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무엇을 사면 좋을까요?
경기도 구리시에 위치한 서울 유나이티드의 훈련장.
오늘 이곳에는 많은 기자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눈치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기자들에게 오늘은 중요한 날이었다.
다만 그들이 아침 일찍부터 보러 온 주인공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뭐야? 여기 없다고? 언제 오는데?”
“아~! 몰라. 이거 왠지 헛걸음 한 거 같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기자들이 불만을 표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그들 앞에는 최근 2연승을 기록하고 있는 서울의 선수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기자들의 불만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들이 원하는 선수는 단 한 명이었으니까.
보다 못한 손승민 감독이 최희준 코치를 호출했다.
“김상훈이 이렇게 인기가 많았어?”
“예, 제 아들놈도 저한테 한번만 보고 싶다고 어찌나 조르던지···· 특히 10대, 20대한테는 많이 유명하다고 하더라고요.”
“저렇게 기자들까지 훈련장에 찾아올 정도라는 말이군.”
국내에서 K리그의 인기가 높은 편이 아닌 만큼 오늘처럼 기자들이 몰리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오늘 훈련장에 찾아온 이유는 바로 김상훈이라는 대형 신인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기자들을 바라보던 손승민 감독이 턱을 쓰다듬었다. 이틀 째 면도를 하지 않아서 까칠한 수염이 만져졌다.
그 모습을 보던 최희준 코치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사실 김상훈의 스토리가 웬만한 드라마보다 더 재밌지 않습니까? 고등학교 때까지 선수였다가 인터넷 방송으로 정점을 찍은 뒤, 프로선수로 데뷔해서 두 경기 연속 골을 넣고 있으니까요.”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가 없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축구만 하던 남자가 축구를 그만둔 뒤에 인터넷 방송으로 성공했다는 스토리.
사실 그것만으로도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그런데 그 스토리에 방송으로 성공했던 남자가 다시 축구에 도전해서 프로가 됐다는 것과 2경기 연속으로 골을 넣었다는 스토리가 추가된다면?
당연히 대박이었다.
실제로 서울과 포항의 경기를 직관했던 기자들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김상훈을 주제로 한 기사를 무더기로 쏟아냈다.
[인터넷 방송 BJ출신 괴물신인 등장! 김상훈 그의 정체는?]
[청소년 시절에 주목받지 못했던 김상훈, 그의 스토리.]
[2경기 연속 해트트릭을 기록한 김상훈! 서울을 구할 영웅이 등장하다.]
최희준 코치의 말을 듣던 손승민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김상훈은 쉽게 보기 힘든 유형의 사람이었으니까.
“확실히 기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보기에도 아주 흥미로운 녀석이지. 두 경기 연속 골을 넣는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녀석은 두 경기를 합쳐서 6골 1어시스트라는 대단한 활약을 펼치고 있으니까.”
“그것도 두 경기 모두 후반 70분에 교체돼서 들어간 뒤에 펼친 활약이었죠.”
“참 여러모로 신기한 녀석이야.”
고작 2경기를 뛴 신인이지만, 김상훈은 매 경기에서 고작 30분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해트트릭에 성공했다.
그런 김상훈을 보기 위해서 기자들이 몰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말을 하던 손승민 감독이 순간 흠칫했다.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버렸기 때문이다.
손승민 감독은 조금은 민망하다는 표정으로 최희준 코치를 바라봤다.
평소답지 않은 모습에 최희준 코치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감독님? 왜 그러세요?”
최희준 코치의 질문에 손승민 감독은 얼굴을 붉히며 잘 감춰놓았던 비밀을 실토하듯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가 김상훈이랑 가깝게 지내고 있지?”
“예? 아니 뭐····· 그냥 평범한 코치와 선수 관계입니다.”
“듣기로는 자네가······ 김상훈한테 사인(Sign)을 받았다던데?”
“아···하하····! 그건 제 아들놈이 너무 졸라대서 받아다 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손승민 감독의 얼굴이 이제는 터질 듯 붉게 달아올랐다.
지금 그가 해야 할 말은 그의 자존심을 크게 던져놓고 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입술을 오물거리던 손승민 감독이 결국 입을 열었다.
“중학교에 다니는 내 딸 녀석도 김상훈의 팬이라고 하더군······.”
“예? 감독님도 김상훈 사인 필요하세요?”
“쉿! 작게 말하게!”
최희준 코치는 간신히 웃음을 참아냈다.
***
푹신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몸을 잡아주는 괜찮은 촉감의 침대와 적당히 부드러운 베개.
병원에 배치된 침구를 쓰고 있는 남자는 잠에서 깨어남과 동시에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 이 순간 눈앞에 화려한 효과음과 함께 떠오르고 있는 메시지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이런 미친! 또 기절시켰어요?”
데뷔전 이후 또 한 번의 기절을 경험한 남자, 김상훈은 그의 눈앞에서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남자에게 잔소리를 쏟아냈다.
“이러다가 진짜 몸에 문제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요? 왜 자꾸 멀쩡한 몸을 기절시키는 거예요? 이찬수 선수가 무슨 론다 로우지에요? 실제로 론다 로우지한테 목을 졸려도 이렇게까지 기절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 아니, 그게 아니라····· 거리가 너무 멀어서 정확한 슈팅을 쓰지 않으면 안 들어갈 수도 있었다고······.
“동료한테 충분히 패스할 수 있었잖아요.”
- 너도 알잖아···· 나 골 욕심 많은 거······ 그리고 정확한 슈팅에서 그렇게 많은 체력이 빨릴 줄은 몰랐다고! 진짜 몰랐어.
“아오! 이찬수 선수가 스킬 썼을 때, 체력 겨우 9남았었거든요? 당연히 위험한 상황이었잖아요. 진짜 이럴 거예요?”
말을 하던 김상훈은 스킬 정보창까지 띄워가며 잔소리를 이어갔다.
[정확한 슈팅]
- 등급 : 히어로(hero)
- 효과 : 체력을 랜덤으로 1에서 20까지 소모해서 원하는 곳에 슈팅을 할 수 있습니다.
“자! 이거 봐요! 체력이 랜덤으로 1에서 20까지 소모된다고요. 상식적으로 체력이 9남았으면 스킬을 안 써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때였다.
풀죽은 표정으로 김상훈의 말을 듣고 있던 이찬수가 반격을 하기 시작했다.
- 이런 쒸바! 나도 계속 체력 확인하면서 경기하느라 실력발휘도 제대로 못했다고! 그리고 내가 2골 넣어서 해트트릭도 했잖아. 이런 젠장! 5분 만에 2골을 넣어줬는데도 이렇게 욕을 처먹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다. 에휴! 아무래도 내가 살아있을 때 죄를 존나 많이 지었나보다. 죽고 난 뒤에 이런 대우를 받다니······!
그런 이찬수의 말에 더 화를 내려던 김상훈이 당황했다. 이찬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병원 안에서 난동을 피워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김상훈은 이찬수가 아무것도 만질 수 없고 자신을 제외하면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귀신이라는 것에 안도하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에휴····· 이찬수 선수····· 그게 아니라요······.”
- 아니야, 그냥 오늘 당장 나를 아~주 용한 무당한테 데려다 줘. 응? 굿이라도 해서 나를 그냥 이승에서 사라지게 만들어 달라니까? 나 같은 새끼는 살 가치가 없잖아. 그치? 축구를 가르쳐주고 골도 넣어주는 귀신 따위, 전혀 쓸모없잖아?
“아! 또 왜 그렇게 말을 하세요오! 제가 죄송해요.”
- 아니야! 빨리 무당 불러줘. 빨리! 지금 당장 사라져버릴 라니까!
“아으! 죄송하다고요 진짜! 안 그럴게요.”
그렇게 두 남자는 한참동안이나 즐거운(?)대화를 이어나갔다.
***
서울 유나이티드 연습장으로 출근하는 김상훈은 차를 운전하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촤! 촤! 촤! 촤! 촤아닌~한! 남자라~ 나를 욕하지는 마아~! 촤아!”
- 그건 또 무슨 노래냐?
“요즘 완전 잘 나가는 노랜데 몰라요? 잔인한 남자라는 노래에요.”
- 네가 불러서 그런가? 너무 구린데?
“하하! 저 지금 기분 너무 좋아서 그런 말 안 통해요.”
- 아오!
운전을 하는 김상훈의 표정은 아주 밝았다.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순간 그의 눈앞에는 반투명한 글씨로 써진 메시지들이 가득했다.
주차장에 도착한 김상훈은 한껏 들뜬 기분으로 눈앞의 메시지를 바라봤다.
[환상적인 드리블을 보여줬습니다. 보상으로 5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환상적인 골을 넣었습니다. 보상을 5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환상적인 골을 넣었습니다. 보상을 5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해트트릭을 기록하셨습니다. 보상으로 10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프로데뷔 이후 첫 어시스트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으로 15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두 경기 연속 해트트릭을 기록하셨습니다. 보상으로 그린 박스가 지급됩니다.]
[총 패스 성공 횟수 47회 – 보상으로 47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총 기록한 골 수 4골 – 보상으로 4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현재 보유하신 포인트는 6270p입니다.]
좌르륵 펼쳐진 보상 메시지들은 포항과 경기를 펼쳤던 2라운드에서 활약한 것에 대한 결과물이었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이찬수가 인상을 팍 쓴 채 메시지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정면을 주시했다.
그런 이찬수의 행동에 김상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관심 없는 척하지 마세요.”
- 뭐, 뭔 소리냐? 전혀 관심 없는데?
전혀 관심이 없다며 정면만을 바라보는 이찬수.
하지만 말과는 달리 그의 눈썹은 계속해서 움찔대며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이찬수를 보던 김상훈은 이내 신경을 끄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우와! 그린 박스를 주다니! 그럼 설마 다음 경기에도 해트트릭을 하면 더 좋은 블루 박스를 주려나? 자! 일단 비싼 건 아껴두고, 포인트부터 써야겠다. 6270포인트로 뭘 사면 좋을까?”
혼자서 떠들어대는 김상훈. 그리고 정면을 바라보던 이찬수는 어느 순간부터 눈동자를 굴리기 시작했다.
- 그린 박스 먼저 까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응? 방금 뭐라 그랬어요?”
- 응? 내가? 나 아무 말도 안 했다.
“아~ 예, 예. 제가 잘못 들었나보네요.”
말을 마친 김상훈은 각종 박스가 나열된 박스 선택창으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그의 손가락이 향한 곳은 바로 1000포인트로 구매할 수 있는 레드 박스가 있는 곳이었다.
그 행동을 몰래 지켜보던 이찬수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 야! 6000포인트가 있는데 왜 레드 박스를 사? 더 비싼 오렌지 박스를 사야지!
“예? 관심 없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 관심 없지!
“아니 관심도 없는 분이 제가 레드 박스를 까든 오렌지 박스를 까든 무슨 상관이세요?”
- 와! 넌 도대체 운동했다는 놈이 왜 이렇게 싸가지가 없냐? 조언도 못해? 엉? 조언은 할 수 있잖아?
“아~ 조언이셨구나. 그렇다면 제 대답은 NO예요. 오렌지 박스는 쳐다보기도 싫거든요.”
실제로 김상훈은 최근 들어서 오렌지색이 들어간 것은 전부 다 싫어하게 됐다.
최근에 깠던 오렌지 박스 7개에서 그다지 좋지 않은 결과를 얻었었던 기억이 그의 머릿속에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 허! 소심한 새끼! 그래, 알아서 해라. 레드 박스까서 아주 그냥 망해버려라!
“그럼 망할지 잘될지 모르지만 사서 확인해볼게요.”
김상훈은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레드 박스 6개를 구입해서 한 번에 오픈했다.
평소라면 경건한 마음으로 신중하게 오픈해야할 박스를 앞에 두고, 이렇게 서두르는 것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훈련 시작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
그리고 오늘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그린 박스가 김상훈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레드 박스 6개가 동시에 오픈됩니다.]
시스템의 친절한 음성메시지와 함께 붉은 빛을 띤 박스 6개가 동시에 회전을 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회전하던 박스들은 어느 순간부터 점점 속도가 붙더니 이윽고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가자! 대박 가자!”
- 제발 망해라! 망해버려서 김상훈이 정신 차리게 해주자!
“예? 갑자기요?”
- 혼잣말이니까 신경 쓰지 마.
“옙!”
빠른 속도로 회전하던 6개의 박스의 속도가 조금씩 줄어들더니 결국엔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때였다.
6개 중 1개의 박스에서 유난히 밝은 빛을 뿜어내는 무언가가 튀어나온 것이.
그리고 그것의 정체를 본 두 남자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어떠한 결과가 나와도 조금도 관심이 없는 척을 하려고 단단히 마음먹었던 이찬수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 아! 이건 진짜 너무 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