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들린 축구선수-1화 (프롤로그) (1/200)

K22

프롤로그

김상훈, 그가 처음 축구를 제대로 본 것은 2002년 월드컵 때였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4강에 진출한 역사를 세운 그 날.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축구를 보던 어린 김상훈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마가 찢어져 피를 흘리면서도 붕대를 칭칭 감고 다시 그라운드 위로 올라와 미친 듯이 뛰는 선수, 체력이 전부 떨어졌음에도 상대를 끝까지 놓아주지 않는 선수들을 보며 고사리 같은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대~한~민~국!

그런 그는 ‘대한민국’을 크게 외치며 몇 가지의 꿈을 갖게 됐다.

하나는 축구선수가 되는 것.

다른 하나는 최고의 축구선수가 되는 것.

마지막으로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의 주역이자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로 뽑혔던 이찬수에게 축구를 배우는 것.

하지만 어린 그의 꿈은 축구선수로서 재능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고등학교 3학년 때 전부 사라지게 됐다.

그런데 27살이 되어버린 지금, 그에게 이상한 일이 생겼다.

- 이거 뭐야? 내가 왜 여기 있어? 나는······.”

“이찬수?!”

이찬수.

프리메라리가에서 유명한 라이벌이자 최고의 팀을 가릴 때면 항상 이름이 올라오는 팀, 바르셀로나와 레알마드리드 두 팀에서 뛰었던 최초의 선수.

그것도 양 팀의 핵심멤버로 활동했던 최초의 선수.

축구선수에게 최고의 명예로 꼽힌다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

그 우승 트로피를 5번이나 들어 올린 남자.

아시아인이면서도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노 호날두 같은 전설적인 선수들과 동등한 평가를 받던 남자.

“아니, 이찬수는 분명히 죽었는데······.”

그리고 1년 전,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대한민국뿐만이 아닌 전 세계 축구 팬들을 슬픔에 휩싸이게 만들었던 남자.

-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이 왜 자꾸 반말이야? 딱 봐도 존나 어려보이는 구만.

샛노란 헤어스타일을 한 그 남자가 지금 귀신처럼, 게임 속 홀로그램 NPC처럼 김상훈의 앞에 서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너무······. 믿기지가 않아서 그만······.”

- 근데, 너 뭐하냐?

이찬수는 이상한 것을 다 본다는 듯 김상훈을 쳐다봤다.

“예? 축구게임 하는데요?”

- 아니! 축구게임인 건 알겠는데, 왜 너한테 빨려 들어가고 있냐고?

“예? 이건 그냥 게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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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알아들을 수 없는 문자들과 함께 컴퓨터 모니터에 띄어져 있던 게임, ‘오늘도 위닝’이 작은 조각들처럼 부서진 채로 김상훈에게 빨려 들어오고 있었다.

“뭐, 뭐야!”

- 아오! 놀래라. 뭐가? 뭔데 그래?

“이찬수 아니, 이찬수 선수?! 이게 도대체 뭐예요?”

-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아악!”

- 왜? 왜 그래!?

“이거 너무 따가워요. 무슨 문신하는 것도 아니고.”

- 엄살은!

축구선수로서의 꿈을 접은 김상훈은 축구게임과 귀신.

두 가지의 특별한 것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1화 당신이 여기서 왜 나와?

대한민국의 축구선수를 꿈꾸는 사람들, 그들이 꿈을 접는 이유로는 몇 가지가 있다.

재능, 인맥, 부상.

대부분의 프로축구선수를 꿈꾸는 이들은 이 문제들에 막혀서 꿈을 포기한다.

지이잉! 지이이잉!

탁!

김상훈은 책상 위에 올려 져 있던 스마트폰을 거칠게 들어서 전화를 받았다.

- 안 하시겠다고요?

“예, 안 합니다.”

- 왜 안 하신다는 겁니까?

김상훈.

그 역시 그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해 프로축구선수의 꿈을 접은 남자였다.

초등학교 시절까지 5명, 6명을 아무렇지 않게 재껴내던 화려한 드리블 기술은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 통하지 않게 되었고, 또래에 비해 좋은 편이었던 피지컬도 시간이 지날수록 평범하게 변했다.

게다가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부터는 그보다 실력이 좋지 않은 이들이 그를 제치고 선발로 경기에 나서기까지 했다.

그게 인맥 때문이라는 것을 김상훈은 시간이 꽤 많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재능과 인맥.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밤낮으로 강도 높은 훈련을 거듭한 탓에 부상이라는 문제를 얻었다.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지만, 잦은 부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재능이 없고 인맥까지 없던 그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기는 충분했다.

그렇게 김상훈은 그 문제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어릴 적부터 품었던 프로축구선수로 성공하고자 하는 꿈을 포기했다.

그렇게 오로지 축구만 바라봤던 김상훈은 대학진학마저 포기하고 군입대를 했다.

군대를 전역하고 난 뒤, 그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고 그러다 우연히 접한 것이 바로 인터넷 방송이었다.

“운영자님, 제가 이거 꼭 나가야합니까? 저 이때 컨텐츠 있는 날인데······.”

-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김상훈 님께서 나와 주시면 이번 공식방송, 시청률 진짜 좋을 거예요.

“아니, 저도 스케줄이 있는 사람인데······. 게다가······.”

인터넷 방송, 그것도 축구게임을 주 컨텐츠로 정해서 방송을 한 지 5년 차.

노력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던 김상훈은 잠까지 줄여가며 인터넷 방송에 매진했고, 결국 그는 bj중 가장 높은 등급인 ‘파트너 비제이’이자, 인터넷 방송 팬들 사이에서 최고의 bj를 부르는 호칭인 ‘사황’이라고 불리는 네 명 중 하나가 됐다.

“아오.”

이제는 축구를 버리고 인터넷 방송에 모든 것을 걸고 살아오던 김상훈에게 다시 축구라는 녀석이 나타난 것은 그의 뜻이 아니었다.

‘아! 운영자 이 사람은 어디서 내가 선출이라는 소리를 들은 거야?’

가장 잘 나가는 파트너 비제이 중 하나였음에도 운영자의 말을 거역하기 힘들다는 것이 그가 축구를 다시 하게 될 상황을 만들었다.

축구라는 놈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서, 자신의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에게까지 선출인 것을 비밀로 했었는데,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아낸 운영자가 갑자기 김상훈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는 다음 주에 있을 비제이 풋살대회에 참여해달라고 했다.

그것도 공식방송이다.

인터넷방송국인 아프리타TV와 파트너 비제이 계약을 체결한 김상훈은 거절하기 부담스러운 제안.

물론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김상훈은 제안을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각종 핑계와 변명을 늘어놨다.

너무 못해서 축구를 그만뒀다고 말했다.

그만둔 지 무려 8년이나 됐고 부상까지 있다고 했다.

8년 동안 축구공은커녕 친구 엉덩이조차 걷어차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운영자는 반색하며 말했다.

- 8년 동안 안 했으니까 부상은 다 나았겠네요? 그리고 아무리 못하셨다고 해도 일단 선출이시면 일반인들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이실 거 아니에요. 그리고 김상훈 님은 군필자이시잖아요? 솔직히 군대에서는 조금이라도 축구를 하셨을 거 아니에요. 그럼 어느 정도 감각도 살아 있으실 것 같고. 이야, 그럼 비제이들 사이에서는 완전 날아다니시겠네요!

‘뭔 개소리야, 지금 축구하기 싫다고 계속 말하고 있구만.’

끝까지 핑계를 댔지만, 낮게 깔리는 운영자의 목소리에 김상훈이 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

그저.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열심히 해보겠다는, 그 말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운영자의 목소리가 다시 높게 올라갔다.

- 하하하하! 그럴 줄 알았습니다. 파트너 비제이시잖아요? 역시 공방 참여율은 우리 파트너 비제이님들이 최고라니까요?

그리고는 김상훈이 아주 잘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 김상훈 님, 잠시만요! 이 대리, 김상훈 님이 참여한대! 이번에도 시청률 대박일 게 뻔하니까 제대로 준비해! 광고 제대로 넣고, 김상훈 님이 선출이니까 기대치 최대한 높게 광고영상 제작하는 거 잊지 말고!

그 덕분에 김상훈은 금방 상황 파악을 할 수 있었다.

‘내가 날아다닐 실력이 있었으면 비제이가 아니라 축구선수를 하고 있었겠지.’

자신이 어떤 변명을 했어도 결국에는 비제이 풋살대회에 나갔을 것이라는 사실을.

‘아, 진짜 짜증나네. 시상식이 얼마 안 남지만 않았어도.’

만약 나가지 않는다면 연말에 있을 아프리타TV시상식에서 큰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

“아······. 운동을 조금은 해둬야 하려나.”

축구를 그만두고 나서 운동을 아예 놔버렸기 때문에 김상훈의 몸 상태는 엉망이었다.

배에 잡혀있던 탄탄한 복근은 어느덧 축 처진 뱃살이 되어 있었고, 근육으로 가득했던 허벅지는 지금은 힘을 주지 않는 이상 물렁물렁한 살덩이로만 보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하네.”

이런 몸 상태로는 축구경기 풀타임인 90분은커녕 30분조차 제대로 뛰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냥 나가서 대충 뛰지 뭐. 방송 준비나 하자.’

그런 김상훈의 시선이 그의 방송 장비로 향했다.

24인치 모니터 두 개와 방송용 마이크, 200만 원 상당의 컴퓨터 본체는 축구를 그만 둔 그를 지금까지 먹고 살게 해준 소중한 자산이었다.

김상훈은 여느 때처럼 방송 설정을 만지며 ‘오늘도 위닝’에 접속했다.

그에게는 방송을 시작하기 전에 치르는 의식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게임 3판을 하는 것이었다.

‘오늘도 잘 부탁합니다. 이찬수 선수.’

김상훈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게임 속 자신의 팀의 에이스를 맡고 있는 이찬수의 능력치를 바라봤다.

비록 게임이지만, 레전드급 선수인 이찬수의 능력을 현실적으로 반영한 게임 캐릭터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압도적인 능력치를 지니고 있었다.

이 이찬수 카드를 얻기 위해서 얼마나 개고생을 했던가.

현질을 한 것만 1000만원에 가까웠고, 시간도 6개월 가까이 걸렸던 것 같다.

레전드 카드는, 특히 이찬수라는 선수는 ‘오늘의 위닝’에서 그만큼 얻기 힘든 카드였다.

‘정말 운 좋게 얻을 수 있었지.’

동시에 김상훈에게 있어 슬픈 현실을 알려주는 일이기도 했다.

‘설마 1년 전까지 현역으로 뛰던 이찬수 선수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을 할 줄이야.’

은퇴를 하거나 사망한 선수 중, 유명한 축구선수를 ‘오늘의 위닝’에서는 레전드 급 선수로 분류한다는 것은 김상훈이 슬픔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슬픈 마음을 가득 안고 김상훈은 게임을 시작했다.

잠시 후, 그는 목에 핏대를 세우고 소리를 바락바락 질러대기 시작했다.

“이찬수 이 새끼, 완전 똥캐릭이잖아! 아오, 팔아버릴 수도 없고! 어떻게 그걸 못 넣어?”

게임 속에서 중요한 찬스를 여러 번 날려먹는 이찬수 캐릭터를 향해, 김상훈은 성질을 냈다.

그러자 대답이 들렸다.

- 이거, 완전 돌아이 아니야?

“헉, 뭐야?”

- 뭐긴 뭐야. 나 이찬수인데,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예? 제가요?”

- 너, 지금 내 욕했잖아. 다시 한 번 해보라고.

“아니, 근데 도대체 여기엔 어떻게······?”

- 응? 그러게. 내가 여기 왜 있냐? 근데 나 몸이 왜 이러지?

김상훈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눈앞에 방금까지 실컷 욕하던 이찬수가 반투명한 모습으로 공중에 떠 있었으니까.

그런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잠깐, 이찬수라고?!”

- 아니, 이 새끼는 아까부터 왜 자꾸 반말이야. 싸가지 없이.

“말도 안 돼, 당신은 분명 1년 전에 죽었는데······.”

- 죽은 거는 나도 알고 있어. 그때의 고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으니까. 근데 내가 여기에 왜 있는 거지?

“예? 그걸 저한테 물어보면 어떡해요?”

그때, 김상훈은 그를 최고의 비제이 중 한 명으로 우뚝 서게 만들어준 축구게임, ‘오늘의 위닝’이 실행된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바라봤다.

모니터를 바라보던 김상훈은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의자에서 재빨리 일어나려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모니터 화면에서는 게임이 퍼즐조각처럼 계속해서 잘게 나눠지고 부서지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고, 그 수백, 수천 개의 조각들이 순식간에 김상훈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거 왜 이래요?”

-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아악!”

- 왜? 왜 그래!?

“이거 너무 따가워요. 무슨 문신하는 것도 아니고.”

- 엄살은!

겁이 난 김상훈은 제자리에서 옷을 벗었다. 팬티 한 장도 남기지 않고 입고 있던 모든 옷을 빠르게 벗어버렸다.

- 야, 야! 씨발. 옷 안 입어? 별로 볼품도 없는 걸 왜 나한테 보여주는 거야?

“아니, 다쳤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볼품이 없다니요. 눈이 삐었어요? 제 고등학교 때 별명이 아나콘다였는데.”

혹시나 몸에 문신처럼 흉터가 남을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김상훈은 걱정을 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그의 몸은 아무런 흉터도 없이 깨끗했다.

그때, 익숙한 소리가 김상훈의 귀에서 들려왔다.

그것도 마치 이어폰을 꽂고 듣는 것처럼 아주 선명하게.

[위닝-마스터리그가 시작됩니다.]

그 소리는 ‘오늘의 위닝’을 실행할 때마다 들어왔던, 김상훈에게는 아주 익숙한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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