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 165화
45. 수상한 음식점(2)
동방 대륙과의 교류가 끊어지기 전 하이옌 항구는 카이엔에서 가장 크고 번창한 항구였다고 한다.
특성상 동서양 문화가 혼재된 독특한 모습이 사람들의 흥미를 끌어 이름난 화가들이 하이옌 항구에서 상주하며 그 풍경을 그려낸 명화도 여러 장 전해져 내려오고, 세시온의 서재에서 본 책에서도 하이옌의 번화함을 묘사하는 기록이 장황했다.
“아, 바람이 차네.”
초여름 날씨인데도 빈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서늘하게 느껴진 것은 폐쇄된 항구의 썰렁한 모습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길게 뻗은 부두는 텅 비어서 쓸쓸했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는 한때는 크고 화려한 호텔이었지 싶은 건물이 반쯤 떨어진 금박 간판을 덜렁거리며 서 있었다.
배 한 척 없이 파도만 철썩거리는 부둣길을 따라 쭉 걸어가니 하얀 칠을 한 등대가 있고 그 옆에 자그마한 경비 초소가 보였다.
늙수그레한 경비원이 초소 바로 앞에 파라솔을 꽂은 둥근 테이블을 놓고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말라붙은 생선튀김과 비스킷을 쪼아 먹고 있던 큼지막한 갈매기가 먼저 제이든이 다가가는 것을 눈치채고 힐끗 쳐다보더니 끼룩 울었다.
“끼룩!”
경비원이 꾸벅거리는 고갯짓을 멈추지 않자 갈매기가 날개를 퍼득거리며 더 큰 소리로 울었다.
“끼루룩!”
“엉? 깜짝이야! 뭐냐? 아 이놈의 갈매기, 저리 가! 훠이! 엉? 누구슈?”
깜짝 놀라 깨어난 경비원이 손을 내저어 갈매기를 쫓다가 제이든을 발견하고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여기 음식점 거리가 어디죠?”
“엉? 음식점 거리라면 저쪽으로 한참 가야 하는데, 그런데 거기 텅 비었는데? 영업하는 집도 거의 없고.”
“그냥 한번 보고 싶어서요. 제가 동방 음식에 관심이 많은데 아주 유명한 집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어엉, 있긴 있었지. 동방 음식점 유명한 곳이라면 세 집 정도 있었는데 어느 집을 찾는 건가? 상호는 모르고?”
경비원은 꺼칠하게 자라난 턱수염을 매만지면서 눈을 굴렸다.
“예. 상호는 모르지만 선대가 동방에서 온 집이라고 하던데, 혹시 여기 오래 사셨습니까?”
“엉, 오래 살았지. 여기서 났으니까. 저쪽으로 반나절쯤 가면 나오는 화이트샌드 마을에 집이 있다네.”
“그럼 하이옌 항구가 아직 폐쇄되기 전부터 보셨겠습니다.”
“어, 그럼, 물론이지.”
나이든 경비원은 사람이 반가운지 금방 반색을 하며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여기가 꽤 번화했지. 그런데 어른들 말씀을 들으면 그때 이미 교류가 전만 못했을 때라, 한창 잘나갈 때의 항구는 못 본 거라더군. 십 년쯤 전에 교역이 완전히 끊어지고 항구가 폐쇄된 뒤로도 외지 여행객들이 제법 오니까 몇 년은 버텼지만, 사람이 점점 줄면서 이젠 다들 다른 일을 찾아 나갔거든.”
그는 호시탐탐 생선 튀김을 노리는 갈매기를 다시 쫓아낸 후 말을 이었다.
“상가랑 음식점 거리가 있는 쪽은 그래도 마을이 가까워서 사람이 좀 있지만 이쪽 부두는 이제 하루 종일 있어도 사람 코빼기 보기도 어렵다니까. 여기 등대지기 스벤이랑 나랑 둘뿐이야. 나는 밤에 야간 경비원이랑 교대하지만 스벤은 여기서 먹고 자고 하거든. 자네가 일주일 만에 본 외지 사람일세.”
“식사 같은 건 어떻게 하십니까?”
“집에서 도시락을 싸 오지. 등대의 주방을 쓰기도 하고.”
항구는 폐쇄되었어도 등대는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듯했지만 경비 초소는 거의 형식적으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음식점 거리 위치를 묻고 나서 인사하고 떠나려는데, 등대 안에서 막 잠에서 깬 듯 부스스한 얼굴의 장한이 나왔다.
“오, 스벤도 어떻게 알고 나왔네!”
등대지기 스벤은 등대 꼭대기 탑 위의 방이 너무 좁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덩치가 커다란 거한이었다.
붉은 머리에 덥수룩한 붉은 턱수염, 딱 벌어진 어깨와 울끈불끈한 근육을 보니 뿔 달린 투구 하나만 씌우면 딱 바이킹의 전사처럼 보이겠다.
“안녕하쇼? 어, 토끼다!”
그가 제이든의 어깨 위에 있던 포이를 보고 반색하자 포이는 기겁을 하며 제이든의 머리카락을 잡고 몸을 숨겼다.
거한은 왠지 상처받은 얼굴로 들어 올렸던 손을 내리더니 아실리를 발견하고 또 눈을 빛냈다.
“흠, 고양이도 있네.”
그는 커다란 덩치를 쭈그리고 앉아서 제이든의 다리 옆을 빤히 바라봤는데, 아실리가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자 금방 얼굴이 환해졌다.
‘꼭 톰슨 골동품상의 그렉 아저씨 같네.’
몽둥이 같은 팔뚝에 붙은 솥뚜껑만 한 손을 아실리 앞에서 조심스럽게 흔들어 보던 스벤이 입을 열었다.
“동방 음식점이라면 아저씨 말대로 세 군데 정도가 이름이 났었지. 제일 크고 손님이 많은 집은 ‘이스턴 플레이버’였고 가장 고급스러운 집은 ‘샹그릴라’겠지만 가장 독특한 집은 역시 ‘그린 헛’ 아닐까?”
“제가 찾는 집은 동방풍 양념의 닭꼬치가 맛있고, 독창적인 닭고기 탕이 있는 집인데요. 선대 주인이 동방에서 왔다는 말이 있더군요.”
“샹그릴라와 그린 헛 다 선대 주인이 동방 사람일걸?”
경비원의 말에 아실리를 한 번 만져보려고 눈치를 보던 스벤이 맞장구를 쳤다.
“댄 아저씨 말이 맞아요. 그리고 닭고기 요리는 이스턴 플레이버가 다양하게 잘하지만 꼬치라면 그린 헛이 더 맛있었소. 내가 용병 시절에 알게 된 뱃사람들이 그 집 닭꼬치를 좋아했지.”
용병 출신이구나.
톰슨 골동품상의 그렉 아저씨도 그렇더니, 확실히 티가 나네.
드러난 어깨에 길게 그어진 오래된 상흔을 곁눈질하면서 제이든이 생각했다.
꼬리를 살짝 만져 보려는 케빈의 손을 아실리가 앞발로 탁 때리자 거한은 멋쩍게 웃으면서 몸을 일으켰다.
“아, 그리고 하나 더, 하이옌에 혹시 동방에서 온 붉은 기와를 올린 집이 있습니까? 아니면 이런 무늬가 있는 기와를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제이든은 가릉빈가문 수막새를 그린 스케치북을 꺼내 스벤과 경비원에게 보여주었다.
“음, 무늬까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기와를 올린 집은 더러 있었지? 아무래도 동방풍으로 꾸민 집들이 종종 있었으니까.”
“붉은 기와라면 여관도 하나 있었고, 가만있자, 샹그릴라도 녹색 기와를 올린 별채가 있었는데.”
나이든 경비원과 덩치 큰 등대지기는 머리를 맞댄 채 마치 자기 일처럼 열심히 기억을 쥐어 짜냈다.
“그린 헛은 기와지붕은 아니었어. 그렇지만 뒷담에 기와 장식이 있지 않았던가?”
“음, 그랬던 것도 같네.”
“이스턴 플레이버와 샹그릴라는 폐업했지만 그린 헛은 아직도 이 지역 사람들 상대로 음식을 내니까 사람이 있을 거요. 가서 한번 물어보쇼. 음식점 거리 맨 끝에 있소.”
“두 분 다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만 가볼게요.”
제이든이 머리를 꾸벅 숙이자 등대지기와 경비원도 아쉬운 듯 손을 흔들었다.
경비원은 오랜만에 만난 젊은 외지인을 좀 더 붙잡아 두고 싶은 눈치였고 등대지기는 고양이와 토끼가 가는 게 아쉬워 보였다.
“그쪽은 여기처럼 텅 비어 있진 않고 그래도 사람이 좀 있을 거니까, 만약 그린 헛에 사람이 없으면 상가 거리로 넘어가 보시오.”
경비원의 말을 뒤로하고 그들이 가르쳐 준 방향으로 한동안 걸어가니 음식점 거리의 입구가 나왔다.
예전에 번화했던 시절 동서양의 음식점들이 줄지어 서 있던 이 거리를 그린 그림을 본 적이 있다.
겨우 5~6년 전의 그림으로 기억하는데, 같은 곳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썰렁했다.
등대가 있는 부두 쪽보다는 오가는 사람이 좀 있었지만 길 양쪽으로 서 있는 식당들은 거의 폐업 상태였고 철거된 건물도 많아서 듬성듬성 이가 빠진 것처럼 보였다.
제이든은 우선 유명하다는 세 곳의 동방 음식점을 찾아가 보았다.
세 군데 다 건물이 남아 있었는데, 이스턴 플레이버는 큰 식당이었는지 건물 규모가 상당했다.
동방 느낌을 살려 지은 큼직한 건물은 텅 비어 있었다. 세 군데 중 가장 오래된 곳이라더니 건물도 많이 낡았다.
안쪽에는 쓰러져 있는 식탁이나 집기류가 좀 남아 있었다.
샹그릴라는 거리 중심 부분에 있었는데, 폐업은 했지만 깔끔한 모습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삼 층으로 올린 건물도 고급스러웠고 뒤쪽으로 동방풍의 정원도 붙어 있는 데다 별채까지 있었다.
“자금 많이 들였을 텐데 아깝다. 그런데 항구 폐쇄된 지 몇 년 지났을 텐데 아직도 관리가 잘 돼 있네.”
건물은 잠겨 있었지만 뒤쪽 정원으로 통하는 길이 있어서 별채 앞까지 가 보았다.
나지막한 단층 별채는 동방풍으로 짓고 올리브색 기와를 올린 건물이었는데 출입구에 역시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제이든이 별채의 기와를 유심히 올려다보자 아실리가 물었다.
-어때?
한참 기와를 올려다보던 제이든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꽤 비싼 기와지만 동방에서 갖고 온 건 아니고 여기서 새로 만든 거야. 내가 찾는 기와랑은 연관이 없을 것 같아.”
-응, 그래 보이네.
“일단 그린 헛에 들러 보고 그다음에 마을에 가서 기와를 알 만한 사람이 있는지 탐문을 해봐야겠어.”
‘그린 헛’은 음식점 거리에서 상가 거리로 넘어가는 끄트머리에 있었다.
세 집 중 규모가 가장 작고, 이름처럼 자그마한 오두막 형태의 건물이었다.
식당이라고 알고 보지 않으면 그냥 가정집이려니 하고 지나칠 것 같았다.
“여기도 영업을 안 하나? 사람이 없는데?”
정면의 출입구가 열려 있고 건물도 버려진 느낌이 아니긴 한데.
“무슨 일이시죠?”
제이든이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집 뒤쪽에서 사람이 하나 돌아 나왔다.
서른 초반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앞치마를 두른 채 빗자루를 들고 있었다.
“아, 지나가던 사람인데, 혹시 뭐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네. 뭔데요?”
“제가 다른 곳에서 독특한 닭 요리를 먹어 봤는데, 그걸 만든 집을 찾고 있습니다.”
제이든이 닭꼬치와 삼계탕 이야기를 하자 여자가 싱긋 웃었다.
“맞게 찾아오신 것 같아요. 잠깐 들어오시겠어요?”
안쪽의 홀에는 작은 식탁이 4개 놓여 있었다.
간격이 넓은 걸 보면 원래는 몇 자리 더 있었을 법한데 치워 버리고 4개만 남긴 듯했다.
“문 닫은 집이 많은 것 같은데 아직 영업을 하시는군요.”
“예. 이제 외지 손님은 거의 없지만 지역 손님이 아직 있어서 열어 두긴 했는데 거의 개점휴업 상태라 저희도 곧 닫을 거예요. 마을로 자리를 옮기려고요.”
여자가 주방에서 재빨리 손을 놀렸고 곧 맛있는 냄새가 주방 밖으로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은 간단한 요리밖에 안 하는데 마침 닭꼬치는 준비가 돼 있어서 다행이네요. 자, 찾으시는 맛인지 한번 드셔 보세요.”
대파와 버섯, 양념한 고기를 끼운 꼬치 대여섯 개를 담은 쟁반을 들고 나온 여자가 쟁반을 그의 앞에 놓으며 싱긋 웃었다.
익숙한 향기가 매콤하게 코를 찌르는 게 먹어 보지 않아도 델리움의 시청 앞 광장에서 먹었던 바로 그 닭꼬치와 같다는 게 느껴졌다.
제이든은 꼬치를 들어 한 입 깨물었다.
“아!”
절로 탄성이 나왔다.
이건 델리움의 광장에서 먹었던 것보다도 더 예전, 제이든이 기억하고 있는 바로 그 맛에 가까웠다.
서울의 저녁 거리, 포장마차 앞에 서서 먹었던 바로 그 닭꼬치의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