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들린 축구선수-23화 (23/200)

23화 세레머니

쉬이익-!

골대 구석으로 정확하게 빨려 들어가는 슈팅. 골키퍼가 몸을 날려도 손끝조차 닿지 않는 그런 완벽한 슈팅으로 인한 골.

그 골을 넣은 사내는 평소처럼 양팔을 펼치고 ‘촤아~!’를 외치며 그라운드 위를 뛰어다니는 시그니처 세레머니를 하지 않았다.

다만 제 자리에 우뚝 선 채 허공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관중들은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김상훈 멋지다! 방송에서는 못생겼던 것 같은데 오늘 보니까 얼굴도 많이 못생기지는 않은 것 같은데? 어? 근데 왜 세레머니를 안 하지?”

“그러게? 지금 뭐하는 거지? 계속 뭔가를 중얼거리는 것 같은데······?”

“기도 같은 걸 하는 게 아닐까?”

“김상훈이 종교가 있어?”

“아니, 방송할 때 밝힌 적 있는데 무교라고 들었어.”

“그럼 뭘까? 혹시····· 지금은 볼 수 없게 돼버린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건가?”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 게 아니라면 골을 넣고도 저렇게 표정이 어두울 리가 없을 테니까. 아···· 나 슬퍼지려고 해.”

그런 관중들의 시선과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사내, 김상훈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 더 뛰고 싶은데······.”

그러자 옆에 있던 이찬수가 소리를 빼액 질러댔다.

- 미친놈아 빨리 빙의 하라고! 골 넣었으면 됐지, 왜 이렇게 욕심을 내? 약속했잖아! 아 빨리 빙의 하자고! 5분 됐잖아!

“아! 아쉬워서 그러죠!”

- 아 시간 없다고!

“아오, 알겠어요. 해요, 해!”

- 이제야 말이 통하네. 오케이 가자고!

결국 빙의를 선택한 김상훈의 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찬수와의 빙의에 동의하시겠습니까?]

“동의한다.”

잠시 뒤, 그라운드 위에 선 김상훈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겉모습은 같았지만, 눈빛과 말투가 아예 다른 사람처럼 변해있었다.

서울과 포항의 현재 스코어 2:1.

현재 시각은 후반전 88분.

김상훈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일이 그라운드 위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 알아도 믿을 수 없는 비밀.

바로 이찬수의 출격이었다.

***

“잘 봐라 상훈아. 공은 이렇게 뺏는 거라는 걸 보여줄게.”

이찬수는 호언장담을 하며 포항의 선수들에게 뛰어들었다. 그 모습에 궁금증을 참지 못한 김상훈이 질문했다.

‘이찬수 선수는 수비수로는 뛴 적 없잖아요? 근데 공을 뺏는다고요?’

그 말에 이찬수는 달리는 것을 유지하면서 머리를 쓸어 넘겼다. 거만함이 뚝뚝 떨어지는 행동이었다. 그런 이찬수는 상대 선수들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확인하면서 입을 열었다.

“나 이찬수야. 감독이 공격적으로만 플레이하기를 원해서 수비에 참여를 안 했던 거지, 내가 수비를 못해서 안 했겠냐?”

‘이찬수 선수가 수비도 잘한다고요?’

이찬수의 오랜 팬인 김상훈으로서도 금시초문이었다. 김상훈이 알던 이찬수는 미드필더와 공격수의 역할 모두 완벽하게 소화하는 최고의 선수지만 수비력을 보여준 적은 거의 없었다.

“어? 얘 봐라? 내가 인마! 한 때는 말이야. 훈련 때 호날두 공도 뺏고! 메시 공도 뺏었던 사람이야! 엉?! 오죽했으면 라모스가 나한테 수비에 대해서 물어보더라.”

‘세르히오 라모스요? 레알의 중앙수비수?’

“그래.”

‘거짓말 하지 마세요. 라모스는 세계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난데 그 사람이 왜 이찬수 선수한테 수비를 배우려고 해요?’

“하! 얘 아직도 나를 못 믿네? 한번 봐봐.”

말은 마친 이찬수는 어느새 포항의 미드필더 김한솔에게 가까이 붙었다. 힐끔 고개를 돌려 이찬수를 바라본 김한솔은 오른쪽 미드필더 양태영에게 패스를 했다.

뻑-!

그 순간 김한솔의 발밑에서 공을 차는 소리가 아닌 다른 소리가 났다.

동시에 김한솔의 몸이 휘청거렸다.

“뭐야?!”

상황파악을 마친 김한솔은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젠장!”

김한솔의 행동을 예상한 이찬수가 슬라이딩 태클로 공을 뺏어낸 것. 공을 뺏을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일까? 공을 가로챈 이찬수의 행동에는 조금도 멈춤이 없었다. 그는 조금 먼 거리에서 뛰어 들어가는 레오를 향해 롱패스를 날렸다.

뻐엉-!

패스를 한 뒤 이찬수는 그 결과를 확인할 생각이 없었다. 계속해서 기회를 노리며 전방으로 달릴 뿐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이 순간 이찬수가 믿을 수 있는 선수는 그라운드 위에 없었으니까.

물론 믿지 못하는 것에는 김상훈의 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순간 이찬수의 생각대로 전방으로 뿌려진 공은 정확하게 레오의 발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김상훈의 몸이 가진 패스 능력치의 한계였다.

“분명히 정확하게 찼는데? 아오, 진짜 쓰레기 같은 몸이네!”

패스를 한 이찬수가 투덜거릴 정도로 부정확한 공이었지만, 레오는 투지를 발휘해서 공을 향해 죽기 살기로 뛰었다.

그 결과 레오는 코너킥 라인 근처에서 공을 잡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공을 잡은 레오는 패널티라인 안으로 뛰어드는 동료를 슬쩍 본 뒤, 크로스를 올렸다.

뻥-!

그 순간, 가진 체력이 모두 떨어져도 상관없다는 듯 죽을힘을 다해서 쇄도하는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이찬수였다. 그는 달리던 힘을 이용해서 최대한 높이 점프 했다.

타악-!

당연하게도 포항의 수비수 하창민은 그런 이찬수를 막기 위해 자리를 잡고 함께 점프했다. 하창민의 입가에 웃음기가 맴돌았다.

187이라는 장신을 가진 그는 평소 헤딩에 자신감을 가진 선수였다.

그와 한참이나 신장차이가 나는 선수를 상대로 질 것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키도 작은 게, 나와의 헤딩 경합에서 이길 수 있을 거 같아?’

동시에 이찬수 역시 비웃음이 가득 담긴 미소를 지었다.

‘내가 못생긴 녀석 몸에 들어가 있어서 너는 모를 거야. 인마, 나 이찬수야. 키가 좀 작아도 클래스가 다른 헤딩을 보여주마.’

그렇게 자신감으로 무장한 두 남자가 공중에서 날아오는 공을 향해 경쟁하기 시작했다.

하창민은 점프를 하는 이찬수에게 강하게 몸싸움을 걸었다. 그런데 몸싸움을 하는 하창민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건 뭐지?’

상대가 몸싸움이 강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쉽게 밀리지 않았기 때문.

위치선정 또한 어찌나 좋은지 이대로 가다간 헤딩을 허용할 것만 같았다. 다급해진 하창민은 조금 더러운 방법이긴 하지만 팔을 써서 상대를 방해하려는 마음을 먹었다.

그 방법이 하창민이 생각하기에 골을 먹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으니까.

신장이 큰 하창민이 팔을 들자 그의 손은 금세 신장이 작은 상대의 얼굴까지 올라갔다. 이대로 상대의 어깨를 밀어서 방해하면 계획은 성공이었다.

그때, 손을 뻗던 하창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크윽! 뭐야!”

옆구리에서 불쾌한 고통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흐트러진 하창민은 자신이 이찬수를 놓쳤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그 잠깐의 흐트러짐은 뼈아픈 결과를 가져왔다.

투웅-!

가벼운 소리와 함께 이찬수의 이마에 맞은 공은 골대의 왼쪽상단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찬수가 김상훈의 몸에 빙의한 지 3분 만에 넣은 골이었다.

“봤냐? 이게 나야.”

스스로의 가슴을 치며 포효하는 이찬수는 한 마리 짐승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김상훈이 커다란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에휴!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였던 이찬수 선수가 상대 선수의 옆구리를 꼬집다니요······.’

그 중얼거림에 이찬수는 눈을 크게 뜨고 양손을 어깨 높이까지 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뭐? 내가 언제? 제대로 본 거 맞아? 그리고 저 놈이 먼저 손 쓸려고 했거든?”

‘예. 하창민 선수와 볼 경합할 때 옆구리 꼬집는 거 봤거든요? 우와, 어떻게 그렇게 티도 안 나게 반칙을 할 수 있죠? 진짜 저도 몸에서 감각이 느껴지지만 않았다면 전혀 모를 뻔했어요.’

“크흠! 조용히 하자.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으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이찬수의 역전 골로 인해 스코어는 2:1이 됐다.

서울의 분위기는 뜨거워졌고, 포항의 분위기는 차갑게 가라앉았다.

심판이 준 추가시간 3분은 이미 조금 지나버려서 겨우 2분 정도가 남은 상황이었다.

당연히 포항 선수들의 마음은 급해졌고, 그런 조급함은 실수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서울에는 그런 실수를 절대로 놓치지 않고 물어뜯는 맹수가 존재했다.

탓-!

그 맹수는 환상적인 터치로 공을 잡아챘다.

“방심하면 좆되는 거야! 크하하핫!”

상대 선수의 패스미스를 가로챈 이찬수가 광소를 터트리며 공을 몰고 달리기 시작했다.

포항 선수들은 지친 상황에도 더 이상의 기회를 내주지 않기 위해 이찬수를 에워쌌다.

무려 3명에게 둘러싸인 상황!

그런 상황에서 이찬수는 당황하기보다는 오히려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재밌네, 재밌어!”

동시에 3명을 상대로 공을 지키기 시작했다.

퍼억-! 퍽!

몸을 부딪쳐오는 강한 압박에도 이찬수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이찬수에게는 아주 재밌는 상황이었다. 압박이 강한 편이긴 하지만 그는 압박이 강하기로 유명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공을 거의 뺏기지 않았던 선수였다.

“이 정도야 뭐. 크하핫!”

이찬수는 당장이라도 넘어질 것처럼 휘청거리면서도 균형을 잃지 않았다.

최고의 탈압박을 가졌던 선수 중 하나인 이찬수.

그에게 지금 이 상황은 전혀 어렵지 않은, 그저 재밌는 상황일 뿐이었다.

그때 3명에게서 공을 지키던 이찬수가 동료 선수를 바라보며 공을 차냈다. 초조함으로 가득했던 포항의 선수들은 조금도 의심하지 못하고 이찬수의 시선이 향한 곳을 쳐다봤다.

하지만 공은 이찬수가 바라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닌, 반대편에서 압박을 넣던 양태영의 다리 사이로 빠져나갔다.

굴욕적인 알까기였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챈 양태영의 얼굴이 터질 듯 붉어졌다.

공을 빼낸 이찬수는 3명의 틈 사이로 몸을 집어넣으며 뚫고 나가는 것에 성공했다.

3명의 선수가 모두 속을 정도로 완벽한 아이페이크(eye fake)를 이용한 돌파였다.

우오오오오!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엄청난 움직임에 관중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3명을 제쳐낸 이찬수는 계속해서 공을 몰고 앞으로 나아갔다.

“시스템, 상태창 띄워줘.”

김상훈의 데뷔전 때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꾸준히 체력 수치를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골대와의 거리는 40m가 남은 상황에서 이찬수는 고개를 빠르게 좌우로 움직이며 시야를 확인했다.

전방에는 서울의 공격수 2명이 공간을 찾아들어가고 있었고 3명의 수비수가 지키고 있었다.

이찬수는 이런 상황에서 충분히 동료에게 킬패스를 찔러 줄 자신이 있었다.

다만 그럴 생각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이찬수의 마음에는 오직 골에 대한 욕심으로 가득했다.

마음 같아서는 포항의 수비수 3명을 전부 다 드리블로 제친 뒤에 골키퍼까지 제치고 골을 넣고 싶었지만, 체력이 고작 10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화려한 드리블을 할 때마다 체력이 빠르게 소모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찬수는 더 이상 무리한 드리블을 할 수 없었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중거리 슈팅이었다.

마크도 없는 상황이었고, 중거리 슛을 때리기에 아주 좋은 각이 나온 상황.

이미 골 냄새를 맡아버린 이찬수로서는 욕심을 낼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었지만 그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최근 김상훈의 슈팅 능력치가 81까지 올랐다는 것과 이 몸에는 아주 사기적인 스킬이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슈팅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그 사기적인 스킬을 쓰기 위해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정확한 슈팅.”

이찬수는 확실한 골을 위해 체력이 0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정확한 슈팅’ 스킬을 사용했다.

빠앙-!

그의 발을 떠난 공은 커다란 소리와 함께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포물선을 그리며 쭈욱 날아간 공은 골대 근처에서 빠르게 하강하기 시작했다.

회전이 거의 없이 날아가다 골대 근처에서 뚝 떨어져 내리는 슈팅.

크리스티아노 호날두의 전매특허인 무회전 슈팅이었다.

호날두만큼은 아니더라도 이찬수 역시 강력한 무회전 슈팅을 할 수 있는 선수였다.

그것을 증명하듯 이찬수의 슈팅은 지켜보던 관중들이 놀랄 정도로 빠르고 강력하게 골대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슈팅하나는 괜찮은 몸뚱이네.”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던 이찬수는 서울의 관중들이 몰려있는 코너킥라인으로 뛰기 시작했다.

라인 근처에 도착한 이찬수는 갑작스레 몸을 공중으로 띄웠다.

휘릭-!

공중에서 화려한 덤블링을 한 이찬수는 이윽고 무릎을 꿇은 자세로 잔디 위로 미끄러졌다.

“으아아아아아!”

우와아아아악!

김상훈! 김상훈! 김상훈!

화려한 세레머니를 펼치며 괴성을 지르는 김상훈의 모습에 서울의 관중들은 미친 듯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이렇게나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것은 꼭 골을 넣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제 겨우 두 번째 경기를 치루는 신입 선수 김상훈.

그런 김상훈이 지금 이 순간 그들의 팀에서 뛰었었던 레전드이자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였던 한 남자를 떠올리게 만들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지금 김상훈이 한 세레머니 봤어?! 봤냐고?!”

“당연히 봤지! 내가 잘못본 거 아니지? 맞지?”

“맞아! 제대로 봤어! 나도 봤으니까! 쟤 뭐야! 왜 저렇게 우리 마음에 불을 지르는 거냐고!”

방금 김상훈이 보여준 세레머니가 축구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아주 유명한 것이라는 사실이 그들을 미치게 만들었다.

지금 이 순간 김상훈이 펼친 세레머니는 바로 현역시절 이찬수의 시그니처 세레머니였기 때문이다.

스코어 4대 1.

삐익-! 삑!

관중들의 환호성과 함께 경기 종료를 알리는 주심의 휘슬 소리가 그라운드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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