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귀신 같은 남자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1972년생으로 감독치고는 젊은 축에 속한다.
2006년까지 축구선수로 활동한 그는 2009년부터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RCD 에스파뇰과 사우스 햄튼을 거쳐 2014년부터 토트넘의 지휘봉을 잡게 됐다.
사우스 햄튼 시절, 리그에 돌풍을 일으키며 팀을 8위로 마무리하게 만든 그는 토트넘에서도 훌륭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2014-15시즌에는 리그 5위라는 성적을 거뒀고, 2015-16시즌에는 팀을 3위까지 올려놓는 기염을 토해내기도 했다.
그런 훌륭한 능력으로 인해 탑클래스 감독이 된 그는 지금 이 순간 놀란 눈으로 한 선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이건······!’
포체티노 감독 정도의 인물이라면 공을 다루는 움직임을 오래 지켜보지 않아도 그 선수의 클래스를 알 수 있다.
헌데 그런 포체티노 감독마저도 그의 눈앞에 있는 선수의 실력이 가늠이 되질 않았다.
게다가 그는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김상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선수였나······?’
그의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나버린 실력을 보여주는 김상훈을 보며 스스로의 눈썰미에 대한 의심까지 생길 정도였다.
게다가 지금 포체티노 감독은 김상훈을 바라보며 한 남자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 남자는 포체티노 감독이 가장 영입을 원했던 남자이자 최고의 선수였던 남자였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 김상훈이 보여주는 움직임들은 그 남자와 똑 닮아있었으니까.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그는······.’
생각에 잠겼던 포체티노 감독이 이내 고개를 휘저으며 부정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김상훈과 그는 전혀 관련이 없어.’
이윽고 포체티노는 지금은 세상을 떠나버린 최고의 선수를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노력하며 김상훈을 바라봤다.
***
토트넘 트레이닝 센터의 훈련장 위에는 선수들이 경쟁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선의의 경쟁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그들에게는 전쟁과도 같은 일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 어떤 선수도 주전 선수가 되고자하는 열망은 있었으니까.
수많은 팬들의 앞에서 멋진 실력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으니까.
그런 마음을 증명하듯 토트넘 선수들은 주전, 비주전을 가리지 않고 모든 선수들이 실제 경기처럼 최선을 다했다.
다만 경기 내용은 아주 처참했다.
모든 선수들이 최선을 다했지만, 그들의 표정은 평소랑은 아주 달랐다.
한 남자의 믿을 수 없는 활약 때문이었다.
남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쉽게 토트넘 선수들을 따돌리고, 너무나 쉽게 골을 넣었다.
“이건 말도 안 돼······! 뭐 저런 괴물이·······.”
또 한 번 남자에게 돌파를 허용한 얀 베르통언의 얼굴이 이상했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심지어 리오넬 메시나 크리스티아노 호나우두를 상대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지금 이 순간 EPL탑클래스 수비수인 베르통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생각했다.
그가 지금 상대하고 있는 김상훈은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노 호나우두보다도 상대하기 힘든 선수라고.
사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이찬수는 현시대 세계 최고라는 메시, 호날두와 대등한 실력을 지닌 남자였다.
그런 남자가 위닝-마스터리그 시스템까지 활용한다면?
사기적인 스킬을 남발하며 축구를 한다면?
그런 이찬수를 토트넘 선수들이 막아내지 못하는 것은 절대로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미친 듯 한 활약을 펼치는 이찬수를 보며 얀 베르통언은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휴······· 정말······· 귀신같은 축구실력이야······.”
얀 베르통언을 포함한 토트넘 트레이닝센터 안에 있는 모든 선수들은 그들이 죽기 전까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상대하는 선수가 진짜 귀신이라는 것을.
지금 상대하고 있는 남자가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라는 것을.
***
환상적인 드리블과 창의적인 패스,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토트넘 선수들을 농락하고 있는 이찬수.
현재 그의 머릿속은 한 남자의 잔소리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찬수 선수! 이찬수 선수! 아 씹! 체력 관리! 체력 좀 관리하라고요! 지금 체력 쭉쭉 떨어지는 거 보이죠? 보여줄 거 다 보여주셨으니까 적당히 좀 하시라고요오오!’
다급한 목소리였다.
이찬수와 함께 몸과 시야를 공유하고 있는 김상훈의 눈앞에 뜬 메시지들 때문이었다.
[현재 남은 체력은 30입니다.]
[경고! 빙의 중에는 체력이 2배 빨리 소진됩니다.]
시스템 메시지를 본 김상훈은 당황했다.
이미 강철 체력(H)스킬 적용시간은 끝난 지 오래였다.
때문에 체력 소진이 빨라도 너무 빨랐고, 경기에 집중한 이찬수는 이런 메시지들이 보이지 않는 것인지, 지금 이 순간에도 체력이 쭉쭉 빠지는 움직임을 펼치고 있었다.
‘아니! 체력도 없는데, 바이시클 킥을 왜 하세요! 아니······! 어휴······! 아무리 말해도 안 통하시겠네.’
결국 김상훈은 잔소리를 멈췄다.
지금의 이찬수에겐 어떤 말도 통하지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었고, 운이 나쁘지만 않으면 체력이 0이 되기 전에 훈련이 끝날 것 같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이찬수는 지금 오로지 축구에만 집중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보통 선수들과는 집중력 자체가 달랐다.
상대 선수의 움직임, 동료들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파악하며, 경기의 흐름을 읽어냈다.
그런 이찬수의 존재감 때문일까?
비주전 팀 선수들은 주전 팀 선수들을 강하게 밀어붙이며 우세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그때였다.
공을 툭툭 치며 앞으로 나가던 이찬수가 전방에 쇄도하는 요렌테를 향해 스루패스를 주기 위해 빠르게 다리를 휘둘렀다.
그런 이찬수를 막아서는 선수가 있었다.
이찬수는 그의 성격대로 라멜라에게 친근하게 인사했다.
“라멜라구나? 아까 맞은 알은 좀 괜찮니?”
“닥쳐!”
라멜라는 잔뜩 흥분한 채로 이찬수의 공을 뺏기 위해 다리를 뻗었다.
하지만 이찬수는 그런 라멜라가 귀엽다는 듯 웃으며 살짝 몸을 돌려서 라멜라의 발을 피했냈다.
동시에 이찬수는 라멜라의 다리 사이로 살짝 공을 밀어냈다.
툭-!
“이런 젠장!”
라멜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축구선수들 사이에서 알까기(다리 사이로 공이 빠져나가는 것)를 당하는 것은 매우 굴욕적인 일이었기 때문.
흥분한 라멜라는 이찬수를 향해 이를 악물고 달려가서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했다.
꼭 공을 뺏기 위한 태클은 아니었다.
건방지게 날뛰는 신입을 혼내주기 위한 태클이었다.
휘익-!
“어이구! 이 친구, 또 흥분했네?”
그런 라멜라의 태클을 이찬수는 예상했다는 듯 가볍게 피해냈다.
그런데 이찬수가 제자리에 멈춰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라멜라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행동이었다.
얼굴이 붉게 물든 라멜라는 재빠르게 몸을 일으켜서 이찬수에게 달려들었다.
그때.
툭-!
라멜라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이찬수가 다시 한 번 그의 다리 사이로 공을 집어넣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아주 쉬워 보이는 동작이었다.
2연속 알까기였다.
동시에 이찬수는 낄낄대며 전방에 보이는 팀원에게 공을 패스했다.
“이런 씨발!”
순식간에 바보가 되어버린 라멜라는 애꿎은 잔디를 걷어차며 이찬수를 노려봤다.
이윽고 라멜라는 스페인어로 욕설을 쏟아냈다.
“건방진 새끼! 겨우 훈련에서 조금 잘했다고 기고만장하지 마라!”
그 말을 들은 이찬수는 씨익 웃었다.
동시에 라멜라를 향해 유창한 스페인어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언어 마스터 스킬은 쓸 필요가 없었다.
이찬수는 현지인만큼이나 스페인어에 능통한 남자였으니까.
“건방지다고?”
“너, 너! 어떻게 스페인어를······?”
“할 수도 있지 새꺄. 야, 라멜라야?”
“······?”
“잘 좀 지내보자. 어차피 같이 뛰어야 될 동료 아니냐?”
“내가 왜 너랑······!”
“야······.”
분위기가 바뀌었다.
지금 이찬수의 분위기는 더 이상 장난기 가득한 남자의 그것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이찬수가 뿜어내는 분위기는 한 마리 맹수와도 같았다.
눈빛은 날카로웠고 당장이라도 라멜라를 죽일 것처럼 기세를 뿜어냈다.
그렇게 그는 프리메라리가 최악의 양아치라고 불렸던 그 때의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무, 무슨!’
그 눈빛과 기세를 느낀 라멜라가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쫄아 버린 것이다.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자리를 빠르게 피하는 것밖에 없었다.
“너, 너! 앞으로 두고 보자고!”
재빠르게 자리를 피하는 라멜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찬수가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야! 나는 누구랑은 다르게 까부는 놈들 안 봐준다~! 진짜 고자가 되고 싶으면 또 까불어 봐. 크하하핫!”
***
훈련을 마친 김상훈이 현재 차를 타고 가고 있는 곳은 런던의 유명 맛집이었다.
미슐랭에서 별을 받을 정도로 유명한 맛집을 가게 된 이유는 한 남자의 강력한 추천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지금 김상훈의 옆에서 운전을 하며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주제로 계속해서 질문을 하는 중이었다.
“상훈이 형! 근데 형 축구 어디서 배우신 거예요?”
손홍민의 질문에 김상훈은 뒷자리에 누워있는 이찬수를 힐끗 바라봤다.
차마 이찬수에게 축구를 배웠다고 말할 수는 없었던 김상훈은 생각했던 답변을 내놓았다.
“제대로 배우기 시작한 건 아무래도 서울 유나이티드에 들어간 뒤부터니까.”
“그 실력이 서울에서 배운 거라고요?”
“서울에서 다 배웠다고 하기엔 좀 애매하고······.”
“형, 솔직히 저도 이런 질문하는 제가 웃기긴 한데요. 형 이찬수 선수랑 무슨 관계가 있어요?”
“어?! 갑자기?”
- 갑자기?
갑작스러운 손홍민의 말에 뒷좌석에 누워있던 이찬수가 벌떡-몸을 일으켰다.
김상훈과 이찬수, 두 남자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런 불안한 눈빛으로 두 남자는 손홍민의 다음 말에 집중했다.
이윽고 손홍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이찬수 선수 진짜 팬이거든요.”
- 이건 맞아. 나 레알에서 뛸 때, 홍민이가 경기장까지 찾아와서 사진 찍고 사인 받아가고 그랬었지. 홍민이 이 녀석은 그때에 비하면 슈퍼스타가 됐는데도 참 변함없이 싹싹하고 겸손하고 괜찮은 녀석이란 말이야.
손홍민과 이찬수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김상훈이 질문했다.
“그런데, 홍민이 네가 이찬수 선수의 팬이라는 거랑 나랑 무슨 상관이야? 물론 나 역시 이찬수 선수의 팬이긴 해.”
“솔직히 제가 아니더라도, 감독님도 그렇고 아까 훈련할 때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저랑 비슷하게 생각했을 거 같아요.”
“뭐, 뭘?”
“경기 초반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중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 형의 플레이스타일이나 움직임 같은 것이 이찬수 선수와 아주 닮아있더라고요. 솔직히 그냥 이찬수 선수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비슷했어요.”
“하하하하! 에이, 홍민아~! 무슨 이찬수 선수랑 나랑······.”
손홍민의 말을 애써 웃음으로 무마하려던 김상훈이었지만.
그 웃음은 너무나도 어색했다.
“그래서 저는 상훈이 형이 이찬수 선수한테 축구를 배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 그래?”
김상훈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오늘 훈련에서 이찬수가 보여준 실력은 과해도 너무 과했다.
축구 관계자들이라면 모르는 게 이상할 정도로 이찬수 그 자체인 모습을 보여줬다.
게다가 각종 스킬을 활용하는 이찬수는 현역 때보다도 더 화려하고 대단한 움직임을 보였다.
물론 이찬수이기 때문에 충분히 납득이 되는 플레이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플레이를 보여준 선수의 겉모습이 이찬수가 아닌 김상훈이었다는 것이다.
어찌 대답할지 모른 채, 당황한 김상훈을 구해준 것은 이찬수였다.
- 야, 뭘 당황하고 있냐? 그냥 어릴 때, 나한테 배운 적 있다고 말하면 되잖아.
그 말에 김상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홍민을 바라봤다.
“그래, 사실 나는 이찬수 선수한테 축구를 배운 적이 있어. 비록 어릴 때지만 말이야.”
“예?!”
손홍민의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