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들린 축구선수-17화 (17/200)

17화 데뷔전(1)

김상훈이 투입되는 순간 서울의 관중석에서 큰 환호성이 들렸다.

사실 평소 K리그는 많은 관중들이 경기를 보러 오는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서울의 관중석은 빈자리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하게 차 있었다.

김상훈.

BJ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가 서울에 입단했고 프로축구 선수로 데뷔할 수도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된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데뷔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프로선수를 꿈꾸며 축구를 하다가 8년을 다른 일을 했던 사람이 다시 축구를 시작해서 프로가 될 확률은 아주 낮다.

그 낮은 확률을 뚫고 프로선수가 된 김상훈은 지금 이 순간 데뷔를 하게 됐다. 그것도 수많은 관중이 보고 있는 앞에서.

흥분과 함께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긴장감이 맴돌았다.

다만 김상훈에게는 긴장감을 즐길 수 있는 강한 멘탈이 있었다. 실제로 이찬수는 김상훈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 멘탈이라고 자주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청소년 시절 축구를 할 때는 그 멘탈을 갖고도 좋은 활약을 펼치지 못했었다.

실력과 재능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김상훈은 전혀 다른 선수가 돼 있었다.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그라운드에 올라선 김상훈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가 그 증거였다.

- 너 설마 지금 긴장했냐? 얘들을 상대로? 아니지? 그럼 나는 너무 실망할 것 같은데? 나는 너보다 10살도 더 어린 나이에 여기서 득점왕 했었는데······.

17세라는 나이에 K리그에 데뷔해서 첫 시즌부터 득점왕을 차지했던 천재 축구선수 이찬수의 말이 계속해서 귀에 들린다는 것도 김상훈이 이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드는 이유였다.

“아 그건 이찬수 선수 얘기고요. 저는 이제 갓 데뷔한 신인 선수잖아요. 당연히 다른 선수들이 조금 커 보이긴 하죠.”

- 그래도 너는 개사기 시스템이 있잖아. 솔직히 그 사기 스킬만 잘 써도 K리그는 쉽게 씹어 먹겠다.

이찬수와 계속해서 떠들면서도 김상훈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포지션 주위를 맴돌았다.

어느새 긴장이 다 풀려버린 그의 눈에 그라운드에 있는 선수들의 움직임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 야! 패스 온다. 집중해!

“이미 알고 있어요.”

툭-!

패스를 받은 김상훈은 공을 잡아두지 않고 원터치로 근처에 있는 동료에게 다시 패스했다.

군더더기 없는 원터치 패스였다.

이렇게 정교한 원터치 패스가 가능한 이유는 당연히 스킬 덕분이었다.

[이찬수의 퍼스트터치]

- 등급 : 레전드(Legend)

- 효과 : 대한민국의 이찬수, 그의 퍼스트터치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레전드라는 등급에 걸맞게 이찬수의 퍼스트터치 스킬은 활용도가 아주 높았다.

꼭 공을 잡아두는 것뿐만 아니라 원터치 패스로 활용까지 가능한 스킬이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어떠한 상황, 어떤 신체 부위로도 첫 터치 순간만큼은 정확하게 공을 잡아두거나 보낼 수 있었다.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김상훈은 원터치 패스를 애용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패스 능력치가 부족한 김상훈이 이렇게 효율 좋은 스킬을 남발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으니까.

오히려 이런 스킬을 아껴 쓴다면 바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툭! 투욱-!

김상훈이 투입되면서부터 매끄럽지 않았던 공격진에 마치 윤활유를 바른 듯 부드럽게 공이 연결되기 시작했다.

서울의 점유율 역시 빠르게 올라갔다.

짧은 패스로 공을 돌리던 도중 김상훈은 동료 미드필더인 하대선이 준 패스를 받아서 골대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인천의 미드필더인 김슬기가 빠르게 달라붙어서 공을 뺏으려 했지만 김상훈은 ‘무사 뎀벨레의 탈압박’으로 끝까지 공을 뺏기지 않았다.

결국 끈질기게 달라붙던 김슬기가 김상훈을 놓쳐버렸다.

그 순간 김상훈과 그 옆에 있던 귀신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정확한 슈팅.”

- 젠장, 골이네.

30m라는 먼 거리에서 김상훈이 때린 슈팅은 정확히 골대의 왼쪽 상단 구석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김상훈은 슈팅력이 강한 선수가 절대 아니었다. 인천의 골키퍼 최산 역시 갓 데뷔한 선수의 슈팅이 강력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막을 수 있어.’

정확히 구석을 찔러 들어오는 슈팅이 매섭기는 했지만 최산은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갓 데뷔한 신인 미드필더의 슈팅이 생각보다 너무 빠르고 강력했다.

‘이, 이게 무슨!’

최산이 온몸을 날려서 공을 건드리는 것에 성공했지만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공은 그의 손가락을 밀어내며 골대 그물을 휘저었다.

“촤아!”

데뷔전에서 골을 넣은 김상훈은 양손을 펼치고 새처럼 그라운드 위를 날아다녔고 같은 팀 동료들이 빠르게 뛰어와서 김상훈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상훈아! 축하한다.”

“상훈이 형! 축하해요. 중거리 슛 진짜 개간지였어요!”

“축하한다. 인마!”

입단한 지 얼마 안 됐지만 꽤나 잘 챙겨주던 동료들과 함께 기쁨을 나눈 김상훈은 환하게 웃으며 허공을 바라봤다.

그의 시선에는 반투명한 모습의 이찬수가 애써 미소를 감추며 표정 관리를 하고 있었다.

- 아오, 그게 들어가네? 거리가 꽤 있었는데. 저번에 얻은 그 스킬 때문이지?

“예, 맞아요.”

이찬수의 말에 김상훈의 머릿속에 두 달 전, 프로입단 테스트를 합격하고 보상으로 받았던 옐로우 박스가 떠올랐다.

그 옐로우 박스에서 나온 것은 골드(Gold)등급의 스킬이었다.

[캐논 슈터]

- 등급 : 골드(Gold)

- 효과 : 하루에 한 번, 강한 슈팅을 할 수 있습니다. 캐논 슈터는 첫 슈팅을 할 때, 자동으로 발동됩니다.

하루에 한 번, 첫 슈팅을 매우 강력하게 때릴 수 있는 스킬.

언뜻 봐서는 골드등급 스킬이라고 말하기는 조금 부족한 느낌인 것이 사실이었다.

얼마나 강한 슈팅이 나가는 것인지 정확한 수치가 나와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 이 스킬을 얻었을 때, 김상훈은 캐논 슈터 스킬이 얼마나 좋은 스킬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훈련 때 이 스킬을 사용하자마자 알 수 있었다.

- 씨발, 사기스킬이 또 생겼네.

“슈팅이 너무 세긴 하네요. 그리고 정확한 슈팅이랑 합쳐지니까 진짜 미친 거 같아요.”

캐논 슈터 스킬이 비록 하루에 한 번뿐이지만 스티븐 제라드나 프랭크 램파드가 떠오를 정도로 강력한 슈팅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정확한 슈팅과 중복효과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골드(Gold)등급이라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스킬이라는 것을 말이다.

김상훈이 투입된 지 5분도 안 돼서 넣은 골로 현재 스코어는 2:1.

1골 차이로 인천을 따라가게 된 서울 선수들의 승부욕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골을 넣은 주인공인 김상훈 역시 더욱 신이 나서 다음 기회를 노렸다.

그런 그의 근처에는 계속해서 잔소리를 하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 야! 정신 차려! 너 지금 너무 흥분했어. 흥분하는 건 딱 골을 넣은 순간이면 충분해. 지금은 냉정하게 경기를 할 때야. 지금 벌써 패스 미스만 두 번이야. 네가 언제부터 창의적인 패스를 시도했다고 깝치는 거야? 그만 까불고 원터치 패스만 하라고.

현실 감각을 일깨워주는 잔소리 폭풍.

그런 이찬수의 말에 김상훈은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꼈다.

“알겠습니다. 제가 너무 흥분했네요.”

냉정을 되찾은 김상훈에게는 빠르게 기회가 왔다.

상대 선수의 특징을 파악하는 데에는 도가 텄다고 해도 될 정도의 남자, 이찬수가 그의 곁에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 인천에 중앙 미드필더······.

“누구요?”

- 저기, 저 곱슬머리! 이동석 맞지?

“예. 맞아요.”

- 그동안 열심히 분석해왔으니까 너도 알겠지만, 쟤가 인천의 핵심 선수야. 탈압박 능력도 준수하고 패스도 꽤 잘 뿌리는 선수지.

“확실히 잘하더라고요.”

그런 이찬수가 김상훈에게 제안을 했다.

- 쟤 공 뺏자.

“예? 어떻게요? 탈압박이 되게 좋던데. 그리고 제가 달려들기도 전에 패스를 할 걸요?”

- 내가 누구냐? 이미 저 녀석 파악 끝냈다.

“아니 저 선수한테 약점이 진짜 있어요? 저 선수는 K리그에서도 무결점 미드필더라는 말을 듣는 선수던데······.”

김상훈의 말처럼 인천의 핵심 미드필더이자 에이스인 이동석은 차기 국가대표로 뽑힐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실력 있는 선수였다.

김상훈이 보기에도 이동석은 에이스라는 자리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인천이 공격력이 강한 이유는 저 이동석 선수가 있기 때문이겠지.’

공을 잘 뺏기지 않고 좋은 패스를 자주 뿌려주는 선수.

그런 선수에게서 약점을 찾았다는 이찬수의 말에 김상훈의 눈이 커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김상훈을 보며 이찬수는 씨익 웃었다.

- 내가 누구냐. 이찬수야, 이찬수! 자, 잘 들어. 이동석은 왼발잡이고 탈압박을 시도할 때, 왼쪽으로 턴을 하는 버릇이 있어. 오늘만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늘 경기에서는 계속 똑같은 패턴을 쓰고 있어.

“헐, 정말요? 그걸 도대체 어떻게 알아냈··· 아! 이찬수 선수라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제가 요즘 너무 자주 붙어있다 보니 이찬수 선수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자꾸 까먹게 되네요.”

대답을 하던 김상훈은 곧바로 동료와 공을 돌리고 있는 이동석을 향해 달려갔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찬수가 찾아준 약점이다.

그 약점을 노리지 않을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더 나아가 이찬수는 확실한 공략법까지 알려주었다.

- 이동석이 공을 잡기도 전에 빠르게 달라붙어서 턴을 하게끔 만들어. 그 뒤에는 그냥 왼쪽으로 몸을 돌리는 타이밍에 맞춰서 공을 뺏으면 돼. 할 수 있지? 상대가 어디로 움직일지 아는 상황에서 공을 뺏는 연습은 충분히 했잖아?

그의 말에 김상훈은 생각했다.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공략법을 듣고도 실행하지 못한다면 프로라는 타이틀을 쓸 자격이 없다고.

이찬수가 준 공략법으로 이동석의 공을 뺏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을 마친 김상훈은 이미 공을 잡은 이동석에게 달라붙은 상태였다.

퍽-!

김상훈은 키는 크지 않지만 강한 피지컬을 지닌 이동석에게 강하게 몸싸움을 걸었다.

‘큭! 뭐가 이리 단단해?’

단단한 바위에 부딪히는 것 같은 느낌에 김상훈은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애초 계획은 이동석과의 몸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었다.

끈질기게 압박을 가하자 이동석이 왼발로 공을 컨트롤하며 왼쪽으로 턴을 시도했다.

훌륭한 무게중심을 이용한 절묘한 턴.

이동석의 탄탄한 기본기와 능숙한 볼 컨트롤 기술이 있기에 가능한 움직임이었다.

이런 움직임 때문에 오늘 경기 내내 서울의 미드필더들은 이동석의 공을 빼앗지 못했다. 때문에 이동석은 이번에도 서울의 햇병아리 선수를 가볍게 제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투욱-!

이미 이동석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있던 김상훈은 가볍게 발을 뻗어서 깔끔하게 공을 빼앗는 것에 성공했다. 공을 가로챈 김상훈은 곧바로 가장 가까이에 있던 동료이자 믿을 수 있는 실력을 지닌 하대선에게 패스했다. 이동석의 공을 뺏자마자 곧바로 인천의 중앙수비수인 김용한이 달려왔기 때문이다.

동작이 급했고 스킬효과가 없는 평범한 패스였기 때문에 정확하게 하대선에게 공이 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하대선은 3년 동안 서울의 에이스 자리를 지키고 있는 뛰어난 미드필더였다.

탓-! 파앙-!

부정확한 패스를 받는 것에 성공한 하대선은 앞으로 뛰어나가는 김상훈의 앞쪽으로 공을 패스했다.

강한 스루패스였다.

김상훈과 하대선의 2대1패스에 김상훈을 막으러 달려오던 김용한은 허탈한 표정으로 몸을 돌려서 수비 진형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사이, 김상훈은 이미 김용한이 빠져버린 공간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 더 빨리! 더 빨리 뛰어!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빈 공간으로 달리는 김상훈의 몸에 조금 더 힘이 붙었다.

타닥-! 탁-!

빠른 속도로 깔려 들어오는 스루패스를 받기 위해 김상훈은 다리를 최대한 길게 뻗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빠른 속도의 공이 김상훈의 발끝에 걸리자 거친 야생마처럼 날뛰던 공이 순식간에 얌전해지더니 이내 제자리에 멈춰 섰다.

지금 이 순간 완벽한 퍼스트터치로 공을 잡은 김상훈의 눈앞에 있는 것은 넓은 골대와 흔들리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는 인천의 골키퍼 최산뿐이었다.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정확한 슈팅.”

뻐엉-!

김상훈의 발끝을 떠난 공은 골대 오른쪽 구석 하단으로 낮게 깔려 들어갔다.

하루에 한 번 쓸 수 있는 ‘캐논 슈터’ 스킬은 이미 소모된 상황이었기에 지금 슈팅은 그리 강한 편은 아니었다.

다만, 자로 잰 듯 절묘하게 골대를 스치고 들어가는 그 슈팅을 골키퍼가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볼 뿐이었다.

출렁-!

“촤아!”

양 팀의 스코어가 2:2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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