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158화 (158/195)

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 158화

44. 백 가지 새(3)

노점상과 소녀가 실랑이를 하는 바람에 새장에 관심이 생긴 제이든이 새장을 유심히 볼 때, 예고도 없이 환각이 찾아왔다.

* * *

찰카닥 착! 찰카닥 차륵!

규칙적인 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젊은 여자가 베를 짜고 있었다.

커다란 베틀이 여자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찰카닥거리며 씨실과 날실을 촘촘하게 얽어 갔다.

일하기 편한 간소한 옷차림에 소매도 팔이 다 보일 만큼 걷어붙인 여자는 빠른 속도로 베를 짜는 중이었다.

살짝 숙인 머리로부터 일정하게 움직이는 두 팔과 발판을 밟는 발까지 물이 흐르는 듯 율동적인 움직임이 한눈에도 상당한 숙련자로 보였다.

“삐루루루.”

어디선가 새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베 짜는 데 몰입하고 있던 여자가 머리를 들었다.

“루리, 이제 왔어?”

창문으로 새 한 마리가 날아들더니 여자의 어깨에 앉아 부리로 귀를 간지럽혔다.

깜짝 놀랄 만큼 아름다운 새였다.

화려한 깃털을 가진 새라면 제이든도 차원을 건너기 전에 영상이나 사진으로 여러 번 보았지만, 이 새의 깃털은 열대 지방의 새처럼 화려한 것이 아니라 거장이 그려낸 수채화처럼 맑고 우아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아니, 제이든은 머리를 흔들었다.

예전에 미대생이었을 때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그 어떤 화가도 자연을 이기지는 못한다.

자연보다 더 뛰어난 예술가는 없었다.

가을의 단풍, 봄의 꽃들, 그리고 세상의 그 많은 새와 동물의 색조 조합을 보면 감탄을 넘어 경외하게 될 때가 있다.

촌스러워지기 십상인 노랑이나 초록, 조합하기 어려운 보라색이라든지 형광색도 얼마나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어우러지고 있는지.

열대어나 열대조들의 화려한 색감, 미묘한 차이를 두고 다양한 변조를 가진 나뭇잎과 꽃잎의 아름다움을 흉내 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조색을 시도했지만 자연이 사용하는 색조의 아름다운 조화는 따라갈 수 없었다.

지금 베 짜는 처녀의 어깨에 앉아서 장난스럽게 부리로 머리카락을 당기고 있는 새의 깃털도, 사람으로서는 흉내 낼 수 없는 신비스러운 색조였다.

머리 위에 왕관처럼 솟아 있는 꽃술 모양의 하얀 볏은 마치 은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반짝였고 눈은 사파이어를 박은 듯한 선명한 청색에 눈 주변으로 마치 아이라인을 두른 듯한 연한 하늘색의 테두리가 있었다.

부리도 같은 하늘색에 얼굴은 흰색인데 머플러를 두른 듯한 보라색 목덜미를 지나서 짙은 보랏빛 등으로부터 몸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노을이 옅어지듯이 점점 연한 보랏빛으로 색이 옅어졌다.

배는 회색이 약간 섞인 부드러운 비취색이고 그 아래로는 정교하게 세공한 듯한 발목과 발이 있었다.

우아하게 늘어진 꼬리는 몸에 비해 길다 싶었는데 흰색, 녹색, 보라색이 어우러진 것이 마치 노을 진 구름을 실로 뽑아내 짠 부채 같았다.

새가 청보라색의 날개를 퍼덕이자 날개 아래에서 선명한 주홍색이 잠깐 드러났다가 새가 날개를 접자 사라졌다.

그 전체적인 색감이 몹시 부드럽고 우아한 것이 인간의 힘으로는 만들 수 없는 색조였다.

“휘이~”

제이든이 자신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었지만 당연히 여자와 새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저런 새는 처음 봐!’

제이든은 혼자 중얼거렸다.

저렇게 아름다운 새는 처음 본다.

차원을 넘어오기 전에도 못 봤고 넘어온 후 카이엔에서도 처음 보는 새였다. 극락조와 좀 비슷했지만 그보다 더 신비스러웠다.

“루리, 그렇게 장난치지 마. 이거 다 짜고 수까지 놓아야 한단 말야. 올해는 내가 남부 대표니까 연습 많이 해야지. 경연에서 꼭 우승하고 말 거야.”

여자가 말하자 루리라는 새가 삐루루루 은방울이 굴러가는 듯한 소리로 지저귀면서 그녀의 볼에 부리를 비볐다.

제이든이 그녀와 새를 보고 있는 동안 천천히 시야가 암전되더니 주변이 다시 변했다.

높은 나무가 무성한 것이 산속인 것 같았다.

눈앞의 수풀을 헤치고 소녀의 머리가 쑥 나오는 바람에 제이든은 몸 없는 의식 상태인데도 깜짝 놀랐다.

“아휴, 여기가 아닌가? 소렌 아저씨가 분명히 이 근처에서 피니어스를 봤다고 했는데.”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밀고 이마에 붙은 나뭇잎을 떼어내는 소녀는 아까 베를 짜고 있던 여자였는데, 열댓 살쯤 되어 보이는 게 아까 봤을 때보다는 서너 살쯤 어려 보였다.

좀 더 과거로구나.

제이든은 환각이 보여주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 * *

에테노리움에서 남쪽으로 사흘거리, 산기슭 마을의 소녀 아레시아는 푸른 매, 피니어스의 깃털을 찾고 있었다.

이웃 마을 사냥꾼인 소렌이 산에서 푸른 매를 보았다고 자랑하면서 주워온 깃털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피니어스의 날개’ 이야기를 좋아했던 아레시아는 푸른 매를 꼭 한번 보고 싶었다.

네잎 클로버처럼 행운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깃털도 하나 정도 얻을 수 있으면 더 좋고.

옛이야기 속 피니어스와 마류시카가 백 가지 새의 깃털을 사용해 지었다는 환상의 날개옷 ‘백조군(百鳥裙)’을 보는 것이 아레시아의 소원이었는데 그 옷까지는 못 보더라도 피니어스의 깃털 정도만이라도 가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짠 베에 피니어스의 깃털을 장식한다면……, 아레시아의 푸른 눈이 반짝였다.

아레시아는 베 짜는 소녀였다.

길쌈 솜씨로는 근동 최고라는 어머니는 정작 아레시아에게 베 짜기를 가르치고 싶어 하지 않았으나 그녀는 어릴 때부터 베틀 옆에서 놀았고 배우지 않아도 어머니의 어깨너머로 길쌈을 익혔다.

“일 배우지 말고 그냥 곱게 자라서 좋은 사람 만나 편하게 살기를 바랐는데. 손재주 좋으면 그걸로 먹고살게 된다더니.”

어머니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아레시아는 길쌈이 마냥 좋았다.

에테노리움 영지는 예로부터 좋은 베와 명주를 생산하기로 유명했고 길쌈을 장려했다.

길쌈에 뛰어난 직조인들은 마을의 대표로 뽑혀서 매해 가을에 열리는 에테노리움의 직조 경연에 참여하곤 했다.

아레시아의 어머니도 뛰어난 직조인이었지만 그녀는 소녀 시절부터 베 짜는 일로 가족을 부양하다가 결혼 후에도 남편을 일찍 잃는 바람에 길쌈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다.

유복녀로 태어난 아레시아가 자신처럼 일만 하며 살지 않기를 바랐지만 아레시아 자신이 길쌈을 워낙 좋아하니 말릴 수가 없었다.

십 대 중반에 이미 아레시아의 길쌈 솜씨는 이웃 마을까지 소문이 날 정도였다.

“나도 에테노리움의 직조 경연에 나가고 싶은데. 내년이면 나갈 수 있을까?”

아레시아는 혼자 중얼거리며 혹시 매의 둥지가 있지나 않을지 이마에 손을 대고 높은 나무마다 쳐다보았다.

에테노리움의 직조 경연은 옛 에테노른 때부터 내려온 유서 깊은 경연으로 영지 전체를 동서남북으로 나누어 마을마다 대표를 뽑아 출전시켰다.

각 마을에서 나온 대표들이 동서남북 네 편에 소속되어서 길쌈 경연을 펼쳤는데 가장 우수한 베와 비단을 많이 낸 편이 우승한다.

경연이 끝나면 동서남북 중 우승하지 못한 세 모둠이 음식과 술을 마련해 이긴 모둠을 대접하고 다 같이 하루를 즐기는 직조인들의 축제였다.

동서남북 중 어느 편이 우승하느냐와 관계없이 가장 뛰어난 직조인도 한 명을 뽑는다.

상품도 푸짐해서 좋았지만 에테노리움 직조 경연의 우승자라는 명예는 직조인들로서 가장 큰 영예여서 경쟁이 치열했다.

아레시아의 어머니는 여러 번 마을 대표로 경연에 나갔지만 개인 우승을 한 적은 없었다.

어머니가 작년에 병석에 눕는 바람에 아레시아는 올해 경연에 나가고 싶었지만 아직 나이가 어려서 마을 대표로 뽑히지 못했다.

‘실력은 나도 빠지지 않는데.’

아레시아는 입술을 쀼루퉁하게 내밀었다.

에테노리움 직조 경연의 우승자에게는 에테노리움 박물관에 보관된 ‘백조군’, 즉 피니어스의 날개옷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에테노리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백조군’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았는데, 에테노리움 직조 경연에서 우승하면 일반인도 ‘백조군’을 볼 수 있었다.

백조군을 실제로 보는 것은 아레시아의 오랜 꿈이었다.

아직 경연 우승은 고사하고 마을 대표부터 되어야 할 테니 백조군을 보는 일이야 요원하지만 푸른 매라도 보려고 소렌 아저씨가 말해 준 자리 근처에서 반나절을 찾아 헤맸는데도 피니어스는 보이지 않았다.

“에이, 깃털이라도 하나 주웠으면 했는데.”

피니어스의 흔적을 찾지 못해 아쉬웠지만 해가 지기 전에 집에 돌아가야 했기에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을 때였다.

어디선가 힘없는 병아리 울음소리 같은 것이 그녀의 귀에 들렸다.

두리번거리던 아레시아는 희미하게 들리는 울음소리를 따라 쐐기풀 덤불 너머를 들여다보았다.

쐐기풀 덤불 사이로 볼품없는 갈색 새끼 새 한 마리가 보였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듯한 새끼 새가 칙칙한 갈색의 털이 듬성듬성 난 몸을 힘없이 떨면서 덤불 속에 누워 있었다.

“어떡하지? 둥지에서 떨어졌나?”

주위를 둘러보고 나무 위도 쳐다보았으나 새 둥지 같은 건 보이지 않았고 어미 새도 보이지 않았다.

“밤 되면 추워지고, 그냥 두고 가면 죽을 텐데. 요즘 밤에 들개도 나온다고 했는데.”

망설이던 소녀는 결심한 듯 쐐기풀 덤불 안을 헤치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앗, 따가워!”

쐐기풀에는 독성이 있는 가시가 있다. 섬유를 짜기 위해 쐐기풀을 채취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함부로 만지거나 들어가지는 않는데.

쐐기풀에 쏘인 자리가 여기저기 금방 빨갛게 부르텄지만 아레시아는 아픈 것을 꾹 참고 쐐기풀 덤불 안쪽으로 헤치고 들어갔다.

아기 새를 양손으로 받쳐 들자 작은 가슴을 할딱거리며 가쁜 숨을 쉬고 있던 아기 새가 희미하게 눈을 떴다.

반투명한 눈꺼풀이 덮고 있던 눈동자가 드러나자 아레시아는 깜짝 놀랐다.

놀랄 만큼 선명하고 새파란 눈동자였다.

아기 새는 한동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안심한 듯 숨을 내쉬더니 다시 소르르 눈을 감고 그녀의 손가락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때는 그 볼품없이 꺼칠한 아기 새가 루시나의 새끼일 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용돈을 탈탈 털어 새장도 사고, 새 모이도 사고, 며칠 밤잠을 안 자며 간호한 끝에 아기 새는 목숨을 건졌고 아레시아는 아기 새에게 루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루리는 조금씩 자랐고 깃털이 보송보송하게 나면서 점점 더 예뻐졌다.

칙칙한 갈색이던 깃털은 루리가 자라면서 점점 밝고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어갔다.

루리가 완전히 기운을 차린 후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순례 여행 중이던 신관 한 명이 우연히 아레시아의 집에서 한 끼 식사를 대접받다가 루리를 보고 깜짝 놀라며 루리가 바로 루시나 새라고 알려주었다.

루시나의 정식 명칭은 ‘루스렌키아나 데 파라디시오’라는 길고 귀족적인 이름으로 ‘천상의 새벽’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새다.

이름이 너무 길어서 사람들은 보통 루시나 또는 여명조(黎明鳥)라고 부르곤 했다.

그 우아한 보랏빛 도는 푸른 날개를 펼치면 날개의 안쪽이 주홍색인데, 마치 밤을 가르고 밝아오는 새벽과 같다고 해서 루시나는 여명을 나타내는 새가 되었고, 새벽의 여신 루스렌키아의 전령이라고 일컬어졌다.

아름답고 영리한 만큼 수가 적어서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면으로는 포에니 토끼에 비길 만하다는 새인데 이런 변두리 마을 낡은 청동 새장 속에 있을 줄은.

“아레시아, 루시나는 활동량이 많아서 집에서 키울 수 없어요. 여신의 새기 때문에 보호종이기도 하고.”

아레시아는 신관의 조언에 따라 루리를 산에 풀어주기로 했다.

그동안 정이 많이 들어서 섭섭했지만 루리가 마음껏 날개를 펴고 날아다닐 수 있는 게 좋겠지.

이렇게 귀한 새가 마을에서 살다가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도 안 좋고.

아무리 보호종이라 사람들이 해를 끼치지 않는다 해도, 세상엔 금지된 것을 갖고 싶어 하는 탐욕을 참지 못하는 누군가가 꼭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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