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그라운드를 밟다
서울 유나이티드의 훈련장에는 1군 선수들과 2군 선수들이 낮부터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K리그 시즌이 시작되는 3월이 불과 2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
아직까지 주전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모든 선수들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훈련을 지켜보던 손승민 감독과 최희준 코치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감독님, 어떤 것 같습니까?”
“한 명은 기대 이상, 다른 한 명은 기대 이하.”
두 명의 남자의 시선은 오늘 훈련에 참가한 신입들에게 향해있었다.
“이치훈이 기대 이상이라고 하시는 거죠?”
“그래. 녀석의 폼이 생각보다 떨어지지 않았어. 조금만 경기감각을 찾으면 올해 안에 주전으로도 쓸 수 있을 정도야.”
이치훈.
김상훈과 함께 테스트에 합격해서 서울 유나이티드에 입단하게 된 남자.
과거 축구를 그만두기 전, K리그에서 뛰었던 경험이 있을 정도로 재능 있던 그는 훈련을 소화하면서 빠르게 폼을 찾아가고 있었다.
반면 손승민 감독의 김상훈에 대한 평은 차가웠다.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아. 특히 저 체력이 문제야.”
“체력이 확실히 떨어지는 면이 있더라고요.”
“나이도 적은 편이 아니라서 극복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체력 훈련을 개인적으로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말을 마친 두 남자는 다시금 땀을 뻘뻘 흘리며 런닝을 하고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그 남자, 김상훈은 지금 이 순간 모든 선수가 함께하는 런닝 훈련에서 가장 맨 뒤에서 숨을 몰아쉬며 뛰고 있었다.
“헉······ 헉·····!”
- 네가 정말 사람이냐? 어떻게 체력이 이렇게 쓰레기일 수가 있지? 야 이런 체력으로 이따가 본 훈련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진짜 죽겠으니까 신경 긁지 말아주세요.”
- 야, 훈련에서 제대로 보여줘야 감독이 너를 쓰지. 어느 누가 훈련에서 빌빌대는 신입을 쓸 생각을 하겠냐? 저기 감독 표정 안 보이냐?
“후·····! 지금도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저는 실전파라서 골로 보여줄 생각이라고요.”
- 그래 얼마나 실전파인지 한 번 보자.
어느덧 1군 선수들과 2군 선수들을 나눠서 실전훈련이 시작됐다.
이를 악물고 모든 훈련을 간신히 따라간 김상훈은 처음에는 투입되지 못했다.
- 야, 너 안 들어가냐? 엉? 왜 안 뛰는 거야? 이러다가 기사 뜨는 거 아니야? ‘세계 최초로 프로팀에 입단하자마자 방출된 선수 1호’ 같은 제목으로 말이지.
“아 진짜! 이찬수 선수가 그렇게 말하면 진짜로 그렇게 될 거 같잖아요. 좋은 얘기도 좀 해주면 안 돼요?”
- 현실을 말해주는 것뿐이야. 그래, 네가 하도 이렇게 얘기하니까 그나마 희망적인 얘기를 해주자면 네가 개막식 전까지 훈련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그나마 체력이 쓰레기인 너를 조커로는 쓸 수도 있겠다.
“오! 조커요? 조커면 그래도 좋은 거 아니에요? 영화에서도 조커는 졸라 센 캐릭으로 나오잖아요.”
- 인마, 조커도 조커 나름이지.
“그래도 일단은 조커로도 괜찮을 거 같네요. 짧은 시간이나마 기회가 있는 거니까요.”
- 그래? 근데 내 생각엔 당장 오늘 훈련에서도 벤치만 달굴 거 같은데?
“아오! 쫌!”
2017개막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
모든 선수들이 경쟁을 하는 만큼 김상훈 역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이를 악물고 훈련을 소화했다.
***
아직까지 새하얀 눈이 자주 내릴 정도로 쌀쌀한 2017년의 3월 초.
그 추위에 대항하기 위해 관중들은 두꺼운 롱패딩과 목도리로 무장하고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보기 위해서 오늘 경기가 열릴 경기장에 모여들었다.
오늘은 이들에게는 의미가 깊은 날이었다.
바로 K리그 개막전이 시작되는 날이었기 때문.
게다가 오늘은 서울과 인천의 시합이 있는 날이었다.
두 팀은 대놓고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가까운 곳에 위치한 팀인 만큼 은근한 라이벌 의식이 존재했다.
“라인 간격 유지 제대로 하고! 지금 너무 흥분해 있어! 연습한대로 해!”
“수비 정신 안 차려? 볼 처리 더 빠르게 해야지!”
때문에 각 팀의 감독과 코칭스태프들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선수들을 지휘했다.
양 팀 선수들 모두 개막전이라는 부담감과 라이벌이라는 압박감 때문에 훈련 때만큼의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
결국 특별한 장면 없이 0대0으로 전반전을 끝내자 관중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우우우-!
선수들도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축 처진 어깨로 라커룸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상훈은 주변을 둘러보며 함께 라커룸으로 따라 들어갔다.
“저도 여기로 들어가는 거 맞죠?”
- 그래. 맞으니까 자꾸 어리버리하게 주변 훑어보지 좀 마.
“처음이잖아요. 너무 신기해서 그래요.”
전반전 내내 벤치에 앉아있던 김상훈에게는 모든 순간이 신기하고 꿈만 같은 경험이었다.
어릴 적 꿈 중 하나였던 프로선수가 되는 것을 이룬 그에게 프로선수라는 직업으로 축구 경기장에 온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비록 경기에는 뛰지 못하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도 김상훈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때문에 락커룸에 도착한 김상훈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계속해서 주변을 둘러봤다.
- 너 혹시 지금 오늘 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 아니지?
“왜요? 그래도 후보 엔트리에는 들어갔잖아요.”
- 와~! 너 진짜 양심 없다. 입단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데뷔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너는 지금 후보에 이름을 올린 것만으로도 굉장히 운이 좋은 거야. 감독이 너를 그나마 괜찮게 봐서 벤치에서 경기라도 지켜보라는 의미로 넣은 거라고. 어찌됐건 벤치에서 경기를 직접 지켜보는 것도 선수에게 큰 도움이 되는 일이니까.
이찬수의 말 그대로였다.
직접 뛰지는 못하더라도 경기를 직접 관전하며 선수들의 호흡과 움직임을 보고 느끼는 것.
그것을 갓 입단한 김상훈에게 경험하게 해주는 것은 김상훈의 실력을 좋게 본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제가 후반에 조커로 투입될지.”
-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그만하고 체력훈련이나 더 열심히 해. 너 아직도 30분도 풀로 못 뛰잖아?
“에이 그래도 아직 모르죠.”
이찬수의 팩트폭행을 김상훈은 계속해서 부정했다.
지금 김상훈은 진심으로 기대를 하고 있었다.
스스로도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왠지 모를 좋은 느낌이 오늘 하루 내내 그의 몸을 휘감고 있었으니까.
- 진짜 너도 참 미친놈이다.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거라는 생각을 하지?
그때, 라커룸에 있던 손승민 감독이 의자에 앉아있던 김상훈에게 걸어왔다.
“김상훈.”
“예. 감독님.”
“후반 70분 쯤, 출전할 수도 있으니까 미리 몸 좀 풀어두게.”
“예? 예! 아, 알겠습니다.”
- 뭐? 승민이 형 왜 그래? 요즘 힘들어? 날씨가 너무 추워서 뇌까지 얼어버린 거야?
손승민 감독의 갑작스러운 말에 자리에 앉아있던 김상훈이 벌떡 일어났다.
프로 입단 2달차인 햇병아리 프로선수 김상훈, 그가 개막전에서 첫 데뷔전을 치루는 것.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생겨버렸다.
***
서울과 인천은 서로를 경쟁상대로 생각한다.
암묵적인 라이벌 관계이지만 재밌게도 지난 시즌 두 팀은 사이좋게 8위와 9위로 시즌을 끝마쳤다.
8위의 인천, 9위의 서울.
어쩌면 그들이 지금 서로를 바라보며 강한 경쟁심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두 팀의 경기 스타일 또한 아주 달랐다.
수비가 강하고 공격력이 약한 서울과는 달리 공격력이 강하고 수비가 약한 인천의 경기는 그야말로 박빙이었다.
그러나 그런 경기 내용과는 달리 후반이 시작되면서부터 승부는 인천 쪽으로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후반 70분이 다가오는 시간인 현재.
서울은 인천에게 2:0이라는 스코어로 밀리고 있었다.
‘저 녀석······.’
교체할 선수 목록을 정리하던 손승민 감독의 눈에 후반전이 시작한 뒤부터 지금까지 줄곧 몸을 풀고 있는 사내에게 향했다.
‘뭔가를 보여줄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말이지.’
손승민 감독.
40년이 넘는 세월을 축구에 모든 걸 바쳤던 남자인 그는 많은 유형의 선수들을 직접 봐왔다.
헤딩을 특출 나게 잘하는 선수, 개인기가 뛰어난 선수, 패스가 좋은 선수 같은 특별한 선수를 많이 보고 함께 해본 경험이 있었다.
‘저런 선수는 처음이지. 아니, 그 어떤 감독도 본 적이 없을 거야.’
손승민 감독은 생각했다. 아무리 경험 많은 감독도 김상훈 같은 유형의 선수는 만나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만큼 손승민 감독이 훈련장에서 봐온 김상훈은 다른 선수들과는 다른 특별한 선수였다.
아니, 어쩌면 특이한 선수라는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일단 김상훈은 체력이 신기할 정도로 부족해서 훈련 때마다 슈팅 몇 번만 하고 나면 힘들어하고 금방 퍼져버렸다.
30분 정도만 뛰고 나면 거북이처럼 느려지는 김상훈을 처음 봤을 때.
손승민 감독은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하지만 손승민 감독은 그런 김상훈의 모든 단점들을 알면서도 기대감이 생겼다.
훈련 때 짧은 시간밖에 뛰지 못하는 선수였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무조건 골을 넣는 선수였으니까.
그게 바로 손승민 감독이 기대감을 갖는 이유였다.
물론 손승민 감독이 갓 데뷔하는 선수에게 경기를 뒤집는 기적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경기에서 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편한 마음으로 김상훈을 시험해 볼 생각이었다.
그 후에 손승민 감독은 판단할 생각이었다.
‘내 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게.’
오랜 시간 축구계에 머문 자신의 감이 무뎌졌는지, 살아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을 마친 손승민 감독은 주변에 있던 코치진들에게 그의 생각을 전달했다.
“응? 무슨 일이시지?”
땀을 뻘뻘 흘리며 몸을 풀고 있던 김상훈은 코치진의 목소리가 들리자 빠르게 달려갔다.
“예, 코치님.”
“김상훈, 훈련 때처럼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한다. 조끼 벗고 당장 들어갈 준비하도록.”
“알겠습니다.”
무덤덤하게 대답했지만 지금 김상훈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설마 했던 데뷔가 빠르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 서울도 진짜 갈 때까지 갔구나. 하긴 오늘 경기력 보니까 네가 들어가도 별로 어색하지도 않겠다.
몸은 이미 충분하다 못해 넘치도록 푼 상태였다.
입고 있던 조끼를 벗고 출전할 준비를 빠르게 마친 김상훈은 그를 부르는 손승민 감독에게 다가갔다.
“데뷔전이라고 부담 가질 필요 없어. 너는 그냥 훈련 때처럼만 한다고 생각하면 돼.”
“예.”
그 말을 끝으로 손승민 감독의 지시는 더 이상 없었다.
김상훈 역시 덤덤하게 대답하고는 그라운드 위로 올라섰다.
프로선수로서 첫 데뷔를 하는 순간이었다.
지금 이 순간 김상훈은 자신과 함께 할 팀원들의 정보와 자신이 해야 할 플레이를 빠르게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공격에 에데르손과 에반, 둘 다 개인기가 좋고 몸싸움이 강한 선수들이지. 저들이 평소대로 해준다면 내가 슈팅을 할 수 있는 상황이 꽤 나올 거야. 미드필더에는 이상훈, 하대선, 송진혁, 그리고 나. 수비는 신광희, 곽태현, 이웅, 박민구. 오케이, 멤버는 최상이야. 그리고 감독님이 훈련 때처럼만 하라고 했으니까 나는 수비에는 참여하지 않고 최대한 공격적으로 움직인다.’
입단이 확정된 뒤로도 김상훈은 훈련이 끝나고 집에 도착하면 이찬수와 개인훈련을 빼먹지 않고 꾸준히 해왔다.
그리고 그 개인훈련에는 당연히 모든 K리그 선수들에 대한 정보를 외우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때문에 지금 김상훈의 머릿속에는 같은 팀 선수들과 상대팀 선수들의 특징들이 빠르게 떠오르고 있었다.
‘인천은 수비가 약한 편이야. 그만큼 압박도 심하지 않아서 상대 미드필더들한테 중거리 슛을 많이 허용하는 팀이지. 게다가 지금은 양 팀 모두 지쳐있어서 압박이 더욱 느슨해진 상황이야. 그렇다면······.’
생각을 마친 김상훈은 그의 옆에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 이찬수의 눈을 보던 김상훈은 씨익 웃었고 그 모습을 보던 이찬수는 얄미워 죽겠다는 얼굴로 인상을 더 찌푸렸다.
두 남자는 지금 이 순간 같은 생각을 했다.
“잘하면 오늘 골 넣을 수 있겠는데요?”
- 씨발. 개꿀 빨겠네.
잘만하면 데뷔전에 골을 넣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김상훈이 압도적인 모습으로 데뷔전을 장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갓 데뷔하는 28세 햇병아리 축구선수와 레전드 축구선수이자 지금은 귀신이 되어버린 남자는 다시 한 번 서로를 바라봤다.
“한 번 가볼까요?”
- 에라이! 그래, 이왕 데뷔하는 거 제대로 보여줘라.
두 남자가 동시에 그라운드 위로 뛰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