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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155화 (155/195)

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 155화

43. 세 번째 유물(6)

-왜 깨웠어? 제이든?

아실리가 하품을 하면서 마부석에서 길게 기지개를 켰다.

아실리의 옆구리를 베고 자던 포이가 몸을 뒤집으며 퐁퐁퐁 옹알옹알 잠꼬대를 했다.

“실리, 내가 반지의 숨겨진 기능을 하나 더 찾은 거 같아!”

-응?

아실리가 앞발로 포이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면서 일어나 앉았다.

-기능이 또 있어?

“응! 이 반지, 내가 가면 안 되는 길을 막아주는 것 같아.”

-?

“좀 전에 너희들 잘 때 갈림길이 나왔거든? 내가 원래 가려고 한 건 거리가 짧은 오른쪽 길이었어. 그런데 반지가 못 가게 하더라고.”

-…….

잠에서 덜 깬 탓인지 미심쩍은 듯한 아실리의 눈을 본 제이든이 장담했다.

“내 말이 맞을 거야. 감이 딱 왔어. 조금만 기다려 봐. 내가 증거를 보여줄게.”

반 시간쯤 더 길을 가자, 목조 다리가 걸려 있는 시내가 나왔다.

“여기서 시험해 보자.”

제이든은 일부러 다리가 아닌 물 쪽으로 마차를 몰았다.

“이거 봐, 실리, 이제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서 물로 들어갈 거 같으면 반지가 쿡 하고 손가락을…….”

“냥?”

“……찌르지 않네?”

반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제이든은 더 가면 위험하다 싶은 순간에야 말고삐를 챘다.

이미 한두 발 냇가의 진흙에 발굽을 담갔던 말은 돌아 나오면서 못마땅하게 히힝 울며 제이든을 흘겨보았다.

“미안, 미안, 진짜 들어가려던 건 아니었어.”

말의 목을 두드린 제이든은 시무룩하게 말했다.

“꼭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아실리가 머리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제이든, 평소에 참 침착하고 어른스러운데, 가끔 이렇게 애 같을 때가 있어.

“…….”

-새 장난감 찾아낸 일곱 살짜리 남자애 같았다니까.

“뭔가 이 반지가 발동되는 이유가 있을 텐데.”

제이든이 조금 풀죽은 목소리로 말하자 아실리가 달래듯이 제이든의 무릎을 앞발로 꾹꾹 눌렀다.

-뭐, 좀 기다려 봐. 차차 알게 되겠지.

잠꼬대하며 몸을 뒤채는 포이를 다시 토닥토닥 두드려 준 아실리가 하품을 하며 물었다.

-오늘은 어디서 묵어?

“지도 보니까 다음 마을은 페르비옹이라고 돼 있어. 꽤 큰 마을이네.”

-아아 페르비옹, 맥주가 맛있다던데.

“가본 적 있어?”

-아니, 셀레스테 쪽은 여러 번 가 봤지만 이쪽은 나도 처음이야. 페르비옹 맥주는 소문만 들었어.

“이쪽으로 가면 유명한 와인 생산지가 나오지 않아?”

“응, 그런데 페르비옹은 맛있는 맥주로 소문이 났어.”

-그렇게 말하니까 들어본 것도 같네.

카이엔의 동부 지역에는 유명한 와인 생산지가 있는데, 그보다 수도 쪽으로 더 가까운 페르비옹은 지역 맥주가 꽤 이름이 있었다.

대량 생산을 하는 건 아니었고, 원래 페르비옹에서 대대로 식당을 하던 집에서 만들어 팔던 하우스 맥주라고 한다.

입소문을 타면서 유명해져서 다른 지역 사람들이 일부러 맛보러 오고, 통으로 사가기도 하면서 규모가 커졌고 마을을 대표하는 사업이 되었다는 것이다.

소도시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큰 마을이었는데, 마을 초입에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페르비옹 맥주의 원조인 식당을 묻자 바로 가르쳐 주었다.

“와! 사람 많네!”

페르비옹 맥주의 원조라는 식당은 대개의 큰 식당이 그렇듯 여관을 겸하고 있는 삼 층 건물이었다.

간판에 커다란 맥주통과 거품이 가득한 맥주잔이 그려져 있었고 일 층 식당의 공간이 매우 넓었는데 저녁 식사하기엔 좀 늦은 시간인데도 사람이 꽉 차 있었다.

“사람 많아서 포이가 무섭겠다. 우리는 방에서 먹자.”

규모가 큰 곳답게 여관 쪽과 식당 쪽을 담당하는 카운터가 나뉘어 있었는데 여관 쪽에는 사람이 없었다.

“여기 좀 봐주시겠습니까?”

제이든이 식당 쪽을 바라보며 부르자 그쪽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고 있던 사람들 중 나이 지긋해 보이는 남자 한 명이 서둘러 뛰어왔다.

“죄송합니다. 손님, 제가 원래 숙박 담당인데 식당 쪽이 너무 바빠서 일을 거들고 있었습니다.”

“오늘 밤 묵고 내일 아침 식사 후에 떠날 예정입니다.”

“알겠습니다. 일인실이면 되겠지요?”

“토끼와 고양이가 한 마리씩 있습니다. 추가 요금이 있을까요?”

직원은 제이든의 어깨 위에 있는 포이와 옆을 따르는 아실리를 보면서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소동물은 따로 요금을 받지 않고요. 마구간이나 외양간을 사용하는 말이나 소, 그 외 따로 우리를 사용해야 하는 대동물은 요금을 받습니다. 퇴실 시 방에 손상이 있다면 그때 추가 요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 저녁 식사도 하고 싶은데 방에서 할 수 있겠지요?”

“물론이지요. 그런데…….”

직원이 조금 난처한 얼굴을 했다.

“지금 저희가 손이 좀 모자라서 그러는데 정말 죄송하지만 조금 기다리셨다가 직접 갖고 올라가셔도 괜찮으실까요? 저희가 갖다 드리는 것보다 빠를 겁니다. 다 드시고 쟁반은 문 앞에 내놓으시면 됩니다.”

식당 쪽을 보니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는 사람들이 정신없이 움직이는 게 정말 바빠 보였다.

“저는 괜찮습니다. 사람이 진짜 많네요. 정말 바빠 보이시는데 오늘 무슨 날인가요?”

직원은 자부심이 어린 얼굴로 대답했다.

“이틀 뒤가 장날이라 평소보다 사람이 더 몰린 편이긴 하지만, 우리 식당은 원래 사람이 많습니다.”

“아, 네.”

직원은 얼른 덧붙였다.

“사실 이보다 더 많은 손님도 저희가 거뜬히 접대합니다만 오늘은 사고가 있어서요. 원래는 방에도 식사를 다 갖다 드립니다만 오늘 우리 직원이 두 명이나 빠졌거든요.”

“저런.”

“식자재 구매 때문에 이베스에 갔는데 올 시간이 넘었는데도 오질 않더니만, 다리가 끊어져서 사고가 났다는군요.”

“그거, 조금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제이든이 눈을 반짝이며 묻자 상대는 조금 의아한 얼굴이 되었지만 순순히 식당 쪽을 손가락질했다.

“저는 지금 너무 바빠서……, 저 손님들에게 물어보시면 될 겁니다. 이베스로 가다가 길이 막혀서 돌아왔다고 하니까요.”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던 텁석부리 남자들은 제이든의 물음에 흔쾌히 대답했다.

“이베스에서 오다 보면 시내를 건너게 되거든? 오늘 그 다리가 무너졌다네. 하필 그때 마차가 다리 위에 있을 때라서 사람이 좀 다쳤다는데 아마 여기 직원인가 봐.”

“저도 이베스에서 왔는데요?”

“아마 젊은이는 큰길로 왔겠지? 여기 주민들은 숲을 통과하는 작은 길을 주로 이용하거든. 그쪽이 빠르니까.”

제이든은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아실리와 눈을 마주치고 그것 보라는 듯 눈을 찡긋거렸다.

“길이 막힌 덕분에 카이에른 소식도 알아서 다행이야. 허탕 칠 뻔했다니까.”

옆 테이블의 상인이 동료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레옹 바레 상단에 불이 났다면서?”

“그러게 말이야. 얼마 전에는 도둑이 들었다더니 이번엔 화재라니, 거기 올해 재수가 옴 붙었구먼!”

제이든이 놀라서 물었다.

“레옹 바레 상단에 불이 났습니까?”

“그렇다네. 창고가 홀랑 타버렸다는군. 레옹 바레는 충격으로 입원했다던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 같다지만.”

“…….”

음식과 맥주를 받아서 방에 올라간 제이든이 방문을 닫자마자 말했다.

“그것 봐, 그 길로 오면 사고가 날까 봐 반지가 내게 경고한 게 맞는 것 같아.”

-흠, 맞는 것 같네.

아실리도 발등으로 턱을 문지르면서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런데 왜 아까 물가로 들어갈 때는 반지가 경고하지 않았을까?”

-제이든이 진짜로 물에 들어갈 맘이 없었기 때문 아닐까?

“그럴지도 몰라. 아니면 내가 스스로 의도한 움직임에는 경고를 안 하는 걸지도 모르고. 내가 모르는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경고하는 걸까?”

“뭔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만 발동하는 걸 수도 있지. 요정의 지팡이처럼.”

요정의 지팡이란 카이엔의 옛이야기에 나오는 마도구인데, 오래전 어느 젊은 나무꾼이 숲의 요정과 친하게 된 후 선물로 받았다는 지팡이였다.

이름은 지팡이지만 사실은 새총에 더 가까운 물건으로,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짧은 지팡이에 탄력 있는 줄이 달려 있었다고 했다.

갈림길이나 뭔가 둘이나 셋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팡이의 줄에 작은 돌멩이나 구슬을 끼우고 튕기면 구슬이 옳은 방향으로 튀어 나간다고 해서 사람들은 ‘요정의 지팡이’ 대신 ‘선택의 새총’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성녀의 반지도 그런 종류일까? 뭔가 선택해야 할 때 올바른 방향을 가르쳐 주는?

“글쎄, 아직 좀 더 겪어 봐야 알 것 같아. 아무튼 크게 도움이 되는 보물인 건 틀림없어.”

-그래, 이제 반지 생각은 그만하고 밥 먹자. 우리 포이 배고프잖아.

포이가 제 딴에는 아실리와 제이든이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는지 끼어들지 않고 꾹 참고 있었는데 눈은 제이든이 들고 온 음식 쟁반에서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저런, 우리 포이 배고픈데 말 끝나는 거 기다리고 있었어?”

“포잇, 포잇!”

포이가 뒷발로 일어서서 깡충깡충 뛰었다. 이제야 자기를 봐줘서 기쁘다는 눈치였다.

“자, 이 식당 메뉴에 봄딸기가 있더라. 딸기만 따로 판매도 한다고 해서 사 왔어.”

“포이잉! 포잇!”

“아니, 건초부터 먹고 나중에 후식으로 줄게.”

포이는 토끼 사료와 건초를 먼저 먹고, 제이든은 빵과 스튜, 아실리도 자기 몫의 식사를 받았다.

“자, 그 맛있다는 페르비옹 맥주를 한번 맛볼까?”

기분 탓인지 유리잔에 따른 맥주 빛깔이 유난히 좋아 보였다.

제이든은 술을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 반주를 하는 일도 별로 없고 주로 커피를 마시지만 페르비옹까지 왔으니 오늘은 맥주를 마셔 볼 셈이었다.

“캬! 이거 이름날 만하네. 목넘김이 예술인데?”

-맛있어?

아실리가 맥주를 마시는 제이든을 빤히 쳐다보았다.

뭔가 바라는 듯한 눈빛이다.

“실리, 설마 이거 마시고 싶은 거야?”

-흠, 큼, 큼.

콧소리를 내며 헛기침을 몇 번 하던 고양이는 앞발로 바닥을 톡톡 쳤다.

-한 모금, 아니 두 모금 정도만 줘 봐.

“너 술도 먹어? 진짜 먹어도 돼?”

제이든과 아실리가 함께 지낸 지 이제 6년째지만 아실리가 술을 먹는 건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홍차나 커피를 조금 맛보는 건 봤지만.

-알잖아, 난 사람이 먹는 거 다 먹을 수 있어. 술은 취향이 아니라서 일부러 먹진 않지만, 소문난 거니까 한 모금 맛만 볼게.

* * *

“그놈은 어디로 가고 있나?”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노인이 묻자 키 큰 남자가 대답했다.

“동부로 가고 있다고 합니다.”

“아카디아로?”

“아뇨. 아카디아 백작 일행과는 헤어져서 동남부 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

노인이 향로에 불을 붙이자 매캐한 냄새가 나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한 번 더 손을 쓰실 생각이십니까?”

“아니, 그냥 내버려 둬.”

노인은 주름진 손으로 향로 옆에 걸린 가면을 쓰다듬었다.

“잡아 뒀으면 더 좋았겠지만, 어쨌든 이 가면의 마력을 한 번은 쐬었으니까.”

“예. 일단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봅니다.”

“종적을 잃지 않을 정도로만 추적을 붙여 둬. 들키지 않게 하고.”

노인은 다시 한번 가면을 쓰다듬었다.

“절대 평범한 감정사가 아니야. 하지만 가면의 눈 아래에 들어왔으니 언젠가 한 번은 그놈을 써먹을 수 있겠지.”

“수도의 거점을 잃은 게 아쉽습니다.”

쯧! 노인이 소리를 내며 혀를 찼다.

“그 감정사 녀석이 내 걸림돌이 될 거라는 예감이 맞았어. 그놈 뒷배가 그렇게 클 줄이야 누가 알았나.”

“…….”

“은퇴한 전대 마탑주까지 나설 줄이야. 제때 꼬리를 끊을 수 있어서 다행이야.”

“바레 상단의 거점을 잃은 게 아쉽습니다. 제가 에른스트에서 꼬리를 잡히는 바람에.”

키 큰 남자가 머리를 숙이자 노인은 그의 등을 툭 쳤다.

“네 탓이 아니다. 세르지오. 그 여자가 나설 줄이야 누가 알았겠느냐.”

“…….”

“너 아직도 그 여자, 니콜레타에게 남은 정이 있느냐?”

“아닙니다. 아르카니오의 이름을 달고서도 마르첼로의 숭고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마법사들 따위, 마음에서 모두 지웠습니다. 제 스승님은 한 분뿐입니다. 비토리오 님이 제 스승이자 부모이며 길을 밝히는 등대입니다.”

맹목적인 믿음을 담은 회색 눈이 흔들리지 않고 노인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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