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들린 축구선수-3화 (3/200)

3화 축구를 다시 시작하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축구에 미쳐있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말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월드컵이 열릴 때나 일본과의 평가전이 있는 날만큼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말이다.

당연하게도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그냥 축구 자체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아주 많았다.

‘이런 젠장.’

지금 김상훈의 눈앞에서 풋살을 하고 있는 남자들이 그랬다.

그들의 눈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약속시간인 오후 6시가 되려면 아직 20분이나 남았음에도 이미 한바탕 땀을 쫙 뺀 모습.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싱글벙글 웃으며 뛰어다니는 남자들을 보며 김상훈은 식은땀을 흘렸다.

‘대충 뛰었다간 뭔 일 나겠는데?’

비제이 풋살대회 공식방송이 열리기까지 3일이 남은 상황.

애초에 우승 같은 건 관심이 없었기에 김상훈은 설렁설렁 뛸 생각으로 연습을 하러 왔다.

하지만, 저들 앞에서 그렇게 했다간 지금처럼 웃는 모습을 보긴 힘들 것 같았다.

- 큭큭, 야! 너 대충 뛰었다간 쟤들한테 맞아죽겠다. 쟤네 눈빛 보이지? 저건 진짜 장난이 아니야. 실력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쟤네는 축구를 진짜 좋아하는 애들이라는 거지. 예전에 내가 맨체스터유나이티드랑 경기했을 때, 웨인 루니가 저런 눈빛을 가지고 있었는데 실제로 같이 뛰어보니까 진짜 미친놈처럼 뛰더라. 확실히 내 경험상 저런 눈빛을 가진 애들은 축구에 미쳐있는 애들이라 조심해야 돼. 그나저나 루니 그 친구 참 잘했었는데 말이야. 요즘에도 잘하냐? 아, 내가 죽기 전에도 전성기가 끝난 것처럼 보였으니까 잘 못하려나. 하여튼 쟤네들은 전성기 때의 루니랑 비슷한 눈빛을 보여주고 있는 애들이야. 그만큼 열정이 있는 친구들일 확률이 높지. 네가 선출이라고 쟤네들 무시했다간 큰일 날 거 같은데?

이찬수의 말이 맞았다.

김상훈 역시 한때는 저런 눈빛을 가지고 축구를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숨을 내뱉었다.

‘에휴, 어떻게든 빠졌어야 하는 건데.’

운영자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것에 후회하며, 김상훈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안녕하세요.”

그들은 연예인이라도 보는 것 같은 표정으로 김상훈을 바라보며 인사했다.

그럴 만도 했다.

지금의 김상훈은 축구선수로 성공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인터넷 방송BJ로는 성공을 했다고 말하기에 충분한 인물이었으니까.

평균 시청자 숫자가 100명이 넘지 않는 비제이인 그들에게는 평균 시청자 5000명, 많으면 수만 명의 시청자들을 이끌고 방송을 하는 김상훈은 쳐다보기도 힘든, 까마득한 높은 위치에 올라있는 인물이었으니까 말이다.

“아, 예. 안녕하세요.”

자신에게 악수를 청하는 비제이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하며 인사한 김상훈은 신고 있던 운동화를 벗고 미리 가져온 축구화로 갈아 신었다.

“김상훈 님, 축구선수 했었다고 들었어요.”

그런 김상훈에게 다가온 비제이들이 기대감 가득한 눈빛을 보내며 말을 걸었다.

“선수라고 하긴 힘들죠. 고등학교 때 그만뒀으니까요.”

“그래도 선수출신이니까 저희랑은 뭔가 다르긴 할 것 같아요.”

“축구하시는 거 보니까 저보다 나을 것 같던데요? 저는 그만둔 지 벌써 8년이나 됐고······.”

“에이, 저희 모두 운영자님한테 김상훈 님이 선수출신이었다는 거 다 들었어요. 그래서 저희는 되게 기대하고 있어요.”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 정도는 아니다’라고 나름대로 확실하게 말했지만, 도통 말이 통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선수출신이니 뭔가 다른 것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감.

그 기대감이 김상훈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아, 그리고 저희가 지금 방송중인데 괜찮으신가요? 불편하시거나 하면······.”

말을 건 비제이, 누군지도 모르는 그 무명 비제이는 씨익 웃으며 삼각대를 연결한 방송용 스마트폰을 김상훈의 얼굴 근처에 들이댔다.

‘방송중이었어?’

갑자기 방송에 참여하게 만드는 건 자칫 무례해보일 수 있는 행동이었지만, 비제이들 사이에서는 큰 문제가 되는 행동이 아니다.

더불어 김상훈 역시 무명시절에는 지금처럼 다짜고짜 자신에게 방송용 스마트폰을 들이대는 남자와 비슷한 행동을 한 적이 아주 많았다.

때문에 김상훈은 웃으며 앞에 서있는 남자에게 친근한 말투로 질문을 했다.

“아······. 비제이 닉네임이 어떻게 되세요······?”

“저는 ‘체대형님’이라고 합니다.”

“아, 반갑습니다. 저는 괜찮아요. 방송하는 사람이 카메라를 피하면 되나요.”

- 푸하하하! 야, 이거 웃긴다. 너네 무슨 온라인 게임 정모하냐? 체대형님? 큭큭큭큭! 너는 닉네임이 뭐냐? 혹시 딸기공주는 아니지?

그 순간 김상훈의 머리 위에서 장난을 치던 이찬수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 그게 아니라면 ‘축구천재 김상훈’이나 ‘김마라도나’ 같은 닉네임 아닐 거라고 믿는다. 만약 그런 닉네임이면 너한테 크게 실망할 것 같으니까.

그 말에 김상훈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물론 자신의 방송용 닉네임이 다행스럽게도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 그대로인 ‘김상훈’이어서 대답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김상훈은 눈앞에 있는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봤다.

스마트폰에는 베테랑 비제이도 다 읽기 힘들 정도로 빠르고 많은 채팅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김상훈의개 : 형님, 뒤지고 싶지 않으면 5골 박으십시오.

김상훈은아이돌 : 상훈아 골당 달풍선 1000개 미션이다. 목숨 걸고 뛰어라잉.

체대언니 : 오빠, 팬이에요. 아, 물론 얼굴을 보고 팬이 된 건 아니에요!

burn7 : 선출이라는 말이 있던데 기대해도 되냐?

burn8 : 다 필요 없으니까 웃기게만 해.

베이직히오스 : ㅅㅎㅇ!

그리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이찬수가 커다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 5골? 그렇게 잘했으면 프로리그에서 뛰고 있었겠지. 얘네가 시청자들 맞지? 얘넨 도대체 뭘 기대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달풍선은 또 뭐야? 그, 돈 같은 거야?

이찬수의 말에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한 김상훈은 몰려오는 두통에 손바닥으로 스스로의 이마를 짚었다.

‘진짜 미치겠네.’

김상훈이 출연하는 방송은 기본적으로 5천 명 이상의 시청자들이 시청을 한다.

지금 역시 마찬가지였다.

15000명.

현재 시청자 수였다.

그들은 이미 자신이 좋아하던 비제이인 김상훈이 축구선출이라는 것을 알고 기대감이 가득한 채팅을 쓰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아프다는 거짓말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김상훈은 그러지 않았다.

그 대신 어제 일어났던 일을 떠올리며, 이마를 짚고 있던 손을 치우고 빛나는 눈빛으로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어제 있었던 일들이 가짜가 아니라면,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어.’

어젯밤 김상훈은 이찬수와 함께 미친 듯이 빛을 뿜으며 돌아가던 레드 박스가 멈추는 순간, 잘만 쉬고 있던 숨도 멈춘 채 그것을 바라봤다.

그 결과.

[정확한 슈팅]

- 등급 : 히어로(hero)

- 효과 : 체력을 랜덤으로 1에서 20까지 소모해서 원하는 곳에 슈팅을 할 수 있습니다.

사기스킬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한 능력을 얻었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김상훈]

- 키 : 179cm

- 주발 : 오른발

- 체력 : 52

- 민첩 : 50

- 패스 : 61

- 슈팅 : 65

- 개인기 : 68

- 잠재력 : 68

- 스킬 : 정확한 슈팅(H)

(세부능력치를 볼 수 있습니다.)

속도, 가속도, 헤딩과 같은 세부능력치까지 볼 필요도 없이 자신의 능력치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야, 솔직하게 말해도 되냐? 이런 말까지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축구를 접은 게 신의 한 수였다고 해도 되겠는데? 더군다나 잠재력이 68이라는 건 네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 이상으로 능력을 올릴 수 없다는 거잖아? 게임 속 평범한 선수들 능력치가 70대인 것을 생각하면 진짜 답 없다······.

이찬수의 말처럼 축구를 빨리 접었던 것이 오히려 자신에게 좋은 선택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다만, 이찬수의 말 덕분에 오히려 김상훈은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부담감을 떨쳐낼 수 있었다.

게다가.

‘그래, 어차피 더 이상 떨어질 바닥도 없어. 조금 쪽팔리긴 하겠지만, 뭐 어쩌겠어.’

김상훈이 인터넷 방송으로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겪었던 일들에 비하면 축구를 못했을 때 느낄 쪽팔림은 별로 심한 것도 아니었기에.

“몸 다 푸시면 말씀해주세요.”

“예.”

김상훈은 무덤덤한 얼굴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몸을 푸는 건 축구를 그만둔 지 8년이 지났음에도 젓가락질을 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한 때는 누구보다 운동을 열심히 했다고 자부했을 정도로 노력했던 적이 있었던 만큼.

김상훈의 몸은 간단한 몸 풀기 운동조차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저 몸 다 풀었습니다.”

“그럼, 형광색 조끼 입고 들어와 주세요.”

운동용 레시가드 위에 형광색 조끼를 입은 김상훈이 드디어 인공잔디가 깔린 풋살 경기장 위에 올라섰다.

비록 축구가 아닌 풋살이었지만, 8년 만에 공을 차게 된 김상훈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지금은 그만뒀지만 과거의 그에게는 꿈이자 모든 것이었던 것.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그때만큼의 열정은 없었지만, 적어도 설렁설렁하겠다는 생각은 27세가 된 지금의 김상훈에게는 조금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찬수의 얼굴에도 장난기 넘치던 표정이 사라졌다.

- 가자!

그렇게 축구를 그만둔 지 8년 만에 김상훈이 다시 공을 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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