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들린 축구선수-28화 (28/200)

28화 수상한 남자(1)

심판에 의하여 반칙으로 지적되었을 때 상대편에게 주어지는 킥으로 시합을 재개하는 것을 말하는 프리킥.

이 프리킥 한 번으로 승부가 갈리는 경기는 아주 많다.

때문에 프리킥의 중요성은 꼭 선수가 아니더라도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

당연하게도 그런 프리킥을 굉장히 잘 차는 것으로 유명한 선수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베컴, 미하일로비치, 피를로, 호베르토 카를로스, 호날두, 델피에로 등.

나열된 선수들 모두 프리킥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선수들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선수들이었다.

다만, 축구 관계자들 사이에서 최고의 프리키커를 논할 때 1순위로 꼽히는 선수는 따로 있었다.

“사실····· 이게 나와 버렸거든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김상훈의 그 말에 이찬수가 반색하며 물었다.

- 뭐? 나오긴 뭐가 나와? 너 설마······!

대답을 하는 대신, 김상훈은 스킬 창을 띄웠다.

[주닝요의 프리킥]

- 등급 : 레전드(Legend)

- 효과 : 브라질의 주닝요, 그의 프리킥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한 경기당 1회 사용 가능)

주닝요.

풀네임은 주니뉴 페르남부카누. 2001년부터 2009년까지 올림피크 리옹에서 뛰며 프리킥으로만 40골 이상을 넣은 ‘프리킥 스페셜리스트’이자 무회전 슈팅의 원조라 불리는 선수였다.

프리킥으로 유명한 또 다른 선수인 피를로 또한 주닝요의 영상을 보며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을 정도로 축구 역사에서 그 명성은 상당했다.

- 응? 야! 잠깐만! 이거 뭔데?! 주닝요? 내가 아는 그 프리킥 마스터 주닝요?! 야! 야야!

주닝요의 프리킥을 얻은 김상훈이 이찬수를 뒤로한 채 멈춰진 공을 향해 달려갔다.

멈춰진 공을 보며 다리를 휘두르는 그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두려움 따위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새로운 스킬을 얻은 그에게 멈춰진 공을 차서 골대 안에 넣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비록 선수들로 이뤄진 벽이 있지만, 원래 벽은 넘으라고 있는 게 아닌가.

파앙-!

휘둘러진 다리가 둥근 공을 때려냄과 동시에 커다란 소리가 필드 위에 울려 퍼졌다.

김상훈이 강하게 찬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조금 높게 쏘아져나갔다.

이상할 정도로 회전이 없는 공.

회전이 없기 때문일까? 그 공은 계속해서 좌우로 흔들리며 골대를 향해 날아갔다.

골대에 거의 도착해서는 마치 야구의 포크볼(fork ball)처럼 뚝 떨어졌다.

‘이, 이게 뭐야?!’

강원의 골키퍼 김호중은 그 현란한 무브먼트를 보이는 공에 조금도 반응하지 못했다.

말로만 듣고 영상에서만 보던 압도적인 프리킥에 몸이 굳어버린 것이다.

그저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공을 고개로 따라갈 뿐.

그만큼 완벽한 무회전 프리킥이었다.

그 순간 그라운드 위에는 한 남자의 괴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촤! 촤! 촤! 촤아아아아~!”

양 팔을 날개처럼 펼치고 그라운드 위를 뛰어다니는 특유의 세레머니를 펼치는 남자, 김상훈은 그를 향해 환호성을 뿜어내는 관중들을 바라봤다.

그 순간 그는 미칠 듯한 흥분감을 느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가슴이 뜨겁게 불타올랐다.

모든 것을 불태운 경기였기 때문일까?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이상하게 그의 입에선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왔다.

“흐흐흐흐!”

그런 김상훈의 모습에 이찬수가 귀신이라도 본 듯 소스라치며 물었따.

- 야, 너 뭐 잘못 먹었냐? 왜 그렇게 무섭게 웃고 그래?

“너무 재밌어서요! 진짜 축구가 너무 재밌어서 미칠 것 같아서요!”

- ······진짜 미친놈인가?

서울과 강원의 치열했던 경기는 김상훈의 프리킥에 의한 결승골로 서울이 3:2로 승리했다.

***

“김상훈의 체력 상태는 어떤가?”

“본인도 체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고, 집중적으로 훈련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처음에 비해 많이 좋아졌습니다.”

“요 며칠간 김상훈이 조금 무리하게 훈련을 한다던데?”

최희준 코치에게 묻는 손승민 감독의 표정에 근심이 어렸다. 이제 겨우 3경기를 뛴 선수지만, 김상훈은 서울이라는 팀에서 아주 중요한 선수가 되어 있었다.

최근에 경기를 뛰었던 선수가 계속해서 무리한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

어찌 보면 손승민 감독의 걱정은 당연한 것이다.

만약 이제 막 꽃피우기 시작하는 그가 부상이라도 당한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돼.’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다행히 건강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발목은 확실히 괜찮은 건가?”

괜찮다는 최희준 코치의 말에도 손승민 감독은 강원과의 경기에서 깊은 태클을 당했던 김상훈의 발목을 걱정했다.

“예, 아무런 이상 없답니다. 검사 결과도 깔끔합니다.”

“자네가 잘 케어해주길 바라네.”

“알겠습니다.”

“신인인데다 매 경기 활약을 하고 있다 보니 열정이 과한 것일 수도 있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손승민 감독이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무거웠던 공기가 원상태로 돌아오는 느낌에 최희준 코치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감독님이 상훈이를 많이 아끼시는 구나······.”

그때였다.

딸깍!

갑작스레 회의실 문이 열리는 것을 본 최희준 코치가 풀어진 자세를 바로잡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손승민 감독이었다.

그는 여전히 딱딱한 표정을 지은 채, 최희준 코치의 눈을 바라봤다.

괜시리 몸이 위축되는 기분을 느낀 최희준 코치가 물었다.

“·····감독님?”

그런 최희준 코치를 아무 말 없이 쳐다보던 손승민 감독이 다시 몸을 돌렸다.

그는 들어왔던 문으로 다시 나가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인, 고맙네. 딸아이가 참 좋아하더군.”

***

훅-! 훅-!

홈쇼핑에서 비싼 값을 주고 산 런닝머신 위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던 김상훈.

그런 그가 어느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저러시지?’

평소라면 말이 굉장히 많았을 이찬수가 강원과의 경기가 끝난 뒤부터 달라졌다.

일단 말수가 굉장히 적어졌다. 때때로 이상한 행동도 보였다.

김상훈을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도 고개를 홱 돌리는 이상한 행동.

지금 이 순간 역시 이찬수는 그런 행동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런 이찬수를 김상훈은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

- 뭐가?

김상훈은 확신했다.

이찬수가 뭔가 불만이 있다는 사실을.

그것도 아주 큰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에이, 최근 들어서 저한테 이상할 정도로 차가우시잖아요. 제가 잘못한 게 있으면 말을 해주세요.”

- 그런 거 없는데? 왜 괜히 혼자서 상상한 다음에 확신을 갖는 거야? 그런 나쁜 버릇은 어디서 배웠어?

날이 선 이찬수의 대답에 김상훈은 깨달았다.

“이찬수 선수, 삐졌죠?”

- 뭔 개소리야! 내가 삐지긴 왜 삐져?

이찬수가 지금 제대로 삐졌다는 사실을.

이 남자는 한 번 삐져버리면 며칠간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 사실을 깨달은 김상훈이 이찬수를 바라봤다.

“제가 그린 박스 몰래 까서 그런 거죠?”

그린 박스.

그 단어가 나온 순간 이찬수의 마음속에 있던 무언가가 터져버렸다.

- 이 배은망덕한 새끼야! 어떻게 나한테 스킬을 얻을 걸 비밀로 할 수 있어? 엉? 우와~! 진짜 존나 서운하다! 너 인마, 내가 그렇게 안 봤는데······!

감정이 폭발한 이찬수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평소 창백한 피부를 지니고 있던 그였기에 붉어진 피부가 유난히 돋보였다.

“이, 이찬수 선수······. 조금만 진정하세요. 지금 얼굴 터지실 것 같아요!”

- 터지면 어쩔 건데? 터지라 그래! 어차피 한번 뒈진 거, 또 뒈져버리지 뭐!

“아····· 죄송해요. 그냥 저는 한 번쯤 놀라게 해드리고 싶어서 그랬어요.”

김상훈이 한 시간을 달랜 뒤에야 이찬수는 본래의 그로 돌아왔다.

피곤함이 가득한 얼굴을 한 김상훈이 그를 바라보며 다짐했다.

다시는 이찬수 몰래 박스를 까지 않겠다는 것을.

- 그래서 주닝요의 프리킥을 쓴 소감은 어때?

그런 이찬수의 질문에 김상훈은 눈을 감고 강원과의 경기를 떠올렸다. 프리킥을 얻고····· 공을 유니폼에 잘 닦아서 잔디밭에 내려놓은 뒤, 골대를 바라보며 원하는 궤적을 상상하며 슈팅을 때렸다.

그 순간 김상훈은 누군가가 자신의 몸이 슈팅을 때리는 것을 보조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공의 정확한 위치에 발을 대게끔 조정을 받는 느낌.

결국 그의 발을 떠난 공은 상상했던 것과 똑같은 궤적으로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기억을 마친 김상훈은 이찬수의 질문에 대답했다.

“환상적이었어요. 아니, 환상적이란 말도 부족한데······. 아, 더 엄청난 단어가 떠오르지가 않네요. 하여튼 최고였어요.”

- 주닝요 그 양반이 프리킥 하나는 진짜 기가 막히게 차긴 했지.

“실제로도 그렇게 잘 찼어요?”

- 간단하게 말해서 주닝요가 있는 팀이 프리킥을 얻었다? 그 거리가 40m를 넘어가지만 않는다면 상대팀은 무조건 긴장했어. 그 사람은 40m라는 먼 거리에서도 골을 넣는 선수였으니까.

“40m요?!”

- 그래, 나도 프리킥에 나름 자신이 있는 편이었지만, 그 사람이 프리킥을 차는 걸 본 뒤로는 나조차 겸손해지더라고.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스킬을 얻은 것 같네요.”

- 그래서 나는 궁금해.

“뭐가요?”

- 그 빌어먹을 시스템은 너한테 왜 그렇게까지 퍼주는 걸까?

“그래도 그린 박스였잖아요. 2만 포인트나 하는 비싼 박스니까 좋은 게 나올 수도 있는 거죠.”

- 그러다가 그것보다 더 비싼 거 까면 메시의 드리블 스킬이라도 나오겠다?

“아으! 오늘따라 정말 왜 이러실까?”

- 존나 배 아파서 그런다! 아······ 나한테는 왜 그런 시스템이 안 생겼을까? 오늘의 위닝을 좀 더 열심히 했어야 했나?

평소에도 농담 삼아 하는 말이었지만, 지금의 이찬수는 진심으로 아쉬워하고 있었다.

- 나한테 그런 시스템이 있었으면······ 에이! 아니다······.

순간 무언가를 말하려던 이찬수는 입 밖으로 나오려던 말을 삼켜냈다.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한 명이었던 자신이 유일하게 이루지 못한 것과 그 한이 왜 하필 지금 떠오르려 하는 것일까.

이찬수의 기억 속에 묻어뒀던 평생의 한.

그 기억이 진짜로 떠올라버릴 것 같아서···· 그는 애써 웃으며 화제를 전환했다.

- 빙의나 한 번 하자!

***

회사원 김승태. 그에게는 일주일에 한 번씩 빼먹지 않고 하는 취미가 있다.

그 취미는 다름 아닌 풋살.

오늘도 그는 퇴근 후 회사 동료들과 함께 회사 근처에 위치한 풋살 경기장에 찾아왔다.

“오늘 물류팀이랑 회식 내기 걸린 거 아시죠? 압도적으로 이겨서 우리 마케팅 팀의 힘을 보여줍시다.”

김승태의 열정적인 연설에 상대팀인 물류팀 팀장 최재욱이 이에 질세라 팀의 사기를 다독였다.

“마케팅팀도 잘하기는 하지만 물류팀하면 스포츠 아니겠습니까? 오늘 시원하게 이기고 회식이나 하러 가죠!”

양 팀이 가볍게 몸을 풀며 곧 있을 경기를 준비할 때.

김승태의 행동이 이상했다.

그는 자꾸만 초조한 얼굴로 스마트폰과 주변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행동이었다.

결국 참지 못한 김승태가 같은 부서이자 팀원인 이진욱에게 물었다.

“진욱 씨, 한 명 언제 온대요?”

“팀장님 안 그래도 방금 구현민 대리한테 문자 왔습니다. 억?!”

조금 늦을 것 같다던 구현민, 뒤늦게 온 그의 문자를 확인한 이진욱이 당황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구현민 대리가 오늘 못 온다는데요····? 몸이 너무 안 좋다고 하네요······.”

“아니, 에이스가 구현민 대린데······ 아오!”

김승태가 이끄는 풋살 팀의 에이스가 바로 구현민이었으니까.

그가 없다면 전체적으로 좋은 실력을 가진 물류팀을 이길 자신이 없었으니까.

게다가 풋살은 5대5 게임이다.

한 명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경기를 할 수 없다.

가뜩이나 실력도 조금 밀리는 상황에서 4대5로 경기를 치룰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곧 경기를 시작해야하는 상황.

마음이 급해진 김승태가 주변을 훑어보며 말했다.

“빠르게 부를 사람 없어요?”

“아···· 시간이 좀 늦어서····· 어떻게 할까요? 그냥 물류팀 팀장님한테 다음에 하자고 할까요····?”

“에휴! 차라리 그게 낫겠······ 어? 잠깐!”

“예? 팀장님, 왜 그러세요?”

“저기, 저기 좀 봐요! 저쪽 경기장에 있는 사람, 보여요?”

김승태가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 이진욱은 볼 수 있었다.

후드티를 깊게 뒤집어쓰고 흰색 마스크를 쓴 채 혼잣말을 지껄이고 있는 남자를.

넓은 풋살 경기장 안에서 혼자 볼을 컨트롤하며 놀고 있는 그 수상한 남자를 잠시 멍하니 지켜보던 이진욱.

잠시 뒤, 고개를 돌려 김승태를 바라보는 이진욱의 표정은 밝았다.

“잘하면 오늘 내기, 이길 수도 있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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