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이찬수
많은 축구선수들은 후반전 87분쯤 되면 생각한다.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고.
이제 그만 쉬고 싶다고.
‘아, 진짜 힘들다.’
‘다리 후들거려서 미치겠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너무 힘들다.’
‘몇 분 남았지?’
당연한 일이었다.
체력이 좋은 프로축구 선수라고 해도 힘들지 않은 것이 아니었으니까.
프로라는 그들마저 경기가 끝난 뒤에는 화장실로 달려가서 토를 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게다가 점수 차가 크게 나는 상황에서 이기고 있는 팀의 선수들은 그 유혹들을 더욱 강하게 느끼기 마련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이제 적당히 뛸까?
실제로 그런 강한 유혹들에 이끌려 역전을 당하는 경우는 자주 있는 일이기도 했다.
서울과 전북의 경기, 후반 87분.
지금 이 순간 양 팀 선수들은 경기 종료를 바라고 있었다.
오직 단 한 남자만 제외하고.
“패스! 다들 정신 차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얼굴이 붉어진 채 뛰어다니는 그 남자는 축구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즐겁다는 듯, 실실 웃으며 활발하게 그라운드 위를 뛰어다녔다.
공격형 미드필더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상대 수비 뒷공간으로 파고드는 움직임을 가져갔고, 크로스가 올라오면 과감하게 헤딩경합을 시도했다.
그 누구보다도 축구를 즐기고 있는 남자, 이찬수는 그에게 온 공을 잡고 빠른 속도로 드리블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공을 잡자 전북 선수들은 긴장감에 식은땀을 흘렸다.
‘왜 저러는 거야? 지가 무슨 메시야? 호날두야? 이찬수야?’
‘아까는 저런 드리블 안 했잖아? 갑자기 왜 사람이 달라진 거 같지?’
‘경기 끝나기 직전만 되면 각성을 한다더니, 진짜였어?’
드리블을 하던 이찬수는 계속해서 고개를 양쪽으로 돌리며 시야를 넓혔다. 오랜만에 하는 축구여서 흥분한 상태라고는 해도 이찬수는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한 명으로 뽑혔던 선수이자 많은 경험이 있는 베테랑.
당연하게도 그라운드 위에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에게 맞지 않는 일이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2명의 전북 선수들을 가볍게 제쳐낸 이찬수는 당장이라도 업사이드 라인을 뚫고 침투하려는 움직임을 가져가고 있는 선수를 바라봤다.
‘에반, 너 먹어라.’
이찬수는 그런 에반의 움직임에 맞춰 공을 가볍게 찍어 찼다. 동시에 달리기 시작했다. 이찬수가 넘겨준 공을 향해 달리던 에반은 공을 잡아두지 않고 다이렉트로 슈팅을 때렸다.
뻐엉-!
결정력이 좋은 편인 에반의 슈팅은 날카로웠다.
골대의 구석으로 향하는 슈팅에 골키퍼가 몸을 날렸지만 손끝조차 닿지 않았다. 순간 골이라는 것을 감지한 골키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
하지만 운이 따랐던 걸까?
에반의 슈팅이 골대를 강타하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 공을 전북의 최민재가 다급하게 걷어냈다.
펑-!
중앙라인 근처까지 날아간 공 근처에 있던 하대선이 헤딩으로 근처에 있던 서울의 윙어 이상훈에게 패스했다. 공을 받은 이상훈은 전북 선수가 압박해오자 다시 하대선에게 공을 넘겼다.
그때, 하대선의 눈에 강렬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사내가 보였다.
‘김상훈, 저 녀석.’
김상훈을 본 하대선이 치아를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그가 본 김상훈은 훈련을 할 때 말도 안 되는 골 결정력과 탈압박, 퍼스트 터치 능력을 가진 선수다. 그런데 실전만 되면 훈련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여준다.
동료로 하여금 믿음을 갖게 만드는 선수.
공을 잡으면 무언가를 보여줄 것 같은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선수.
하대선이 본 김상훈은 그런 선수였다.
당연하게도 강렬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그에게 패스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투욱-!
“패스 좋고!”
하대선의 패스를 받기 전, 주변을 빠르게 둘러본 이찬수는 공을 발로 툭 차며 빠르게 몸을 돌렸다. 그런 이찬수의 움직임에 그에게 압박을 하려던 전북의 수비는 중심을 잃고 미끄러졌다.
스킬 같은 것은 쓰지 않은 원조 이찬수의 퍼스트 터치에 이은 턴이었다.
그런 이찬수의 눈에는 전방의 시야가 환하게 밝혀진 것처럼 보였다.
패스의 길도 보였고, 슈팅을 때리기 좋은 각도 보였다.
두 가지의 선택지 사이에서 이찬수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애초에 공격수로 훨씬 오래 뛰었던 그에게 골과 어시스트 중 선택을 하라고 한다?
이찬수의 선택 무조건 골이었다.
“정확한 슈팅.”
김상훈과의 꾸준한 빙의 훈련으로 스킬을 쓰는 것도 익숙해진 상황.
눈앞에 보이는 여러 조각으로 나뉜 골대를 보던 이찬수는 마음속으로 공을 보낼 위치를 결정했다.
파앙-!
이찬수가 턴 이후에 때린 중거리 슛은 골키퍼가 막기 힘든 골대 오른쪽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철렁-!
이찬수의 쐐기 골로 서울과 전북의 스코어는 4:2가 되었다.
***
후반 90분, 추가 시간이 3분 주어졌다.
양 팀 선수들의 표정에 체력적으로 힘들다는 것이 훤히 보일 정도로 모두가 지쳐있는 상황.
활발하게 뛰어다니던 이찬수마저 조금은 지친 티가 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체력이 10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전체적인 능력이 50% 하락합니다.]
[경고! 체력이 7남았습니다. 체력이 0이 되면 정신을 잃게 됩니다.]
“어떻게 메시지가 뜨자마자 몸에 힘이 쭉 빠지지?”
그에게 경고를 하는 메시지가 조금 전부터 눈앞에 떠오르고 있었으니까.
그런 경고가 나오자마자 이찬수는 몸에 있던 기운이 빠르게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순식간에 물 먹은 솜이 되어버린 느낌이 들었고, 토가 쏠릴 정도로 숨이 차올랐다.
심장 역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뛰고 있었다.
“휴우우우······.”
깊게 숨을 토해낸 이찬수는 이제는 거의 뛰지도 못하는 지경까지 와버렸다. 뛰고 싶어도 뛰어지지가 않았다. 마치 몸이 고장나버린 것처럼 마음대로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삐익!
그때, 주심이 서울의 코너킥을 선언했다.
그 선언에 서울 선수들은 승리를 확신했고, 전북 선수들은 고개를 푹 숙였다.
지금 서울 선수들은 이번 코너킥으로 골을 넣지 못해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이미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K리그 최강팀인 전북을 상대로, 그것도 완전히 주력멤버로 출전한 그들을 상대로 4:2로 승리하기 직전이라는 것이 그들을 만족시키고 있었다.
물론 지금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는 남자도 있었다.
이찬수, 그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무기력한 상황에도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 계속해서 숨을 몰아쉬면서도 끝까지 상대 수비와 몸싸움을 하며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이찬수의 모습을 보던 김상훈이 다급하게 소리를 질러댔다.
‘이찬수 선수! 지금 체력 6 남았어요! 빙의 상태에서는 체력이 훨씬 빨리 소모되는 거 아시죠? 예? 그냥 무리하지 마시고 오늘은 여기서 만족하시는 게······’
김상훈의 걱정이 괜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체력 수치가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그때, 김상훈의 말을 듣던 이찬수가 입을 열었다.
“상훈아, 가장 골을 넣기가 좋을 때가 언제인지 알아?”
‘아니, 좀 이젠 쉬어야 한다니까요!’
“바로 모든 선수들이 지쳤을 때야. 모든 선수들이 집중력이 떨어지고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지쳤을 때!”
말을 하던 이찬수는 높고 강하게 날아오는 공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훈련 때보다는 훨씬 길게 날아오는 코너킥이었다. 아마도 코너킥을 찬 고요함의 발에 조금 힘이 들어간 모양이겠지.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실수였다.
동시에 이찬수가 공이 떨어질 것이 예상되는 위치고 몸을 날렸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이었다. 너무 지쳐있었기 때문일까? 최민재는 갑자기 멀찍이 떨어져버리는 이찬수를 놓쳐버렸다.
노마크 상황에 놓인 이찬수가 선택한 것은 공중에 몸을 띄우는 것이었다.
부웅-!
공중에 몸을 띄운 이찬수는 날아오는 공의 타이밍에 맞춰 다리를 머리 위로 휘둘렀다.
[경고! 체력이 3남았습니다. 무리한 동작을 할 시 체력이 0이 될 수 있습니다.]
[경고! 체력이 0이 되면 정신을 잃게 됩니다.]
시스템의 경고에도 이찬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날카로운 눈으로 공만을 바라봤다. 몸을 공중에 띄운 상태에서도 끝까지 공과 스스로의 다리를 쳐다보며 타이밍을 맞췄다.
그 순간 공중에서 휘둘러진 이찬수의 발에 공중에서 날아온 공이 맞닿았다. 동시에 울리는 커다란 소리.
뻐엉-!
제대로 걸린 슈팅에 이찬수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골임을 확신한 것이다.
이찬수의 예상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출렁-!
그의 슈팅은 골대 안 그물을 찢을 기세로 빨려 들어갔다.
골을 넣은 이찬수에게는 걸을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그는 잔디 위에 풀썩-주저앉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헉······ 하하····· 이거 진짜 죽겠네.”
추가시간이 30초도 남지 않은 시점, 이찬수의 화려한 오버헤드킥으로 인한 골이었다.
서울과 전북의 경기는 김상훈과 이찬수의 활약으로 5:2로 서울이 승리했다.
***
2017년 4월 7일 금요일. 5일 전에 열렸던 전북과의 경기를 되새기던 손승민 감독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톡····· 톡···· 톡····· 톡!
손승민 감독의 침묵이 이어지자 회의실에 있던 관계자들이 하나 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김상훈은 휴식이 필요합니다.”
“체력이 약한 그를 연속해서 출전시키는 것은 위험합니다.”
대부분 비슷한 의견이었다.
현재 서울의 연승에 가장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김상훈에게 휴식을 줘야한다는 것.
손승민 감독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다.
4경기에 출전한 김상훈은 2번이나 쓰러졌고, 최근 전북과의 경기가 끝난 뒤에도 쓰러지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로 힘들어했으니까.
결국 결정을 내린 손승민 감독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내일 있을 광주와의 경기 엔트리에 김상훈을 제외한다.”
회의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손승민 감독은 주머니에 있던 담배를 꺼내 물었다.
치익-!
담배를 깊게 빨며 연기를 들이마시던 그는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최희준 코치? 언제 온 건가?”
어느새 손승민 감독의 옆에 선 최희준 코치가 대답했다.
“방금 왔습니다. 저도 한 대 피워도 되겠습니까?”
“뭘 묻고 그러나? 그냥 편하게 피게.”
“예,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잠시 동안 말없이 담배를 피웠다.
아무 말 없이 담배를 피우던 두 남자는 동시에 입을 열었다.
“김상훈······.”
“김상····· 감독님 먼저 말씀하시죠.”
“그럼 먼저 말하겠네. 자네는 요즘의 서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분위기가 아주 좋지 않습니까? 현재 저희 서울은 4연승 중이고, 리그 1위를 달리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최근 경기는 강팀인 전북마저 이겼으니······”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후······.”
손승민 감독의 질문에 최희준 코치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역시 손승민 감독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불안합니다. 지금 서울의 연승은 사실상 김상훈 혼자 힘으로 만들고 있다고 해도 될 정도이니까요. 게다가 지금의 김상훈 정도의 실력이라면 다른 해외 팀들이 관심을 갖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아직까지 직접적인 오퍼는 없지만 제 생각은······ 그리 멀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내 생각도 같네. 김상훈은 신인이지만 무서울 정도로 대단한 활약을 펼치고 있어. 나와 자네의 생각이 맞다면 이번 시즌이 끝나면 김상훈은 빅클럽으로 가게 되겠지.”
“보내지 않을 생각은 없으십니까? 아직 프로가 된 지 1년도 되지 않았고, 내년이라고 해봐야 아직 경험이 부족한데······.”
이번 시즌이 끝난 뒤에 열리는 겨울 이적시장에서 김상훈을 노리는 클럽들이 아주 많을 것이라는 예상.
김상훈의 실력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손승민 감독은 그 예상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최희준 코치는 그런 손승민 감독에게 김상훈을 붙잡아두는 선택에 대해서 묻는 것이다.
아무런 대답 없이 씁쓸한 웃음을 짓던 손승민 감독이 이윽고 고개를 내저었다.
“선수가 원하면······ 보내줘야지. 선수가 꿈을 펼치려는 것을 막을 자격이 나에게는 없다네. 만약 그 자격이 있다고 해도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
확신으로 가득한 손승민 감독의 말.
최희준 코치는 그런 손승민 감독의 말에 반대 의견을 말할 수 없었다. 그가 아는 손승민 감독은 원래 이런 사람이었으니까.
선수를 가장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니까.
“하하!”
자신이 따를 사람은 참 잘 정했다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런 최희준 코치를 보며 손승민 감독이 인상을 찌푸렸다.
“갑자기 왜 웃나?”
“기분이 너무 좋아져서 그렇습니다. 하하하하!”
“거, 최 코치는 가끔 보면 참 이상하다니까?”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