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선생님의 조언
[환상적인 골을 넣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보상으로 500p가 지급됩니다.]
실시간으로 떠오른 메시지를 본 김상훈은 미소를 지었다.
완벽한 퍼스트터치 후 정확한 슈팅으로 넣은 골은 환상적인 골이라는 수식어에 너무나도 어울리는 골이었기 때문에.
김상훈은 스스로의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찬수는 낮은 목소리로 질문했다.
- 체력 많이 깎였어?
“예. 10 깎였네요.”
- 많이 깎였네. 그럼 지금 남은 체력은?
“16 남았어요.”
- 지금 스카우트들이 너를 집중적으로 보고 있는 거 알지? 저들은 네가 가진 능력에 대해서 어느 정도 파악이 끝났을 거야. 저들이 제대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네가 퍼스트터치, 슈팅, 탈압박 빼고는 전부 아마추어급의 실력을 가진 형편없는 선수라는 것도 당연히 눈치챘을 것이고. 어때? 스카우트들의 눈빛을 보니까 다리가 후들거리지?
“엥? 저 사람들, 제 잘생긴 얼굴 보고 있던 거 아니었어요?”
프로가 될 수도 있는 테스트가 아직 25분이나 남은 상황.
남은 체력이라곤 겨우 16밖에 안 되는 김상훈이 농담을 던지는 모습에 이찬수는 혀를 내둘렀다.
- 허, 네 머리는 도대체 뭘로 만들어진 거냐? 상훈아, 조금도 긴장 안 돼? 너 체력도 얼마 안 남았잖아.
“긴장할 이유가 없잖아요.”
- 응? 긴장할 이유가 없다고? 왜?
“이찬수 선수가 있잖아요.”
- 나? 내가 뭐?
“두 번째 타임이 25분 정도 남은 거 같은데, 이런 상황에서 체력이 별로 없는 제가 해야 할 것을 이찬수 선수는 알고 있잖아요?”
- 그걸 내가 왜 알려줘야 되지?
“에이, 그러지 말고 좀 알려줘요.”
- 싫은데? 진짜 싫은데?
계속해서 졸라대는 김상훈의 행동에 이찬수는 스스로의 귀를 막고 휘파람을 불어댔다.
“아, 시간 없는데······.”
김상훈이 이찬수와 떠들던 와중에 상대팀이 공을 돌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잡담을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김상훈은 최후의 방법을 쓰기로 결정했다.
“저번에 보고 싶다고 했던 야동 보여드릴게요!”
- 응? 방금 뭐라고 그랬어?
“이찬수 선수가 보고 싶다고 했었던 야동, 시리즈별로 전부 보여드리겠다고요! 그러니까 빨리 공략법 좀 줘요!”
- 오케이, 거래완료. 지금 네 체력은 16. 남은 시간은 25분이지. 여기서 네가 지금까지 스카우트들에게 쌓은 점수를 깎이지 않고 풀타임을 마무리 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해. 바로 체력을 최대한 아끼면서도 인상 깊은 플레이를 하는 거야.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하냐고요.”
- 아, 새끼 성격 존나 급하네. 자, 들어봐. 너는 체력을 아껴야 하니까 지금부터 정확한 슈팅을 아예 쓰지 마. 남은 시간동안 네가 할 것은 오직 탈압박과 패스야. 공을 오래 잡고 있지 말고, 최대한 뛰지도 말고 전방에서 팀에게 공을 연결하는 역할만 해. 네 체력이 얼마나 따라줄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엔 이게 최선이야. 아, 맞다. 네 패스는 존나 구리니까 무조건 안정적인 짧은 패스만 하는 거 잊지 말고.
그 누구의 말보다도 든든한 이찬수의 조언에 김상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답했다.
“접수했습니다.”
***
삐익! 삑!
심판의 휘슬과 함께 누군가에게는 길었고, 누군가에게는 짧았던 테스트가 종료됐다.
김상훈은 남은 시간 내내 무리한 움직임을 보여주기보다는 이찬수의 조언을 최대한 받아들인 간결한 움직임으로 체력을 아끼는 경기운영을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경기를 마친 김상훈은 밝은 얼굴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90도로 인사를 건넸다.
조금은 과하다싶을 정도로 밝고 예의바른 모습이었다.
물론 이유가 있었다.
[괜찮은 경기 운영능력을 보여줬습니다. 보상으로 5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헤트트릭을 기록하셨습니다. 보상으로 10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총 패스 성공 횟수 68회 - 보상으로 68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총 기록한 골 수 4골 - 보상으로 4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스루패스를 3번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으로 6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현재 보유하신 포인트는 3400p입니다.]
테스트가 끝난 뒤에 곧바로 지급되는 포인트들 때문에 기분이 아주 좋았기 때문이었다.
이 기분은 일주일간 방송을 열심히 해서 받은 달풍선을 환전할 때와 비슷할 정도로 좋은 기분이었다.
- 그렇게 좋냐? 엉? 근데 이제 오바 좀 그만하지? 네 가식적인 행동을 보고 있는 내 생각도 좀 해주는 게 어때?
그런 김상훈 시야에는 애꿎은 잔디를 발로 걷어차고 있는 반투명한 귀신이 있었다.
쉬익-! 쉬익-!
물론 귀신이 되어버린 이찬수의 발길질은 잔디밭을 통과하며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김상훈이 웃으며 말했다.
“이 정도면 이찬수 선수가 알려준 대로 잘 마무리 지은 것 같고, 시스템도 괜찮은 경기운영을 했다고 하니까 괜히 기대가 되네요. 저 이러다가 진짜 프로선수가 되는 거 아니에요? 아, 그러고 보니 이찬수 선수의 친정팀이 이곳, 서울 유나이티드였죠?”
- 맞긴 맞는데, 그건 왜?
“그럼 아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 손승민 감독. 아직 여기 감독이지?
“예. 맞아요! 오, 아는 사이였어요?”
- ····겁나 친한 건 아니고, 가끔 술 한 잔 같이 하던 사이야. 흔한 형동생 사이지 뭐.
“신기하네요.”
- 뭐가?
“전북에서 뛰고 있는 김신훅 선수가 갑자기 연락이 와서 테스트를 주선해준 것도 그렇고, 그 팀이 이찬수 선수의 친정팀이라는 거, 전부 다요.”
- 아 맞다. 큭큭큭! 김신훅 하니까 생각났는데, 걔가 네 방송 시청자라 그랬지?
“예. 아 근데 그건 또 왜요?”
- 걔 닉네임이 죳같이생긴김상훈이라며? 푸하하핫! 물론 맞는 말이기는 한데, 너는 그런 닉네임을 보고도 가만히 놔뒀냐? 그···강퇴 같은 거 안 해?
“에이 씨! 그땐 달풍선을 하도 많이 쏘니까 어쩔 수 없이 놔뒀죠. 근데 설마 그게 김신훅 선수였다니····. 진짜 살다보니까 별 일이 다 있네요.”
- 그래, 그래. 근데 너는 왜 화를 내는 거야? 솔직히 틀린 말도 아니잖아? 네가 죳같이 생기긴 했잖아?
“제가 진짜 이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 뭔데? 해봐, 해봐!
“2002년 월드컵이 한창 진행될 때, 전 세계적으로 가장 못생긴 축구선수를 뽑는 투표를 했었죠.”
- 야, 야! 그만해.
“거기서 가장 못생긴 축구선수 2위로 뽑힌 게 누구였죠? 제 기억엔 이찬수 선수였던 거 같은데······. 호나우지뉴가 1위였고, 그 호나우지뉴한테 이찬수 선수가 아깝게 겨우 2표차이로 졌던 걸로 기억하는데······.”
- 이런 젠장! 그만하라고!
“잠시!”
그때 김상훈이 이찬수의 앞에 손바닥을 내밀며 어딘가를 바라봤다.
이찬수 역시 김상훈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 최희준 형이네.
“예?”
김상훈은 그게 누군데요? 라는 말은 이어서 하지 않았다.
어느새 다가온 최희준이 인사를 건넸기 때문.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유나이티드의 수석코치, 최희준이라고 합니다.”
“아··· 예. 안녕하세요.”
- 이 사람, 내가 서울에서 뛸 때는 팀에서 주장이었던 형인데 코치로도 꽤 잘 나가고 있다고 들었어. 연락 안 한지 오래돼서 잘 몰랐는데 서울 유나이티드에서 코치하고 있었나보네.
이찬수의 말에 김상훈의 자세가 조금 더 겸손하게 변했다.
자신이 입단하려는 팀의 수석코치에게 잘 보여서 나쁠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너무 그렇게 딱딱하게 있지 말아요. 내가 불편해지려고 하니까.”
“예.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하하! 모를 수도 있지요. 그건 그렇고 경기 잘 봤어요. 프로들을 상대로도 훌륭한 플레이를 보여주시던데.”
- 저 형, 눈이 많이 낮아졌네. 예전에는 나보고 더 노력하지 않으면 빅클럽에 가지 못할 거라고 하더니만. 어떻게 이런 허접쓰레기한테 훌륭하다는 말을 하지?
칭찬과 악담을 동시에 받는 바람에 김상훈은 순간 표정관리를 하지 못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하하하··· 아닙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만약 이번 테스트에 붙어서 서울 유나이티드에 입단하게 된다면 빠르게 발전해서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멋진 플레이를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랩을 하는 것처럼 속사포로 멘트를 날리는 김상훈의 모습에 최희준이 허리를 젖혀가며 박장대소했다.
“푸하하하하! 젊은 친구여서 그런지 패기 있어 보이고 좋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아쉽게 됐네요. 제게는 김상훈 씨를 데리고 오고말고 할 힘이 없어요.”
“아······. 그래도 영광입니다.”
- 이 양반은 또 왜 이렇게 겸손을 떨어? 수석코치가 힘이 없으면 누가 힘이 있다고.
그때였다.
쉬지 않고 떠들어대던 이찬수가 갑자기 입을 다문 것이.
그런 모습에 이상함을 느낀 김상훈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두꺼운 패딩을 겉에 입고 검정색 후드를 깊숙이 눌러 쓴 남자가 어느새 다가와 있던 것을.
그 남자가 후드를 벗었다.
그러자 한껏 사람 좋은 미소를 띠던 최희준이 놀란 얼굴로 남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니, 감독님! 안녕하세요.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감독님이요?! 안녕하세요!”
- 이번에는 진짜 힘 있는 양반이 왔네.
당연하게도 김상훈 역시 다시 한 번 양손을 모은 채, 남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후드를 벗은 남자의 얼굴은 김상훈도 알고 있던 얼굴이었다.
남자는 김상훈이 한 번쯤은 스포츠기사에서 봤었던 손승민 감독이었다.
- 근데 승민이 형은 또 여기 왜 온 거야?
손승민.
서울 유나이티드의 감독인 그는 선수들에게는 말하지 않고 스카우트들과 함께 테스트를 전부 관람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는 그가 더욱 무겁고 낮은 목소리로 최희준을 불렀다.
“자네.”
“예, 감독님.”
“그러는 자네는 쉬는 날에 왜 여기에 있나?”
“아······ 그게.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집에 있는 게 불편해서······.”
“쉴 때는 좀 쉬는 것도 괜찮을 텐데.”
“하하······. 앞으로는 잘 쉬겠습니다.”
손승민 감독은 최희준과 가벼운 대화를 나눈 뒤에야 김상훈을 바라봤다.
“아주 좋은 슈팅을 하던데.”
갑작스러운 손승민 감독의 칭찬에 김상훈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감사합니다.”
“퍼스트 터치는 그보다 더 훌륭하고.”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 야! 네 퍼스트 터치는 세상에서 제일 완벽한 퍼스트 터치야 인마! 이게 미쳤나.
옆에서 날뛰는 이찬수를 무시한 채, 김상훈은 손승민의 얼굴을 쳐다봤다.
많이 부족하다는 겸손을 떨었지만, 김상훈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자신의 퍼스트 터치가 최고라는 것을.
당연한 생각이었다.
무려 이찬수의 퍼스트 터치였으니까.
때문에 말과는 달리 김상훈의 표정은 당당했다.
그런 표정이 마음에 들었는지 손승민이 피식 웃으며 질문했다.
“퍼스트 터치는 어디서 배웠나?”
그 질문에 김상훈은 이찬수를 힐끗 쳐다봤다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그냥 인터넷으로 영상 보면서 연습했습니다.”
“하하, 영상이라······. 그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겠구만.”
- 아니, 이 배은망덕한 새끼야. 왜 네 스승이 이찬수라고 말을 못해? 어~? 어어?! 씹어? 너 지금 내 말 씹은 거 맞지?
‘여기서 이찬수 선수한테 배웠다는 말을 어떻게 합니까. 저는 축구를 하고 싶은 거지 정신병원에 들어가고 싶은 게 아니라고요.’
작게 한숨을 내쉰 김상훈은 재빨리 입가에 미소를 짓고 손승민 감독을 바라봤다.
손승민 감독은 그런 김상훈에게 다시 한 번 질문했다.
“자네, 꿈이 뭔가?”
- 와, 저 양반 유행어 나왔다. 예전에도 젊은 선수들만 보면 저 질문하더니만 아직까지도 이런다고?
짧은 질문이었지만 김상훈은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이 질문에 따라서 미래가 바뀔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
그래서 김상훈은 고민하는 척을 하며 이찬수가 있는 쪽을 쳐다봤다.
- 뭐? 보면 어쩔 건데? 안 알려줄 건데? 야, 너 대답 잘 해야 할 거다. 저 양반 은근히 저 질문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야.
그런 이찬수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김상훈이 이윽고 고개를 들고 손승민 감독의 눈을 응시했다.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