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도발을 당하면 갚아주는 남자
뻐엉!
미세하게 위치가 조정된 김상훈의 다리는 정확한 임팩트로 둥근 축구공을 때려냈다.
그의 발에서 떠나간 공은 빠르고 정확하게 골키퍼가 지키고 있는 골문으로 향했다.
“으헉!”
갑작스러운 슈팅에 골키퍼는 다급하게 발을 뻗었지만 공은 그의 발위, 정확히 허리높이 정도의 오른쪽 구석으로 강하게 빨려 들어갔다.
빠르고 정확한 슈팅이 만들어낸 골이었다.
“아······. 졸라 어이없게 먹혔네. 거기서 2대1패스를 할 줄이야.”
순식간에 골을 먹혀버린 이광의 팀원들은 허탈한 얼굴을 한 채, 골을 넣은 김상훈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런 젠장! 오늘 운이 왜 이렇게 안 좋아?”
그리고 그들은 당연하게도 김상훈의 골이 운에 의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럴 만도 했다.
김상훈은 전반전 내내 제대로 된 플레이를 펼치지 못했었고, 골을 넣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마치 운으로 골을 넣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었으니까.
본인이 골을 넣을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과할 정도로 기뻐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결국 그들의 생각이 어찌됐건 간에 김상훈은 괴성을 지르며 세레머니를 펼치고 있었다.
“촤아아!”
- 미친놈아 누가 보면 챔스에서 골 넣은 줄 알겠다.
양팔을 날개처럼 쭉 펼친 채, 새처럼 잔디 위를 뛰어다니던 김상훈은 이찬수의 말에 인상을 썼다.
“저라고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요?”
- 그럼 왜 하는 건데?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되는 거예요? 누누이 얘기하잖아요. 이건 지금 방송중이라고요. 그것도 인터넷방송! 시청자들은 이런 튀는 행동을 하는 걸 좋아한다고요.”
- 너······. 혹시 그거냐?
“예? 뭐요?”
- 관심종자.
“아아, 관종이냐고요?”
- 그래, 너 관종이냐?
“크힠큭!”
관심종자냐는 이찬수의 말에 질문을 받은 김상훈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이어서 그는 자신의 엄지를 펼쳐 보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당연하죠. 그리고 그냥 관종도 아닌 떡관종이죠.”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이찬수 역시 조용히 중얼거렸다.
- 미친놈.
그때, 자신의 포지션으로 돌아가던 김상훈이 고개를 돌려서 이찬수를 쳐다봤다.
- 왜? 또 뭐? 나 아무 말도 안 했다?
“뭐 찔리는 거라도 있어요? 저는 그냥 고맙다는 말 하려고 한 건데.”
- 뭐가?
“2대1패스요. 동네축구수준에서는 절대 못 막을 거라고 이찬수 선수가 알려줬잖아요.”
- 내가 언제? 난 그런 적 없는데?
“또 부끄러워하신다. 불과 5분도 안 지났는데, 그걸 기억 못 한다고요?”
- 뭔 개소린지 나는 모르겠다.
이찬수는 팔짱을 낀 채, 괜히 딴청을 피우며 반대편 허공을 바라봤다.
그 모습을 보던 김상훈은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여튼 이상한 선생님이라니까.”
***
후반전이 시작하자마자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한 이광은 이를 악물고 뛰기 시작했다.
그 역시 경기 전, 상대 팀에 선수출신이 있다는 말은 들었다.
게다가 그 선출이 현재 인터넷방송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김상훈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다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자리는 인터넷방송을 잘해야 하는 자리가 아닌, 축구를 잘해야 하는 자리였다.
그렇기에 이광은 자신이 있었다.
‘고딩 때까지 선출이었다고? 그러면 어느 정도는 하겠네. 하지만······.’
선출이라는 것은 그만큼 제법 실력이 있다는 얘기기도 했지만.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결국 프로로 가지 못하고 나가떨어진 놈이잖아?’
프로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간신히 프로까지 갔었다고 해도 각자의 이유로 방출을 당한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이 이광이 승리를 확신한 이유였다.
“바로바로 패스해! 수비가 똑바로 안 하니까 골 먹히는 거 아니야. 실력도 안 되면서 뭐 해볼 생각하지 말고 공 잡으면 나한테 바로 넘겨. 알았어?!”
이광의 말에 그의 팀원들은 모든 기회를 그에게 몰아주기 시작했다.
그건 김상훈의 팀에겐 재앙과도 같은 일이었다.
전문적으로 축구를 해온, 프로선수인 그를 취미로 축구를 즐기던 일반인들이 막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아니, 아주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 이광은 자신에게 모든 기회가 몰려오자 쉬지 않고 골을 몰아치고 있었다.
그가 넣은 골만 벌써 5골.
경기에서 이기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는 골 개수였다.
[골! 이광, 압도적입니다. 상대팀 수비들이 몸을 날려가며 막아보려 했지만, 이광의 실력은 일반인들이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이광이 벌써 5골을 넣었네요. 역시 현역 선수는 다르다는 건가요? 저 선수는 그야말로 밸런스 붕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어나더 레벨입니다.]
[김상훈의 팀에게는 악마와도 같은 선수일 것입니다.]
이광.
복귀한 이후에 아직 경기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한때는 한국에서 최고의 유망주로도 꼽혔었고, 현재는 비록 2군이지만 건재한 실력으로 현역 K리그 선수로 복귀하게 된 그는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김상훈의 팀을 무자비하게 무너뜨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이광은 오늘 경기에서 하이에나들 사이에 떨어진 호랑이와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압도적인 포식자와도 같은 그의 모습에 경기를 지켜보던 시청자들 역시 이광 팀의 승리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킴]라떼 : 아····이건 솔직히 못이기겠다ㅠㅠ상훈아 그냥 즐기다 와
킹상훈 : 그래도 고생했다. 그러니까 오늘 저녁에 방송켜라. 오늘의 위닝해야지ㅋㅋ
김상훈의개 : 형님, 실망입니다. 그냥 집으로 튀어와서 달풍선이나 구걸하시죠.
최강존잘이광 : 선출도 현역 프로선수한테는 안되네….
김상훈개관종 : 그래봤자 이광도 2군 선순데 이렇게 차이가나냐?
술에미친상훈 : 아직 안 끝났어 새끼들아. 걍 닥치고 보면 안 되냐?
현재 스코어 5대 1.
남은 시간은 고작 10분 남짓.
이 짧은 시간동안 4골 차이를 극복하고 역전을 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당연하게도 이광 팀의 승리를 확신하는 시청자들의 생각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해설과 캐스터 역시 이미 이광 팀의 승리를 기정사실화하며 중계를 이어갔다.
[너무 압도적입니다. 이광 선수의 활약으로 점수 차이가 너무 크게 벌어졌어요.]
[맞습니다. 실제로 김상훈의 팀 선수들을 보면 사기가 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경기는 이대로 이광 선수 팀의 승리로 끝이 날 것 같습니다.]
[지금 이광의 모습은 마치 하이에나들 사이에 떨어진 사자처럼 보입니다. 이광을 상대하는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서 덤비고는 있지만, 역부족입니다.]
해설과 캐스터의 말처럼 변수는 없을 것 같았다.
다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커다란 사자와 상대하는 하이에나들 무리 중에 특별한 무기를 가진 하이에나가 한 마리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하이에나 한 마리의 특별한 무기가 아주 강력하다는 것을.
그렇게 변수가 생겼다.
한 마리 야수처럼 잔디밭 위를 휘젓는 이광의 움직임을 제대로 막을 수 있는 선수는 적어도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잔디밭 위를 뛰어다니고 있는 김상훈에게도 통용되는 것이었다.
김상훈 역시 고등학교 때까지는 선수를 했지만 결국 프로가 되지 못한 많고 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으니까.
다만, 김상훈에게는 이광을 상대할 방법을 알려주는 선생님이 있었다.
반투명한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귀신 선생님이.
그리고 그 선생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김상훈에게 쉬지 않고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 야! 그렇게 개처럼 쫓아다니기만 하면 공은 언제 뺏을 건데?
“지금 뺏으려고 쫓아다니는 거잖아요.”
- 야 인마, 생각 좀 하면서 축구하자. 너는 쟤가 드리블 할 때 패턴이 일정한 거 안 보여?
“예? 무슨 패턴이요?”
- ·····우와! 너 진짜 안 보이는 구나? 그래, 그럼 이 위대하신 이찬수 님께서 친히 알려주마. 이광은 오늘 경기에서 드리블을 할 때 일정한 패턴이 있어. 흔히 말하는 좌삼삼, 우삼삼 패턴인데 쟤는 지금 무조건 왼쪽으로 3번 드리블을 친 뒤에는 오른쪽으로 3번 드리블을 치고 있어.
“농담이죠?”
- 나 이제 말 안 한다.
“에이~ 선생님! 또 왜 그러실까? 장난 한 번 친 거 가지고! 아, 당연히 믿죠.”
믿기 힘든 말이었지만, 그 조언을 한 남자는 다른 귀신도 아닌 이찬수였다.
김상훈은 화려한 드리블로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니는 이광에게 달려갔다.
이광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 있게 드리블을 쳤다. 모든 팀원들이 자신에게 공을 몰아주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골을 못 넣으면 프로가 아니지.’
프로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이광의 눈에 한 남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심기를 불편하게 감히 한 골을 넣은 녀석.
이광은 지금 그 버릇없는 녀석에게 선물을 줄 생각이었다.
농락이라는 선물을.
휙-! 휘익-!
김상훈을 앞에 둔 이광은 빠른 속도로 헛다리를 짚은 다음 오른쪽으로 공을 치고 튀어나갔다.
물 흐르듯 움직이는 그의 얼굴은 너무나도 여유로웠다.
그런데.
“응?”
이광의 발에 있던 공이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뭐야?!”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이광은 공을 몰고 드리블을 하고 있는 김상훈의 뒷모습을 허탈하게 바라봤다.
‘내가 공을 뺏겼다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충격을 받은 이광은 이내 자신의 발로 잔디밭을 강하게 걷어찼다.
‘젠장! 너, 딱 기다려라.’
빼앗겼으면 다시 뺏어주면 된다는 생각으로 이광은 빠른 속도로 김상훈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광이 김상훈의 뒤를 쫓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김상훈이 슈팅을 시도한 상태.
슈팅을 하는 김상훈의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광이 공을 빼앗길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그의 팀원들이 다른 곳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
그렇게 김상훈이 때린 슈팅은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게 골키퍼의 손끝을 스치며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 골, 골입니다! 김상훈 선수, 멋진 중거리 슛으로 골을 넣었습니다.]
[너무나도 깔끔한 슈팅이었습니다. 다른 팀원들과는 달리 김상훈 선수는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역전.
그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두 명의 남자는 달랐다.
- 아오, 거기선 좀 더 빠른 타이밍에 때렸어야지! 여기가 만약 프로세계였다면 방금 너는 슈팅도 하지 못하고 공을 뺏겼을 거야. 야, 근데 그런 사기 스킬을 남발하면 기분 좋냐? 어?
“당연히 좋죠.”
정확한 슈팅이라는 스킬의 위력을 알고 있는 그 두 남자는 이 경기에서 질 것이라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김상훈의 두 번째 골을 시작으로 풋살 경기장 안에는 역전의 불씨가 피워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이런 씨발!”
이광의 욕설이 풋살장에 울려 퍼졌다.
***
공을 잡자마자 다이렉트로 슈팅을 해서 골을 넣는 패턴과 2대 1패스로 상대를 제친 뒤에 곧바로 슈팅을 때리는 패턴.
너무나도 간단한 패턴이었다.
그리고 김상훈의 이런 간단한 패턴에 이광 팀은 속수무책으로 골을 먹혔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로 원하는 곳으로 슈팅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정확한 슈팅’스킬과 상대의 압박을 버텨내거나 피해낼 수 있는 ‘무사 뎀벨레의 탈압박’스킬이 있다는 것.
두 번째로 몇 번의 경기경험으로 김상훈이 두 가지 스킬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됐다는 것
마지막으로 현역 프로선수인 이광마저 어린아이처럼 다룰 수 있는 최고의 축구선수이자 최고의 선생님인 이찬수가 김상훈의 옆에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이유였다.
[아! 또 추가골을 넣습니다. 이광 선수, 허탈한 표정으로 김상훈을 쳐다봅니다.]
[현재 프로선수인 이광에게도 오늘의 김상훈은 괴물처럼 느껴질 것 같습니다.]
[어? 또 골입니다! 김상훈 선수, 미친 듯이 골 폭격을 하고 있습니다!]
[이광 선수마저 이제는 포기해버린 듯한 표정입니다. 후반전 초반까지만 해도 이런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고는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을 텐데요.]
[맞습니다. 이광 선수는 현역 프로선수입니다. 아무리 고등학교 때까지 선수였다고는 해도, 몇 년 동안 방송만 해온 김상훈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실력을 가졌을 것이라고는 전혀 몰랐을 겁니다.]
“촤아아아!”
역전 골에 쐐기 골까지 넣은 김상훈은 양 팔을 새처럼 벌린 채, 풋살장을 한 바퀴 돌며 뛰어다녔다.
- 와······진짜 개사기가 따로 없네.
그때였다.
풋살장을 돌던 김상훈이 어딘가를 향해 달려간 것이.
목적지에 도착한 그가 잔디밭에 무릎을 깔고 슬라이딩을 하기 시작한 것이.
정확히 한 남자의 앞에서 슬라이딩을 멈춘 그가 실실거리며 웃기 시작한 것이 말이다.
“크힠큭!”
실실거리며 웃던 김상훈이 남자의 눈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말을 하기 시작한 김상훈은 더 이상 웃지 않았다.
“어이~이광 씨.”
굴욕적인 세레머니 도발을 당한 이광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김상훈을 노려봤다. 이광은 지금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고등학교 때 축구를 포기한 허접쓰레기를 상대로 패배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지금 뭐하는 짓이야? 너, 지금 나한테 도발하는 거야? 좆같이 못해서 축구 포기한 새끼가?”
그래서 김상훈에게 욕을 하기 시작했다.
- 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가! 도발은 지가 먼저 했으면서 왜 김상훈한테 지랄하는 거야? 아오! 예전에 만났을 때 제대로 교육을 시켜놨어야 했는데.
욕설을 듣던 이찬수는 얼굴이 뻘게진 채 길길이 날뛰었지만, 이광의 말을 잠자코 듣던 김상훈은 오히려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왜 이기지도 못할 거면서 도발을 했어. 그렇게 인성이 쓰레기고 실력까지 쓰레기니까 그 나이 처먹을 때까지 2군에 처박혀 있는 거 아니야.”
“뭐 이 새끼야? 지금은 내가 부상에서 회복한지 얼마 안 돼서 2군에 있는 거지······.”
“아, 아! 당신이 부상을 당했고 말고는 관심 없고, 지금 2군 맞잖아? 그러니까 괜히 어쭙잖게 방송한답시고 까불지 말고 축구나 열심히 하라고.”
“이, 이익·····!”
“아, 그리고 마음을 그렇게 더럽게 쓰니까 머리가 빨리 벗겨지는 거 아닐까? 너 아직 20대라며~? 우와! ‘세상에 이런 일이’에 출연해도 되겠다. 제목은 ‘20대지만 70대 할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좋겠네! 크힠큭큭!”
할 말을 마친 김상훈은 뒤돌아서 자신을 기다리는 팀원들에게 걸어갔다.
그의 뒤에 선 이광은 그동안 당해보지 못했던 치욕에 몸을 부들부들 떨며 김상훈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쉽게 김상훈에게 달려들지는 못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체대형님이 주먹을 꽉 쥔 채, 김상훈의 근처에서 언제든지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
그 모습을 본 김상훈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거기서 뭐해요?”
“혹시나 몰라서······.”
“하하, 고마워요. 기분도 좋은데 경기 끝나고 회식이나 하러가죠. 오늘 제가 쏠게요.”
“오오오! 역시 김상훈 님!”
그때, 휘슬이 울렸다.
삐이이익!
최종스코어 8대 6.
그렇게 BJ풋살대회 결승전은 김상훈 팀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심판이 휘슬을 불자마자 죽을힘을 다해 뛰던 선수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번에는 김상훈 역시 바닥에 주저앉은 채 축 늘어져버렸다.
- 야, 상훈아. 괜찮냐?
“예, 뭐.”
이찬수의 말에 괜찮다고 대답한 김상훈.
하지만 그의 이마에는 이상할 정도로 많은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표정 역시 좋지 못했다.
“오랜만이네. 이 느낌·······.”
오랜만에 느껴지는 느낌에 김상훈은 조용히 자신의 무릎을 바라봤다.
***
포기.
하려던 일을 도중에 그만두어 버린다라는 뜻의 이 단어는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친숙한 단어다.
살다보면 누구나 포기를 해야 할 상황에 맞이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때 포기 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김상훈 역시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다.
“진짜······다시 해볼까······?”
작은 중얼거림.
그 중얼거림에 쥐죽은 듯 허공을 떠다니던 한 남자가 고개를 내밀며 대답했다.
-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다시 말해봐!
“축구, 다시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 그럼 그걸 쓰려고?
“솔직히 고민이 되긴 하는 데요······.”
- 고민할게 뭐가 있어? 개사기 스킬도 펑펑 퍼주지, 게임처럼 능력치도 계속 오르지. 인마, 내가 너 같은 능력이 있었으면 죽기 살기로 축구를 했을 거야. 게다가 그걸 쓰면 그 부상도 완치가 되잖아?
부상,
김상훈, 그가 축구선수라는 꿈을 포기하게 됐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
일정시간 이상을 뛰면 바늘로 뼈를 찌르는 것 같은 고통으로 그를 괴롭혔던 끔찍한 부상.
국내 최대 크기의 병원이라는 한국대학병원에서도 완치가 불가능하다고 진단을 내린 부상.
김상훈은 그런 부상을 달고 있는 무릎을 조용히 내려다봤다.
이찬수와 대화를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역시 그의 무릎에서는 무시무시한 고통이 느껴지고 있었다.
- 막말로 어차피 한번 사는 거 나처럼 언제 뒈질지도 모르는데 아껴서 뭐해? 아끼면 똥 된다는 말 알지? 그거 실화야. 시발 내가 아직 쓰지 못한 돈만 얼마인지 알아? 그 생각만하면 나는 아직도 치가 떨려. 그러니까 인마, 만약 나한테 그런 아이템이 떴으면 그 자리에서 당장 처먹었을 거야.
옆에서 떠들어대는 이찬수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김상훈.
이윽고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써버리죠 뭐.”
- 그래, 잘 생각했다. 근데 왜 생각이 바뀐 거야?
“일단 너무 아파요. 축구를 오래 쉬니까 좀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요 며칠 무리해서 뛰고 난 뒤로 무릎이 미친 듯이 아파요. 짜증날 정도로. 그리고 축구선수를 하려면 더 많이 뛰고 더 거칠게 훈련해야 할 텐데, 이런 무릎으로는 택도 없잖아요.”
동시에 그의 머릿속으로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며칠 전, 화장실에 간 김상훈은 레드 박스에서 나왔던 사다리 타기 아이템을 오픈했고, 그 사실을 밝히자 이찬수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 씨발, 혼자 사다리를 탔다고?
“예.”
- 이런 젠장! 의리도 없는 새끼. 치사한 새끼! 그래서 좋은 거 떴어? 요것 봐라? 왜 그렇게 실실 쪼개? 아오, 표정 보니까 떴나보네!
사다리의 결과에 대해서 재촉하는 이찬수.
김상훈은 말없이 이찬수의 눈앞에 사다리에서 나온 결과물을 보여줬다.
허공에 떠다니는 아이템 하나.
그것을 본 이찬수는 너무 놀라서 입을 쩍 벌린 채 침까지 질질 흘려댔다.
회상은 여기까지.
- 뭔 생각하냐?
“아, 며칠 전에 이찬수 선수가 추잡하게 침 질질 흘리던 모습이 생각나서요.”
- 뭔 개소리야! 내가 언제?!
“기억 안 나세요?”
- 다, 당연하지!
“와······뻔뻔하시네. 하여튼, 이 지긋지긋한 부상 좀 회복하고 축구를 제대로 다시 해보려고요.”
말을 마친 김상훈은 허공에 떠있는 아이템을 바라봤다.
***
[건강한 몸으로!]
- 등급 : 히어로(H)
- 효과 : 섭취 시, 사용자의 모든 부상과 질병이 100% 회복된다.
알약 형태의 아이템.
그것을 바라보는 김상훈의 눈이 빛났다.
겉으로는 별 볼일 없는 이 아이템은 무려 히어로(H)등급의 아이템이었다.
최종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레전드(L)등급의 바로 밑등급인 이 아이템은 등급에 걸맞은 무시무시한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모든 부상과 질병이 100% 회복된다니.’
설명대로라면 현대의학으로는 절대로 설명하지 못할 비현실적인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그 비현실적인 효과 때문에 김상훈은 이 아이템을 지금 먹어야하는 지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의 김상훈은 굳이 축구를 하지 않아도 인터넷방송만으로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당장 부상을 회복하지 않아도 무리한 운동을 하지만 않으면 크게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그는.
혹시나 암과 같은 무서운 질병에 걸렸을 때를 대비해서 ‘건강한 몸으로!’아이템을 아껴두는 것이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축구를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뒤로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고민이 사라지자 김상훈은 히어로급 아이템을 아무렇지 않게 입에 넣고 삼킬 수 있었다.
꿀꺽!
- 맛있냐?
“입에 넣자마자 삼켰는데 무슨 맛을 느끼겠어요.”
동시에 마스터리그 시스템이 그 결과를 알려줬다.
[건강한 몸으로!(H)를 섭취하셨습니다.]
[모든 부상과 질병이 100% 회복됩니다.]
메시지가 울리자마자 잔디밭에 앉아있던 김상훈이 소리를 지르며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
- 뭐야? 왜 그래? 효과 없어? 사기였어?
“무릎이 아프지가 않아요!”
건강한 몸으로!(H)의 효과는 진짜였다.
선수생활 내내 그를 괴롭히던 고통이 한순간에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린 것이 그 증거였다.
김상훈은 기쁜 마음에 잔디밭을 방방 뛰어다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찬수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 짜식, 그렇게 좋냐?
부상 때문에 축구를 그만둔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오랫동안 축구를 해온 이찬수는 잘 알고 있었다.
어느덧 정이 들어버린, 미친놈처럼 방방 뛰어다니고 있는 김상훈을 바라보던 그의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어? 이찬수 선수, 울어요?”
어느새 다가온 김상훈이 그 모습을 보며 멋쩍게 웃었다.
- 미, 미친놈이! 울긴 누가 운다고 그래?!
“제 일을 본인 일처럼 생각해주시다니······. 정말 감동이에요. 그러면 이걸 보시면 더 감동하시겠네요?”
멋쩍게 웃던 김상훈이 방금 전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들을 이찬수의 눈앞에 띄웠다.
그리고 멍하니 허공에 띄워진 메시지들을 바라보던 이찬수의 이마에 핏줄이 돋기 시작했다.
- 이런 미친! 이건 또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