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들린 축구선수-31화 (31/200)

31화 전북(2)

먼 거리에서 때리는 중거리 슈팅은 특유의 통쾌함으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환호성을 이끌어내곤 한다.

중거리 슈팅 능력을 가진 대표적인 선수 스티븐 제라드(Steven Gerrard), 프랭크 램파드(Frank Lampard), 프란체스코 토티(Francesco Totti), 토니 크로스(Toni Kroos) 등은 뛰어난 실력뿐만 아니라 그들의 슈팅 능력으로 때문에도 축구팬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곤 했다.

하지만 그런 강력한 슈팅을 가진 선수들조차 20m 정도에서의 슈팅으로 골을 넣는 경우가 많았다.

30m가 넘어가는 중거리 슈팅으로 골을 넣는 경우는 그런 대단한 선수들에게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당연하게도 초장거리 슈팅으로 골을 넣은 김상훈의 플레이로 인해 관중들의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우와아아악! 방금 슈팅 뭐야! 저게 들어가?”

“슈팅 파워 실화야? 저게 되는 거였어?”

“아니 나는 이런 건 본 적이 없어!”

패널티라인 밖에서 지켜보던 손승민 감독 또한 김상훈의 믿기 어려운 골에 눈을 부릅뜨고 양손을 하늘로 강하게 뻗었다.

‘55m정도는 된 것 같은데······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이윽고 그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투입되자마자 멋대로 전술과는 다른 움직임을 가져가더니····· 이렇게 골을 넣어? 김상훈, 자네 진짜 정체가 뭔가······?’

그 시각, 골을 넣은 김상훈은 잔디 위를 슬라이딩하며 괴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촤아!”

그런 김상훈의 주위에는 잔뜩 흥분한 채 달려온 동료들이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귀신도 광기가 가득한 얼굴로 난리를 쳐댔다.

- 우와아악! 거봐! 내가 된다고 했어, 안 했어? 그 사기 스킬들이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다고 했잖아악!

세레머니를 마친 김상훈이 그의 자리로 찾아들어가는 속도는 빨랐다.

당연한 일이었다.

K리그 올해의 골에 뽑힐 가능성이 아주 높을 정도로 멋진 골을 넣었지만, 경기는 2:1로 지고 있는 상황.

골을 넣은 기쁨을 길게 즐길 여유는 없었다.

“상훈!”

툭-!

최전방에서 공을 받은 에반이 전북의 수비에 막히자 뒤에서 기다리던 김상훈에게 패스했다.

공을 받은 김상훈은 다이렉트로 슈팅을 때리려고 했지만 어느새 다가온 최민재의 강한 압박 때문에 주변에 있던 동료에게 공을 넘겼다.

퍽-!

뛰어난 피지컬과 좋은 신체능력을 가진 최민재는 대인방어 능력이 리그 최정상급인 선수다. 그에게 부딪힌 김상훈은 옆으로 밀려나기는 했지만, 넘어지지 않고 정확하게 동료를 향해 패스 했다.

예전 같았으면 이미 바닥을 나뒹굴 정도로 최민재의 압박은 강했지만, 김상훈은 꾸준한 훈련으로 실력이 많이 좋아진 상태.

이제는 리그 최정상급 수비를 상대로도 나가떨어지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았다.

- 오올~! 이제 안 자빠지네? 중심이 꽤 좋아졌는데?

“이찬수 선수의 가르침 덕분이죠.”

- 크흠! 그건 그렇고 조금 더 템포를 올려야 돼. 슈팅도 과감하게 때려보고.

칭찬을 받자마자 얼굴을 살짝 붉히며 빠르게 화제를 돌리는 이찬수.

그런 모습을 보며 김상훈은 피식 웃으며 움직임을 이어갔다.

***

분위기가 오른 서울 선수들은 동점골을 노리며 더 열심히 뛰며 상대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상대는 전북, 단단한 수비로 서울의 공격을 계속해서 막아냈다.

오히려 가끔씩 시도하는 날카로운 역습에 서울 선수들의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시간은 흘러 양 팀 모두 골이 없이 후반 78분까지 흘러갔다. 김상훈은 체력을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활발하게 움직이며 기회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쿵-!

최민재의 강한 압박을 무사 뎀벨레의 탈압박으로 간신히 공을 지켜낸 김상훈이 사이드로 쇄도하는 고요함에게 패스 했다.

크로스에 자신감이 있는 고요함은 패널티 라인 안에 있는 선수들을 힐끗 확인 한 뒤,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렸다.

쉬이익!

크로스의 궤적을 본 서울의 에반은 그를 붙잡는 수비를 뿌리치며 공간으로 파고들었고, 먼 곳에 있던 박성인은 흘러나오는 볼을 노리기 위해서 뒷공간으로 조금 치우쳐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수비를 뿌리친 에반은 어느새 달려온 최민재에게 막혀 제대로 된 헤딩을 할 수 없었다.

틱-!

약하게 떨어진 헤딩을 전북의 이재선이 걷어냈다. 걷어낸 공은 높이 뜬 채 중앙라인 근처에서 떨어졌다. 양 팀의 미드필더들이 공을 따내기 위해 높게 점프 했다. 공중볼 경합에서 승리한 건 결국 서울의 하대선이었다.

하대선이 떨어뜨린 공의 근처에 있던 선수는 다른 선수도 아닌 김상훈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 오른쪽! 좀 더 오른쪽! 아니! 거기 말고오오! 그래, 그래! 거기! 거기로 떨어질 거라고!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공의 위치를 찾아내는 축구도사 귀신이 계속해서 위치를 브리핑하고 있었으니까.

툭! 툭!

공을 잡아낸 김상훈은 두 번 공을 만질 동안 전방의 선수들을 확인하는 것을 끝마쳤다.

빠른 속도의 시야확인과 선수파악.

이건 꾸준한 이찬수와의 훈련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그 훈련의 결과로 김상훈은 지금 이 순간, 어떤 플레이를 해야 할지 빠른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상대 선수가 가까이에 붙기 전이라면 김상훈이 할 수 있는 플레이는 정해져 있었다.

당연하게도 김상훈이 무엇을 할지 알고 있던 전북 선수들이 빠르게 뛰어왔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높게 떠오른 공중볼을 하대선이 따낼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고, 설마 그가 따낸 헤딩을 김상훈이 잡아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그 사실은 전북에게 참혹한 결과를 가져다 줄 가능성이 높았다.

뻐엉-!

정확한 슈팅 스킬을 사용한 김상훈이 골대 상단 구석을 향해 강한 슈팅을 때려냈으니까.

쒸이이익-!

20m거리에서 때려낸 김상훈의 슈팅은 골대 구석으로 강하게 날아갔다.

전북의 골키퍼 홍정민이 슈팅의 위치를 보며 몸을 날렸다.

그의 표정에는 중거리 슈팅에 두 번은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들어나 있었다.

‘막는다! 이번엔 무조건 막는다아아!’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으로 홍정민의 손이 길게 뻗어졌다. 하지만 김상훈이 때려낸 공은 야속하게도 그의 손을 벗어나 골대 안쪽을 강타했다.

대앵-!

‘안 들어갔나?’

몸을 날린 뒤, 땅에 떨어진 홍정민은 재빠르게 몸을 일으키며 공의 위치를 확인했다. 분명히 골대를 맞는 것을 봤다.

‘공 어딨어?! 응? 아······.’

그런 홍정민의 눈에 공을 옆구리에 낀 채 코너킥 라인을 향해 뛰어가는 남자가 보였다.

남자를 보던 홍정민이 이내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심판이 골을 인정한 것이 그의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이윽고 필드 위에 다시 한 번 괴성이 터져 나왔다.

“촤아아~!”

후반 81분, 20m에서 때린 과감한 중거리 슈팅으로 인한 김상훈의 동점골로 스코어는 2:2가 되었다.

***

후반전 82분.

골을 넣고 자신의 포지션에 서서 움직이는 김상훈의 상태가 이상했다.

이전과 달리 움직임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조금은 딱딱했던 근육들이 갑자기 풀어진 것처럼, 현재 김상훈의 몸은 굉장히 부드럽고 유연해보였다.

스타일도 많이 달라졌다.

공을 잡았을 때, 훨씬 여유가 생겼고 눈빛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김상훈의 몸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이찬수였으니까.

“오랜만에 몸 좀 풀어볼까?”

그때였다.

주변에 있던 동료에게 패스한 뒤, 전방으로 뛰어 들어가는 이찬수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오른 것이.

[체력이 10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전체적인 능력이 50% 하락합니다.]

그 메시지를 본 이찬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거 써도 되지? 쓴다?”

그러자 그의 머릿속으로 김상훈의 대답이 들려왔다.

‘예, 그러세요. 대신 골 꼭 넣으셔야 돼요.’

“당연한 소리는 하지 말고, 시스템, 체력회복 물약 사용한다.”

[체력회복 물약]

- 등급 : 실버(S)

- 효과 : 섭취 시, 사용자의 체력이 20만큼 회복된다.

이찬수는 김상훈이 얼마 전에 얻은 뒤, 아껴뒀던 체력회복 물약을 직접 사용했다.

[체력회복 물약(S)을 사용합니다. 현재 체력은 30입니다.]

메시지를 본 이찬수는 미소를 지었다. 물약을 사용해서 이제 남은 체력은 30. 이 정도면 골을 넣기에는 충분했다.

가벼운 조깅을 하듯 필드 위를 가볍게 뛰어다니던 이찬수의 눈이 어느 순간 날카롭게 빛났다.

기회를 포착한 것이다.

그라운드 위에 올라 있는 선수들 중 그 누구도 볼 수 없는, 오직 이찬수의 눈에만 보이는 기회.

기회를 포착한 이찬수의 움직임은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툭-! 툭-! 툭-! 툭-!

먹이를 찾은 짐승처럼 무서운 속도로 공을 몰고 전방으로 뛰어 들어가는 그의 모습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메시의 드리블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짧게 공을 치면서 상대 팀의 빈 공간을 날카롭게 찾아들어가는 움직임.

발에 공이 붙어 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드리블에 전북의 수비는 쉽게 발을 뻗지 못했다.

자칫 잘못하면 위험한 상황을 내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휘릭-!

가까이에 붙어서 공을 뺏으려던 최민재를 마르세유 턴으로 제친 이찬수는 계속해서 드리블을 치고 들어갔다. 무서운 속도로 치고 들어가는 이찬수는 어느새 전북의 패널티 라인 안까지 침투했다.

그 상황에서 이찬수는 일부러 공을 조금 강하게 밀어서 드리블을 했다.

그 모습을 실수라고 판단한 전북의 골키퍼 홍정민이 공을 잡기 위해 튀어나왔고, 수비수 이주현까지 태클을 시도했다.

당연하게도 이건 이찬수가 던진 미끼였다.

‘하하하! 다들 잘 속네?’

직접 슈팅을 가져갈 생각이었다면 길게 공을 찬 순간, 이찬수의 의도는 실패로 돌아갈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애초에 이찬수는 슈팅을 할 생각이 없었다. 직접 슈팅하는 것보다 더욱 완벽하게 골을 넣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의 그의 계획이었다. 결국 그는 자신에게 달려오는 골키퍼와 슬라이딩 태클을 하는 수비수를 보며 발을 길게 쭉 뻗어서 공의 왼쪽을 툭-차냈다.

그러자 공을 데굴데굴 굴러서 골키퍼가 없는 골대의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한 선수가 그 공을 향해 강하게 다리를 휘둘렀다.

뻐엉-!

빈 골대를 향해 공을 찬 선수는 서울의 박성인이었다.

“고오오오올!”

박성인은 골을 넣자마자 잔뜩 흥분한 얼굴로 이찬수를 향해 달려왔다. 이윽고 박성인은 완벽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엄청난 어시스트로 자신에게 역전골을 넣을 수 있게 도와준 이찬수를 끌어안았다.

“하하하하! 상훈아, 인마! 패스 진짜 너무 좋았다!”

박성인은 기분이 너무 좋은 나머지 연신 고맙다고 외치며 김상훈의 몸을 차지한 남자의 머리를 강하게 쓰다듬었다.

벅벅-!

“알겠으니까··· 그만 좀·····.”

“하하하하하! 진짜 왜 이렇게 잘하냐? 훈련 때는 그런 드리블 보여준 적 없잖아? 막 그런거야? 비장의 무기 같은 거?”

이찬수는 그런 박성인의 팔을 막아보려 했지만, 과하게 흥분한 박성인은 계속해서 이찬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더 나아가 이제는 헤드락까지 걸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찬수가 허허 웃으며 중얼거렸다.

“하···하하···이 어린 친구가 너무 흥분한 거 같은데······적당히 했으면 좋겠는데······.”

그때, 이찬수의 표정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의 입에서 짜증 가득한 말이 터져 나왔다.

“이런 개·····!”

‘이찬수 선수! 욕하면 안돼요! 박성인은 제 선배라고요!’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뻔했던 욕을 간신히 참아낸 이찬수가 땀에 젖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동시에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

‘갑자기 왜 그래요? 방금까지 짜증내시던 거 아니었어요? 갑자기 왜 그러냐고요 무섭게.’

여전히 환하게 웃으며 박성인의 엉덩이를 툭 쳐준 뒤, 스스로의 자리로 복귀하던 이찬수가 그런 김상훈의 말에 대답했다.

“상훈아, 내가 네 선배한테 욕하려다 참아줘서 고맙지?”

‘아니, 욕은 당연히 하면 안 되는 거죠.’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역전 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지?”

‘아니 그건 감사하긴 하죠. 근데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불안하게 하지 말고 그냥 남은 시간동안 즐겁게 축구하시면 될 거 같은데······.’

“그럼 네가 이렇게 까지 고마워하니까 오늘은 기절할 때까지 뛰련다.”

‘뭐, 뭐라고요? 이런 씹····! 안돼요! 예? 저 분명 안 된다고 했어요?!’

“응~ 돼~”

‘이런 젠장!’

이찬수, 그는 오늘 3:2로 경기를 마무리 할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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