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참교육(1)
“집중해! 패스 좀 더 빠르게 가져가자고!”
토트넘의 주전 공격수 해리 케인이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소리를 질렀다.
그는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전 멤버들로 이뤄진 그의 팀이 비주전 팀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스코어는 2:1로 밀리고 있었으니까.
그런 해리 케인의 목소리를 들은 주전 팀 멤버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이대로는 안 된다.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
그런 생각들이 주전 팀 선수들의 머릿속에 가득 찼다.
‘저 녀석······!’
으드득!
에릭 라멜라는 김상훈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팀에 갓 들어온 녀석이 비주전 팀들을 이끌고 자신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실제로 지금 이 순간 뛰어난 기본기와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가진 김상훈을 주전 팀 선수들이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툭-!
공을 잡은 김상훈은 사이드로 빠져 있는 손홍민에게 공을 넘겼다.
낮게 깔린 패스를 받으려던 손홍민은 공을 터치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전방으로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패스를 받는 척, 페이크를 준 돌파였다.
마음먹고 치고 달리기를 하는 손홍민을 토트넘의 오른쪽 수비수 키에런 트리피어가 놓쳐버렸다.
타이밍을 놓친 것은 아니지만, 속도 자체가 달랐다.
그렇다고 트리피어의 달리기 속도가 느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손홍민은 EPL최상급에 속하는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는 선수.
트리피어를 제친 손홍민은 순간적으로 몸에 제동을 걸며 그에게 달라붙으려던 얀 베르통언을 제쳐냈다.
그러나 베트롱언은 벨기에 국가대표이자 명실상부 EPL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손홍민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몸을 날리는 태클로 손홍민의 공을 걷어냈다.
슈팅 직전 공을 뺏긴 손홍민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뒤를 돌아봤다.
그 순간, 손홍민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골대와의 거리가 20m가 넘게 떨어진 먼 거리에서 공중에 뜬 공을 향해 몸을 날리는 선수가 보였기 때문이다.
손홍민이 보고 있는 그 선수는 말 그대로 몸을 공중에 띄웠다.
헤딩을 하려는 움직임은 절대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오버헤드킥 자세를 취하진 않았을 테니까.
‘저기서 슈팅을 하겠다고?!’
손홍민은 경악했다.
아주 무리한 슈팅이었다. 자칫하면 모든 선수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는 그런 슈팅.
헌데 먼 거리에서 오버헤드킥을 하고 있는 선수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 선수는 그 누구보다 진지한 얼굴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슈팅을 때려냈다.
“정확한 슈팅.”
뻐엉!
정확한 임팩트로 발등에 맞은 공은 강한 힘이 실리지 않았음에도 빠른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공중에서 슈팅을 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김상훈을 향해 이찬수가 소리를 질렀다.
- 낙법 까먹지 마라!
“예에~! 당연하죠.”
다치지 않게 바닥을 구른 김상훈의 눈에 골대를 살짝 스치며 안으로 들어가는 공이 보였다.
정확한 슈팅 스킬을 사용했기 때문일까?
조금 무리한 동작으로 시도한 슈팅이었지만, 완벽한 골이 되어버렸다.
“우오오오옷! 혀엉!”
골이라는 것을 확인한 뒤, 빠른 속도로 김상훈에게 달려오는 남자가 있었다.
친화력이 좋은 손홍민은 오늘 처음 본 김상훈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친근하게 물었다.
“형! 진짜 미친 거 아니에요? 왜 이렇게 잘해요?!”
“어, 홍민아. 그냥 운이 좋았지 뭐.”
“형 같은 사람 처음 봤어요! 무슨 첫 훈련 때 2골을 넣어요? 저기 주전 애들 당황한 것 좀 봐요.”
“하하······. 고맙다. 아직 경기 안 끝났으니까 더 열심히 해야지.”
김상훈은 머쓱하게 웃으며 손홍민의 등을 가볍게 쳤다.
그러자 손홍민은 웃으며 자신의 자리로 빠르게 돌아갔다.
그러면서도 내심 손홍민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오늘 첫 훈련을 하는 이적생을 챙기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김상훈 역시 알고 있었으니까.
- 상훈아, 다 좋은데 진짜 그 가식적인 행동 좀 안하면 안 되냐? 엉? 뭐? 운이 좋았지~뭐어~? 운이 좋아~? 아주 역겹다, 역겨워!
갑작스레 훅 들어오는 이찬수의 비아냥거림.
김상훈은 이찬수를 보며 중얼거렸다.
“부끄러움 타는 건 세계 최고이신 분한테 저런 소리를 듣네······.”
- 뭐?! 너 지금 나한테 그런 거지? 내가 언제 부끄러움을 탔다고! 야 인마, 대답 안 해?!
“풉! 어?! 상대 팀 공격 시작했어요. 저 집중해야 돼요.”
- 너 지금 웃었지?! 엉? 야!
다시 경기에 집중한 김상훈에게 공이 넘어왔다. 수비수 다빈손 산체스가 길게 뿌려준 롱패스였다.
이마로 가볍게 공을 터치한 뒤, 무릎으로 공을 트래핑한 김상훈은 뒤에서 강하게 압박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중심을 지키는 것에 신경을 썼다.
강한 압박에도 넘어지지 않고, 몸을 돌려 전방을 바라보며 패스를 뿌리려던 김상훈은 뒤에서 옷이 잡아끌리는 느낌을 받았다.
이대로 패스를 한다면 부정확한 패스가 나올 것을 알기에 김상훈은 일단 그에게 붙은 선수를 떨어뜨리려 했다.
헌데 그 선수는 계속해서 김상훈에게 달라붙으며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옷을 잡아 끄는 것도 여전했다.
결국 심판을 보던 코치가 휘슬을 불었다.
“반칙!”
그러자 김상훈의 옷을 잡던 라멜라가 신경질을 냈다.
“아! 이게 왜 반칙이야?!”
김상훈은 그런 라멜라를 무시하려 했다.
그런데 어느새 다가온 라멜라가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야! 킴이라고 했냐? 네가 볼 때는 이게 반칙 같아?”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심판이 반칙이라잖아.”
“이게 어딜 봐서 반칙인데? 네가 어떻게 알아? 어?!”
말이 통하지 않았다.
무작정 목소릴 높여 화를 내는 라멜라를 보며 김상훈은 피식 웃었다.
- 이 새끼는 또 왜 시비야? 야! 에릭! 너 인마, 김상훈 건드리면 좆되는 수가 있어. 너는 모르겠지만, 얘 진짜 미친놈이라구.
이찬수를 살짝 흘겨본 김상훈은 다시 한 번 라멜라를 무시하려 했다.
그때 스페인어가 김상훈의 귓전을 스쳤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에릭 라멜라가 한 말이었다.
[언어 마스터 효과가 적용됩니다.]
[방금 에릭 라멜라가 쓴 언어는 스페인어입니다.]
그건 안 듣는 게 나을 뻔 한 말이었다.
“쓰레기 같은 리그에서 온 새끼가······ 몇 골 넣었다고 까부는 거 보니까 아주 죽여 버리고 싶네!”
그런 라멜라의 말에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할 줄 아는 이찬수가 가장 먼저 반응했다.
- 이야~! 좋은 도발이었어! 라멜라야 넌 이제 진짜 뒤졌다. 넌 모르겠지만 얘가 개 사기스킬이 있어서 모든 언어를 쓸 수 있거든.
제 자리에 멈춰선 김상훈은 아무런 말도 없이 우뚝 서 있었다.
- 야! 상훈아! 내가 볼 때는 네가 지금 많이 빡친 거 같은데, 그렇다고 쟤한테 주먹질을 한다든가 축구화 끈을 빼서 목을 조르는 짓은 하면 안 된다? 엉? 내 말 들리지?
진심으로 에릭 라멜라가 걱정되서 하는 이찬수의 말.
그 말을 듣고 있던 김상훈이 갑자기 낄낄대며 웃기 시작했다.
“크힠큭! 크힠힠!”
- 아 씨바! 소름 돋아! 야, 야! 진짜 참아! 참으라고! 아오! 이 새끼, 눈 돈 거 같은데? 야 홍민아! 의사 불러! 빨리! 또라이 새끼가 더 미쳤다고!
낄낄대며 웃던 김상훈이 찾아간 사람은 프리킥을 차기 위해 공을 만지던 손홍민이었다.
“홍민아~?”
“어? 형 왜요?”
“정말 미안한데, 이번 한 번만 내가 프리킥을 차도 될까?”
프리킥을 양보해달라는 김상훈의 말.
그건 사실 쉽게 부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훈련에서도 항상 골욕심을 내는 선수들이 EPL선수들이었으니까.
헌데, 손홍민은 김상훈을 향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원래 잘 양보 안 하는데, 형이니까 양보할게요. 저, 유투브로 형이 프리킥 차는 거 봤거든요.”
손홍민의 말을 들은 김상훈이 생각했다.
아마도 주닝요의 프리킥 스킬을 이용해서 골을 넣었던 영상을 본 것 같다고.
동시에 김상훈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근데······ 이번에는 골을 넣으려고 차는 게 아니야.”
“예?! 그럼요?”
놀라서 되묻는 손홍민을 보며 미소를 지은 김상훈이 프리킥을 찰 준비를 했다.
뒷걸음질을 쳐서 달려갈 거리를 계산하고, 공과 전방을 바라봤다.
전방에는 골대를 지키고 있는 토트넘의 주전 골키퍼 위고 요리스가 서 있었고, 그 앞에는 토트넘의 주전 선수들로 이뤄진 벽이 만들어져 있었다.
“······후우우!”
숨을 깊게 내쉰 김상훈이 공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록 프리킥 상황에서는 정확한 슈팅이 적용되지 않지만, 공을 향해 달려가는 김상훈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지금 차는 프리킥에 ‘주닝요의 프리킥’ 스킬 효과가 적용되었다는 것이 자신감의 이유였다.
게다가 지금 이 순간 김상훈이 노리고 있는 것은 저 멀리 보이는 골대의 구석이 아니었다.
별로 멀지 않은 거리에 서 있는 벽.
그 중 날카로운 눈빛으로 김상훈을 노려보고 있는 남자가 바로 김상훈의 목표였다.
빠앙!
강한 소음과 함께 김상훈의 발을 떠나서 날아가기 시작한 공.
그런 공의 움직임이 조금 이상했다.
회전의 거의 없이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공의 높이가 너무 낮았기 때문이다.
너무 낮아서 무조건 선수로 이뤄진 벽에 막힐 것 같았다.
역시나 공은 이변이 없이 벽으로 향했다.
헌데 김상훈이 때린 슈팅은 그 중에서도 한 남자의 가랑이 사이로 향했다.
남자는 빠르게 다리를 오므리려 했지만, 너무 빠른 공의 속도에 따라가지 못했다.
이윽고 그라운드 위에는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빡!
동시에 짐승의 울음과도 같은 신음이 울려 퍼졌다.
“크허허헝!”
토트넘 선수들은 놀란 얼굴로 그 남자에게 달려갔다.
남자는 스스로의 가랑이를 붙잡고 바닥을 뒹굴며 울부짖었다.
“크헉! 크허억! 크헝헝!”
김상훈은 그런 남자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이윽고 남자에게 도착한 김상훈이 쪼그려 앉아서 그를 바라봤다.
동시에 아주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라멜라, 괜찮아? 아····· 미안하다. 내가 프리킥을 잘 못 차서······.”
“크허어어어······!”
“어이구! 많이 아픈가 보구나. 이거 어쩌면 좋을까? 아····정말 미안하다······.”
쪼그려 앉은 김상훈은 연신 사과를 하며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얼굴로 라멜라를 바라봤다.
때문에 토트넘 선수들은 김상훈이 미안한 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했다.
‘킴, 저 친구가 생각보다 여린 성격이었구나. 되게 착하네.’
‘앞으로 친하게 지내야겠다. 저렇게 좋은 친구였다니!’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저 표정······. 좋은 녀석이었어. 앞으로 김상훈한테도 패스를 잘 줘야 되겠다.’
결국 김상훈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스스로의 자리로 천천히 돌아갔다. 어깨가 축 처진 그의 뒷모습은 그 누구보다 죄스러움에 가득 찬 남자처럼 보였다.
그런 김상훈을 바라보던 이찬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너, 넌······ 진짜 악마 같은 새끼야. 어떻게 거기를 터트릴 생각을······ 어휴! 너무 놀라서 말도 잘 안 나오네. 야, 꼭 그렇게 잔인하게 되갚아줬어야 됐냐?
그때, 고개를 양옆으로 돌리며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김상훈이 씨익 웃으며 아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 성격 잘 아시잖아요. 저런 새끼, 그냥 안 놔둬요. 그리고······.”
- 그, 그리고?! 그리고 뭐?!
“참교육은 아직 안 끝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