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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154화 (154/195)

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 154화

43. 세 번째 유물(5)

“왜, 독성이라도 있는 것 같아?”

시오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과일 봉지를 받아들었지만 벌써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봉지를 열고 냄새를 살짝 맡아본 시오나가 일어섰다.

“조제실에 잠깐 다녀올 테니 여기서 뭐 좀 먹고 있어. 금방 올게.”

시오나가 나간 뒤 하녀 넬리가 삶은 닭가슴살을 가져왔다.

-우왕, 닭가슴살 위에 말린 캣닢 가루를 뿌렸어.

아실리가 코를 킁킁거리며 아기 고양이처럼 바닥의 양탄자에 머리를 비볐다.

“실리, 점잖지 못하게!”

제이든이 눈총을 주자 아실리는 일어나 앉으며 새침하게 야옹거렸다.

-캣닢 가루에 반응하는 건 고양이의 본능인걸. 게다가 이거 내가 젤 좋아하는 아케논산 캣닢이야. 작년에 딴 건가 본데 아주 잘 말렸네. 좋은 향기가 나.

“너 홍차 감평하는 레이디 같아.”

-홍차도 감평하라면 못 할 건 없지.

아실리는 생긋 웃고 발등으로 입을 살짝 닦은 뒤 품위 있게 닭가슴살을 먹기 시작했다.

포이가 궁금한지 아실리 옆에 가서 닭가슴살 위에 뿌려진 캣닢을 살짝 맛보더니 취향이 아닌지 재채기를 하고 자기 접시 쪽으로 퇴각했다.

제이든이 커피 한 잔과 스콘 2개를 해치우고 나자 시오나가 돌아왔다.

“이거 누가 장난질을 쳤네. 독이랄 것까지는 없지만 위에 일어난 하얀 분가루 있지? 이게 자연적인 게 아니고 흰버섯곰팡이 가루야. 먹으면 배앓이를 하고 설사를 하지.”

“그거, 혹시 자연적으로 생기는 가루는 아닌가요? 말린 과일을 오래 뒀다거나 하면 생긴다든지?”

시오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과일은 상하지 않게 잘 말린 건데, 당분이 말라서 원래 흰 가루가 생기잖아? 오래 뒀다고 흰버섯곰팡이 가루가 생기진 않지. 이건 버섯에서 나는걸. 누가 일부러 뿌린 거야.”

제이든은 눈살을 찌푸렸다.

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두어 달 전에도 흰버섯곰팡이 때문에 어린애들이 배탈이 났던 적이 있는데. 이거 누가 준 거야?”

시오나가 물었다.

“아, 이틀 전에 에른스트에서 동부로 향하는 큰길에서요. 네리엔 마을 지나고 한 시간쯤 되는 곳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제이든의 이야기를 듣고 난 시오나가 머리를 끄덕끄덕했다.

“맞는 것 같은데? 지난번에 이베스 보육원의 꼬맹이들도 봄이라고 오랜만에 소풍 나갔다가 그런 남자가 준 과자를 먹었다고 했어.”

시오나는 화가 났는지 연두색 눈이 짙어졌다.

“정말 나쁜 놈이네, 생명에 위험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린애나 동물을 괴롭히는 게 심보가 고약해. 보육원 아이들에게 해코지를 한 것 때문에 치안대에서 보육원에 악감정을 품은 사람들을 조사하고 있었는데, 그냥 지나가다 만난 사람에게도 이런 짓을 한 걸 보면 그냥 재미 삼아 그러는 건가.”

목이 마른지 찻잔에 남은 차를 홀딱 마셔 버리고 새 차를 따르던 그녀는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는 아실리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왜? 목소리가 커서? 화난 거 아니야. 아실리, 얼른 먹어. 맛있지? 냄새 좋지? 그거 좋은 캣닢이야.”

“냥!”

“토끼 친구도 잘 먹네. 사과 맛있지? 이 토끼는 이름이 뭐니?”

“포이요.”

“귀여운 이름이네. 포이.”

아실리와 포이가 간식을 맛있게 먹는 걸 흐뭇하게 보던 시오나가 문득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그놈, 어쩌면 애들에게 해코지를 한 게 아니라 동물이 싫었나?”

“예?”

“이베스 보육원은 유기견도 돌보거든. 소풍 나갔을 때 아이들뿐 아니라 강아지들도 몇 마리 같이 갔는데 강아지들에게도 과자를 줬대.”

“이상한 놈이 다 있네요.”

아이들과 강아지들 모두 배탈이 났지만 이틀 정도 앓고 나면 괜찮았고, 치명적인 독 같은 게 아니어서 심술궂은 장난 정도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다.

“치안대에서도 그렇게 적극적으로 조사하는 것 같지 않았는데 제이든 일도 말해 줘야겠네.”

“멀쩡하게 생겼던데.”

세상엔 참 이상한 놈들이 많다. 그래도 카이엔 쪽은 지구에 비해선 훨씬 덜한 편이지만.

“아, 그건 그렇고, 시오나 씨, 좀 더 독성이 강한 거 좀 볼 수 있을까요?”

“뭐에 쓰게?”

시오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험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요. 독이나 나쁜 성분을 감별할 수 있는지.”

“오! 마도구야?”

시오나의 도움을 받아 몇 가지 실험을 해 보았더니 제이든의 손에 낀 반지는 독성이 짙은 물건을 만지면 검은색에 가까울 정도로 어두워졌고 흰버섯곰팡이처럼 독성이 약하거나 상한 음식 같은 걸 만지면 옅은 회색으로 변했다.

“이거 신기하네, 은침이나 독성 감별 시약보다 훨씬 나은데? 독성의 강도까지 짐작할 수 있잖아. 이거 어디서 났어, 제이든?”

시오나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뜬 채 제이든의 새끼손가락을 잡아 들고 이리저리 들여다보았다.

“우연히 얻었어요. 그런데 이거 비밀이에요. 시오나 씨.”

“아, 사연이 있는 유물인가 보구나?”

시오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맛을 다셨다.

“이거 하루만 빌려주면 안 돼? 나 실험해 보고 싶은 독초가 좀 있는데.”

“안 돼요. 귀한 거란 말이에요. 집에 갈 때까지 안 뺄 거라고요.”

“알았어. 알았어.”

“시오나 씨 입 무거운 거 아니까 보여드린 거예요.”

“그래, 비밀은 지키고말고.”

“손은 이만 놔주시고요.”

“어머, 내가 좀 쓰다듬었다고 닳니?”

제이든의 손가락을 잡은 채 반지를 이리저리 만지작거리고 있던 시오나가 눈을 치켜뜨는 시늉을 했다.

“노처녀 가슴에 그렇게 돌 던지면 못쓴다?”

“에이, 시오나 씨 숭배자들이 차고 넘치는 거 다 알아요. 여전히 결혼 생각은 없으세요?”

“응, 난 자유가 좋아. 연애는 좋지만 어디 묶이는 건 별로야.”

시오나는 어깨를 움츠리면서 장난꾸러기처럼 웃었다.

“결혼하면 이렇게 자유롭게 못 살잖아. 남자도 이렇게 제멋대로 사는 아내는 싫을 거고. 툭하면 한두 달씩 집 비우고 그러는데.”

그녀는 제이든의 손가락을 놓고 아실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서 반려동물도 안 키우는걸. 나도 이렇게 작고 귀여운 애들이랑 같이 살고 싶지만, 아실리처럼 어디든 데리고 다닐 수 있는 애는 흔하지 않잖아? 며칠씩 산 타고 다니고 물속도 들어가고 위험한 독초도 많이 다루는데. 그렇다고 집에만 두고 다니면 미안하고.”

“이제 직접 현장 뛰는 일은 안 하셔도 되지 않아요?”

“어머, 얘, 나 아직 현역이다? 물이 고이면 썩어요. 연구에는 끝이 없고!”

쪼그리고 앉아서 포이의 까만 귀를 살짝 만져보던 시오나가 벌떡 일어났다.

“참, 너 그림 잘 그리지? 치안대에 가서 그 과일 줬다는 놈 얼굴이나 하나 그려놓고 가.”

“아, 네.”

“내친김에 빨리 가자. 갔다 와서 저녁 먹고.”

통통 튀는 듯한 시오나의 뒤를 따라가며 제이든은 싱긋 웃었다.

독특하지만 매력적인 누님이란 말이야.

치안대에서는 예상대로 보육원 아이들과 강아지들에게 배탈 나는 곰팡이를 먹인 걸 질 나쁜 장난 정도로 간주하고 있는 듯했다.

“키엘, 이제 피해자가 하나 더 생겼으니 열심히 수사하셔야 해요. 알겠죠?”

시오나가 허리에 손을 짚은 채 말했고 지목받은 치안대원은 제이든이 그려준 초상화를 챙기면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대장님 돌아오시면 시오나 누님이 더 열심히 수사하라고 특별히 분부하셨다고 꼭 전하겠습니다.”

“애들한테 그런 짓을 한 놈은 꼭 잡아야 하잖아요. 원래 처음에 질 나쁜 장난으로 시작한 놈들이 나중에 중범죄 저지르고 그러는 거니까. 동물 괴롭히는 놈들이 꼭 나중에 사람도 죽이고 그러더라.”

“예. 그놈이 에른스트 쪽으로 갔다고 하니 그쪽에도 공문을 보내겠습니다.”

제이든은 목격자 진술까지 마치고 시오나의 집으로 돌아왔다.

“하이옌으로 간다고?”

“예.”

“그럼 하이옌으로 가는 길에 앙젤로를 지날 확률이 높겠네. 앙젤로에 만약 들르게 된다면 약제사 로위나를 한번 찾아봐. 만약 어디 안 가고 집에 있다면 잘해줄 거야.”

로위나 그레이든 역시 유명한 약제사인데 시오나와는 반대로 극도로 검소하고 금욕적인 성향으로도 잘 알려져 있었다.

둘의 성향이 극단적으로 다른데도 묘하게 두 사람은 매우 친했다.

시오나의 집에서 하루 묵은 뒤 제이든 일행은 다시 동쪽으로 떠났다.

* * *

“이 반지에 그런 능력이 있는 줄 아무도 몰랐나 봐.”

제이든은 아까 지나간 마부가 던져 준 당근을 포이에게 몇 조각 더 깎아주었다.

“그냥 성녀의 유품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고들 하더니.”

-엘리미네온 님이 찾으라는 유물인데, 평범한 물건일 리가 없지. 나도 뭐 좀 줘. 계란과자 아직 있지?

이베스에서 산 계란과자를 꺼내 주니 오독오독 먹던 아실리가 냐앙 코를 울렸다.

-이것도 괜찮지만 역시 계란과자는 아룬빌의 플로렌스가 만들어 주는 게 최고야.

“동부 쪽으로 가면 유명한 맛집이 많다던데. 지난번에 왔을 때는 셀레스테만 보고 가느라 별로 보질 못했네.”

제이든은 2년 전에도 동부에 온 적이 있지만 셀레스테 경매만 참여하고 바로 돌아갔었다.

“셀레스테보다는 훨씬 남쪽이라 가는 경로도 다르고, 항구 쪽은 전혀 분위기가 다르다고 하니까.”

동부에는 유서 깊은 도시가 많지만, 해안가 쪽으로 갈수록 전혀 느낌이 다르다고 했다.

지금은 폐쇄된 하이옌 항구는 예전에 동방 대륙과의 주요 연결 고리였기에 동방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항구 이름부터 하이옌이잖아.

“응, 가릉빈가문 수막새도 그렇지만 내 고향 음식과 비슷한 요리를 한다는 식당이 있어서 많이 기대가 돼.”

간식을 먹고 난 포이가 아실리의 옆구리에 기대어 꼬박꼬박 졸기 시작하자 아실리도 하품을 했다.

-나 졸린데, 제이든, 그거 한 번 더 읊어 주면 안 돼?

“또?”

-응, 그거 왠지 듣기가 좋아.

제이든은 말고삐를 늦추고 마차의 속도를 줄이면서 아실리의 자장가가 되어 버린 훈민정음 언해본을 읊기 시작했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로 사밋디 아니할쎄 이런 전차로 어린 백성이 니르고져 할빼이셔도…….”

-무슨 말인지 몰라도 듣기가 참 괜찮단 말이지…….

아실리가 야아옹 커다랗게 하품을 하면서 눈을 소르르 감았다.

지난번에 한글로 된 주문이랍시고 훈민정음 언해본을 읊었던 이후 아실리는 심심하면 한 번씩 이걸 다시 듣겠다고 졸랐다.

왠지 모르지만 제이든이 이걸 읊어 줄 때의 운율과 발음에 꽂힌 모양이었다. 덕분에 제이든은 며칠 내내 아실리에게 자장가 대신 훈민정음 언해본을 읊어 주고 있었다.

‘점심 먹을 때가 다 됐는데 간식을 괜히 줬나, 애들이 다 자네.’

마차를 천천히 몰고 가던 제이든이 잠시 마차를 멈추고 부스럭거리며 지도를 꺼냈다. 세 갈래 갈림길이 나왔기 때문이다.

‘보자, 제일 넓은 왼쪽 길은 동북쪽으로 올라가는 길이니까 빼고, 가운데 길이랑 오른쪽 길은 둘 다 하이옌 쪽으로 가네.’

지도를 보니 가운데 길은 비교적 잘 닦여 있고 넓었지만 다음 마을까지 크게 돌아가는 길이었다.

오른쪽 길은 좁고 길이 고르지 않지만 숲을 뚫고 다음 마을까지 직선으로 뻗어 있었다.

‘원래 이럴 때는 좁은 길을 고르는 게 옛이야기의 룰이지. 길이 거칠긴 해도 거리도 이쪽이 짧고.’

마음을 정한 제이든이 마차를 오른쪽으로 몰았다.

“아얏!”

갑자기 손이 가시에 찔린 듯 따끔해서 깜짝 놀란 제이든이 손을 털었다.

“뭐야?”

따끔했던 것은 반지를 낀 새끼손가락이었다.

제이든은 다른 손으로 손가락과 반지를 어루만져 봤지만 아무것도 걸리는 게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말고삐를 잡았던 제이든은 또 깜짝 놀라며 말을 멈췄다.

말이 걸음을 떼자마자 또 반지 아래쪽이 침으로 쏘는 듯 따끔했던 것이다.

‘혹시?’

머리를 갸웃거리던 제이든이 말을 조금 뒤로 물렸다가 가운데 넓은 길 쪽으로 마차를 몰아보았다.

갈림길에서 가운데 길로 몇 미터 들어선 제이든이 말을 멈추고 손을 들여다보았다.

‘안 아프네.’

그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저 길로 가면 안 된다는 건가?’

이 반지, 먹으면 안 되는 걸 알려주는 것 외에 다른 기능도 있었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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