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들린 축구선수-4화 (4/200)

4화 정확한 슈팅

풋살.

정식으로는 실내에서 5대 5로 펼쳐지는 미니 축구 경기.

전 세계적으로 널리 행해지고 있으며 보통 배구 코트 크기의 경기장에서 펼쳐진다.

다른 나라에서도 인기가 있지만, 한국에서 풋살은 학생, 직장인, 정년퇴직한 공무원 등을 가릴 것 없이 많은 남자들이 좋아하는 스포츠다.

비록 5대 5 미니 축구 경기이라고는 해도, 좁은 곳에서 펼쳐지다보니 오히려 11대 11로 펼쳐지는 정식 축구보다 경기속도나 개인기는 더욱 빠르고 화려한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풋살선수 출신인 축구 슈퍼스타들이 아직도 브라질에서는 자주 나오고 있었다.

- 나도 어릴 때는 풋살 진짜 많이 했었는데. 이야, 옛날 생각난다! 동네에서 내가 끼면 무조건 이긴다고 형들이 엄청 데리고 다녔는데.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크흐흐, 그땐 그냥 왕대접을 받았지.

이찬수의 말 그대로였다.

남자들끼리는 축구를 잘하면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이 사실이었기에.

그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김상훈 역시 한때는 개인기에는 자신이 있는 편이었기 때문에 풋살을 즐겼었다.

‘오랜만이네.’

그런 그가 축구를 그만둔 지 8년 만에 인공잔디 위에 서서 같은 팀 비제이가 건넨 공을 받았다.

툭!

천천히 굴러오는 공이 김상훈의 축구화에 닿았지만, 같은 극의 자석이 만난 것처럼 공은 그의 발에서 약하게 튕겨나갔다.

“아으.”

선출이었다고는 하나 8년을 쉬어서인지 기본적인 볼트래핑 실수가 나온 것.

그 장면을 보던 이찬수가 혀를 찼다.

- 쯧, 뭐하냐? 선출 맞아?

기본적인 실수를 범했지만, 김상훈의 표정은 구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억지로 그동안 공을 차지 않았지만, 그 역시 축구를 그 누구보다도 좋아하던 남자.

공을 차는 것만으로도 그의 마음에 즐거움이 번지기 시작했다.

입가에 미소를 가득 담은 김상훈은 빠르게 움직였다.

공이 조금 튀었다고는 하나 말 그대로 조금 튄 것.

김상훈은 재빠르게 오른발을 이용해서 다시 공을 자신에게 가져왔다.

이어진 패스.

툭!

조금 긴 패스는 인공잔디를 가르며 앞으로 전력질주를 하던 비제이의 발 앞으로 향했다.

8년을 쉬었다고는 하나 선출은 선출.

김상훈의 패스는 적어도 풋살장에 있는 일반인들에게는 너무나 빠르고 정확한 훌륭한 패스였다.

하지만, 한 남자에게만큼은 전혀 훌륭하게 보이지 않는 패스였다.

그리고 그 남자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다.

곧바로 잔소리를 시작했다.

- 너 고딩 때까지 선출이라고 했지? 후…..! 우리나라 고딩 수준이 다 너 같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인마, 패스를 할 때는 공을 쳐다보고 하는 게 아니라 패스를 할 공간이나 사람을 보고 해야지!

‘아니, 제가 그런 걸 할 줄 알았으면 선수를 하고 있었겠죠!’

다른 사람의 잔소리였다면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잔소리를 하는 남자는 다른 사람도 아닌, 이찬수였다.

커다란 목소리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김상훈은 마음속으로는 이찬수의 잔소리를 새겨들으려고 노력했다.

비록 저질스럽고 말이 너무 많은 귀신이지만, 축구에 관해선 도사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남자가 바로 이찬수였기 때문이다.

김상훈은 그렇게 귀로는 이찬수의 잔소리를 들으며 눈으로는 자신이 뿌린 패스를 끝까지 쳐다보고 있었다.

‘체대형님이라고 했지?’

닉네임에 체대가 붙었으니 이 정도 수준의 패스라면 아주 쉽게 받아서 골까지 연결할 것을 김상훈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건 골이다.’

이윽고 체대형님은 김상훈이 건넨 패스를 터치하지 않고 다이렉트로 슛을 날렸다.

아니, 날리려고 했다.

휙!

동시에 김상훈과 이찬수의 입에서 묘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엑?”

- 히엑?

그들은 꽤 좋았다고 생각한 패스를 헛발질로 날려 보내는 체대형님의 슈팅에 그야말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체대형님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김상훈을 향해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체대긴 한데, 복싱 쪽이라······.”

- 하하하! 야, 쟤 완전 허당인데? 슛하는 자세만 봐도 개발일 거 같은데? 저 자세라면 아마 공에 발을 가져다 댔어도 그대로 나로호슛을 날렸을 거야. 어떻게 저런 애가 공격을 하고 있는 거지? 재밌네, 이거.

그런 체대형님의 말에 김상훈은 괜찮다는 듯 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이찬수의 말대로 공격수가 골을 넣지 못하면 이기는 것이 힘들어 질 수도 있었다.

다만, 기분은 좋았다.

- 근데, 너 패스실력은 제법 괜찮은데? 그래봤자 epl이나 프리메라리가에서는 통하지 않을 수준의 패스지만 말이야.

“그거 칭찬이죠?”

- 칭찬은 아니고, 패스하기 전에 공보고 패스하는 거만 고치면 꽤 쓸 만할 것 같더라.

“노력해볼게요.”

‘패스마스터’라고도 불리던 전설적인 선수, 이찬수가 저 정도로 이야기를 할 정도면 그래도 김상훈의 패스가 괜찮았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김상훈의 패스 능력치는 61.

프로선수까지는 아니어도 준프로급 수준의 능력치라고는 말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 말은 즉.

이곳에 있는 상대팀들을 긴장시키기에는 충분한 패스실력이라는 것.

“야! 김상훈 님, 패스 존나 잘해! 패스 마음대로 못하게 마크 제대로 해야지.”

“야야! 제대로 막으라고! 스루패스 조심해!”

이곳에서만큼은 사비, 이니에스타가 부럽지 않은 패스마스터 흉내를 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

경기가 시작되고 20분이라는 시간이 지나자 모두들 뛰던 것을 멈추고 입고 있던 형광색 조끼를 벗어던졌다.

“헉······ 헉······.”

다들 운동을 취미로 하는 수준이었고, 아예 하지 않는 사람들도 태반이었기 때문에 20분을 뛴다는 것은 그들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공잔디 위에 누워서 포카리스웨트를 입에 물고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 체력들 봐라. 그거 뛰었다고 잔뜩 퍼졌네.

그런 모습에 이찬수는 문화충격이라도 받은 것 같은 표정으로 투덜댔다.

“그래도 다들 열심히 하잖아요.”

- 열심히는 하지. 열심히는. 근데 이렇게 해서 우승할 수 있겠어? 네가 찔러준 패스, 대부분 괜찮았는데 죄다 놓쳤잖아?

말 그대로였다.

김상훈은 20분 동안 양질의 패스를 꾸준히 공격수인 체대형님에게 넣어줬고.

당연하게도 체대형님은 충격적인 실력으로 그 패스를 전부 다 놓치는 것에 성공했다.

수비 역시 불안했다.

너무 불안해서 중앙 포지션에 위치한 김상훈이 직접 수비까지 내려가서 걷어낸 것만 5번이 넘었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 김상훈에게 걱정은 없었다.

- 그래서, 그거 언제 쓰려고?

“그거요?”

- 그래, 그거.

“후반전에 써봐야죠.”

그에게는 아직 초필살기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쉬는 시간에 푹 쉬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상대의 움직임이 꽤나 날카로웠다.

김상훈조차 놀랄 정도로 강력한 슈팅까지 날린 상대팀.

다행히도 슈팅은 골문을 살짝 벗어났고 공은 김상훈 팀의 소유로 넘어왔다.

골키퍼가 수비수에게 공을 패스했고, 수비수가 김상훈에게 그 공을 패스했다.

공을 받은 김상훈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체대형님을 불렀다.

“체대형님.”

“예?”

“부탁 한 번만 할게요. 사이드로 빠르게 뛰어가셔서 상대 수비들 시선 좀 끌어주세요.”

“예!”

전반전에 김상훈의 실력을 봤기 때문에 체대형님은 그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담스러울 정도로 열정이 가득한 눈빛을 보내며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동시에 사이드로 튀어나가는 체대형님.

그 모습을 본 김상훈은 씨익 웃으며 생각했다.

‘달리기는 참 빠르네.’

동시에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을 바라봤다.

[정확한 슈팅]

- 등급 : 히어로(hero)

- 효과 : 체력을 랜덤으로 1에서 20까지 소모해서 원하는 곳에 슈팅을 할 수 있습니다.

최고 등급인 레전드(L)등급 바로 아래등급인 히어로(H)등급의 스킬이 얼마나 위력적인지는 마스터리그를 여러 번 해본 김상훈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어째서 겨우 레드 박스에서 히어로(H)등급의 스킬이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나왔으니 땡큐였다.

다만, 조금 걱정은 됐다.

‘지금 내 체력이 52이니까 랜덤으로 체력이 20이 소모되면 2번 밖에 못 쓰는 거잖아?’

김상훈의 체력이 현재 겨우 52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걱정의 이유였다.

마스터리그에서 체력이 바닥났을 때, 그 선수가 어떻게 되는지는 그 누구보다도 김상훈이 잘 알고 있던 것도 걱정의 이유였다.

더군다나 지금은 전반 20분을 뛰어서인지 체력이 52가 아닌, 40까지 떨어져있는 상황!

그럼에도 김상훈의 표정은 편안해보였다.

‘아직은 체력에 여유 있으니까 한번 써보지 뭐.’

최소한 한번은 사용할 수 있는 체력이 남아있었고, 만약 체력이 다 떨어지면.

‘힘들다고 교체돼서 나가지 뭐.’

푹신한 인공잔디 위에 드러누워서 쉴 생각까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을 마친 김상훈은 곧바로 공을 끌고 전방으로 빠른 속도로 드리블을 시작했다.

공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헛다리를 짚어나가는 그의 드리블에 상대 수비는 움찔움찔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막기 힘들 걸?’

이 드리블은 실제로 김상훈이 중학교 때까지 상대 수비를 힘들게 만들던 기술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있었다.

왠지 여기서는 통할 것 같다는 생각에 시도했던 기술이었고, 예상대로 상대는 당황했다는 것이 표정에서 드러났다.

김상훈은 몇 번 페이크 발동작을 넣은 뒤, 왼발로 강하게 헛다리를 짚고 오른발로 공을 차서 대각선으로 빠르게 튀어나갔다.

상대 수비는 그 동작에 완벽하게 속아 넘어가서 허무한 표정으로 빠르게 달려가는 김상훈을 쳐다봤다.

이제 남아있는 수비는 없었다.

오직 골키퍼뿐.

“정확한 슈팅. 이거 이렇게 말하면 써지는 거 맞나?”

그리고 김상훈은 바로 지금이 스킬을 쓸 타이밍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윽고 ‘정확한 슈팅’이라는 말을 뱉으며 슈팅자세를 취한 김상훈은 자신의 발이 하얗게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오오! 그거 뭐냐? 발이 빛나는데? 시발, 어릴 때 오락실에서 했던 축구게임이 생각나네. 그때 필살기로 독수리 슛 날리면 지금 너처럼 발에서 빛나면서 존나 쎈 슛이 나갔었는데 말이야.

순간 놀라서 넘어질 뻔했지만, 다행히 김상훈은 중심을 유지한 채 골대를 바라봤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이런 미친!’

A4용지 크기의 사각형모양으로 잘게 나눠진 골대를.

직사각형모양의 골대를 여러 조각으로 만들기 위해서 빨간색 선으로 그어놓은 듯한 모양을 하고 있는 모습을 말이다.

‘그래,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한번 해보자.’

김상훈은 안되면 말자라는 식으로 가장 왼쪽 구석 위에 위치한 사각형을 바라보며 슛을 날렸다.

퍼엉!

슛 파워는 강력한 편이 아니었다.

조금 실력이 있는 골키퍼라면 미리 자리를 잡고 있지 않아도 충분히 반응할 수 있을 정도의 속도.

그러나.

“으헉!”

그 공이 너무나 정확하게 골대의 왼쪽 구석으로 향한다면 아무리 실력이 좋은 골키퍼도 막기 힘든 슛이 되어버린다.

지금 김상훈의 슛이 그랬다.

김상훈의 발에 맞은 공이 그가 노렸던 위치로 정확하게 빨려 들어가 버렸다.

동시에 김상훈의 뒤에 서있던 이찬수가 황당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 야, 이건 진짜 개사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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