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수상한 남자(2)
어두운 밤, 불이 켜진 풋살 경기장 안에서 혼자 공을 차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있어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몸을 앞으로 조금 기울이고 슛을 하면 공이 잘 뜨지 않아. 그리고······.”
드리블, 슈팅 등 혼자서 공을 차던 남자는 계속해서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 남자를 보게 된다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당연할 만한 모습.
그런 남자의 얼굴이 조명에 비춰졌다.
아주 평범한 얼굴을 가진 남자는 서울 유나이티드 미드필더 김상훈이었다. 그런데 그의 말투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아이 씨! 도대체 몸이 왜 이 모양이야?”
스스로의 몸을 움직이며 투덜거릴 때.
그의 머릿속에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거야 이찬수 선수랑 비교하니까 그렇죠. 제 몸도 이제 나쁘지는 않은 편이거든요?’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김상훈이었다.
지금 두 남자는 빙의를 한 상황, 즉 현재 김상훈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이찬수였다.
“지금 내 움직임을 잘 기억해놔. 너는 지금보다 훨씬 더 열심히 해야 돼.”
‘저 되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요? 코치님들이 적당히 하라고 말릴 정돈데.’
“그래서 곧바로 적당히 했잖아?”
‘예. 그렇죠.’
“그러니까 딱 그 정도인 거야. 코치들이 팔다리를 붙잡고 훈련을 못하게 막을 정도로 해야지. 나 때는 말이야······.”
이찬수 특유의 꼰대기질이 발동되려던 때.
무언가를 느낀 김상훈이 다급하게 이찬수를 불렀다.
‘이찬수 선수! 사람들 목소리 들리지 않아요?’
“응? 어디? 오! 맞네. 풋살하러 왔나본데?”
‘오······ 재밌겠네요.’
“흐흐. 나도 껴달라고 할까?”
‘그것도 재밌긴 하겠네요. 근데 그럴 일이 있겠어요? 보통은 쪽수를 맞추고 오잖아요.’
그때, 옆 경기장에 있던 두 명의 남자가 이찬수가 있는 곳으로 다급하게 뛰어왔다.
“그럴 수도 있겠는데?”
‘빨리 마스크부터 써요!’
“알겠어. 인마~ 하여간 되게 연예인인 척하네.”
‘아, 뭔 소리에요! 그게 아니라 괜히 프로가 일반인 상대로 뛰면 욕 먹을 수도 있잖아요.’
“예예~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연예인 김상훈 씨.”
‘아으!’
***
김승태와 이진욱은 빠른 발걸음으로 후드를 쓴 남자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건넸다.
급히 1명을 구해야하는 상황.
그들의 말투는 평소보다도 훨씬 더 부드러웠다.
“하하····· 안녕하세요. 혹시 혼자 축구하고 계신 거예요?”
그들을 빤히 쳐다보던 이찬수를 향해 김상훈은 계속해서 신신당부를 했다.
‘욕하지 마세요. 반말하지 마세요. 최대한 예의 있게 좀 대답해주세요. 제발 부탁 좀 드릴게요. 예?’
계속된 김상훈의 부탁에 이찬수는 억지로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대답했다.
“예. 혼자 하고 있었어요.”
“오! 그럼 괜찮으시면 저희랑 같이 풋살 하시겠어요? 마침 저희가 한 명이 부족하거든요.”
“오! 그래요?”
“예.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사실 오늘 중요한 내기가 걸린 시합이거든요.”
“내기라······ 고것 참 재미있겠네요.”
김승태가 데려온 이찬수를 바라보던 물류팀 팀장 최재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사람은 누군데 얼굴을 가리고 있지?
궁금증이 점점 커져갈 때쯤 김승태가 그를 찾아왔다.
“최재욱 팀장님?”
“예, 김승태 팀장님. 근데 저 분은 누구시죠? 구현민 대리는 아닌 것 같은데·······?”
그에게 다가온 김승태가 다가와 마케팅팀의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예. 사실 저희 구현민 대리가 사정이 생겨서 못 오게 되어서요······ 그래서 용병을 좀 구했는데, 괜찮을까요?”
얼굴을 전부 가리고 있는 남자를 힐끗 바라 본 최재욱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저 남자의 정체를 모르긴 하지만 저 사람이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구현민 대리보다 잘할 것 같아보이지는 않았으니까.
“하하! 저흰 오히려 좋죠. 구현민 대리를 막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괜찮겠어요? 구현민 대리가 있을 때도 비등비등했는데, 저 분을 껴서하면······ 이거 오늘 경기 너무 쉬워질까봐 겁이 나네요. 하하하하!”
두 남자의 대화를 듣던 이찬수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지어졌다.
구석에 서 있던 그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구현민이 누구냐?”
‘모르죠. 근데 정황상 원래 이찬수 선수 자리에서 뛸 사람인 거 같아요. 아마도 팀의 에이스였던 것 같은데요?’
“짜식들이 살살 하려고 했더니만······ 저렇게 재밌는 소리를 하네. 흐흐흐!”
‘아! 진지하게 하시면 괜히 양학 한다고 욕먹어요.’
“욕하면 나도 같이 욕하면 되지 뭐.”
‘제 몸이잖아요!’
“몰라, 인마. 제대로 할 거야.”
‘아오!’
제대로 한다는 이찬수의 말에 불안하기도 했지만,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전설적인 축구선수 이찬수가 일반인들과 풋살을 한다면?
다 큰 성인과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운 아이와의 축구대결과도 같은 그림이 되지 않을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찬수와 일반인들의 실력에는 엄청난 차이가 날 것은 분명했다.
이찬수가 양학을 하는 것을 상상하던 김상훈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적당히 좀 하셔야 할 텐데······.’
“페어플레이(fair play)합시다!”
서로를 바라보며 일렬로 선 양 팀 선수들은 매너 있는 게임을 하자며 악수를 나눴다.
악수를 끝으로 양 팀 선수들은 각자의 포지션에 맡게 위치했다.
이찬수는 원래 구현민의 포지션인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 섰다.
원하는 포지션을 고르라는 김승태의 말에 직접 고른 포지션이었다.
그렇게 마케팅팀과 물류팀의 회식 내기가 걸린 풋살 시합이 시작됐다.
***
최재욱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오늘 시합에 구현민이 불참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그동안 마케팅팀의 구현민 때문에 얼마나 많이 져왔던가.
‘구현민이 없으면 마케팅 팀은 껌이지!’
김승태가 급하게 용병을 데려온 것 같지만, 말 그대로 급하게 데려온 사람일 뿐이었다.
처음 본 그 남자는 체격도 크지 않고, 눈빛이 매섭지도 않았다. 후드 티를 뒤집어 쓰고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성격도 소심할 것이 분명했다.
‘오늘은 기분 좋게 잘 수 있겠네.’
승부욕이 강한 최재욱은 오늘, 경기에서 승리한 뒤 꿀잠을 잘 생각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그의 팀원들 역시 벌써부터 자신감이 표정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런 팀원들을 바라보며 최재욱은 여유 넘치는 미소와 함께 소리쳤다.
“가봅시다!”
되는 날은 뭘 해도 된다고 하던가?
최재욱은 선공을 정하는 가위바위보까지 이겨버렸다.
결국 선제공격 기회까지 얻은 그는 같은 팀원 이손희가 넘겨준 패스를 받자마자 자신 있게 드리블을 치기 시작했다.
구현민 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재욱은 드리블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었다. 소위 말하는 동네에서 축구 좀 하던 남자, 그런 남자가 바로 최재욱이었으니까.
시작하자마자 빠르게 드리블을 하던 그를 막아선 남자는 다름 아닌 그 후드티를 뒤집어 쓴 남자였다.
바로 앞에서 상대 선수를 맞이한 상태였음에도 최재욱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마케팅 팀 여러분~ 오늘 제대로 털릴 준비 하시죠.’
가볍게 제칠 생각으로 헛다리를 짚은 최재욱은 순식간에 속도를 올려서 왼쪽으로 치고 나갔다. 이 패턴은 동네 축구에서는 알고도 막기 힘든 그의 주특기 드리블이었다.
이미 최재욱의 머릿속에는 후드를 쓴 남자는 없었다. 오직 전방으로 찔러주거나 재차 드리블을 할 생각만이 그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다.
툭.
“응?”
어정쩡한 자세로 멈춰선 최재욱이 뒤를 돌아봤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그는 공을 몰고 전방으로 뛰어가는 후드티를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뺏긴 거야?’
반면 최재욱의 공을 가볍게 뺏어낸 이찬수는 전방을 바라봤다. 현재 그의 시야에는 사이드로 뛰어가는 동료, 자신의 공을 뺏으러 오는 상대팀 선수 등. 모든 것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이찬수는 방금 전 자신의 앞에서 드리블을 하던 남자의 표정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감히 누구 앞에서 드리블을 쳐?”
최재욱의 드리블은 동네에서는 꽤 뛰어난 수준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동네 수준일 뿐.
세계적인 무대에서 뛰던, 그 무대에서 최고라 평가받던 이찬수에게는 애들 장난에 불과했다.
“일단 한 골 넣어볼까?”
작게 중얼거린 이찬수 선수는 상대팀 선수가 다가오기도 전에 곧바로 슈팅을 때렸다.
뻐엉!
중앙 라인 근처에서 때린 그의 슛은 낮고 빠르게 골키퍼가 지키고 있는 골대로 향했다.
골키퍼가 다급하게 발을 뻗어봤지만 이찬수의 슈팅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철렁-!
경기 시작 10초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우왁! 당신 뭐예요?”
김승태가 다가와서 물었지만 이찬수는 가볍게 엄지를 들어 올린 뒤 그의 자리로 돌아갔다. 시크함의 끝을 보여주는 그 모습에 김승태는 더 이상 질문을 하지 못했다.
이어진 경기 내용 또한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공격을 하는 물류팀 선수들의 공을 어느새 나타난 이찬수가 가볍게 뺏어낸 뒤, 동료들에게 패스를 건네주거나 직접 슈팅을 해서 골을 넣었다.
스킬을 쓰지 않았음에도 이찬수의 슈팅은 백발백중이었다.
물류팀 회사원들이 이찬수를 막아보려 했지만 그들은 이찬수의 발밑에 있는 공을 건드리지도 못했다.
뻐엉!
“아····· 저 사람 도대체 누구야? 저 정도면 프로급 아니야?!”
이찬수 혼자 5골을 넣었을 때쯤, 물류팀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눈치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이찬수는 계속해서 공을 몰았다.
패턴은 간단했다.
상대 선수가 가까이 붙으면 몸을 빠른 턴으로 제쳐내고, 각종 화려한 드리블 스킬을 난무하며 상대를 가지고 놀았다.
이윽고 이찬수는 골키퍼까지 제치고 추가 골을 넣어버렸다.
철렁-!
그렇다고 개인플레이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패스를 찔러댔고 그 패스는 마케팅팀 선수들이 받기 편한 명품 패스가 됐다.
결국 전반 20분이라는 시간동안 이찬수의 기록은 8골 3어시스트.
그야말로 클래스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전반전이 끝나고 주어진 휴식시간.
물류팀 직원들은 귀신에 홀린 표정으로 이찬수를 바라봤다.
물류팀 팀장인 최재욱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김승태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아! 김팀장 님! 솔직히 저 사람 선출 아니에요? 아니 무슨 실력이····· 아, 이건 진짜 너무 하잖아요.”
“최팀장 님, 그게 아니라····· 저도 저렇게 잘하실 줄은 몰랐어요······.”
그때, 두 팀장의 대화를 멀리서 엿듣던 이찬수가 조용히 풋살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경기장을 나온 그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응?! 갑자기 어디가요?’
“이 정도 난리를 쳐놨으면 당연히 튀어야지! 크하하핫! 방금 쟤네 분위기 못 봤냐?”
‘아니 그러니까 좀 적당히 하시라니까!’
“오랜만에 풋살하니까 힘 조절이 안 되더라. 그리고 어차피 체력도 거의 다 떨어져서 더 뛰지도 못해. 또 기절시킬 순 없잖아?”
‘그렇긴 하네요.’
실제로 20분 동안 미친 듯이 날뛴 만큼 현재 남은 체력은 고작 7에 불과했다.
분위기가 심각해지지 않았더라도 이찬수는 더 이상 뛰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체력 더 떨어지기 전에 빙의 좀 풀자. 어우! 오랜만에 재밌었다.”
‘예. 바로 풀죠.’
***
집에 도착한 김상훈은 강원과의 경기가 끝난 뒤부터 한 번도 쓰지 않고 모아둔 포인트를 바라봤다.
포인트는 제법 쌓인 상태였다.
[현재 보유 포인트는 11320p입니다.]
- 포인트 쓰려고?
“예. 아무래도 써야할 것 같아요.”
- 왜? 너 2만 포인트까지 모아서 그린 박스 산다며?
“원래는 그러려고 했는데······.”
이찬수의 말처럼 원래 계획대로라면 김상훈은 오늘 포인트를 쓰지 않아야 한다.
그에게는 최근 주닝요의 프리킥을 얻었던 그린 박스를 다시 한 번 구매하겠다는 계획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계획을 수정하고 지금 당장 모든 포인트를 써버려야 될 이유가 김상훈에게 생겨버렸다.
- 내일 경기 때문에 그러지?
“예. 다른 팀도 아닌 전북과의 경기니까요.”
지난 시즌 우승팀이자 현재 서울과 함께 공동 1위에 올라있는 전북과의 경기가 내일 열린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아깝긴 하지만······.”
[레드 박스 ▷ 1,000포인트]
[오렌지 박스 ▷ 5,000포인트]
[옐로우 박스 ▷ 10,000포인트]
[그린 박스 ▷ 20,000포인트]
[블루 박스 ▷ 40,000포인트]
[네이비 박스 ▷ 80,000포인트]
[퍼플 박스 ▷ 160,000포인트]
아쉬운 얼굴로 박스 구매 선택창을 바라보던 김상훈이 이윽고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