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들린 축구선수-35화 (35/200)

35화 페어플레이 하자

인천과의 경기가 있기 전날 밤.

김상훈은 그동안 모아놓은 19120포인트를 앞에 두고 고민에 빠졌다.

“어으! 880포인트만 더 모으면 그린 박스 살 수 있는데······.”

- 그럼 그냥 쓰지 말든 가.

“그래도 인천 경기에서만큼은 꼭 이기고 싶어서······.”

- 그럼 쓰던가.

“아오! 이찬수 선수는 어떻게 제자가 고민에 빠졌는데도 그렇게 무관심할 수가 있어요?”

- 뭐 어쩌라고. 쓸 거면 쓰고 말 거면 말아.

“에휴····! 쓰긴 쓸 건데, 얼마를 써야할지 감이 안 와요.”

- 그럼 반만 쓰면 되겠네.

“쩝. 그래야 되겠어요.”

결정을 내린 김상훈은 절반인 10000포인트를 사용해서 옐로우 박스 하나를 구입했다.

그렇게 무려 10000포인트를 사용해서 깐 박스에서 나온 것은.

좋다고 하기는 조금 애매한 아이템이었다.

[더티 플레이는 싫어!]

- 등급 : 골드(G)

- 효과 : 악의적인 태클을 당할 시, 데미지를 받지 않고 태클을 한 선수에게 2배의 데미지를 돌려줍니다.(10경기 동안 적용)

스티커 형태로 생긴 ‘더티 플레이는 싫어!’ 아이템을 바라보는 김상훈의 볼이 부풀어 올랐다.

“아오! 진짜······. 10000포인트나 썼는데······.”

- 왜? 이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니야? 이것도 어떻게 보면 부상 방지 아이템이잖아. 게다가 무려 10경기씩이나 적용되는 아이템이고. 그리고 디자인도···· 키야~! 옛날에 나 어렸을 때 가지고 놀았던 판박이 스티커랑 똑같이 생겼네? 너 혹시 판박이 알아? 나 어릴 땐 껌 사면 껍데기에 있었는데······.

“알죠, 판박이. 에휴! 그래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래도 부상 방지 아이템이니까 나쁘진 않네요.”

- 그래 얼른 붙여봐.

“예.”

대답을 마친 김상훈은 웃통을 벗고 가슴팍에 스티커를 가져다댔다.

- 으악! 미친놈아! 갑자기 왜 웃통을 벗고 지랄이야?!

“붙여보라면서요.”

- 그니까 왜 가슴에다 붙이고 지랄이냐고!

“보이는데 붙이면 부끄럽잖아요. 10경기에 적용되면 꽤 오래 남아있을 텐데.”

- 어으! 역겹다, 역겨워.

벅벅!

가슴팍에 스티커를 가져다댄 뒤, 스티커의 겉면을 손톱으로 긁어서 붙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메시지가 떠올랐다.

[더티 플레이는 싫어!(G)를 사용하셨습니다. 10경기가 진행될 동안 효과가 적용됩니다.]

“근데 이게 발동될 일이 생길까요?”

- 혹시 모르지. 내일 경기에서 그럴 일이 생길지.

***

백태클은 위험하다.

말 그대로였다.

선수들 사이에서 백태클을 하는 것은 부상과 레드카드를 만들어내기 아주 쉬운 방법 중 하나로 알려져 있을 정도였으니까.

더군다나 태클을 할 때, 악의적으로 스터드를 높게 들고 들어간다면 그 위험성은 훨씬 커진다.

공을 잡은 뒤, 패스를 하려던 김상훈은 자신의 몸이 공중에 뜬 순간 다리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인상을 찌푸렸다.

정확히 발목을 노리고 들어온 악의적인 태클이라는 것을 눈치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고통이 느껴져야 할 발목에서 별다른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풍선으로 발목을 강하게 밀어내는 느낌?

딱 그 정도였다.

동시에 그의 눈앞에 반투명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더티 플레이는 싫어!’가 적용됩니다. 상대 선수에게 2배의 데미지를 돌려줍니다.]

도대체 데미지를 어떻게 돌려준다는 거지? 갑자기 돌멩이라도 날아와서 내게 태클 한 선수의 발목을 박살내버리려나?

여러 생각에 사로잡힌 김상훈은 메시지가 떠오른 순간 자신의 몸이 멋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느꼈다.

태클을 당해서 공중에 떠있는 상태로 버둥거린 그는 어중간한 자세로 잔디 위로 넘어졌다.

“어어······! 어?!”

문제는 넘어지면서 그가 디딘 발의 위치가 태클을 한 선수의 발목이었다는 것이다.

빠아아악!

자신의 발이 밟은 곳에서 들리는 소름끼치는 소리에 김상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우! 이런 식으로 데미지를 돌려주는 거였어?’

동시에 들려오는 끔찍한 비명소리에 김상훈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끄아아아악! 내 발!”

그제야 김상훈의 시야에 태클을 한 선수의 얼굴이 들어왔다.

덜렁거리는 발목을 붙잡고 울부짖는 이광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 이광에게 다가간 김상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물론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고통 섞인 신음만 터져 나올 뿐이었다.

“아······ 야, 괜찮냐······?”

“끄으으윽! 끄으윽! 내 발!”

그 사이, 이광의 근처에 다가간 이찬수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 쩝······. 에잉! 이광 이 새끼야······ 그러게 왜 그런 태클을 하고 지랄이야? 힘들게 재기했으면서······.

김상훈 역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발목뼈가 부러지는 부상은 선수에게도 재기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의심이 될 정도로 끔찍한 부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만약 재활에 성공한다고 해도 본래의 기량을 되찾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아주 컸으니까.

결국 이광은 의료진에 의해서 그라운드 밖으로 실려 나갔고, 인천은 이광의 역할을 대신할 선수로 임준재를 투입시켰다.

- 상훈아 너는 아무렇지도 않냐? 분명히 발목에 태클이 제대로 들어간 것 같은데.

이찬수의 말에 김상훈은 그의 발을 바라봤다.

발목을 한차례 돌려봤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신기하게도 너무 멀쩡해요. 아무런 데미지도 받지 않았어요.”

- 거참 신기하네.

“다행이에요. 적어도 앞으로 9경기는 부상을 당할 위험이 크게 줄었으니까요.”

- 그러게. 이제 집중하자. 경기 재개됐다.

“옙.”

경기가 재개되면서부터 김상훈은 더 이상 이광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았다. 억지로라도 머릿속에서 이광을 지웠다.

상대편 선수에 대한 생각으로 경기력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기에 집중하기 시작하자 김상훈은 무섭게 인천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전체적인 능력치가 오른 김상훈의 움직임은 4월에 열린 경기 때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툭-! 툭-!

이찬수의 퍼스트 터치 스킬을 이용한 원터치 패스가 아니었음에도 김상훈은 패스 실수를 하지 않았다.

능력치가 71로 오른 이유도 있겠지만, 김상훈 스스로가 짧은 패스만 하며 정확도를 최대한 높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김상훈을 중심으로 시작되는 서울의 공격은 계속해서 인천의 수비를 괴롭혔고, 전반전이 끝나기 1분 전에 서울에게 큰 기회가 왔다.

툭! 투욱-!

무려 3명에게 둘러싸여서 압박을 당하던 김상훈이 뛰어난 탈압박 실력으로 3명의 선수들을 벗어나는 것에 성공했다. 3명의 선수가 김상훈을 막기 위해 붙었다는 것은 다른 서울의 선수들이 받는 압박이 헐거워졌다는 것이기도 했다.

압박을 벗어난 김상훈은 곧바로 빈 공간에 서 있는 박성인에게 공을 넘겼다. 공을 받은 박성인은 골을 넣을 줄 아는 공격수였다. 그것을 증명하듯 그는 망설이지 않고 골대의 구석으로 향해 공을 감아찼다.

출렁-!

김상훈의 패스에 이은 박성인의 골.

그렇게 3:0이라는 스코어로 전반전이 마무리 됐다.

***

“체력은 좀 어떤가?”

“아직 괜찮습니다.”

“힘들면 언제든지 말하게.”

“예. 알겠습니다.”

체력에 대해 걱정하는 손승민 감독의 말.

그 말에 김상훈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다.

실제로 체력에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반전 내내 활동량을 최대한 줄인 짧은 패스 플레이를 한데다 정확한 슈팅 스킬 또한 2번 밖에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생각했던 것보다도 체력 수치가 많이 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현재 남은 체력은 49입니다.]

현재 체력수치 49.

정확한 슈팅 스킬을 썼을 때, 운만 조금 따라준다면 후반전도 전부 소화할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이다.

물론 정확한 슈팅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후반전을 소화하는 것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지만, 김상훈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체력이 궁해도 기회가 오면 슈팅을 때려야지.”

- 암! 그렇고 말고!

그것은 이찬수의 가르침이기도 했다.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골을 넣을 수 있는 상황에서는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과감한 슈팅을 때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런 가르침의 영향을 받기도 했고, 애초에 김상훈은 미드필더이기는 하지만 공격수들보다도 훨씬 많은 골 맛을 보고 있는 선수였다.

마약과도 같은 중독성.

그것이 바로 김상훈이 생각하는 골의 맛이었다.

삐익-!

김상훈은 전반전에 이어 후반전도 출전을 했다. 서울은 시즌 초반부터 계속 풀타임을 뛰며 달려온 하대선을 신지후와 교체해주었다.

반면에 3:0으로 전반을 마무리한 인천은 2명의 선수를 교체하며 분위기 전환을 노렸다.

공격수 1명과 미드필더 1명을 넣으면서 공격력을 강화하려는 인천의 감독 최동수의 목적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곽태현이 이끄는 서울의 수비력은 굉장히 견고했고, 때문에 인천은 쉽사리 공격을 풀어나가지 못했다.

오히려 서울의 역습 상황이 만들어졌다.

후반전에 투입된 몬테네그로 특급 공격수 마고스의 슈팅을 태클로 막아낸 곽태현이 재빨리 공을 걷어냈다.

그리고 그 걷어낸 공을 향해 달려가던 에반이 머리를 이용해서 근처에 있던 고요함에게 패스했다. 공을 받은 고요함이 특유의 빠른 발을 이용한 드리블로 인천의 오른쪽 사이드로 치고 올라갔다.

힐끗!

패널티 라인 쪽을 바라본 고요함의 눈에는 3명의 선수가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에반, 박성인 그리고 김상훈까지.

반면에 그들을 막으러 오는 인천의 수비는 오직 강지윤 뿐이었다.

3명의 선수 중 누구에게 공을 주더라도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고요함이 선택한 선수는.

‘김상훈.’

패스를 하려는 입장에서 공을 줄 수밖에 없는 절묘한 위치에서 뛰고 있는 김상훈이었다.

공을 잡자마자 슈팅을 할 수도 있고, 주변에 있는 선수에게 패스를 하기도 좋은, 그런 완벽한 위치를 선점한 그에게 공을 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무슨 위치선정을 저렇게 잘해?’

그에게 패스를 한 고요함은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크게 놀란 상태였다. 훈련 때에도 뛰어난 위치선정과 번뜩이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김상훈이지만, 그런 것들을 실전에서 보여준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으니까.

물론 김상훈의 위치선정 능력에는 고요함이 모르는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 그래! 거봐. 그 위치에서 뛰면 너한테 줄 수밖에 없다니까? 키야! 진짜 이런 스승이 어디 있냐? 훈련도 시켜줘. 요령도 알려줘. 경기 때마다 위치도 잡아줘~

이찬수라는 전설적인 축구선수의 조언을 받고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김상훈이 좋은 위치선정 능력을 보여주는 이유였다.

- 그래도 하도 잔소리를 하니까 위치선정이 예전보다는 나아지기는 했네. 이제 거기서 패스를 할지, 슛을 할지는 네 선택이야.

김상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도 고민하지 않았다.

이찬수의 말을 듣기 전부터 이미 그는 선택을 마친 상태였다. 당연하게도 그의 선택은 골을 넣기 위해 슈팅을 하는 것이었다.

뻐엉-!

패널티 라인 바깥에서 때리는 슈팅이었지만, 김상훈은 조금도 불안하지 않았다.

그 어떤 선수보다도 슈팅의 정확도만큼은 자신이 있었으니까.

실제로 그의 발을 떠난 공은 원했던 곳으로 정확하게 쏘아져 나갔으니까.

이윽고 골대 그물이 강하게 흔들렸다.

철렁-!

후반 70분, 김상훈이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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