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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157화 (157/195)

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 157화

44. 백 가지 새(2)

노점상은 화를 내며 아이를 쫓아 버리려고 했으나 갈래머리를 한 여자아이는 노점상의 소맷자락을 꼭 잡고 매달렸다.

“부탁드려요. 아저씨. 새장을 돌려주세요. 저한테 딱 하나 남은 할아버지 유품이에요.”

“아 진짜, 네 애비한테 가서 말해. 그치가 나한테 팔았다니까!”

노점상이 짜증을 내며 팔을 뿌리치자 아이는 넘어질 듯 휘청거리다가 다시 판매대 앞으로 다가섰다.

아이와 노점상이 실랑이하는 모습을 보고 있던 옆 가죽 노점의 노인이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거, 그냥 돌려주지 그래. 어린애 물건 등쳐먹지 말고.”

“아니 이 노인네가 아까부터 정말! 등쳐먹긴 누가 등쳐먹는다고 그래? 난 정당하게 얘 아버지한테 돈을 주고 사 온 거라고! 얘 아버지가 직접 수결한 영수증도 있어!”

“아빠한테 술 주셨지요? 우리 아빠 술 마시면 아무 말이나 다 좋다고 고개 끄덕이는 거 알면서 그런 거잖아요.”

“어쨌건 네 애비가 직접 판 거야. 20골드로는 턱도 없다. 정 돌려받고 싶거든 100골드 만들어 오면 생각해 보마.”

“100골드……, 금화가 백 개…….”

여자아이가 허망하게 중얼거리더니 금방 눈망울이 그렁그렁해졌다.

아버지가 새장을 팔아 버린 후 열흘 내내 산과 들을 헤매며 꽃을 꺾어다 거리에서 팔고, 마른 빵과 물만으로 배를 채우며 굶다시피 돈을 아껴서 겨우겨우 20골드를 모아 왔는데.

그것도 예전에 모았던 은전까지 탈탈 다 털어 와서 겨우 채운 건데.

100골드는 아이에게 너무 막막하고 불가능한 금액이었다.

“자, 자, 아가, 울지 마라. 가만 보니 너 저쪽에서 꽃 팔던 아이지? 저런 녹슨 새장은 예쁘지도 않고 별 쓸모도 없지 않니? 이거 봐라, 가죽 팔찌란다. 꽃무늬를 새겨서 예쁘지? 저 못된 녀석이 가져간 새장 대신 이걸 주마.”

노인이 예쁘장한 가죽 팔찌를 내밀며 소녀를 달래려고 했으나 소녀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저 새장은 절대 팔지 말라고 하셨어요. 아빠한테 남겨 주면 언제 없어질지 모르니까 나보고 꼭 지키라고 하셨는데.”

소녀는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같았지만 참지 못하고 히끅히끅 딸꾹질을 했다.

“100골드라고요?”

젊은 남자의 목소리에 잡화상과 노인, 소녀가 다 같이 고개를 들었다.

“아, 아까 그 손님…….”

어깨에 토끼를 앉히고 고양이와 함께 걸어온 청년을 보며 노점상이 중얼거렸다.

“아까 저한테 200골드 부르셨지요? 이 아이 집에서 10골드 주고 가져오신 물건인가 봅니다아?”

제이든이 여우처럼 샐쭉 웃자 잡화상은 조금 당황한 듯했지만 곧 뻔뻔스럽게 가슴을 내밀었다.

“원래 골동품이라는 건 그런 거 아니겠소? 이 아이 아버지는 새장의 가치를 모르고 집구석에 처박아 뒀지만 난 이게 값나가는 물건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그리고 팔 때는 당연히 이문을 남겨야 하잖소.”

“글쎄요…….”

제이든이 말꼬리를 길게 늘이자 노점상은 눈치를 살피더니 말했다.

“에이, 내가 인심 쓰겠소. 그냥 150골드에 가져가시오. 이거 로시난트 왕조의 물건이라 200골드는 충분히 받을 수 있는 건데.”

“안 돼요, 팔아버리면! 아저씨, 그거 사 가시면 안 돼요!”

소녀가 다급하게 발을 동동 굴렀다.

“아가, 잠깐만 기다려 봐라. 내 보기에 저 젊은이가 생각이 있어 보인다.”

가죽 노점의 노인이 눈치 좋게 아이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고 제이든은 판매대에 놓인 새장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눈을 뜬 제이든이 입을 열었다.

“이 청동 새장, 로시난트 왕조 때 만들어진 것은 맞습니다.”

“오! 진짜? 아이 아버지가 로시난트 물건이라고 장담하더니 정말이었나 보네!”

순간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던 상인이 흠흠 헛기침을 하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무, 물론 나도 그렇다고 봐서 사들인 거지.”

제이든이 말을 이었다.

“로시난트 말기의 물건이라 새장의 유행이 한물간 뒤에 제작된 거긴 하지만 만듦새는 좋네요. 세공도 매우 정교하고요. 하지만 소재는 저렴한 걸 썼네요. 청동 주물이긴 한데 불순물이 너무 많이 섞였어요. 그리고 손상이 너무 심합니다. 골동품이라고 무조건 오래되면 가격이 올라가는 게 아니에요. 이런 물건은 보존 상태가 좋아야 가격이 나가는 겁니다.”

“…….”

“이것 보세요. 여기 문 부분은 떨어져 나간 걸 다시 붙인 겁니다. 전문가에게 수리를 맡긴 게 아니고 집에서 다시 붙였을 거예요. 철사로 잇고 접착제까지 썼네요. 큰 충격을 받은 일이 몇 번 있었는지 균형도 틀어졌고 바닥이 찌그러진 것도 망치질로 조악하게 다시 폈어요. 이래서는 200골드는 어림도 없고 100골드에도 못 팝니다.”

“……젊은이, 뭐 하는 사람이오?”

제이든이 씩 웃었다.

“감정사입니다. 자격증 보여 드려요?”

“…….”

뭐 씹은 얼굴이 된 노점상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내가 골동품이 주 종목은 아니지만, 그래도 로시난트 새장의 가격이 비싼 건 아는데 이게 100골드도 안 나간다고? 작년에 소네트 경매에서 로시난트의 청동 새장이 500골드에 팔린 걸 봤는데 이거랑 굉장히 비슷하던데? 이거보다 좀 크긴 했지만 그것도 별로 상태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고.”

“작년에 소네트 경매에서 팔린 로시난트의 새장은 황금 새장 하나, 청동 새장 하나가 있었습니다. 둘 다 같은 사람이 샀지요. 작은 황금 새장이 3,000골드, 큰 청동 새장은 500골드에 낙찰되었는데 청동 새장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 새장과 아주 비슷했습니다. 보존 상태도 나빴고요. 하지만 그 새장이 500골드 가치가 있었던 건 새장이 타마라 듀이의 소장품이었기 때문입니다.”

우와! 사람들의 탄성이 들렸다.

어느새 사람들 몇 명이 주위에 둘러서서 제이든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타마라 듀이는 백 년 전의 가수죠. 당대 최고 레벨까지는 아니라 해도 아직도 사람들이 기억할 만큼 이름을 남겼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제이든은 새장을 다시 쓰다듬었다.

“물건의 손상이 심해도 누가 소유했던 것이냐에 따라서 가격이 달라지죠. 타마라 듀이의 새장인 게 증명되었기 때문에 그 낡은 새장이 500골드나 받을 수 있었던 겁니다.”

구경꾼 중 누군가 물었다.

“그게 만약 오르피나 유렌의 새장이라면 가격이 어느 정도나 될까요?”

제이든은 양팔을 활짝 펴 보였다.

“오르피나 유렌처럼 전설적인 가수의 새장이었다면 부르는 게 값이죠. 증명만 가능하다면 1만 골드를 불러도 수집할 사람이 있을 겁니다.”

우와아!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탄성을 토했다.

노점상이 다소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이 새장은 얼마나 나가겠소?”

제이든이 새장을 다시 살펴보았다.

“글쎄요. 이 상태로는 70골드 정도면 아주 잘 받는 겁니다.”

“70골드으으?”

기대에 못 미치는 금액인지 노점상의 말꼬리가 음이탈을 내면서 길게 빠졌다.

“잘 쳐줬을 때 말입니다.”

제이든은 쌀쌀맞게 말했다.

“제가 산다면 60골드 이상은 안 낼 겁니다.”

“아니, 감정사 양반!”

노점상은 우는 소리를 냈다.

“사람들 듣는 데서 이렇게 가격을 딱 잘라 버리면 내가 이걸 어떻게 팔겠어.”

“10골드 주고 가져오신 거라면서요? 60골드 받아도 꽤 남지 않습니까?”

“나 쟤 아버지한테 술도 많이 사먹였는데.”

“술값까지 합해서 한 20골드 쓰셨겠네요.”

제이든은 샐쭉 웃었다.

“그럼, 300골드 받고 파는 법 가르쳐 드려요?”

“오, 진짜? 그런 길이 있소? 가르쳐 주면 내가 밥 한 번 크게 사지.”

노점상이 반색을 하며 제이든의 소매를 붙들었다.

“복원을 맡기시면 됩니다. 작년 소네트 경매에서 청동 새장 구매하신 분도 복원을 맡겼어요. 마침 그 복원 전문가가 제가 아는 사람이거든요.”

“아하, 복원 후에는 300골드 가치가 있단 말이지?”

“예. 그런데 복원비가…….”

제이든은 또 샐쭉 웃었다.

“아마 250골드쯤 들 겁니다.”

“에잇!”

노점상이 발로 땅을 굴렀고 가죽 노점의 노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60골드에라도 파시겠어요?”

머뭇거리던 노점상이 제이든을 쳐다봤다.

“아까 잘 받으면 70골드라지 않았어?”

제이든이 뒤에서 조마조마 손을 비틀고 있는 소녀를 돌아보았다.

“저 아이 할아버지 유품인데 10골드에 후려쳐서 가져온 거잖아요. 마음을 좀 곱게 쓰시고 원주인에게 60골드에 돌려주시면 어떨까요?”

“나, 나 60골드 없어요. 아저씨.”

소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는 걸 본 노점상이 잠시 망설이다가 툭 내뱉었다.

“그래, 좋소. 하지만 쟤는 60골드를 못 낼걸? 당신이 대신 내줄 거요?”

“아저씨, 나 60골드 없는데요.”

소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제이든이 소녀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아냐, 너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걸 갖고 있단다.”

제이든은 아이가 머리에 두르고 있는 머리띠를 만졌다.

때가 좀 탔지만 특이한 수가 놓인 리본이었다.

“이 리본, 오래된 거지? 누구에게 물려받은 거니?”

“할머니 거였대요.”

“수가 굉장히 곱구나. 이거 내가 50골드 내고 살게. 그러면 너 갖고 있는 돈이랑 합쳐서 새장을 되살 수 있지?”

“이게 50골드나 해요?”

“응. 이 리본 아마 원래는 옷에 달려 있었을 거야. 옷이랑 같이 있으면 가격이 더 높을 수도 있단다.”

“옷은 없는데…….”

“그래, 리본만도 가치가 있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

소녀가 서투른 손길로 머리를 묶었던 리본을 풀어서 제이든에게 내밀었다.

“아니, 지금 바로 안 줘도 되는데.”

제이든이 조금 당황하면서 리본을 받아들자 주변 사람들이 웃었다.

어떤 이는 조그맣게 손뼉을 치고 어떤 이는 대견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게 제이든이 소녀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새장을 돌려주는 방법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사실 처음에는 그런 마음으로 아이가 지닌 것 중 뭐든지 하나 사주려고 한 거지만.’

제이든은 손에 든 리본을 돌돌 말아서 배낭에 넣고 배낭 안에서 금화 주머니를 꺼냈다.

“자, 금화 50골드야. 나랑 같이 새장을 다시 사고 영수증을 받자.”

노점상은 좀 아쉬운 눈치였지만 순순히 새장을 돌려주고 영수증도 써주었다.

어쨌든 소녀의 아버지에게 술을 사 먹인 것까지 해도 15골드가 안 들었는데 60골드에 팔았으니 괜찮게 남긴 거였다.

기대보다는 이문이 적었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다소 미운털이 박히긴 했지만 상인이 이 정도 뻔뻔스럽지 못하면 어떻게 장사를 하겠나.

저 오지랖 넓은 감정사 녀석만 안 만났으면 내 말발로 100골드는 너끈히 받았을 텐데.

“옜다. 마음씨 좋은 분 만나서 돌려받은 줄 알아라.”

노점상이 입맛을 다시면서 새장을 아이에게 돌려주자 소녀는 새장을 끌어안은 채 눈물을 뚝뚝 흘렸다.

맑은 하늘색 눈에서 눈물이 문자 그대로 구슬처럼 방울방울 떨어졌다.

“저기, 잠깐만요.”

일이 다 끝났다 싶어 사람들이 흩어졌는데 가지 않고 남았던 여자가 말을 걸었다.

아까 토끼 관련 물품들을 팔던 바니였다.

“혹시 아이를 그냥 돌려보내실 건가요?”

바니는 제이든을 한쪽으로 끌어당긴 후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대로 돌려보내면 쟤 아빠가 또 새장을 팔아버릴지 몰라요. 떠돌아다니는 품팔이 일꾼인데 돈 생기는 대로 술로 없애는 것 같더라고요. 저 어린애가 꽃도 팔고 바느질도 해서 겨우 밥을 먹는가 보던데.”

“예. 그러잖아도 조금 걱정이 되어서 같이 가볼 참이었습니다.”

제이든이 머리를 끄덕이며 아이에게 말했다.

“집이 어디니? 같이 가보자. 새장에 대해 아저씨가 아빠한테 말씀드릴 게 있어.”

아이는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혔다.

“아빠랑 품팔이를 하면서 다니고 있어서……, 여기는 한 달 전에 왔고 양조장 뒷집에 있어요.”

“그래? 같이 가보자. 이름이 뭐니?”

“레일라요.”

“그래, 레일라, 난 제이든이라고 한다.”

“제이든, 제이든 아저씨.”

이름을 몇 번 중얼거려 보던 레일라는 새장을 끌어안은 채 물었다.

“저, 그럼 토끼랑 고양이는요?”

“응?”

“이름이 뭐예요?”

아직도 촉촉한 눈으로 아실리와 포이를 보는 레일라의 얼굴은 그제야 제 나이의 어린애처럼 보였다.

“고양이는 아실리, 토끼는 포이란다.”

“미야옹!”

“포잇!”

아실리와 포이가 인사하듯 한 번씩 울자 레일라는 환하게 웃었다.

“마, 만져 봐도 돼요?”

“그래, 그런데 일단 집에 갈까? 집에 가서 아버지부터 만나 뵙자.”

“네.”

그 와중에도 어린애답게 토끼와 고양이에게 정신이 팔렸던 레일라는 그제야 일어서서 앞장을 섰다.

“언니가 들어 줄게. 같이 가자.”

바니가 붙임성 좋게 레일라에게서 새장을 받아들더니 한 손으로 레일라의 손을 잡고 함께 걷기 시작했다.

“같이 가시게요?”

“예, 이 애랑은 안면이 있거든요. 마침 어머니가 가게에 나오셔서 저는 시간이 좀 있어요. 그리고 아까 사신 리본, 나중에 저 좀 보여주세요. 잠깐 봤지만 수놓은 게 특이해 보여서요.”

“이 언니가 며칠 전에 제가 만든 앞치마를 사 주셨어요.”

레일라가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바니를 쳐다봤다.

-저 새장, 환각을 봤지?

뭐라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바니와 레일라의 뒤에서 아실리가 제이든의 다리를 꼬리로 감으며 물었다.

“응.”

-제이든이 감정 결과에 빈말을 할 리는 없으니까 새장의 가치는 딱 그 정도일 텐데?

제이든은 바니와 레일라에게 들리지 않게 아실리에게 속삭였다.

“맞아. 새장은 70골드 정도가 적정가야.”

-그럼?

“새장을 사용했던 소유주가 특별해.”

-소유주가 특별하면 가치도 올라가잖아?

제이든은 몸을 굽혀 아실리의 귓전에 속삭였다.

“사람의 금전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가치야. 특별한 소유주는 사람이 아니고 저 새장을 썼던 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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