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들린 축구선수-36화 (36/200)

36화 성장

후반 70분.

4:0이라는 큰 점수 차이 때문일까?

인천 선수들은 그들을 보러 온 팬들 때문에라도 열심히 뛰고 있었지만, 패배를 직감한 표정은 숨기지 못했다.

서울은 더 이상 무리하지 않았다.

올 시즌부터 공격적인 축구를 지향하는 손승민 감독이었지만, 4:0 상황에서는 무리한 공격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아직 5월이었고 경기는 아주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툭-! 툭-!

김상훈은 동료에게서 오는 패스를 곧바로 원터치 패스로 다른 동료에게 넘겼다. 체력적으로 다른 선수에 비해 밀리는 김상훈은 최대한 드리블을 자제하며 안정적인 볼 배급 위주로 플레이를 이어갔다.

물론 욕심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현재 3골을 넣으며 해트트릭을 기록한 상황이지만 더욱 많은 골을 넣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다만, 그런 욕심으로 슈팅을 남발하기에는 아직 후반전은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다.

공격적인 전술의 인천과 그것을 막아내는 서울의 수비적인 전술이 부딪히며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조금은 지지부진한 전개가 이어졌지만, 김상훈에게는 이런 시간마저도 큰 도움이 됐다.

- 아~! 뛰고 싶다. 상훈아 좀 더 과감한 패스도 해봐.

“패스 길이 잘 안 보이는데요?”

- 내 눈에는 이미 스루 패스 길이 5번은 보였는데? 그게 안 보였다고?

“······예. 솔직히 안 보였어요.”

- 아······ 그러냐?

“······예.”

- 패스 길이 안 보인다면 동료들의 움직임을 좀 더 세밀하게 관찰해봐. 지금처럼 공격수가 라인 근처에서······.

최고의 공격수이자 최고의 미드필더였던 남자에게 1:1 과외를 받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경기의 템포가 느리고 여유가 있는 상황에서는 거의 모든 상황에서 팁을 전수해줬다.

물론 그 팁들은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팁들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김상훈은 이찬수의 말을 조금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도중, 김상훈에게 다시금 골 맛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삐이이익!

교체 투입됐던 신지후가 인천의 이윤호에게 반칙을 얻어낸 것이다.

주심은 서울의 프리킥을 선언했고, 얼마 전 멋진 프리킥을 넣었던 경험이 있는 김상훈이 프리키커로 나섰다.

***

오늘 경기에서 첫 프리킥을 차는 김상훈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첫 프리킥이라는 말은 즉, 그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으니까.

[오늘 경기 첫 프리킥입니다.]

[주닝요의 프리킥(L) 효과가 적용됩니다!]

- 아······. 새끼, 진짜 이건 밸런스 패치 해야 되는 거 아니냐?

“왜요? 주닝요가 현역 시절에 프리킥을 항상 성공시켰던 건 아니잖아요.”

- 그건 그렇지만, 그 양반은 진짜 웬만하면 넣는 사람이란 말이야. 그리고 이렇게 가까운 위치에서는 더욱 정확한 프리킥을 찼던 사람이었고.

“뭐, 차보면 알겠죠. 사기인지 아닌지.”

사실 김상훈의 속마음은 주닝요의 프리킥이 사기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울 전에서 주닝요의 프리킥을 이용해서 골을 넣었던 감각.

그 감각은 아직도 잊혀 지지 않을 정도로 강렬했으니까.

툭.

김상훈은 심판이 정해준 자리에 공을 놔둔 뒤, 뒷걸음질을 쳐서 거리를 벌렸다.

이윽고 그는 공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왼발을 공의 왼쪽에 둔 뒤, 다리를 강하게 휘둘렀다.

파앙-!

그런 김상훈의 발끝을 떠난 공이 골대를 향해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인천의 골키퍼 최산은 경험이 많은 골키퍼였다.

그만큼 많은 프리킥을 막아본 경험이 있었고, 웬만한 선수의 프리킥이라면 전부 막아낼 자신도 있었다.

‘뭐, 뭐야!’

그런데 지금 날아오는 공은 그가 겪어왔던 프리킥과는 차원이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지금 맞이한 프리킥은 다른 선수도 아닌 주닝요의 무회전 프리킥이었으니까.

철렁-!

최산은 평소처럼 몸을 날렸지만, 공은 그의 손 끝에 스치지도 않은 채, 골대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골을 허용한 그는 허탈한 얼굴로 프리킥을 찬 남자를 바라봤다.

오늘 4골을 넣은 그 남자는 이제는 시그니처가 되어버린 세레머니를 펼치고 있었다.

“촤아!”

***

[프로데뷔 이후 최초로 한 경기에서 4골을 넣었습니다. 보상으로 옐로우 박스가 지급됩니다.]

[프로데뷔 이후 최초로 풀타임 출전에 성공했습니다. 보상으로 오렌지 박스가 지급됩니다.]

[환상적인 골을 4번 넣었습니다. 보상으로 20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해트트릭을 기록하셨습니다. 보상으로 10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멋진 패스를 성공시켰습니다. 보상으로 5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총 패스 성공 횟수 88회 - 보상으로 88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총 기록한 골 수 4골 - 보상으로 4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현재 보유하신 포인트는 13450p입니다.]

보상이 짭짤했다.

너무 짭짤해서 경기가 끝난 지금, 당장이라도 구역질을 할 것처럼 너무 힘들었음에도 김상훈은 웃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축하한다!”

“풀타임 축하해~ 상훈아.”

“이제 기절 안 하네? 하하하! 축하한다.”

동료들에게서 받는 칭찬은 김상훈의 기분을 더욱 들뜨게 만들었다.

프로선수로 데뷔한 이후부터 줄곧 체력에 신경을 쏟아왔던 그에게, 첫 풀타임을 뛰었다는 것은 아주 큰 의미로 다가왔다.

“상훈아, 오늘 클럽이나 갈래? 고요함이 쏜대!”

그때 하대선이 친근하게 어깨동무를 하며 물었다,

평소에도 노는 것을 좋아하는 하대선이었다. 그의 제안을 받은 김상훈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하. 형님, 제가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집에 일찍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아, 그러냐? 아쉽네. 다음에 같이 가자 그럼.”

“예. 알겠습니다.”

가끔씩 클럽을 찾는 동료 선수들과는 달리 김상훈은 프로가 된 이후 단 한 번도 이들과 클럽이나 나이트에 간 적이 없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김상훈을 바라보던 이찬수가 입을 열었다.

- 너는 왜 안 노냐? 혹시 그런 성격이야? 클럽 같은데 가면 사람들이랑 못 어울리고 구석에서 술만 홀짝이는 스타일.

“아뇨 그렇게 노는 거 되게 좋아하는데, 요즘엔 더 재밌는 놀이가 있어서요.”

- 뭔데?

“오늘의 위닝이요. 현실판.”

- ······하긴 그게 있으면 다른 게 눈에도 안 들어오긴 하겠다. 성장하는 게 눈으로 보여, 포인트로 아이템 사서 능력치를 올릴 수도 있어, 가끔 사기적인 스킬도 나와. 어휴! 그래, 차암~ 재밌겠다.

그 어떤 유흥거리보다도 재밌는 오늘의 위닝이 있다는 것.

그게 바로 김상훈이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게 되는 이유였다.

삐삐삐익! 탈칵-!

비밀번호를 누른 뒤, 집에 들어온 김상훈은 빠르게 샤워를 마치고 침대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이런 자세를 취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혹시나 자신을 보고 있을 수도 있는 시스템에게 간절함을 어필하는 것뿐이었다.

그런 시스템을 향해 김상훈은 세상 다정한 말투로 안부 인사를 건넸다.

“시스템님, 밥은 드셨나? 오늘 힘든 일은 없었고?”

물론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크흠! 역시 시크한 친구라니까?”

- 너 뭐하냐? 누구랑 얘기하냐?

“우리 시스템님이랑 얘기하는데요?”

- ······어휴! 어디 아픈 건 아니지? 혹시나 아프면 곧바로 구단에 알리고 병원으로 가. 선수는 몸이 생명이니까.

“멀쩡하거든요.”

- 그래, 그래. 아무리 봐도 머리가 아파보이긴 하지만, 네가 멀쩡하다는 데 어쩌겠냐. 그나저나 그렇게 주접을 떠는 거 보니까 포인트 쓸 생각인가 봐?

“······예. 시스템, 내가 지금 포인트 얼마나 있다고 했지?”

그러자 대답이 들려왔다.

[현재 보유 포인트는 13450p입니다.]

[구매하실 수 있는 박스는 레드 박스, 오렌지 박스, 옐로우 박스입니다.]

[현재 소유 중인 박스는 오렌지 박스 1개, 옐로우 박스 1개입니다.]

게다가 보상으로 받았던 박스에 대해서 알려주기까지 했다.

“아 맞다. 보상으로 박스도 받았었지?”

보상으로 받았던 2개의 박스를 바라보던 김상훈은 과감하게 그것을 터치했다.

[옐로우 박스와 오렌지 박스를 오픈하시겠습니까?]

***

2017년 10월 3일.

조금은 이른 아침인 오전 7시부터 산에 오르는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등산복을 입지는 않았고, 검정색 트레이닝 세트를 입고 있었다.

가벼운 복장으로 산을 오르고 있는 남자에게는 조금 특이한 점이 보였다.

타다다닷!

“훅·····! 훅······!”

뛰어서 산을 오르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별로 힘들어하지 않는다는 것.

어느덧 정상에 도착한 남자는 바위 위에 앉아서 잠시 숨을 골랐다.

“휴우! 아~! 상쾌하다!”

그런 남자의 옆에는 허공에서 둥둥 떠다니는 반투명한 남자가 쉬지 않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 등산을 취미로 하면 지구력에 도움이 많이 돼. 지금도 체력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꾸준히 등산을 하면 금방 더 좋아질 수 있을 거야. 내가 선수생활 할 때는 말이야······.

“이찬수 선수! 귀에서 피날 거 같아요. 그리고 그 얘기 어제도 하셨잖아요.”

- 어? 내가 이 얘기를 어제도 했었나? 에혀! 이제 죽을 때가 다 됐나보다. 건망증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니······ 아, 나 이미 죽었지?

“······시스템, 상태 창 좀 보여줘.”

아침부터 뛰어서 등산을 한 김상훈은 바위에 앉아서 눈앞에 뜬 상태 창을 바라봤다.

[김상훈]

- 키 : 179cm

- 주발 : 오른발

- 체력 : 80

- 민첩 : 83

- 패스 : 82

- 슈팅 : 90

- 개인기 : 82

- 헤딩 : 80

- 드리블 : 81

- 피지컬 : 79

- 몸싸움 : 81

- 매력 : 71

- 잠재력 : 93

- 스킬 : 정확한 슈팅(H), 무사 뎀벨레의 탈압박(G), 이찬수의 퍼스트터치(L), 캐논 슈터(G), 훌륭한 트래핑(J), 주닝요의 프리킥(L), 강철 체력(H)

(세부능력치를 볼 수 있습니다.)

10월이 된 지금, 김상훈은 많은 성장을 거뒀다.

대부분의 능력치가 80대였고, 슈팅 능력치는 얼마 전에 90을 찍는 것에 성공했다.

이런 능력치는 수치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김상훈의 경기력에 큰 영향을 끼쳤고, 사실상 현재 K리그에서 그를 막을 수 있는 선수는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그를 꾸준히 괴롭혀왔던 체력 수치 역시 꾸준한 노력과 박스의 힘이 합쳐져 80까지 높일 수 있었다. 더군다나 그는 체력에 아주 큰 도움이 되는 스킬까지 얻은 상태였다.

[강철 체력]

- 등급 : 히어로(H)

- 효과 : 강철 체력 사용 시, 10분간 체력이 소모되지 않습니다.(하루 1회 사용가능.)

5월에 열렸던 인천과의 경기가 끝난 뒤 받은 박스에서 나온 이 스킬은 현재 김상훈이 가장 유용하게 사용하는 스킬 중 하나였다.

10분간 체력이 소모되지 않는 스킬.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이는 이 스킬은 사실, 절대로 평범하지 않았다. 강철 체력 스킬이 발동되는 10분 동안은 어떤 스킬을 써도 체력이 소모되지 않는 다는 것.

그 효과가 모든 스킬에도 적용된다면?

정확한 슈팅 스킬을 10분간 체력소모 없이 무제한으로 쓸 수 있다면?

그것을 알게 된 김상훈은 이 스킬의 사기성을 충분히 이용하며 10월이 된 지금 K리그 내에서 믿기 힘든 기록을 써내려가는 중이었다.

김상훈은 현재 54골을 기록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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