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도발(1)
서울은 2017년 4월 2일에 열린 전북과의 경기에서 승리 후, 4월 8일에 열린 광주 전에서 1:1로 무승부를 거뒀다.
물론 광주와의 경기에서 김상훈은 출전하지 않았다.
경기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손승민 감독은 김상훈에게 휴식을 주고 싶다는 의지를 표현했고, 서울의 팬들은 그 의견을 존중했다.
그들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으니까.
김상훈이 경기에 출전했을 때, 확실한 에이스의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체력이 너무 약해서 힘들어하던 모습을 보여 왔었으니까.
그 이후에도 손승민 감독은 김상훈을 무리하게 기용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체력 훈련에 더욱 힘을 쓰게끔 만들었고, 당사자인 김상훈 역시 훈련의 많은 시간을 체력 훈련에 투자했다.
김상훈이 출전하지 않을 때의 서울은 확실히 공격력에서 약해진 모습을 보였지만, 그렇다고 서울의 공격이 아예 풀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서울 유나이티드라는 팀이 어떤 팀이던가.
강등을 당했던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K리그에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저력 있는 팀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미드필더 하대선이 매 경기 날카로운 패스를 뿌려냈고, 전 시즌 주전경쟁에서 밀렸던 박성인이 살아난 득점감각을 보여주며 서울은 김상훈이 출전하지 않은 경기에서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그렇게 서울은 5월이 된 지금도 단단한 경기력으로 승점 1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훈련을 마치고 샤워실로 향하는 선수들에게 다가간 손승민 감독의 눈에 한 남자가 들어왔다.
180cm가 조금 안 되는 키에 평범한 체격을 지닌 남자. 체격만큼이나 평범한 얼굴을 지닌 남자.
손승민 감독은 그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컨디션은 어떤가?”
그가 손을 올린 남자는 이제는 서울의 에이스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활약을 이어가고 있는 남자였다.
남자는 손승민 감독을 보며 주먹을 쥔 채 스스로의 심장을 두어 번 두드렸다.
“아주 좋아요! 게다가 훈련을 열심히 해서 그런지 여기가 제법 튼튼해 졌어요.”
장난기 섞인 행동.
그런 남자의 행동에도 손승민 감독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남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럼 내일 경기, 잘 준비해보게. 선발이니까.”
“알겠습니다.”
***
불금이라고도 불리는 금요일 저녁의 번화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리기 마련이다.
오늘 역시 불금을 증명하듯 엄청난 인파가 강남의 한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사람, 주변이 어두워지기 전부터 이미 자리를 잡고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 벌써부터 웨이팅(Waiting)이 있는 핫한 술집 앞에 줄을 선 사람들까지.
그런데 그 거리에 조금은 이질감이 느껴지는 남자가 있었다.
모두가 화려하게 꾸미고 나오는 불금의 강남거리에서 남자는 평범한 검정색 트레이닝복 세트를 입고, 볼캡을 푹 눌러쓴 뒤 검정색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린 채 주변을 둘러봤다.
계속해서 주변을 돌아다니던 남자는 이내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잣말을 시작했다.
“여기가 맞을 텐데······.”
- 허! 너 길치야?
“길치라뇨. 이건 그냥 강남 길거리가 복잡한 거라고요”
- 진짜 가지가지 한다.
“어? 찾았다! 거봐요. 길치 아니잖아요.”
- 코앞에 있는 걸 20분 헤맸는데?
간신히 목적지를 찾아낸 김상훈은 기쁜 마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오르자 일본 느낌이 물씬 풍기는 문이 보였다.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근처에 서 있던 직원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몇 분이세요?”
“두 명····· 아, 아니 한 명이요.”
옆에 떠다니는 귀신을 쳐다본 김상훈이 빠르게 말을 바꿨다.
“네~ 이쪽으로 앉아주세요.”
직원의 안내한 자리에 앉은 김상훈이 메뉴판을 들고 신중하게 바라봤다.
김상훈이 훈련을 마치자마자 찾아온 이곳은 유명 연예인이 CEO라는 것과 뛰어난 맛으로 이름이 알려진 라멘집, 아우리 라멘이었다.
돼지 뼈로 진하게 우려낸 국물에 특유의 비법 소스로 인해 매콤하면서도 진한 국물을 느낄 수 있는 이곳은 이미 많은 미식가들에게 소문이 난 곳이기도 했다.
- 여기가 그렇게 유명하냐?
“예. 여러 블로그에 이미 맛집으로 엄청 많이 올라왔어요. TV에도 나온 걸로 알고 있고요.”
김상훈은 이찬수의 말에 대답을 하면서도 고개를 푹 숙인 채 메뉴종이를 작성하는 것에 집중했다.
“일단 기본 아우리 라멘에 매운 소스는 기본으로 하고····· 마늘은 반쪽만 넣어야겠다! 마지막으로 차슈 추가까지 하면 끝!”
본래 맛집을 찾아가는 것을 좋아하는 김상훈이지만, 최근에는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자제하고 훈련에 집중하느라 먹고 싶은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을 생각이었다.
메뉴 선택을 마친 김상훈은 경건한 마음으로 음식을 기다렸다.
이윽고 갓 만든 따끈따끈한 라멘이 특유의 구수한 향기를 풍기며 그의 앞에 놓였다.
잘 우러난 뽀얀 국물을 보며 김상훈은 양 손으로 그릇을 들고 국물 맛을 보기 위해 입을 가져다댔다.
후루룩!
“아 좋다······.”
적당히 기름지고 목이 살짝 따끔할 정도의 매콤한 국물의 맛에 김상훈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찬수가 질문했다.
- 그래서 내일 경기 선발인데 몸은 좀 어때?
“지금 몸이 너무 좋아서 문제에요. 컨디션이 그야말로 최고에요. 그래서 아까도 감독님한테 컨디션 좋다고 말했었잖아요.”
- 승민이 형한테는 선발출전하려고 구라친 거 아니었어?
“아오! 저를 도대체 뭘로 보시는 거예요?”
- 뭐로 보긴, 개허접 축구선수로 보지.
“아으 진짜! 저 요즘 능력치도 많이 좋아진 거 아시잖아요?”
실제로 김상훈은 4월부터 5월이 된 지금까지 많은 경기에 출전하며 포인트를 벌었고, 그 포인트들을 조금씩 사용하며 능력치를 높여왔다.
게다가 이찬수와의 개인 훈련 또한 주 6일씩 꾸준히 해왔던 그는 능력치와 경험 모두 많은 성장을 이룬 상태였다.
“여기 능력치 좀 보세요. 얼마나 늘었어요? 예?”
[김상훈]
- 키 : 179cm
- 주발 : 오른발
- 체력 : 70
- 민첩 : 72
- 패스 : 71
- 슈팅 : 83
- 개인기 : 75
- 헤딩 : 71
- 드리블 : 73
- 피지컬 : 72
- 몸싸움 : 74
- 매력 : 63
- 잠재력 : 93
- 스킬 : 정확한 슈팅(H), 무사 뎀벨레의 탈압박(G), 이찬수의 퍼스트터치(L), 캐논 슈터(G), 훌륭한 트래핑(J), 주닝요의 프리킥(L)
(세부능력치를 볼 수 있습니다.)
- 크흠!
상태 창을 본 이찬수가 침음을 흘렸다. 별다른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상훈의 능력치는 4월 초에 진행됐던 전북과의 경기를 할 때에 비해 크게 성장해 있었다.
대부분 60대였던 능력치가 이제는 매력을 제외하면, 모든 능력치가 70을 넘긴 상태였다.
이제는 능력치로도 다른 선수들에게 밀리지 않게 된 김상훈.
5월 말이 된 지금, 그는 총 16골을 넣은 명실상부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었다.
“괜찮죠? 특히 체력은 너무 안 올라서 죽을 뻔했어요.”
- 그래, 아직도 구린 능력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많이 좋아지긴 했네. 그래서 오늘, 모아 놓았던 포인트 쓰는 날이야?
이찬수의 말에 김상훈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되물었다.
“포인트를 쓰다뇨? 왜요?”
- 또 지랄한다. 야! 내가 모를 거 같아? 너 은근히 뒤끝 있는 성격인 거 내가 다 알거든?
“당최 무슨 말씀이신지······ 제가 비싼 거 까려고 모아놨던 포인트를 왜 오늘 써요? 그리고 뒤끝이라뇨?”
계속해서 시치미를 떼는 모습에 이찬수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 내일 인천이랑 붙는 날이잖아.
“흠흠! 그래서요?!”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하는 김상훈을 보며 이찬수의 한쪽 입 꼬리가 높이 치솟았다.
- 걔 나오잖아. 네가 존나 싫어하는 새끼.
“그게 누군데요?”
- 이광.
***
2017년 5월 20일, 살을 에는 추위가 물러가고 기분 좋은 날씨가 이어지는 요즘, 당연하게도 서울의 홈(Home)경기장에는 평소보다도 많은 팬들이 몰렸다.
물론 많은 팬들이 모인 이유가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울 유나이티드의 프렌차이즈 스타 김상훈.
그가 오늘 경기에 선발로 출전한다는 사실이 팬들의 발길을 경기장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더불어 양 팀의 팬들은 오늘 경기에서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럴 만도 했다.
오늘의 경기가 다른 팀도 아닌 서울과 인천의 경기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김상훈과 이광의 관계는 양 팀 팬들에게는 널리 퍼져있었고, 그만큼 아주 재밌는 가십거리였으니까.
“오늘 경기 진짜 재밌겠다. 그치?”
“왜?”
“왜라니! 인천이랑 경기잖아. 인천에는 김상훈과 사이가 안 좋은 이광이 있고.”
“이광? 요즘 되게 잘하고 있던데, 걔랑 김상훈 사이 안 좋아?”
“유투브에 영상 안 봤어? 김상훈이 아마추어일 때, 인터넷 방송에서 풋살로 붙은 적 있는데 그때 난리도 아니었어.”
과거 인터넷 방송으로 열린 풋살대회에서 아마추어였던 김상훈이 프로인 이광을 박살 내버렸다는 것.
당시 두 남자의 신경전이 대단했다는 것은 조금 뒤에 열릴 경기를 더욱 재밌게 볼 수 있는 이유가 되기에 충분했다.
“쉿!”
그때, 관중석이 조용해 졌다.
잠시 후 조용했던 관중들이 자신의 팀을 목이 터져라 응원하기 시작했다. 양 팀 선수들이 입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으드득!
요즘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인천의 공격수 이광은 어금니를 강하게 깨물고 한 남자를 바라봤다.
‘김상훈······!’
자신에게 굴욕감을 주는 것도 모자라서 대놓고 도발까지 했던 남자. 그런 김상훈을 바라보는 이광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너랑 만날 날만 기다렸다.’
승부욕이 강하고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던 그에게 김상훈과의 풋살 경기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연히 이길 줄 알았던 경기를 김상훈 때문에 졌고, 도발까지 당했다.
그 이후에 김상훈은 프로로 데뷔했고 팀의 에이스가 되어서 엄청난 활약을 펼치고 있다.
당연하게도 그런 김상훈의 활약은 이광에게는 너무나도 보기 싫은 모습이었다.
‘오늘 경기에서 보여주마.’
김상훈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서 훈련에 매진해왔던 그였다. 특별한 일 없이는 사람을 만나지도 않았고 취미생활 따위는 더더욱 없었다.
오로지 훈련만을 거듭했다.
그 결과 이광은 인천에서 주전이라는 자리를 차지했고, 현재 8골 2어시스트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그때, 이광은 자신에게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하는 김상훈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 새끼!’
손을 내밀고 실실 웃고 있는 김상훈의 얼굴은 마치 자신을 도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누가 보더라도 비웃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모습에 이광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래, 경기에서 한 번 보자.’
이광은 이 자리가 아닌, 곧 시작 될 경기에서 제대로 혼을 내주겠다는 마음을 먹으며 눈을 부릅떴다. 그렇다고 김상훈의 악수를 받아줄 생각 따위는 없었다.
휙! 그의 손을 무시한 채, 이광은 다른 선수들과 악수를 이어갔다.
그때, 이광을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어이!”
“······?”
이광이 고개를 돌린 곳에는 김상훈이 손을 내민 채 서 있었다.
“설마 아직까지 삐져있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지금 관중들이 다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삐진 티를 내는 거야? 쪽팔리게~?”
실실 웃으며 도발을 하는 김상훈을 바라보며 이광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동시에 그는 다짐했다.
오늘 경기내용에서 그를 압도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시는 축구를 하지 못하게 만들어주겠다는 다짐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김상훈의 다리를 부숴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굳게 다졌다.
뿌드득!
당장이라도 김상훈에게 달려들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아낸 이광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너····· 오늘 두고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