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강원(2)
서울 선수들의 자신감과 손승민 감독의 믿음이 만들어낸 효과였을까?
전반전 내내 공격적인 플레이로 강원을 압박한 서울은 전반전이 종료되기 전, 세트피스 상황에서 터진 곽태현의 헤딩골로 1골을 추가할 수 있었다.
좋은 분위기로 전반전을 마친 서울 선수들은 밝은 얼굴로 라커룸으로 들어왔다.
손승민 감독 역시 평소보다는 딱딱하지 않은 표정으로 선수들을 바라봤다.
“너희들이 자랑스럽다.”
선수들의 눈빛에 자신감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보며 손승민 감독의 입 꼬리가 움찔거렸다. 마음에 드는 눈빛이었다.
한번 숨을 고른 손승민 감독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길지 않았다.
“이상, 상대를 완벽하게 박살내고 돌아오길 바란다.”
***
후반전이 시작됨과 동시에 김상훈이 몸을 풀기 시작했다.
딱히 코치진의 지시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김상훈은 당장이라도 교체출전을 할 것처럼 열심히 땀을 흘리며 몸을 뜨겁게 달궜다.
그에게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훈련 때, 체력이 나아진 모습을 감독에게 충분히 보여줬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 체력도 별로 안 늘었으면서 뭘 기대하는 거냐? 괜히 힘 빼지 말고 벤치에 앉아 있지 그래?
“그래도 이제는 체력을 효율적으로 쓰는 법을 조금 알았으니까요. 훈련 때에도 이젠 30분은 무난하게 뛰잖아요.”
그동안 김상훈은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체력을 보완하기 위해 열심히 훈련했다.
체력은 사실 늘리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김상훈은 계속해서 체력 훈련에 집중했다.
그 결과, 현재 김상훈의 체력은 포항과 경기를 했을 때보다 2만큼 오른 64가 되어있었다.
물론 아직도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 현저히 떨어지는 체력이지만, 김상훈은 이찬수의 조언과 꾸준한 훈련을 거듭하면서 효율적으로 체력을 쓰는 요령을 알게 됐다.
그런 김상훈의 노력을 알아봤던 것일까?
손승민 감독은 후반 60분에 김상훈을 투입시켰다.
“오늘은 빙의 없이 저 혼자 뛰어볼게요.”
빙의를 하지 않겠다는 말.
평소라면 길길이 날뛰었을 이찬수였지만, 지금은 조금도 짜증을 내지 않았다.
그저 덤덤하게 김상훈을 응원했다.
- 그래, 열심히 해봐라.
그런 이찬수의 모습에 오히려 김상훈이 당황해서 되물었다.
“예? 웬일이에요?”
- 빙의를 하면 체력적으로 소모가 너무 커. 지금 팀에서 너는 실력은 좋지만, 조금만 무리하면 쓰러져버리는 약골 이미지가 강해. 만약 오늘까지 쓰러져버린다면 문제가 커질 수도 있어.
“······그것도 그러네요.”
- 그래, 그러니까 오늘 너는 훈련 때 했던 것처럼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정확한 슈팅은 최대한 아끼면서 플레이를 해야 돼. 물론 확실한 기회가 왔을 때에는 과감하게 스킬을 써야겠지만.
“알겠습니다.”
대답을 마친 김상훈은 그의 자리를 찾아 빠르게 뛰어 들어갔다. 어색함은 전혀 없었다. 그의 몸은 이미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으니까.
동료들과의 호흡도 꾸준한 훈련을 통해 많이 개선됐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한 김상훈은 조금 쳐진 위치에서 동료들과 패스를 주고받았다.
턱-! 타악-!
빠르게 이어지는 패스를 강원 선수들은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김상훈을 풀어두면 위험하다는 것을 강원 선수들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전반전보다 강한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퍼억!
“윽!”
고요함에게서 받은 패스를 다시 하대선에게 넘기려던 김상훈이 고통스런 신음과 함께 잔디 위에 뒹굴었다.
몸싸움과 피지컬 능력치가 낮은 김상훈에게는 순간적으로 숨이 턱-하고 막힐 정도로 강한 차징이었다.
‘뭐야?’
공이 발을 떠난 상태에서 들어온 강한 차징이었기에 심판은 강원의 반칙을 선언했다.
순간 욱해버린 김상훈이 고개를 들고 상대의 얼굴을 노려봤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다부진 체격에 강한 인상을 지닌 남자가 손을 내밀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동시에 정중하게 사과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김상훈은 입맛을 다시며 손을 마주잡고 몸을 일으켰다.
자신을 일으켜준 남자는 김상훈도 알고 있는 선수였다.
‘한국연.’
중앙 미드필더와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그는 대한민국 국가대표에도 자주 뽑힐 만큼 실력 있는 선수였다.
게다가 김상훈이 강원에 대해서 분석할 때마다 이찬수가 강조했던 선수이기도 했다.
- 아무래도 쟤가 오늘 너를 집중마크 할 생각인가보다.
“그러게요. 오늘 경기도 쉽진 않겠네요.”
- 언제는 너한테 쉬운 경기가 있었냐? 다 그렇지 뭐. 근데 쟤는 조심해라. 한국연이는 진짜 거칠게 하는 녀석이니까.
“그래서 드리블은 자제하려고요.”
반칙이 선언된 위치는 직접 프리킥을 하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기 때문에 서울은 짧은 패스로 공격을 이어갔다.
그 뒤로도 한국연은 계속해서 김상훈을 마크했다. 찰거머리처럼 딱 달라붙는 그의 플레이에 김상훈은 공을 잡자마자 동료들을 향해 빠르게 패스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김상훈이 패스한 공을 잡은 서울의 오른쪽 수비수 박민구가 공을 몰고 오버래핑을 시도했다.
오른쪽 라인 옆에 붙어서 드리블을 하던 박민구는 상대 수비가 다가오자 재빠르게 서울의 고요함을 향해 패스했다.
공을 받은 고요함은 베테랑 미드필더답게 수비 한 명을 제친 뒤, 크로스를 올렸다.
쉬익-!
높게 날아간 공을 노리던 선수는 뛰어난 제공권을 자랑하는 서울의 에반이었다. 그러나 에반보다 더 먼저 좋은 위치를 잡으며 공을 걷어내는 선수가 있었다.
강원의 수비수 이재인이었다.
이재인이 머리로 공을 걷어냈고, 그 공을 잡아낸 강원의 오범식이 전방으로 길게 롱패스를 뿌렸다.
이러한 장면은 강원 선수들이 많은 연습을 했던 상황이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역습을 행하는 선수들의 속도감이 상당했다. 축구에서 가끔은 자신감이 독이 될 때가 있다.
지금 서울이 그런 상황에 놓여있었다.
반코트 게임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강원을 몰아붙이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서울의 수비수들 또한 평소보다 훨씬 더 전진해 있는 상태였다.
오범식이 뿌린 롱패스는 그런 서울 수비수들의 뒤 공간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강원에는 그 수비수들보다 빠르게 침투하던 공격수가 있었다.
강원의 주전 공격수 정조군이었다.
국가대표 출신인 그는 유럽무대에서 뛰었던 경험까지 있는 베테랑이었다. 기본기가 탄탄한 그는 안정적으로 공을 트래핑한 뒤, 골키퍼를 향해 달려갔다.
서울의 골키퍼 유현수가 정조군을 막으러 재빠르게 튀어나왔지만 정조군은 일대일 찬스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는 공격수였다.
휘익! 툭-!
상체 페인트를 이용해서 골키퍼를 가볍게 제친 정조군은 텅텅 빈 골대를 향해 공을 차 넣었다.
출렁-!
강원의 역습으로 인한 골로 양 팀의 스코어가 2대1이 되었다.
***
강원에게 일격을 당한 서울의 선수들은 더욱 집중력을 높였다. 하지만 전반 내내 강한 압박을 해서일까?
후반전인 지금, 서울의 선수들은 강원에 비해 크게 지쳐있었다. 때문에 넘치는 의욕에 비해 그들의 움직임은 전반전보다 크게 굼떠져 있었다. 심지어 달리기가 빠른 편이 아닌 강원의 정석희의 속도조차 수비들이 쫓아가지 못했다.
쉬익-!
정석희의 돌파에 이은 패스가 서울의 페널티 라인 안쪽으로 쇄도했다.
빠르고 낮은 패스에 서울 수비진은 긴장한 채, 각자 맡은 선수들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집중해!”
너무 지쳐버린 나머지 입을 크게 벌린 채 숨을 내쉬는 동료들을 바라보며 서울의 주장 곽태현이 소리쳤다. 그 역시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내색하지 않고 동료들의 집중력을 일깨우기 위해 노력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잠깐의 방심으로 갑자기 승부가 뒤집히는 것이 바로 축구였으니까.
반면에 한골 차이로 따라붙은 강원 선수들은 기세가 올라온 상태였다.
그것을 증명하듯 패널티 라인 안에 있던 강원의 공격수들 모두 정석희의 패스를 받기 위해 활발하게 움직였다.
결국 빠르게 넘어온 공 앞에 자리 잡은 선수는 강원의 정조군이었다.
오늘 최고의 컨디션인 그는 기회만 온다면 언제든지 골을 넣을 자신이 있는 상태였다.
‘이건 넣는다.’
정조군은 침착한 얼굴로 주변을 확인했다.
그의 근처에 있는 것은 서울의 뛰어난 수비수 곽태현.
낮게 깔린 채 넘어오는 공을 잡자마자 다이렉트로 슈팅한다면 그의 태클에 막힐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정조군이 선택한 것은 슈팅을 하는 척하면서 한 번 접는 것이었다.
휘익!
너무 급박한 상황이어서 일까?
정조군의 페이크에 곽태현이 속아버렸다.
“젠장!”
슬라이딩을 한 곽태현이 빠르게 몸을 일으켰지만, 이미 정조군은 골대를 향해 슈팅을 하고 있었다.
뻐엉!
골대 근처에서 강하게 때리는 슈팅을 막는 것은 세계 최고의 골키퍼들에게도 아주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그 슈팅이 골대 구석으로 향한다면?
그 어떤 골키퍼가 와도 막을 수 없다.
유현수 골키퍼 역시 몸을 날렸지만, 정조군이 때려낸 공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우아아악!”
골을 넣은 정조군이 팬들 앞으로 뛰어가 세레머니를 펼쳤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어버렸다.
서울의 관중들의 표정은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변해버렸고, 강원의 관중들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좋아. 분위기가 넘어왔어.’
강원의 주장 이태훈은 이런 상황을 겪어본 경험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알 수 있었다.
지금처럼 분위기가 넘어온 상황에서는 역전이 나오는 경우가 아주 많다는 사실을.
그 사실을 깨달은 강원의 주장 이태훈이 동료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조금만 더 힘내자! 이거 역전 각 나왔어!”
강원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분위기를 넘겨준 이 순간 김상훈은 스스로의 얼굴을 감싸며 이찬수에게 조언을 구하고 있었다.
“아····· 이거 분위기가 완전히 넘어갔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이찬수 선수는 어떻게 할 거예요?”
- 뭘 어떻게 해. 나한테 공을 달라고 한 다음 내 개인기량으로 어떻게든 골을 쑤셔 넣었겠지. 근데 네가 그렇게 할 수는 없잖아?
“아니, 그래서 저는 어떻게 해야 되냐고요!”
김상훈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승부욕이 강했던 그는 지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두 골을 먹힌 것이 그가 교체되어 들어온 뒤에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이 그를 더욱 자극했다.
게다가 김상훈은 교체되어 들어온 뒤 이미 두 번의 정확한 슈팅을 사용했다.
그럼에도 골을 넣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강원의 선수들은 그가 슈팅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슈팅을 하기 직전에 강하게 몸을 부딪쳤고, 태클을 해서 어떻게든 막아냈다. 피치 못하게 슈팅을 허용했을 때는 몸을 던져서라도 공이 골대로 향하는 것을 막아버렸다.
반면에 그런 김상훈을 바라보는 이찬수의 표정은 냉정했다.
- 기다려야지. 미친 듯이 집중하고 실수하지 말고, 죽을힘을 다해서 뛰어다녀. 이런 상황에서 체력을 아끼는 건 병신 같은 짓이라는 걸 너도 알겠지? 모든 체력을 써서라도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 그러다보면 결국 한 번은 기회가 올 거야. 그리고 그 기회를 잡느냐 못 잡느냐에 따라서 승부가 갈리겠지.
“알겠습니다.”
대답을 마친 김상훈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다시 내쉬었다. 차가운 공기가 폐를 훑고 지나가는 느낌에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음을 다잡은 김상훈은 체력 수치와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현재 그에게 남은 체력은 17.
주어진 시간은 추가시간을 제외하면 단 3분뿐이었다.
이대로 무승부가 되는 꼴은 보기 싫었다.
때문에 체력이 다 떨어져서 그라운드 위에 쓰러지는 상황이 일어나더라도 상관없었다. 다른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지금 이 순간부터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생각이었다.
생각을 마친 김상훈이 짙은 미소를 지었다.
“일단,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볼게요.”
***
박성인의 패스를 받은 김상훈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한국연의 압박을 무사 뎀벨레의 탈압박으로 벗겨냈다.
후반 내내 한국연에게 고전했기 때문일까?
김상훈에게 그의 패턴이 조금은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연을 떨어뜨린 김상훈은 더 이상 욕심내지 않고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하대선에게 패스했다.
공을 받은 하대선 역시 신중한 얼굴로 동료들에게 공을 넘겼다.
기회를 엿보며 공을 돌리던 선수들, 그 중 가장 먼저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인 것은 김상훈이었다.
고요함이 넘겨준 패스를 받기도 전에 김상훈은 빠르게 좌우를 살피며 주변에 있는 상대 선수들을 확인했다.
적어도 현재 그의 가까이에 있는 선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패스만 안정적으로 트래핑하는 것에 성공한다면 슈팅을 할 각이 나올 수 있는 상황.
그러나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고, 상대 선수의 압박을 받으면서 뿌려낸 고요함의 패스는 낮게 깔아주려던 의도와는 달리 애매한 높이로 김상훈에게 날아왔다.
이마로 받기에는 낮았고 가슴으로 받기에는 조금 높았다.
그런 애매한 높이의 공에 김상훈은 망설이지 않고 튀어나갔다. 그는 저 공을 트래핑해낼 자신이 있었다.
최근에 얻은 조커 등급의 스킬 ‘훌륭한 트래핑’이 있다는 것이 자신감의 원인이었다.
김상훈이 공을 받기 위해 선택한 부위는 어깨였다.
퉁!
어깨로 공을 받은 뒤, 무릎으로 살짝 공을 밀어낸 김상훈은 곧바로 골대를 바라보며 다리를 휘둘렀다.
“정확한 슈팅!”
스킬 사용과 함께 휘둘러진 다리가 공에 닿기 직전까지 김상훈은 확신했다.
이건 무조건 골이라는 것을.
자신의 골로 인해 팀이 승리를 가져갈 것이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상훈이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의 뒤에서 죽을힘을 다해 달려오고 있는 선수가 있었다는 사실을.
오늘 경기 내내 그를 괴롭혔던 한국연이 슬라이딩 태클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은 발목에서 느껴지는 고통과 함께 몸이 공중에 뜨고 난 뒤였다.
뻐억-!
“악!”
발목에서 느껴지는 커다란 고통.
낙법을 할 정신은 조금도 없었다.
갑작스레 들어온 깊은 백태클에 당한 김상훈은 발목을 부여잡고 잔디 위를 뒹굴었다.
- 상훈아! 한국연 저 미친 새끼가!
이찬수 역시 심각한 얼굴로 김상훈에게 다가왔다.
삐익!
공을 건드린 것이 아닌 대놓고 선수를 노린 백태클이었기 때문에 심판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한국연을 향해 레드카드를 내밀었다.
한국연은 양 팔을 들며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심판에게 항의했다.
“한국연 이 개새끼야! 너 미쳤어?”
어느새 달려온 서울 선수들이 그런 한국연을 밀치며 화를 냈다.
한국연도 덩달아 그들과 몸싸움을 하기 시작했고 강원 선수들도 하나 둘 달려들기 시작했다.
필드 위는 아수라장이었다.
양 팀의 주장들이 달려들어서 선수들을 뜯어말린 뒤에야 사태가 진정됐다.
한국연은 짜증을 내며 그라운드를 빠져나갔고, 심판은 서울의 프리킥을 선언했다.
김상훈은 제자리에서 일어섰지만 다리를 조금 절뚝이고 있었다.
“상훈아, 괜찮아?”
어느새 다가온 하대선이 그런 김상훈에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 질문에 김상훈은 웃으며 대답했다.
“예, 괜찮아요. 처음엔 아팠는데, 이젠 진짜 괜찮아졌어요.”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지금 김상훈의 속은 분노로 가득 차 있는 상태였다.
김상훈은 차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삭이며 하대선에게 무언가를 말했다.
“대선 형님······”
***
처음 프리킥 훈련을 했을 때, 김상훈은 깨달았다.
그가 가장 애용하는 정확한 슈팅이 프리킥 상황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무리 노력해도 늘지 않을 정도로 자신이 프리킥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그 참담한 사실을 깨달은 김상훈은 프리킥에 대한 욕심을 깔끔하게 버렸었다.
후반 92분. 추가시간마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얻은 27m 거리의 프리킥.
그 황금 같이 소중한 기회를 얻는 선수는 원래라면 메인 프리키커인 하대선이었다.
강원의 선수들 역시 당연히 하대선이 프리킥을 찰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때, 강원의 정조군이 가장 먼저 이상함을 느끼고 소리쳤다.
“뭐야?!”
정조군의 외침을 시작으로 강원 선수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지금 이 순간 프리킥을 차기 위해 공을 내려놓는 선수는 그들이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선수였으니까.
툭-!
잔디 위에 공을 내려놓는 선수가 하대선이 아닌 김상훈이었으니까.
“후우-!”
프리키커로 나선 김상훈은 저 멀리 보이는 강원 선수들과 팀 동료들로 이루어진 벽을 바라보며 숨을 크게 내뱉었다.
현재 스코어 2대2.
추가시간은 이미 끝난 상황.
이번 기회를 날리면 심판이 곧바로 휘슬을 불 것이라는 것은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당연하게도 이런 상황에서 프리키커로 나선 선수는 엄청난 중압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던 이찬수가 피식 웃으며 김상훈을 불렀다.
- 상훈아, 졸라 긴장되지? 근데 프리킥도 못 차는 놈이 이걸 왜 찬다고 했냐? 응? 도저히 이해가 안 되네. 골 욕심에 미쳐버린 거야? 아니면 백태클 당하고 너무 빡쳐서 이성적인 판단이 안 되는 거야? 물론 이걸 넣으면 영웅이 되겠지만, 못 넣으면 이대로 경기는 끝이야. 그러면 너는 프리킥도 못 차는 신입주제에 욕심을 냈다는 이유로 실컷 욕을 먹을 거고. 겁나지? 아주 오금이 저리고 당장이라도 오줌을 지릴 것 같지? 이야! 방금 라임 오졌다. 그치? 넌 오금이 저려! 그러다 오줌도 지려! 크컄컄컄! 아오! 죽기 전에 쇼미더머니에 나가봤어야 했는데!
심각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장난기 가득한 말.
그런 이찬수의 말에 김상훈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아주 미쳐버릴 것 같아요.”
그 모습에 이찬수가 반색하며 떠들었다.
- 그치? 긴장돼서 미칠 것 같지? 지금이라도 하대선한테 차라고 하는 게 어때?
장난스럽게 말하고 있지만, 사실 이찬수는 진심으로 김상훈이 걱정돼서 하는 조언이었다.
그런 이찬수의 조언에 김상훈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은데요?”
- 뭐? 좋다고? 뭐가 좋아?
“이찬수 선수가 말했잖아요? 이걸 넣으면 영웅이 된다고요. 저 어떡하죠? 골 넣고 영웅이 될 생각에 좋아서 미쳐버릴 것 같아요.”
- 네가 진짜 미쳐버렸구나.
“사실····· 이게 나와 버렸거든요.”
- 뭐? 나오긴 뭐가 나와? 너 설마······!
김상훈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어젯밤 이찬수 몰래 깠던 그린 박스의 결과물을 눈앞에 띄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