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 192화
50. 외전. 구름 동물병원(2)
“이 근처일 텐데.”
재인은 걷다가 멈춰 서서 주변을 잠깐 둘러보았다.
편집자가 소개해 준 구름 동물병원을 찾아 아실리와 포이의 건강 검진을 받아보려고 온 길이었다.
“포잉, 포잉!”
메고 있는 이동장 안에서 포이가 재인을 불렀다.
-어디서 엄청 맛있는 냄새가 나!
-그러게, 고소하고 짭짤하고 달콤하고!
아실리도 맞장구를 쳤다.
뒤늦게 재인도 맛있는 냄새를 맡고 홀린 듯이 그쪽으로 걸어갔다.
“저기서 나는 냄새네.”
길모퉁이에 부리토와 샌드위치를 파는 작은 가게가 있었다.
머리에 요리사 모자를 쓴 중년 남자가 철판에 다진 고기와 야채를 볶고 있었는데 지글지글 소리와 냄새가 절로 침이 꿀꺽 넘어가게 했다.
맛집인지 식사 때가 아닌데도 줄이 제법 길었지만 요리사의 손이 빨라서 줄이 제법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걸 보고 재인도 이동장을 멘 채 줄 뒤에 섰다.
“어서 옵쇼! 오호! 처음 뵙는 손님인데, 동물 친구랑 같이 오셨구먼? 강아진가, 고양인가?”
“고양이랑 토낍니다. 비프 부리토 하나랑 햄치즈야채 샌드위치 하나 주세요.”
“예압, 맛있게 해드리지요잉!”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주인 아저씨는 동물을 좋아하는지 철판에 고기를 볶고 소스를 끼얹는 중에도 재인이 메고 있는 이동장을 힐끗거렸다.
음식 냄새를 맡느라 이동장의 문에 코를 바짝 갖다댄 아실리의 얼굴을 본 아저씨가 갑자기 깜짝 놀란 듯 말을 걸었다.
“아니, 너 백호 아니여?”
“예?”
“손님, 데리고 계시는 고양이가 혹시 백호 아닌가여?”
“백호요?”
재인의 어리둥절한 얼굴을 본 아저씨가 얼른 사과했다.
“어, 미안합니다. 그, 내가 아는 고양이랑 너무 닮아서. 그 고양이 이름이 백호거든요.”
“아 네.”
몽당연필 작가의 고양이 말고도 아실리랑 닮은 고양이가 또 있나 보다. 우리 아실리가 그렇게 흔한 생김새는 아닌데.
“백호는 우리 집 단골손님네 고양이인데, 손님 고양이가 백호랑 정말 닮았구먼요. 그렇게 생긴 냥이는 드문데, 잃어버린 형제인가? 참 잘생겼네요잉.”
아저씨는 재빨리 샌드위치와 부리토를 만들더니 따로 채썬 야채 조금과 양념 안 한 고기를 봉지에 담아 주었다.
“고양이랑 토끼 간식이요. 이건 서비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이 근처에 구름 동물병원이라고 아시나요?”
“아, 동물병원 가시는 길인 것이요?”
가게 아저씨는 재인의 물음에 반색하면서 너털웃음을 웃었다.
“알고말고요. 아까 말했던 그 고양이가 바로 그 동물병원 원장님네, 아니 그 원장님 동생분네 고양이거든. 내가 그 친구 학생일 때부터 봐서 백호도 새끼 때부터 봤던 것이요.”
아저씨는 손짓을 하며 길을 알려주었다.
“요 모퉁이만 돌면 바로 나옵니다. 얼마 전에 새로 페인트칠을 해서 깨끗하지요. 흰색이랑 파란색 건물인데 거기 4층이라오. 원장님 실력 좋고 동물 진짜 사랑하시니까 믿고 가보시요.”
샌드위치 아저씨는 구름 동물병원을 정말 좋아하는지 마치 자기 집 소개라도 하듯이 정성스럽게 병원 안내를 해주었다.
모퉁이를 돌자 아저씨 말대로 새로 칠을 한 듯 깔끔한 건물에 동물병원 표지판이 보였다.
-딸랑!
동물병원 문을 밀고 들어서자 문에 달린 종이 경쾌한 소리로 울렸다.
“안녕하세요. 3시에 예약한 권재인입니다.”
“예. 어서 오세요. 초진이신가요?”
병원에 차트를 만들기 위해 초진 환축 보호자가 작성해야 하는 서류를 쓰기 전에 아실리와 포이의 이동장은 고양이 대기실의 소파에 내려놓았다.
병원 대기실은 꽤 컸고, 반투명한 유리벽으로 강아지 대기실과 고양이 및 소동물 대기실이 나뉘어져 있었다.
강아지 대기실에는 보호자들 몇 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진료 받으러 온 강아지도 대여섯 마리 있었는데 고양이 대기실에는 사람이 없었다.
흰색 페르시안 친칠라 고양이 한 마리가 혼자 드러누워 있다가 금빛 눈으로 재인을 쳐다봤다.
재인이 접수처로 가자 이동장 안에서 아실리와 포이가 속살거렸다.
-여기 느낌이 좋다. 분위기가 포근하고 안정적이야.
-응, 응, 포이도 좋아!
누군가 또 병원에 들어왔는지 딸랑 종소리가 났다.
“여기 있습니다.”
서류를 다 쓴 재인이 접수를 받는 직원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아실리의 나이를 쓰는 칸에 적당히 10살이라고 쓴 게 좀 걸리지만……, 100살이라고 쓸 수는 없지 않겠어?
접수를 끝낸 재인이 대기실로 돌아가자 고양이 대기실에는 젊은 남자 한 명이 늘어 있었다.
흰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던 젊은 남자가 재인을 보자 가볍게 머리를 숙여 보이더니 손을 내밀었다.
“권재인 작가님이시죠? 한번 만나 뵙고 싶었는데 반갑습니다.”
재인보다 서너 살 위로 보이는 남자는 친근하게 미소를 지었다.
“저는 연명훈이라고 합니다. 필명은 몽당연필이에요. 이번에 그려 주신 표지는 잘 받았습니다. 정말 마음에 들어요.”
“아!”
재인도 얼른 그의 손을 마주 잡고 흔들었다.
“반갑습니다. 작가님. 애독자입니다.”
구름 동물병원의 원장이 연명훈 작가의 누나라더니 여기서 만나게 되네.
“아주 귀여운 친구들을 데리고 오셨네요. 접수하시는 동안 먼저 인사를 했습니다.”
“아 네. 고양이는 아실리, 토끼는 포이입니다. 작가님 고양이 사진을 봤는데 우리 아실리랑 정말 닮았던데요.”
“그러게요. 저도 놀랐습니다. 백호는 나중에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오늘은 집에 있거든요.”
인사를 나눈 연명훈은 잠깐 누나와 할 이야기가 있다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몽당연필 작가님 성함이 연명훈이구나. 생각보다 젊으시네. 인상도 좋고.”
글이나 그림만 봤을 때 느꼈던 인상이 실제 작가를 보면 다른 경우도 있는데 연명훈은 자신이 쓰는 글과 분위기가 아주 비슷했다.
잠시 그동안 읽었던 연명훈의 글을 생각하던 재인이 문득 머리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런데 어떻게 보자마자 내가 권재인인 걸 알았지?”
잠깐 생각하던 재인이 아실리와 포이가 든 이동장을 돌아보았다.
이동장에는 혹시 잃어버릴 때를 대비해서 권재인이라는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은 인식표를 달아 놓았다.
일러스트 작가로는 본명을 쓰고 있으니까 인식표를 보고 알아봤나 보네. 아마 편집자가 내가 병원에 올 거라고 미리 연락을 해놓았을 수도 있고.
“그런데 실리, 포이, 너희들 왜 이렇게 조용해? 병원이라서 그래?”
“…….”
“미야아옹.”
대답하듯 야아옹 목소리를 길게 뺀 것은 아실리가 아니라 소파 위에 있던 흰 고양이였다.
흰 고양이는 뭔가 아실리에게 말하듯이 야아옹 울었지만 아실리도 포이도 대답하지 않았다.
“왜 그래, 실리?”
재인이 이동장 문을 들여다보자 아실리와 포이는 둘 다 뭔가에 놀란 듯한 얼굴이었다.
“왜 그래? 어디 불편해?”
재인이 놀라서 묻자 아실리가 나지막이 미야옹 울었다.
-저 사람, 우리 말을 알아들었어.
“뭐라고?”
-포이 말도 들었어!
아실리의 등 뒤에서 포이가 귀를 쫑긋 세운 채 얼굴을 내밀고 앞발을 흔들었다.
-우리 말을 들었어. 저 고양이랑 얘기도 했어!
포이는 앞발로 흰 고양이를 가리켰고 이번엔 흰 고양이가 놀란 얼굴로 재인을 쳐다보더니 아실리를 향해 야옹거렸다.
재인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흰 고양이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설마, 너네 보호자도 동물의 말을 알아듣는 거야?
* * *
조금 전, 재인이 대기실에 이동장을 놓고 차트 작성을 위해 접수처로 간 뒤였다.
대기실 소파에 앉아 있던 햐얀 페르시안 고양이가 아실리와 포이가 들어 있는 이동장을 바라보다가 야옹 울었다.
-처음 보는 친구들이네. 새로 왔니?
아실리도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응. 나는 아실리, 얘는 포이라고 해.
-토끼랑 사이가 좋구나. 구름 동물병원에 온 걸 환영해. 난 하늘이라고 해. 이 병원 고양이야.
포이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귀를 까딱여서 인사하자 하늘이가 눈을 깜박였다.
-예쁜 토끼네. 생김새도 독특하고. 어디 아파서 온 거야? 둘 다 건강해 보이는데.
-아파서 온 거는 아니야. 얼마 전에 우리 포이가 배탈이 났었는데 그때 우리 보호자가 당황했었거든. 그래서 미리 좋은 병원도 알아 둘 겸 들른 거야. 여기 병원은 어때?
-아, 우리 원장님이야 최고지.
하늘이는 일어나 앉으면서 자랑스럽게 가슴을 폈다.
-너희들, 우리 병원 온 거 후회하지 않을 거야. 이만큼 좋은 병원은 어디 가도 없어. 원장님도 정말 정말 좋으시지만!
하늘이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나지막하게 속살거렸다.
-사실 우리 병원엔 비밀 병기가 있거든.
-비밀 병기?
-우리 병원 계속 다니면 알게 될 거야.
하얀 고양이는 탐스러운 꼬리로 얼굴을 살짝 가리면서 웃었다.
그때 병원 입구의 종이 울리면서 젊은 남자 한 명이 들어왔다.
강아지 쪽 대기실의 손님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눈 뒤 고양이 대기실로 들어온 남자는 다정하게 하늘이의 머리를 쓸어 주었다.
“하늘이 잘 있었어? 오늘 몸은 어때?”
하늘이는 응석 부리듯 남자의 손에 머리를 비비면서 골골거렸다.
-좋아. 밥도 잘 먹고 물도 많이 마셨어.
“그래? 잘했네, 물 많이 마셔야 돼. 알지? 너 크레아티닌 수치 조금 높더라. 신장 조심해야 돼.”
-응, 근데 나 여기 털 좀 뭉쳐서 불편해.
“어디 봐. 아, 여기구나?”
남자는 선반 위의 빗을 내리더니 하늘이의 겨드랑이에 털이 뭉친 부분을 살살 풀어 주었다.
아실리와 포이는 이동장 안에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실리, 저 사람 하늘이랑 얘기를 해!
포이가 아실리에게 속삭였다.
-하늘이 말을 알아듣나?
그때 남자가 이동장을 쳐다보더니 미소를 머금었다.
“새로 온 친구들이구나? 정말 예쁜 토끼네. 어? 고양이는 우리 백호랑 정말 닮았는데?”
-그렇지? 나도 깜짝 놀랐어. 백호랑 쌍둥이 같잖아.
하늘이가 말했고 포이가 또 아실리에게 속삭였다.
-백호가 누군데 자꾸 사람들이 실리랑 닮았다고 하지?
남자가 웃으면서 이동장에 얼굴을 가까이했다.
“백호는 우리 집 고양이란다. 난 연명훈이라고 해. 어디 보자, 아, 너희들이 권재인 작가네 아이들이구나?”
인식표를 본 남자가 한층 더 반가운 얼굴이 되었다.
“반갑다. 얘들아, 보호자님은 어디 계시니?”
-저쪽에.
무심코 대답한 포이가 깜짝 놀라 깡충 뛰다가 이동장 천장에 머리를 콩 부딪쳤다.
-아야양!
포이가 머리에 앞발을 올리자 아실 리가 연명훈이라는 남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포이의 머리를 핥아 주었다.
“조심해야지. 나 때문에 놀랐으면 미안해.”
사과하면서 뒤로 물러나는 남자를 향해 아실리가 미심쩍어하면서 야옹 울었다.
-혹시, 우리 말도 들리나요?
남자가 상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단다.”
-진짜? 진짜 우리 말이 들려?
눈을 동그랗게 뜬 아실리와 입을 벌리고 있는 포이를 바라보면서 하늘이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놀랐지? 이 사람이 바로 우리 병원 비밀 병기야. 동물과 이야기하는 사람이지!
#작가의 말:
외전에는 전작인 ‘고양이가 주워온 용’ 독자님들을 위한 서비스 이야기가 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몽당연필 작가와 그의 고양이는 전작에 나오는 인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