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 166화
45. 수상한 음식점(3)
“입에 안 맞으시는지……, 찾는 맛이 아닌가요?”
제이든이 입에 닭고기꼬치 한 입을 문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여자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제이든은 천천히 입안의 고기를 씹어 삼키고 숨을 고른 뒤 대답했다.
“아니, 맞아요. 바로 제가 찾던 닭꼬치입니다. 델리움 광장에서 이걸 먹어 보고 여기까지 찾아온 건데, 기대 이상의 맛이에요.”
“이걸 델리움 광장에서 드셔 보셨다고요?”
여자가 의아하다는 듯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예. 여기서 삼 년간 일을 배웠다는 분이 하는 노점에서요.”
“아아, 지노 오빠군요.”
여자가 표정을 풀면서 싱긋 웃었다.
“같은 동네 이웃집 오빠라서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지요. 원래 요리 솜씨가 좋았는데 동방풍 음식도 배우고 싶다고 우리 집에서 몇 년 일했어요. 이 닭꼬치 양념은 사실 우리 집 비법인데, 아버지가 다른 사람한테 알려 주지 않는 조건으로 지노 오빠한테만 알려줬어요.”
그녀는 그리운 듯이 말했다.
“원래 이 거리에서 식당을 하고 싶어 했는데 보시다시피 항구 폐쇄 이후로는 이 지역 상권이 거의 다 죽어서요. 그 오빠도 작년 봄에 내륙 쪽으로 나갔어요.”
여자는 조금 쓸쓸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저희도 이제 여기는 정리하려고요. 다른 곳에 있는 식당에 집중할 거예요.”
“여기 말고 운영하시는 음식점이 또 있습니까?”
“네, 시내에 하나 더 있어요. 거기는 동방 음식점은 아니고 정통 카이엔 요리를 해요.”
제이든이 꼬치의 고기를 아실리에게 조금 빼주려 하자 여자가 얼른 다른 접시를 가져왔다.
“고양이는 이걸 주세요. 양념 안 한 것도 조금 구웠어요.”
“그분도 이렇게 해 주시던데, 닮으셨네요.”
“소꿉친구라 그런가 봐요.”
“그런데, 이 닭꼬치 양념이 사실 제 고향의 양념과 아주 비슷합니다. 혹시 아버님이 이 양념을 어디서 배우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제이든의 말에 여자가 깜짝 놀란 듯 짙은 갈색 눈을 크게 떴다.
“고향의 양념과 비슷하다고요?”
“예, 아, 참. 저는 제이든 로스라고 합니다.”
제이든이 머리를 꾸벅 숙이자 여자도 대답했다.
“수지 리예요.”
“수지 리…… 씨요?”
“예. 흔한 이름은 아니죠. 할아버지께서 지어 주셨어요.”
동방 대륙의 성씨 중 리나 한 등의 외자 성은 드물지 않다.
예전에 주술에 걸린 거울을 만들었던 마경장의 이름도 라이 한이었지.
그러나 수지라는 이름은……, 제이든에게는 매우 익숙하지만 카이엔에서는 절대 흔한 이름이 아니었다.
제이든은 수지 리를 다시 쳐다보았다.
갈색 머리에 갈색 눈, 인상이 좋은 미인인데 다시 보니 동방 혼혈 같은 느낌이 좀 섞여 있었다.
“아버님이나 할아버님이 동방에서 오셨습니까?”
“예. 할아버지가 동방 분이시긴 해요.”
“그럼 이 음식은 할아버지가 전수하신 건가요?”
“네. 양념도 할아버지가 만드신 거고, 우리 집에서만 하는 음식이 몇 가지 있어요. 할아버지가 원래 동방에서부터 요리를 하셨다고 해요.”
“제가 세렌토의 식당에서 닭고기 탕을 먹었는데, 그것도 제 고향의 요리와 아주 비슷했습니다. 원래 들어가야 할 뿌리채소 하나가 안 들어가 있는 것만 빼고요.”
수지는 웃던 얼굴을 갑자기 딱 굳혔다.
그녀는 제이든을 빤히 바라보다가 일어서더니 출입구에 가서 문을 닫고 아예 빗장을 질렀다.
다시 제이든의 앞으로 돌아온 그녀가 의자를 끌어서 그의 앞에 마주 앉았다.
그녀가 차분하게 한 톤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손님, 그 뿌리채소가 뭔지 설명하실 수 있나요?”
“아, 그러니까…….”
잠시 망설이던 제이든은 스케치북을 꺼냈다.
얼른 스케치를 마친 그가 스케치북을 수지 쪽으로 내밀었다.
“이렇게 생긴 식물 뿌리입니다. 우리 고향에서는 약재로 써요. 인삼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부르는 이름은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림을 잠시 보고 있던 수지가 의자를 밀고 일어서서 주방으로 갔다.
잠시 후 그녀는 밀폐용기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혹시, 이게 뭔지도 알아보시겠어요?”
그녀는 잔뜩 기대하는 눈으로 밀폐용기를 제이든 앞에 놓았다.
뚜껑을 열자마자 제이든의 입안에 군침이 확 돌았다.
“아, 이거, 정말, 눈물이 날 것 같네요. 여기선 영영 못 먹을 줄 알았는데!”
제이든은 자신도 모르게 수지가 앞에 있다는 것조차 잊고 아실리에게 말했다.
“아실리, 봐, 이게 내가 몇 번이나 말했던 그거야. 김치!”
“냥!”
“포잇?”
수지가 펄쩍 뛰었다.
“맞아요, 맞아! 김치랑 인삼을 알아보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원래 이름까지 정확히 알고 계시다니! 손님, 어디서 오신 분인가요?”
“저 그보다 먼저.”
제이든이 꿀꺽 침을 삼키며 조급하게 입을 열었다.
“면목 없지만, 부탁 하나만 드릴게요. 김치가 있다면 쌀밥도 있겠지요? 밥 한 공기만 주세요. 먹고 나서 찬찬히 말씀드릴게요.”
* * *
“자, 그럼, 손님, 어디서 오신 건가요? 고향이 대체 어디예요?”
제이든이 쌀밥에 김치를 쭉쭉 찢어 얹어서 한 그릇 뚝딱 해치우는 걸 기다리고 있던 수지는 숭늉 한 그릇을 떠다 주면서 제이든의 앞에 턱을 받치고 앉았고, 제이든은 숭늉을 보고 눈물을 흘릴 듯한 얼굴이 되었다.
“숭늉이라니, 완벽합니다. 정말.”
“아무나 안 주는 거예요. 식구들만 먹는 건데.”
숭늉으로 입가심을 하고 난 제이든이 그제야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숨을 돌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6년 만에 고향 음식을 봐서 혼이 나갔었어요.”
“괜찮아요. 저 김치를 그렇게 맛있게 드시는 분은 우리 할아버지 이후로 처음 봐요.”
제이든은 아련한 눈이 되었다.
“아마 수지 씨 할아버지와 제가 같은 곳에서 온 것 같군요.”
“우리 할아버지는 제가 열아홉 살 때 돌아가셨는데, 원래는 동방 대륙에서 오셨다고 했어요. 옛 시타 지역이라고 했는데.”
제이든이 머리를 갸우뚱 기울였다.
“시타가 확실해요?”
수지는 대답 없이 제이든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고 제이든도 그녀를 마주 보았다.
“혹시 더 먼 곳이 아닌가요? 아주 먼 곳.”
제이든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수지가 빙그레 웃더니 손을 내밀어서 제이든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래요. 우리 할아버지는 사실 더 먼 곳에서 오셨답니다. 저만 알고 있는 비밀인데, 차원을 건너오셨죠.”
그녀는 제이든의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
“할아버지 말을 믿기는 했지만요. 그래도 조금쯤 의심이 갈 때가 있었는데, 오늘 제이든 씨를 만나니 확신이 가네요. 차원을 넘어온 사람이 정말 있었군요.”
“…….”
“이 음식점을 닫지 않기를 정말 잘했네요. 이렇게 차원을 넘어온 손님이 와 주시다니. 할아버지가 보셨으면 정말 반가워하셨을 텐데요.”
제이든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카이엔에 와서 6년째, 처음으로 차원을 건너온 지구인, 그것도 한국에서 온 게 확실해 보이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미 사망한 지 오래라 만나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어쩌면 차원 이동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할아버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혹시 어쩌다 카이엔으로 넘어오게 되셨는지 아시나요? 돌아가는 방법이라든지.”
돌아가는 방법을 알았다면 여기서 천수를 다하시지는 않았겠지만.
“음, 완전히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돌아가는 방법도 어느 정도 파악은 하셨던 것 같아요.”
“뭐라고요?”
제이든은 벌떡 일어났다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앉았다.
“할아버지도 고민은 하셨는데, 돌아갈 수 있다 해도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셨어요. 그쪽 세상에 꼭 돌아가야 할 만큼 애틋한 것도 없고, 여기서 오래 사셔서 이제 이쪽이 고향 같다고요. 가족도 모두 여기 있고.”
수지는 또 싱긋 웃었다.
“요식 사업도 성공하셨고요. 이 식당은 뭐랄까, 언젠가 손님 같은 분이 올까 봐 계속 열어 놓는 장소 같은 거예요.”
수지 할아버지의 이름은 유노 리라고 했다.
아마 원래 이름은 이윤호쯤 되지 않았을까?
본인이 없어서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처음에 동방 대륙의 옛 시타 왕국 자리에 떨어졌고, 우여곡절 끝에 적응을 한 모양이었다.
요릿집에서 일하는 소년으로 시작해 몇 년간 동방 대륙에서 현지 요리를 익힌 그는 무역상의 배를 타고 카이엔에 건너왔다.
하이옌 항구 근처에 정착해서 작은 음식점을 열었는데 독특한 풍미의 음식으로 차차 이름이 났다.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으며 사업도 번창하는 동안 그가 차원을 건너왔다는 것을 아내도 아이도 몰랐지만, 손녀에게는 말한 모양이었다.
“제가, 그, 정신 감응 능력이 좀 있거든요.”
수지가 그리운 듯이 웃었다.
“가족 중에서 할아버지랑 가장 감응이 잘 됐어요. 그래서 할아버지도 제게 속 이야기를 하셨던 것 같아요.”
믿어 줄 만한 사람도 없고 혹시라도 주변에 알려지면 문제가 될 듯해서 말을 안 한 것 같았다.
“그럼 혹시 어떻게 여기 오시게 되었는지, 그리고 돌아갈 방법을 파악하셨다는데 그건 어떤 건지 알 수 있을까요?”
“할아버지가 강을 건너다 물에 빠졌는데 이쪽에서 눈을 떴다고 하셨어요.”
“음, 혹시 할아버님이 자주 쓰시던 물건을 남기신 게 있을까요? 이전 차원에서 가지고 온 물건이면 더 좋고요.”
“?”
“저도 정신 감응 비슷한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물건의 내력을 보지만요. 저는 감정사거든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수지는 주방 안쪽으로 가더니 식칼을 하나 가져왔다.
제이든은 한눈에 그 식칼이 카이엔의 물건이 아닌 걸 알아보았다.
“할아버지가 소년 시절에 처음으로 장만했던 칼이라고 하셨어요. 부적처럼 주방에 걸어 놓으셨던 거예요.”
“아주 좋습니다. 잠시 보겠습니다.”
제이든은 식칼 위에 손을 얹었다.
식칼은 오랜만에 만난 같은 차원의 사람을 알아보기라도 하는 듯 순식간에 그의 의식을 빨아들였다.
* * *
이윤호는 경기도 변두리 지역에 살던 고아였다.
보육원을 전전하며 어렵게 자랐고, 열여섯 살에 동네 어른이 소개해 준 식당에 일자리를 구했다.
일을 시작한 지 벌써 이 년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고 있을 뿐 요리에는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허드렛일 외에 주방장과 부주방장이 그에게 맡기는 건 식재료 손질과 밑 준비뿐이었지만 그는 타고난 감각이 있어서 어깨 너머로 요리법을 익혀 나가는 중이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자신도 한몫하는 요리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윤호는 허리춤에 묶은 보퉁이를 흐뭇하게 어루만졌다.
보퉁이 속에는 그가 몇 달이나 돈을 모아서 처음으로 산 식칼이 들어 있었다.
주방의 요리사들 것만큼 좋은 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신만의 칼이었다.
식칼을 장만한 것만으로도 앞으로 요리사가 될 꿈에 한 걸음 성큼 나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해 여름, 폭우가 쏟아진 다음 날 아침에 윤호는 불어난 강물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흐르는 강물이 다리를 금방 집어삼킬 것 같았다. 무서웠지만 식당에 나가지 않았다가는 주방 형님들에게 두들겨 맞고 호되게 혼이 날 게 뻔했다.
이 다리를 건너지 않으면 두어 시간이나 길을 돌아가야 했다.
‘튼튼한 다리니까 괜찮겠지.’
소년은 눈을 딱 감고 다리에 몸을 실었다.
강물이 어찌나 무섭게 흐르는지 목재 다리가 출렁거리는 느낌이 들 정도였지만 난간을 꽉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떼어놓았다.
강의 중간쯤 왔을 때, 다리가 정말 흔들거린다고 느꼈다. 기분 탓이 아니었다. 튼튼하게 기둥을 세운 다리가 마치 줄로 엮은 구름다리처럼 출렁였다.
“으아아아!”
윤호는 비명을 지르며 난간에 매달렸다.
물안개가 피어올라 다리와 그 위의 윤호를 흠뻑 적셨다.
주위 풍경이 흐려지면서 소리가 귓전에서 멀어져 갔다.
눈앞에는 온통 물살이 일렁거렸고 몸이 어딘가로 둥둥 떠갔다.
나 물에 빠졌나 봐. 다리가 끊어졌나?
억울해. 나 열심히 살았는데.
엄마도 아빠도 없지만 나쁜 짓 한 번 안 하고 열심히 살았는데.
열심히 일 배워서 좋은 요리사가 되려고 했는데!
여기서 죽나 보다 하는 생각 속에서 그는 의식을 잃었다.
그 후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몰랐지만 윤호가 마침내 눈을 뜬 곳은 동방 대륙, 옛 시타 왕국의 항구 언저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