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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들린 축구선수-26화 (26/200)

26화 강원(1)

숨을 내쉴 때마다 뽀얀 입김이 새어나오는 3월.

서울 유나이티드의 훈련장에 모인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소리가 쉼 없이 울려댔다.

셔터가 눌릴 때마다 번쩍번쩍 빛을 뿜어내는 조명에도 김상훈은 눈을 감지 않았다. 인터뷰를 하는 그의 모습은 업계에서 10년을 뛴 베테랑처럼 보였다.

‘카메라에 익숙해서 다행이네.’

김상훈이라고 긴장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는 자신이 어떤 선수보다도 카메라 앞에서 떨지 않는 편이라고 확신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프로 축구선수가 되기 전까지 그의 직업은 카메라 앞에 서는 BJ였으니까.

다만 그런 그를 조금은 긴장시키는 인물이 있었다.

‘왜 이렇게 예뻐?’

이민주 아나운서.

웬만한 연예인보다 더 예쁜 그녀와 가까이에 서 있다는 것이 그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주접 그만 떨고 인터뷰에나 집중하자.’

마음을 다잡은 김상훈은 다시금 인터뷰 질문에 집중했다.

“김상훈 선수가 가장 존경하는 축구선수는 누구인가요?”

이민주 아나운서의 질문에 김상훈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이찬수 선수요.”

이찬수. 비록 지금은 그의 옆에서 계속해서 떠들어대는 잔소리꾼 귀신이었지만, 존경하는 축구선수를 떠올렸을 때는 오로지 이찬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찬수 선수를 가장 존경하는 이유는 뭔지 대답해주실 수 있나요?”

“이유는 간단해요. 축구를 너무 잘하셨잖아요. 저는 어릴 적 처음 축구를 봤을 때 곧바로 이찬수 선수의 팬이 되어버렸거든요.”

다음 질문을 하려던 이민주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김상훈의 시선에 얼굴을 붉혔다.

‘예쁜 건 알아가지고····· 근데 너무 뚫어져라 쳐다보는 거 아니야? 민망하게······.’

실제로 김상훈의 시선은 이민주를 향해 있었다.

정확히는 이민주의 근처에서 맴도는 귀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지만.

- 이야! 이 사람이 이민주 아나운서라고? 실제로 보니까 진짜 예쁘네! 이런 사람들을 보고 존예라고 하냐? 어쩜 이렇게 눈도 예쁘고 코도 예쁘고 입도 예쁘지? 얼굴은 또 왜 이렇게 작아? 히야! 진심 뻥이 아니고 손바닥으로도 가려지겠다.

끊임없이 펼쳐지는 그의 주접에 김상훈은 간신히 표정관리를 하며 이찬수를 바라봤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시선에 결국 이민주가 입을 열었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예?”

“호홋! 아니에요!”

이민주의 마음에 오해가 쌓여갈 때쯤, 인터뷰가 끝이 났다.

최대한 팀에 피해가 가지 않게 조심스럽게 인터뷰를 마친 김상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인터뷰가 방송할 때보다 훨씬 어렵네.’

기자들은 각자 가져온 물건들을 정리하고 김상훈 역시 훈련에 참여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고생하셨습니다!”

자신을 취재하기 위해 고생한 기자들에게 정중히 인사하며 몸을 풀던 김상훈.

그런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여자가 있었다.

“저기, 김상훈 선수?”

“예?!”

놀란 김상훈은 눈을 크게 뜨고 이민주를 바라봤다. 그녀가 왜? 인터뷰는 끝났는데?

김상훈 역시 남자였던지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그녀에게 끌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이민주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김상훈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최대한 훈훈해 보일 수 있게 가식적인 웃음까지 곁들였다.

“이민주 아나운서님? 무슨 일이시죠?”

“어······ 그게······.”

연애 경험이 없지 않은 김상훈은 지금 이 순간이 그린라이트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아나운서와의 열애는 그가 꿈꿔왔던 것이기도 했으니까.

그때, 그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남자가 있었다.

- 야! 야! 상훈아! 정신 차려! 저 여자 딱 보면 모르겠냐? 여우야, 여우! 저 옷 안에 꼬리 9개는 숨기고 있을 걸? 그리고 내가 알기로 이민주 저 사람, K리그 선수들이랑 이미 세 번인가 사귀었었대. 아, 네 번이었나? 하여튼 저 사람 축구선수 킬러라고 소문 다 났어! 너한테만 호감 보이는 게 아니라는 말이야. 혹시 모르잖아? 너한테 이러고 있는 순간에도 이미 두 명의 축구선수 남자친구와 사귀고 있을 줄?

‘아······.’

- 너 설마 지금 내 말을 안 믿는 거 아니지? 나 이찬수야! 내가 비록 해외에서 오래 뛰었지만, 국내 축구계 소문도 다 꿰고 있다고! 정신 좀 차려 상훈아. 너는 지금 이용당하기 딱 좋은 먹잇감일 뿐이야.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더 많이 생길 거고. 알겠어? 너 축구 잘하고 싶다며? 네가 진짜 좋은 선수가 되고 싶으면 이런 유혹들은 쉽게 이겨낼 줄 알아야 돼.

순간 뜨겁게 달아올랐던 김상훈의 마음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맞는 말이었다.

이찬수의 말처럼 이민주가 자신을 이용하기 위해서 접근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자신은 연애를 할 때가 아니었다.

오로지 축구에만 집중을 해야 할 때였다.

입가에 띠웠던 미소도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다.

그때, 아무것도 모르는 이민주가 김상훈에게 조금 더 다가왔다.

“혹시···· 괜찮으시면 다음에 커피 한 잔 같이 하실래요?”

커피를 제안하며 명함까지 내미는 적극적인 이민주의 대시.

하지만 이미 마음을 굳혀버린 김상훈의 반응은 차가웠다.

“아뇨, 제가 사적으로 보는 것은 좀 그렇습니다.”

“아······.”

인터뷰 때 분위기가 좋았기 때문일까?

갑작스레 바뀐 김상훈의 분위기에 이민주의 얼굴이 붉어졌다.

동시에 이민주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어졌다.

‘뭐야, 이 사람?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김상훈은 그런 그녀를 힐끗 쳐다본 뒤, 몸을 돌려서 훈련장으로 걸어갔다.

이민주는 그런 김상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황당함을 숨기지 못했다.

“하! 진짜 뭐야? 재수 없어!”

조끼를 입고 몸을 풀던 김상훈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어두웠다. 누가 보면 아주 안 좋은 일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보이는 얼굴이었다. 결국 그는 아까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아쉬움에 짜증 섞인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런 젠장! 내가 저렇게 예쁜 사람의 데이트 신청을 거부하다니! 아! 연애한지도 되게 오래 됐는데······.”

그때 이찬수가 안타까운 감정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김상훈을 위로했다.

- 힘내···· 솔직히 네 얼굴을 보면 저 여자가 정상적인 마음을 가지고 접근한 거겠어? 너무 마음 쓰지 마. 그리고 나도 잘 모르지만 느낌상 남자 많을 거 같은 스타일이더라.

“예?”

잘 모른다는 이찬수의 말.

그 말에 김상훈이 멍한 표정으로 이찬수를 바라봤다.

상황파악이 되질 않았다.

조금 전, 이민주 아나운서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떠들던 때와는 다른 태도였으니까.

이찬수의 말에 이상함을 느낀 김상훈이 되물었다.

“저분 뒷소문이 안 좋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 응? 내가 그랬나?

“뭐요? 아니 아까 이찬수 선수가 이민주 아나운서보고 K리그 선수 킬러라고 했잖아요! 제가 웬만하면 다른 사람 말만 듣고 판단 안 하는데, 이찬수 선수 말이라서 믿었다고요!”

- 아~ 그거? 당연히 구라지.

“뭐라고요? 도대체 그런 구라를 왜 쳐요?”

구라였다고? 그럼 이민주 아나운서가 진심일 수도 있었잖아?

진심으로 황당함을 느낀 김상훈이 눈을 부릅뜨고 이찬수를 노려봤다.

그러자 이찬수는 세상 얄미운 표정을 지으며 본심을 말했다.

- 네가 저렇게 예쁜 여자랑 꽁냥꽁냥 거리는 걸 나는 도저히 못 보겠더라고. 그래서 구라 좀 쳤다.

“진짜 미쳤어요? 도대체 저한테 왜 그러는 거예요? 제가 예쁜 여자랑 잘 되는 게 그렇게 싫어요?”

- 응, 싫어. 어딜 감히 스승도 연애를 못해봤는데······ 아니, 별로 안 해봤는데····· 네가 먼저 연애를 하려고 해?

“이찬수 선수가 모태솔로인데다가 단 한 번도 여자를 만나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건 알고 있어요. 그렇다고 해도 저한테 이럴 필요는 없잖아요!”

- 뭐? 이 새끼가 미쳤나? 야! 나 완전 카사노바였거든?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시고, 저한테 거짓말을 왜 하냐고요!”

- 속은 네가 븅신이지~ 인마! 크하하핫!

“이런 젠장! 거기 서 봐요. 예? 서 보라고요!”

제대로 엿을 먹은 김상훈은 저 멀리 도망가는 이찬수를 전속력으로 쫓아갔지만 이찬수는 쉽게 잡히지 않았다.

허탈한 마음에 김상훈이 뒤늦게 이민주를 찾아봤지만 그녀는 이미 훈련장을 떠나버렸다.

***

2017년 3월 19일 일요일 오후 4시.

오늘은 서울과 강원이 경기를 펼치는 날이다.

김상훈이라는 스타가 탄생한 만큼 서울의 홈구장에는 평소보다도 훨씬 많은 관중들이 들어섰다.

아직은 추운 날씨였지만, 열띤 응원 때문일까? 경기를 보러 온 관중들은 추위조차 느끼지 못하고 경기가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양 팀 선수들 역시 각자의 포지션에 자리를 잡고 마음을 다잡으며 휘슬이 울리기를 기다렸다.

삐익! 삑-!

경기가 시작됐다.

현재 2연승이었고 홈경기인 만큼 서울 유나이티드의 선수들은 자신감이 가득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런 자신감은 경기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팡-!

전반 20분, 오늘따라 특히나 더 날카로운 하대선의 발을 떠난 공은 서울의 공격수 박성인이 뛰어 들어가는 공간으로 파고들었다.

박성인은 주전 공격수인 에데르손의 컨디션 저하로 오늘 선발로 출전했다. 시즌 첫 선발 출전인 만큼 오늘 그의 각오는 남달랐다.

‘이건 무조건 넣는다.’

헤딩에 약점이 있지만 공간을 파고드는 움직임이 좋은 그는 빠른 스피드를 이용해서 하대선의 스루패스를 받아냈다.

오른발로 공을 잡아놓은 그는 망설이지 않고 슈팅을 때렸다.

출렁-!

“우아아아악!”

지난 시즌부터 외국인 용병들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렸던 박성인은 팬들을 바라보며 포효했다.

그는 지금 이 순간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어뒀던 감정을 터트리고 있었다.

박성인의 골로 서울이 1대0으로 앞서가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손승민 감독이 선택한 것은 수비를 걸어 잠그는 것이 아닌, 더욱 적극적인 공격으로 더 많은 골을 노리는 것이었다.

‘오늘 선수들 컨디션이 좋아. 잘하면 대량득점도 가능하다.’

지난 시즌의 손승민 감독이었다면 수비를 견고하게 다지는 전술로 소중한 1골을 지키는 운영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손승민 감독은 더 많은 골을 넣을 자신이 있었다. 그만큼 그는 그가 이끄는 선수들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만약 골을 먹혀서 분위기가 넘어가버린다고 해도······’

생각에 잠긴 손승민 감독의 시선이 어딘가로 향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한 남자가 허공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말을 하고 있었다.

참 특이한 녀석이었다.

언젠가 녀석에게 도대체 누구랑 얘기를 하는 것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다만 돌아온 답에 손승민 감독은 그저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저는 원래 혼잣말 하는 게 습관이거든요. 하하! 가끔은 랩을 하기도 하고요.”

참 웃긴 녀석이라니까.

그 남자에게서 시선을 거둔 손승민 감독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맴돌았다. 독특하고 이상한 녀석이었지만, 그 어떤 선수보다도 믿을 수 있는 선수였다.

조금의 의심도 없었다.

오히려 김상훈에 대한 믿음은 처음보다 훨씬 더 커진 상태였다.

그의 훈련을 지켜본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짧은 시간밖에 뛰지 못하지만 그 짧은 시간만큼은 괴물 같은 모습을 보여준 선수였으니까.

‘김상훈, 녀석을 투입하면 금세 우리 쪽으로 분위기가 돌아올 거야.’

생각을 마친 손승민 감독의 얼굴에는 더 이상 웃음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날카로운 눈으로 그라운드 위를 노려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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