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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들린 축구선수-19화 (19/200)

19화 박스(Box)를 까자

서울에 위치한 대학병원 안.

죽은 듯 누워있던 남자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뜬 남자의 시야에는 반투명한 이찬수의 얼굴이 보였다. 그것도 아주 가깝게.

“으악! 씨발!”

- 끄아악! 깜짝이야!

서로의 얼굴을 본 두 남자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 어으! 놀래라. 심장마비 걸릴 뻔 했네. 아, 이미 걸려서 죽었구나. 그나저나 너, 밤새 간호한 사람한테 씨발은 너무한 거 아니냐?

“아··· 죄송해요. 순간 너무 놀라서.”

- 그래서 몸은 괜찮냐?

김상훈의 몸에 빙의한 이후, 오랜만에 그라운드를 밟은 이찬수는 김상훈의 체력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결과가 바로 그의 눈앞에 있는 김상훈의 상태였고.

당연하게도 이찬수는 김상훈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을 기다리는 이찬수의 모습에 김상훈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예, 뭐 괜찮네요. 근데 그··· 빙의됐을 때 제 목소리 안 들렸어요?”

- 응? 들렸던 것 같기도 하고···· 안 들렸던 것 같기도 하고·····. 솔직히 너무 흥분해서 아무것도 신경 쓰지 못했어. 참 나답지 않았지.

“예? 이찬수 선수는 원래 한 번 흥분하면 눈이 뒤집히잖아요. 상대 선수한테 날라차기를 하고 욕을 하는 관중한테 주먹질을 하는 선수였잖아요?”

- 무슨 소린지 전혀 모르겠으니까 그런 말은 그만하고, 몸 진짜 괜찮은 거 맞냐?

“예. 지금 당장 아픈 데는 없어요. 근데 저 왜 쓰러진 거래요?”

- 과로라던데?

“과로요? 다른 이상은 없대요?”

- 그래, 존나 건강하대.

“오, 그건 다행이네요. 하긴 빙의 한 번 했다고 병이라도 걸려버리면 너무 심한 거죠. 그나저나 빙의는 웬만하면 자제해야겠어요.”

- 응? 왜? 그게 무슨 소리야?!

귀신으로 살다 축구를 다시 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긴 이찬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이찬수는 눈을 크게 뜬 채 김상훈을 쳐다봤다.

“내 몸을 나 스스로 컨트롤을 못한다는 것. 이게 경험해보니까 솔직히 무섭더라고요. 건강에 안 좋을 것 같기도 하고.”

- 아니 그건 체력이 0이 돼서 쓰러진 거 아니야? 앞으로 빙의했을 때는 내가 네 말에 대답도 잘 해주고 그러면 되잖아? 그, 뭐냐! 아! 너 인터넷 방송할 때처럼 내가 네 말에 잘 소통해주고 그······.

진지한 김상훈의 말에 이찬수는 당황해서 이런저런 핑계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상훈의 표정은 여전히 진지했다.

“아예 빙의를 하지 않을 생각은 없어요. 꼭 이겨야만 하는 경기에서 제 능력으로는 도저히 경기를 뒤집을 수 없을 때, 그럴 때는 빙의를 할 생각이 있어요. 아, 물론 이찬수 선수도 원해야 되겠지만요.”

- 오! 그래? 그래 인마 잘 생각했다.

“그리고 이찬수 선수한테 부탁드릴게 있어요.”

- 응? 뭔데? 뽀뽀해달라는 부탁만 아니면 들어줄게. 잠깐! 설마 너 진짜 그런 취향은 아니지?

“그런 거 아니고요. 사실 이번에 프로로 처음 뛰면서 부족함을 많이 느꼈어요. 너무 스킬에만 의존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 그래서?

순식간에 이찬수의 표정이 변했다. 김상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이번에 이찬수 선수와 빙의를 하면서 느꼈어요. 제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요.”

- 아니 그건 당연한 거고. 너는 인마 제대로 축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잖아. 그러니까······.

“이찬수 선수가 제 몸으로 펼치는 플레이를 직접 느끼고 보면서 욕심이 커졌어요. 나도 이렇게 축구를 하고 싶다. 이렇게 축구를 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그런 욕심이요.”

- ······.

“능력치가 낮은 제 몸뚱아리로도 그런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주셨잖아요? 그러면 저도 이찬수 선수한테 더 열심히 배우고, 더 노력하면 그런 움직임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때였다.

무거운 표정으로 김상훈의 말을 듣고 있던 이찬수의 눈이 빛나기 시작한 것이.

두 눈이 반달처럼 휘어진 채, 하얀 이가 보이게 웃기 시작한 것이.

- 하하하하!

당연하게도 그런 이찬수의 모습을 보며 김상훈은 인상을 찌푸렸다.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니, 사람이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왜 웃고 그래요?”

- 그래 너 사람이라서 좋겠다. 다른 게 아니고 나한테 아주 좋은 생각이 났어. 이게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예? 뭔데요?”

- 너, 방금 했던 얘기 기억나지?

“너무 많은 말을 해서 뭘 말하시는 건지는······.”

- 빙의된 뒤에 내가 네 몸을 제어할 때, 내 플레이를 보고 느꼈다며?

“어감이 좀 이상하긴 한데··· 뭐, 그랬죠. 마치 제가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까요.”

- 그럼 지금 그때 내가 했던 움직임들, 기억 안 나?

“억!”

짝-!

이찬수의 말에 김상훈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 지금 이 순간 김상훈은 스스로의 몸을 보며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러자 인천과의 경기에서 이찬수와 빙의됐을 때의 감각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기억이···· 나요!”

헛다리짚기, 팬텀드리블, 사포, 시저스킥······ 심지어 이찬수가 했던 호흡, 달릴 때의 보폭까지.

누군가 머릿속에 때려 박은 것처럼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 진짜?! 얼마나 기억나는데?

“전부, 전부 다 기억나요! 이찬수 선수가 했던 모든 움직임이 기억난다고요!”

- 오! 그럼 내가 했던 움직임, 따라할 수 있겠어?

“그건····· 아직 안 해봐서 모르겠는데요?

- 그래? 그럼 나가자!

“예? 저 지금 입원 중인데요?”

- 아까 의사가 깨어나면 퇴원해도 된대. 빨리 옷 갈아입어. 테스트하러가게.

“거참, 되게 급하시네. 일단 알겠어요.”

투덜대며 대답했지만, 사실 김상훈도 지금 굉장히 흥분한 상태였다. 만약 이찬수의 움직임을 흉내 낼 수 있게 된다면.

시스템의 도움 없이도 김상훈의 축구실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엄청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

모든 선수들이 집에 돌아간 저녁시간의 훈련장.

훈련장을 찾은 김상훈은 공을 가지고 열심히 몸을 풀었다. 그의 곁에 있는 이찬수는 발을 동동 구르며 김상훈을 재촉했다.

- 상훈아, 그 정도면 몸은 다 풀렸을 것 같은데?

“시작한지 이제 5분 됐는데요?”

- 그 정도면 충분하지! 나는 현역 때 5분 몸 풀고 경기에 출전한 적도 많았어.

“그건 이찬수 선수니까 가능한 거고요. 괜히 몸 제대로 안 풀었다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어떡해요?”

- 그, 그치?

말을 마친 김상훈은 다시 집중해서 신중하게 몸을 풀었다. 기초 체조를 마치고 가볍게 트래핑을 하며 몸을 푼 김상훈은 이내 천천히 드리블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찬수는 양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는 모션을 취했다. 김상훈이 현재 빙의 때의 감각을 찾는 중이라는 것을 눈치 챘기 때문이다.

괜히 말이라도 걸었다가 감각을 찾는 것에 실패한다면 이찬수 본인에게도 좋을 게 없었으니까.

자주 빙의를 해서 축구를 다시 하고 싶은 것이 현재 이찬수의 바람이었으니까.

“오!”

그때였다.

아무 말 없이 공을 가지고 이리저리 움직이던 김상훈은 이내 작은 탄성을 쏟아냈다.

그 모습에 이찬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질문을 쏟아냈다.

- 왜?!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면? 갑자기 실력이 엄청나게 오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뭐야? 뭔데 그래?

“돼요!”

- 된다고? 뭐가?!

“이찬수 선수가 했던 움직임! 조금이긴 하지만 흉내 낼 수 있겠다고요!”

- 오! 진짜야? 그럼 빙의를 하는 게 네 실력에 도움이 되는 거네?

“그러네요. 와····· 진짜 신기하네요. 무슨 판타지 소설도 아니고.”

- 너랑 나한테 벌어지는 일들이 웬만한 판타지 소설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일인 거 같은데?

“그것도 그러네요. 근데 그 이찬수 선수가 드리블을 할 때, 특유의 호흡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

- 아 그거? 스페인 식 호흡법?

“그게 스페인 식 호흡법이에요?”

- 그래, 내가 처음 스페인에 갔을 때 배운 건데 이게 정말 실용적이야. 실제로 스페인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이걸 대부분 쓰고 있으니까.

“그걸 쓰면 뭐가 달라지는데요?”

- 폭발력.

“폭발력이요?!”

- 그래. 이 호흡법을 마스터하면 마지막 드리블을 할 때 순간적으로 빠른 스피드를 낼 수 있는 폭발력을 얻을 수 있게 돼.

“오! 신기하네요.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데요?”

- 이게 말로 해서 될지는 모르겠지만, 드리블을 할 때 숨을 짧게 뱉는 것을 반복하다가 마지막 드리블을 할 때 숨을 길게 뱉으면서······.

찬바람이 강하게 부는 2017년 3월.

김상훈은 추위도 잊은 채 땀을 흘리며 훈련에 매진했다.

***

[환상적인 드리블을 보여줬습니다. 보상으로 5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환상적인 골을 넣었습니다. 보상을 5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헤트트릭을 기록하셨습니다. 보상으로 10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프로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었습니다. 보상으로 20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총 패스 성공 횟수 35회 - 보상으로 35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총 기록한 골 수 3골 - 보상으로 3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현재 보유하신 포인트는 38600p입니다.]

마스터리그 시스템을 켠 김상훈의 눈앞에 기다렸다는 듯 메시지가 떠올랐다. 최근 데뷔전에서 펼쳤던 활약에 대한 보상이었다.

개인훈련을 마친 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해서 개운한 상태였기에 더욱 기분 좋은 메시지였다.

옆에서 메시지를 훑어보던 이찬수가 중얼거렸다.

- 무슨 포인트가 이렇게 많이 쌓였어?

“그동안 훈련하면서 받은 걸 안 쓰고 모아놨잖아요. 그리고 많은 것도 아니에요. 이찬수 선수도 알다시피 프로가 되고나서부터는 훈련에서 얻는 포인트가 대폭 감소됐잖아요. 두 달 동안 훈련하면서 받은 것치고는 적은 거죠.”

- 그래, 그때 내가 기분이 얼마나 좋았는지 알아? 솔직히 네가 생각해도 지금까지 너무 퍼줬잖아? 시스템도 알았겠지. 빨리 밸런스 조정을 하지 않으면 김상훈이라는 인간이 1년도 안 돼서 개사기 능력치를 가진 괴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에이, 또 오바하신다. 제 능력치가 지금도 얼마나 안 좋은지 아시면서.”

- 그래도 프로가 된 뒤부터는 훈련으로도 능력치가 제법 잘 오르잖아? 오늘만 해도 꽤 오르지 않았어? 그리고 지금 포인트 쓸 거잖아? 그럼 또 능력치 엄청 오르겠지. 이런 씨발! 왜 이렇게 축구 편하게 하는 거야?

이찬수의 말처럼 김상훈이 프로가 된 후, 시스템에 변화가 있었다. 바뀐 것은 두 가지였다.

1. 훈련으로 받을 수 있는 포인트가 대폭 감소된다.

2. 훈련으로 능력치를 얻는 것이 그나마 수월해졌다.

프로가 되기 전처럼 포인트 꿀을 빨 수는 없게 됐지만, 훈련을 열심히 하면 포인트를 얻을 수 있게끔 바뀐 시스템.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김상훈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걷어찼다.

반면 이찬수는 크게 만족했다.

능력치가 높아지면 김상훈의 축구능력이 오르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축구실력’ 자체는 직접 땀을 흘리고 수 없이 많이 공을 만지면서 얻게 되는 경험에서 쌓이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말을 하던 이찬수는 김상훈을 바라봤다.

불만스럽게 투덜댔지만 이찬수는 김상훈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는지 직접 봐왔기 때문에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만큼 최근 들어서 축구를 잘해지기 위한 김상훈의 욕심은 아주 컸다. 그 증거로 지금 그는 각종 박스를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고 있었다.

[레드 박스 ▷ 1,000포인트]

[오렌지 박스 ▷ 5,000포인트]

[옐로우 박스 ▷ 10,000포인트]

[그린 박스 ▷ 20,000포인트]

[블루 박스 ▷ 40,000포인트]

[네이비 박스 ▷ 80,000포인트]

[퍼플 박스 ▷ 160,000포인트]

1분······.

2분······.

기다리다 못한 이찬수가 김상훈을 부르려 할 때쯤.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으로 박스를 노려보던 김상훈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질문 하나 해도 되죠?”

- 뭔데? 할 말 있으면 빨리하고 박스 좀 까자. 답답해 죽겠으니까.

“저한테 있는 38600포인트로 그린 박스와 옐로우 박스를 사고 나머지로 돈 되는 대로 싼 박스들 싹 살까요? 아니면 그냥 저렴한 박스를 많이 살까요?”

누구나 고민할만한 상황이다.

좋은 것이 나올 확률이 높은 비싼 박스를 조금 까는 것과 좋은 것이 나올 확률은 낮은 여러 개의 저렴한 박스를 까는 것.

어느 쪽을 선택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김상훈은 결국 이찬수 찬스를 쓴 것이다.

질문을 받은 이찬수도 난감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 글쎄,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그린 박스 까는 거 한 번 보고 싶기는 한데··· 꼭 좋은 게 나온다는 보장도 없으니······.

고민에 빠진 김상훈에게 이찬수도 큰 도움을 주진 못했다.

가격이 비싼 박스일수록 좋은 아이템이나 스킬이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지만 말 그대로 확률에 불과했기 때문.

지금 구매 가능한 박스 중 가장 비싼 그린 박스를 까서 안 좋은 것이 나올 가능성도 충분히 높았다.

계속해서 고민하던 김상훈이 이윽고 반투명한 박스 선택창에 손을 올렸다.

- 오! 어떻게 하려고?

“결정했어요. 저는······.”

김상훈의 손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이찬수의 동공이 점점 커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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