈팅을 방해하도록! 할 수 있지?”
“예. 할 수 있습니다.”
리에데발트는 공격력도 뛰어나지만 수비력도 준수하고 체력이 좋은 선수였다.
비교적 체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김상훈을 맡기엔 제격이라고 생각한 호지슨 감독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런 로이 호지슨 감독의 판단은 정확하게 맞아 들어갔다.
리에데발트가 김상훈에게 맨투맨마크를 시작하자 양 팀의 경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집중해! 김상훈한테 너무 공을 몰아주지 마! 맨투맨 당하고 있잖아!”
무사 뎀벨레의 호통에 김상훈에게 집중적으로 패스하던 토트넘 선수들이 움찔했다.
반면에 김상훈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에게 거머리처럼 붙어있는 리에데발트를 힐끗 바라봤다.
동시에 말을 걸기 시작했다.
“리에데발트, 맞지?”
“······?”
리에데발트는 갑자기 말을 거는 김상훈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고 무시했다.
“리에데발트 영어 못하니? 응~? 에이~ 표정 보니까 알아들은 것 같구만. 왜 못들은 척을 해?”
동료와 빠른 원터치패스를 하고, 공간을 찾아들어가는 등, 여러 움직임을 가져가면서도 김상훈은 계속해서 리에데발트에게 말을 걸었다.
“리에데발트, 너도 런던 살지? 맞겠지 뭐. 크리스탈 팰리스도 런던에 있으니까. 그치? 혹시 런던에 맛집 알고 있어? 내가 여기 온 지 얼마 안 돼서 잘 모르거든~”
결국 참다못한 리에데발트가 짜증스럽게 고개를 돌려서 김상훈을 쳐다보며 소리를 질렀다..
“아오! 조용히 좀 하지?!”
지금 이 순간, 리에데발트는 계속해서 말을 거는 김상훈에게 제대로 화를 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어? 어, 어디 갔어?!”
그가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린 타이밍에 김상훈은 에릭센과 눈을 맞추며 크리스탈 팰리스의 뒷공간으로 파고 드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본 리에데발트가 놀라서 쫓아갔지만, 이상하게 김상훈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뭐야? 뭐가 이렇게 빨라?!”
뒷공간으로 파고드는 김상훈의 속도가 너무나 빠르다는 것.
그것은 리에데발트뿐만 아니라 크리스탈 팰리스의 수비들의 멘탈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투다다다다!
에릭센이 찔러준 로빙패스를 향해 달려가는 김상훈을 따라 잡을 수 있는 선수는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순간 가속]
- 등급 : 골드(Gold)
- 효과 : 스킬 사용 시 5초 동안 빠른 속도를 낼 수 있게 됩니다.(하루 1회 사용가능.)
순간 가속 스킬을 사용한 지금.
김상훈의 속도는 EPL최정상급이었기 때문이다.
겨우 5초간 지속되는 스킬이었지만, 페널티에어라인과 멀지 않은 위치에 있었던 김상훈이 골대 근처까지 달려가는 것에는 그 5초면 충분했다.
출렁-!
골키퍼까지 제친 뒤에 가볍게 골대를 향해 공을 밀어 넣은 김상훈.
그가 포효하기 시작했다.
“촤라랏~ 촤앗~ 쫘!”
·······물론 조금은 이상한 포효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곤, 스스로의 얼굴을 가리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
토트넘은 우세한 경기력으로 좋은 기회를 몇 번 더 만들었지만, 골을 넣는 것에 실패했고 결국 2:0의 스코어를 지켜내며 전반전을 마무리했다.
후반전이 시작되면서 포체티노 감독은 델레 알리를 빼고 손홍민을 투입하는 선택을 했다.
더불어 김상훈을 에릭센의 포지션으로 넣고, 에릭센을 후안 포이스와 교체했다.
김상훈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넣으며 공격을 이끄는 역할을 부여하고, 후안 포이스를 넣음으로써 수비를 강화하려는 생각이었다.
또한 현재 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에릭센의 체력을 보충해주려는 생각이기도 했다.
크리스탈 팰리스의 로이 호지슨 감독 역시 교체카드를 사용하며 반전을 꽤하려 했다.
전반전에 불안한 모습을 보인 수비수 제임스 톰킨스를 빼고 델라니를 투입시켰고, 오른쪽 공격수인 타운센드를 빼고 이창용을 투입시켰다.
그리고 대한민국 선수인 이창용이 투입된 것을 본 기자들은 다급하게 기사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김상훈과 손홍민, 이창용까지 모두 출전! 코리안 더비에서 승자는?!」
「김상훈 시즌 6호, 7호 골 작렬! 2경기 7골을 터트린 그를 이창용은 과연 막아낼 수 있을까?」
「김상훈, 최고의 컨디션으로 종횡무진. 이러다 해트트릭까지?」
「손홍민과 최고의 호흡을 보여줬던 김상훈. 오늘도 보여줄 것인가.」
무려 3명의 한국 선수가 최고의 리그 중 하나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맞붙는다는 것.
한국 축구팬들에게는 당연하게도 큰 이슈가 되는 일이었다.
다만 그런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남자가 있었다.
“흐음~ 확인 좀 해봐야겠다.”
그 남자는 다른 것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시스템!”
후반전을 뛰기 위해 그라운드 위로 올라온 남자, 김상훈은 자신의 체력 수치를 확인했다.
[현재 남은 체력은 43입니다.]
메시지를 본 김상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조금만 신경 쓰면서 뛴다면 풀타임을 뛸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몸 컨디션도 굉장히 좋았다. 아픈 곳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현역시절 부상 한 번 제대로 당해본 적 없는 이찬수.
그의 몸 관리 비법을 제대로 전수받았으니까.
그 비법 그대로 열심히 훈련하고 있었으니까.
주심의 휘슬과 함께 후반전이 시작됐다.
2골 차이로 이기고 있는 토트넘 선수들은 안전한 패싱플레이로 경기를 이끌어나갔다.
컨디션이 좋은 토트넘 선수들은 특별한 패스미스 없이 부드러운 패싱플레이를 유지했다.
“킴!”
포이스의 패스를 받은 빅토르 완야마가 다시 김상훈에게 패스했다.
패스를 받기 전, 미리 공을 향해 달려간 김상훈은 리에데발트의 강한 압박을 버텨내며 한 번의 터치로 손홍민에게 패스했다.
압박을 받으며 정확하게 패스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이찬수의 퍼스트터치 스킬과 사비 에르난데스의 패스 스킬이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줬다.
투욱-! 파밧!
패스를 함과 동시에 김상훈은 반대편 사이드로 뛰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크리스탈 팰리스의 선수가 그런 김상훈을 마크하기 위해 달라붙었다.
해리 케인 역시 중앙 패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쇄도하며 수비수 한 명을 달고 다녔다.
“선수 놓치지 말고 제대로 막아!”
크리스탈 팰리스의 수비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노력에도 순식간에 패널티 에어리어 주변이 아수라장이 됐다.
당연한 일이었다.
언제든 골이 터질 수 있는 위험한 장소에서 막아야할 선수들이 많아진다면, 수비수들의 긴장감이 커졌으니까.
실제로 현재, 크리스탈 팰리스 수비진은 우왕좌왕하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김상훈도 막아야 했고, 해리 케인도 막아야 했다.
자연스럽게 손홍민의 주변 압박이 헐거워졌고, 손홍민은 이런 상황을 놓치는 선수가 아니었다.
툭-! 투욱-!
가볍게 두 번 공을 차며 드리블을 친 손홍민은 골대와의 각을 잰 뒤, 곧바로 오른발 슈팅을 때렸다.
이 자리는 손홍민이 가장 좋아하는 자리였다.
때문에 그는 공을 차냄과 동시에 골이라는 생각을 하며 골대를 바라봤다.
손홍민의 강력한 슈팅은 빠르고 정확하게 골대로 감겨 들어갔다.
완벽한 감아 차기였다.
쐐에에엑! 출렁-!
“아자아앗!”
김상훈의 어시스트로 인한 손홍민의 골이었다.
골을 넣은 손홍민은 코너킥 라인으로 달려간 뒤, 높게 점프하며 팔을 하늘로 휘둘렀다.
멋진 어퍼컷 세레머니였다.
그리고 어느새 달려온 김상훈이 손홍민의 등에 업히며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어우! 홍민아! 왜 이렇게 잘하냐?”
“형! 형 패스가 너무 꿀이었어요.”
“우리 홍민이는 말도 예쁘게 하네!”
“상훈이 형, 오늘 해트트릭 하셔야죠?”
“네가 좀 떠먹여줘라.”
“킬패스 하나 들어갈 거니까 준비하세요.”
“오냐~!”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축구선수 두 명이 어깨동무를 하며 밝게 웃는 모습.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는 한국 팬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