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프로팀 입단
“감독님 선수들한테 말도 안 하시고 이곳엔 어쩐 일로······?”
최희준 수석코치는 손승민 감독과 단 둘이 남게 되자 곧바로 다가와 조심스레 질문했다.
“단순한 호기심.”
그런 손승민 감독의 대답에 최희준은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손승민 감독은 그런 남자였다.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보유한 그는 가끔씩 축구에 관해서는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을 보일 때가 많았다.
때문에 최희준은 손승민 감독의 행동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묵묵히 팔짱을 끼고 있던 손승민 감독이 말을 이어갔다.
“녀석에게 관심이 생겼으니까.”
그 말에 최희준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자신이 본 것을 손승민 감독이 보지 못했을 리가 없다고.
그래서 질문했다.
“김상훈, 뭔가 있는 것 같죠?”
“자네라면 이미 봤을 것이라고 믿네. 김상훈의 재능을.”
“슈팅, 탈압박, 퍼스트터치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김상훈의 탈압박은 빅리그에 가도 충분히 통할 정도야.”
그 대답에 최희준은 고개를 깊게 끄덕였다. 역시 손승민 감독이었다.
손승민 감독은 최희준이 봤던 것을 조금도 부족함 없이 정확히 봤다.
그래서 재차 질문했다.
“그럼 슈팅과 퍼스트터치는······?”
그 질문에 손승민 감독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슈팅은 파워만 기른다면 어디를 가도 통할 정도. 그리고 퍼스트터치는 세계최고 수준이야.”
“세계최고요?”
선수들의 능력에 그 누구보다도 냉정한 판단을 내리는 남자가 앞에 있는 손승민 감독이었다.
그런 그가 세계최고라는 말을 입에 담자 최희준이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김상훈의 퍼스트터치를 보면 한 남자가 생각나더군.”
“설마······?”
“그래, 이찬수가 생각나더군.”
이찬수.
현재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선수는 누가 뭐라고 해도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노 호나우두였다.
그리고 이찬수는 죽기 전까지만 해도 그들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는 동급의 선수였다.
그 정도로 대단한 축구선수가 바로 이찬수였다.
“역시······감독님도 찬수를 떠올리셨군요.”
최희준의 감탄이 담긴 말에 손승민 감독은 여전히 팔짱을 낀 채로 침묵을 지켰다.
그 순간 최희준 메인코치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김상훈을 뽑으실 생각이십니까?”
조금 전, 최희준 메인코치가 선수선발을 하는 데 있어서 힘이 없다고 엄살을 피운 것은 모두 앞에 있는 손승민 감독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서울 유나이티드의 선수 선발 권한은 손승민 감독에게 일임되어 있으니까.
그가 원한다면 서울 유나이티드의 선수가 될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설사 마라도나가 오더라도 서울 유나이티드의 선수가 될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서울 유나이티드에서 손승민 감독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만큼 절대적이었다.
“자네도 봤다시피 김상훈은 장점이 확실하지만 단점이 너무 많은 선수야.”
많은 단점들이 대놓고 보이는 선수.
때문에 손승민 감독은 곧바로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나 혼자 판단할 일도 아니고.”
아주 매력적인 선수가 있더라도, 테스트의 내용에 관한 이야기는 이 자리가 아니라 모든 스카우트들, 코칭스태프들과 의논을 해야 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래도 확실한 건 하나 있더군.”
말을 이어감과 동시에 오늘 처음으로 손승민 감독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아주 재미있는 녀석이 나왔다는 것이지.”
***
2017년 1월 1일.
누군가는 앞으로의 미래를 설계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먹기 싫은 나이를 하나 더 먹은 것에 불과하기도 한 날.
지금 이 순간 김상훈은 소파에 축 늘어진 채 티비에 나오는 먹방을 시청하고 있었다.
“하아암! 투플러스 한우? 저거 진짜 맛있겠네. 살짝 구워서 소금에만 콕 찍어서 입에 넣으면 그냥 끝일 텐데.”
많은 사람들의 휴일인 일요일.
김상훈 역시 오랜만에 그 휴일을 즐기고 있었다.
물론 이찬수는 그 모습을 보고만 있지 않았다.
- 상훈아 네가 지금 이렇게 속편하게 쉴 때냐? 엉? 훈련 안 해? K리그에서 뼈 묻을 거야? 평생 2군에서 뛸 거야?
“아, 저 축구 다시 시작하고부터 한 번도 제대로 안 쉬었잖아요. 오늘 하루정도는 쉴 수 있는 거 아니에요?”
- 우와! 그래, 그래! 그것도 맞는 말이지. 암! 우리 위대하신 축구선수 김상훈 님이 쉬고 싶다는데 내가 건드리면 안 되지. 앞으로 프로가 될 지도 모르는 분한테 내가 너무 설쳐버렸네? 그냥·····.
쉬지 않고 잔소리를 하는 이찬수의 행동에 김상훈은 조용히 이불을 덮고 모든 소리를 차단했다.
실제로 김상훈은 하루도 빠짐없이 이찬수와 지옥과도 같은 훈련을 해왔고, 오늘 하루만큼은 달콤한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다.
“오늘만 봐주세요. 능력치도 많이 올렸잖아요.”
김상훈의 말 그대로였다.
아주 조금이긴 하지만 오늘의 위닝-마스터리그 시스템은 개인훈련으로도 능력치가 오른다.
그 사실을 알고 있던 이찬수는 김상훈을 최선을 다해서 굴렸고, 김상훈은 투덜대면서도 모든 훈련을 소화해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지금 이불을 걷어낸 김상훈의 눈앞에 떠 있었다.
[김상훈]
- 키 : 179cm
- 주발 : 오른발
- 체력 : 60 ▷ 61
- 민첩 : 51 ▷ 53
- 패스 : 63
- 슈팅 : 65 ▷ 66
- 개인기 : 68 ▷ 69
- 잠재력 : 83
- 스킬 : 정확한 슈팅(H), 무사 뎀벨레의 탈압박(G), 이찬수의 퍼스트터치(L)
(세부능력치를 볼 수 있습니다.)
장족의 발전이라고 보기는 힘든 결과였지만, 상태창을 바라보는 김상훈의 눈이 반달처럼 휘어졌다.
“진짜 고생 많이 했지.”
김상훈에게 이찬수가 실제로 소화했던 개인훈련을 직접 겪는 것은 그만큼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어떻게 이찬수 선수는 이런 훈련을 매일 했어요?”
- 해야지. 최고가 되고 싶었으니까.
“이찬수 선수는 최고였잖아요?”
- 두 놈이 있었잖아.
“메시랑 호날두 말하는 거죠?”
- 그래, 그놈의 승부욕이 뭔지. 걔네들을 이기려고 진짜 죽기 살기로 했지.
“걔네가 그렇게 잘해요? 게임 능력치는 이찬수 선수랑 걔네 셋 다 비슷하던데.”
- 간단하게 말하면 진짜 존~나 잘해. 사람들이 괜히 걔들을 신계라고 하는 게 아니야.
“와······ 그래요?”
- 너 레알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가 경기를 하면 몇 명의 관중들이 보러 오는 지 알아?
“몇 명이나 가는데요?”
- 7만 명 이상.
“예?”
- 7만 명이라고. 진짜 엄청 많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뛰는 데 제대로 실력 발휘가 되겠어? 실제로 리오넬 메시랑 크리스티아노 호날두는 훈련장에서 만나면 놀랍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야.
“훈련 때는 더 잘한다고요?”
- 그래. 훈련에서는 정말 미친놈들이지. 실제 경기에서는 그 중 일부분이 나오는 것일 뿐이고. 물론 이건 그들과 직접 훈련을 해본 내가 직접 느낀 것들이야.
“우와······. 그럼 이찬수 선수도 훈련에서 훨씬 잘했겠네요? 메시랑 호날두한테 안 밀릴 정도로?”
- 밀리기는커녕 훈련에서는 내가 더 잘했지.
“뭐야, 결국 자기자랑 하려고 한 말이었어요?”
- 자랑은 인마. 있었던 사실을 말한 건데, 자꾸 말 그렇게 할래? 확! 저주 걸어버려?
“엥? 이찬수 선수, 저주도 걸 수 있는 귀신이었어요? 그 영화에 나오는 귀신들처럼 사람들한테 저주 걸어서 죽게 만들고 그럴 수 있어요?”
- 그런 게 되겠냐. 그냥 해본 말이지.
두 남자는 여느 때와 같이 만담을 펼치고 있던 도중.
지이잉-!
소파 앞 테이블 위에 있던 스마트폰이 부르르 떨며 스스로의 존재감을 내뿜었다.
“응?”
- 응?
김상훈은 재빨리 스마트폰을 낚아채서 진동의 원인을 확인했다. 진동의 원인은 하나의 문자였다.
- 나도, 나도 같이 보자!
동시에 문자를 확인한 두 남자는 서로를 바라보며 하이파이브를 날렸다.
“됐어요!”
- 돼쓰!
비록 손뼉이 부딪치는 일은 없었지만, 두 남자는 서로를 보며 짙게 미소 지었다.
2017년 1월 1일 일요일.
김상훈의 프로팀 입단이 확정됐다.
***
[프로테스트에 합격했습니다. 보상으로 옐로우 박스가 지급됩니다.]
프로팀 입단이 확정되자마자 김상훈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모아둔 포인트를 전부 쓰는 것이었다.
[현재 보유하신 포인트는 3400p입니다.]
아껴둘 이유가 없었으니까.
조금이라도 능력치를 올려서 프로들과의 경쟁을 준비해야 했다.
- 옐로우 박스 지금 깔 거냐?
때문에 이제는 귀신이 되어버린 이찬수는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옐로우 박스를 바라봤다.
“아니요. 아직이요.”
- 응? 왜? 상훈아 내가 웬만하면 이런 말까지는 안하는데, 지금 내가 느낌이 너무 좋거든? 왜냐고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하겠는데 지금 박스를 돌리면 최소한 ‘클로제의 헤딩’ 같은 좋은 스킬이 나올 거 같아.
“그러다가 그냥 평범한 아이템이 나오면요?”
- 그러면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래서 아껴뒀다가 마지막에 까려고요.”
- 그럼 포인트부터 쓰려고?
“예. 일단 제물을 좀 깔아야죠.”
- 그래 근데 너 지금 포인트 얼마나 있냐? 그동안 안 쓰고 좀 모아놨잖아?
“정확히 3400포인트 모아놨어요.”
- 오! 그래도 레드 박스 3개는 깔 수 있겠네? 레드 박스 3개 깔 거야?
“예.”
보물박스를 열어보기 전에 맛보기와도 같은 레드 박스 3개.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레드 박스 3개를 구매하셨습니다.]
김상훈은 구매한 레드 박스 3개를 하나씩 돌리기 시작했다.
- 저번에는 한 번에 까더니만 왜 이번에는 하나씩 까냐?
“저번에 그렇게 했다가 망했잖아요. 이제 조용히 좀 해주실래요? 집중 좀 하게.”
집중을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김상훈은 양 손을 모으고 절박한 얼굴로 빙글빙글 돌고 있는 레드 박스를 바라봤다.
그렇게 레드 박스에서 나온 결과물은 예상대로 평범한 했다.
[패스가 3만큼 상승합니다.]
[힘이 2만큼 상승합니다.]
[슈팅이 1만큼 상승합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결과물.
결과를 확인한 김상훈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능력치가 많이 오르지는 않았지만 그 종목이 괜찮기 때문.
“나쁘지 않네요. 필요한 능력치만 쏙쏙 올랐으니까.”
- 그러게 이 정도면 선방했다고 말해도 될 정도야.
“휴····· 이제 슬슬 긴장되네요.”
- 프로에서 통하려면 여기서 괜찮은 게 떠야할 텐데. 과연 네 운이 어디까지일지 나도 궁금하다.
말과 동시에 김상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어느덧 그의 이마에서는 땀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이찬수의 말처럼 옐로우 박스에서 좋은 아이템이나 스킬이 뜬다면 프로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
그렇기에 김상훈이 느끼는 긴장감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가즈아! 으아아아아아악!”
한참이나 소리를 지르던 김상훈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손으로 옐로우 박스에 손을 가져다댔다.
[옐로우 박스를 오픈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오픈이지!”
- 가자!
그렇게 두 남자의 앞에서 영롱한 빛을 띤 옐로우 박스가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