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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147화 (147/195)

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 147화

41. 유괴(6)

털썩! 제이든은 엉덩방아를 찧었다.

느껴지는 추락감으로는 마치 이 층 정도 높이에서 떨어진 듯한 느낌이었는데 실제로는 의자에서 떨어진 정도의 충격밖에 받지 않았다.

제이든은 재빨리 일어서서 아이들부터 살폈다.

포니와 포이는 많이 놀라긴 했지만 제이든이 감싸 안고 있었기에 몸에는 거의 충격을 받지 않은 듯했다.

아실리는 제이든이 엉덩방아를 찧었는데도 묘기를 부리듯 제이든의 어깨에서 균형을 잘 잡고 있었다.

다들 무사한 걸 확인한 제이든이 얼른 주위를 둘러보자 포이와 포니가 갇혀 있던 방은 아니었다.

아까 그들이 지나왔던 어둠침침한 방이나 복도보다는 훨씬 밝았다.

-창문이 있어.

아실리의 말처럼 창문이 있는 복도였다. 나무로 짠 덧문이 닫혀 있었지만 덧문의 창살 사이로 빛이 들어왔다. 벽에 간격을 두고 걸린 등불은 모두 꺼져 있었다.

그러니까 여기는 지상이고 해가 뜬 뒤였다. 건물 밖으로 이동하지는 못했지만 지하에서 지상까지는 올라온 거였다.

그들이 서 있는 복도 양쪽으로 한쪽에는 지하와 마찬가지로 태피스트리가 걸려 있고 다른 쪽에는 나무 문이 닫혀 있었다.

삐걱 소리가 나며 누군가 닫혀 있던 문을 열고 복도로 들어섰다.

“으어어.”

무심코 문을 열었던 남자가 그들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어버버거렸다.

“달려!”

제이든이 포니를 안아 올리면서 외쳤고 다 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아실리가 가장 먼저 쏜살같이 남자의 옆을 지나쳤고 포니를 둘러멘 제이든과 토끼처럼 달리는, 아니 진짜 토끼가 그 뒤를 따라 문을 통과했다.

한순간 뒤에 정신을 차린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그들을 따라 뛰어나왔으나 제이든 일행은 이미 문을 통과해 계단을 구르듯 뛰어 내려왔다.

갑자기 쏟아지는 햇살에 제이든이 눈을 가렸다.

그들이 떨어진 곳은 작은 마당이었다.

바닥에 깔려 있던 돌은 여기저기 깨지고 이끼가 잔뜩 끼어 있었다.

무너진 담벼락과 무성하게 자란 잡초, 한눈에 보아도 오랫동안 버려진 곳이었다.

금방 뛰어나온 건물을 돌아보니 돌벽이 아직 버티고 있긴 하지만 금방 무너져 내릴 듯한 낡아빠진 건물 앞에 거의 다 지워진 수도원 표식이 보였다.

폐허가 된 낡은 수도원의 안뜰이었다.

안뜰을 둘러싸고 있는 담벼락도 여기저기 무너져서 어디가 원래의 출입구인지도 정확히 구별되지 않았다.

“아가씨는 업혀요. 실리, 포이, 뛰어!”

제이든은 빛에 눈이 익자마자 포니를 등에 업고 벽이 무너져서 바깥쪽이 보이는 자리를 향해 달렸다.

퉁!

무너져 있는 돌담 위를 뛰어넘었는데, 마치 고무공에 부딪힌 것처럼 몸의 튕겨져서 안쪽으로 돌아왔다.

“뭐야, 환영인가. 실리, 안 보여?”

-나도 안 보여.

아실리가 날카롭게 야옹 울면서 두리번거렸다.

“환영 마법도 걸려 있고 진법도 펼쳐져 있는 것 같은데. 지금은 모르겠어. 시간을 주면 생문을 찾아볼 수 있을지 모르는데.”

환영 마법이라면 아실리의 특기이긴 하지만 세르지오 아르카니오가 이 방면의 대가라고 했지. 낭패인걸.

공간이동 스크롤이 먹히지 않는데 어떻게 여기를 빠져나가지.

제이든이 어딘가 빠져나갈 만한 구석이 있을까 싶어 주위를 둘러볼 때 그들을 따라 문에서 빠져나온 남자도 놀라고 있었다.

“저놈 어떻게 괜찮은 거지? 세르지오 님의 벽에 부딪혔는데 어떻게 멀쩡하게 깨어 있는 거야?”

“비켜!”

제이든과 엇갈렸던 덩치 큰 남자 뒤로 족제비를 닮은 몸집 작은 남자가 빠져나왔다.

“제이든 로스!”

그가 다짜고짜 손에 든 것을 제이든에게 날리자 먼저 나왔던 남자가 기겁했다.

“이봐! 죽이면 안 돼. 잡아놓기만 해야 한다고!”

퉁!

제이든이 팔을 휘둘렀고 날아오던 것이 소매가 찢겨나가 없는 맨팔에 맞고 튀어 나갔다.

픽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꽂히는 것을 보니 사각으로 날개가 돋친 표창이었다.

“?”

던진 족제비 사내도 놀란 얼굴이었고 제이든도 놀랐지만 짐작 가는 것은 있었다.

간밤 제이든이 중앙 사거리로 출발하기 전에 에른스트 관에서 마법사가 그에게 보호 마법을 둘러 주었던 것이다.

“웬만한 물리적 충격은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음, 그래서 아까 벽을 통과하려 할 때도 표창도 고무공처럼 튕겨 나간 건가 보네.

덩치가 큰 남자가 족제비 사내를 뒤로 잡아당기더니 앞으로 나오면서 제이든을 향해 느물느물 말했다.

“이봐. 어차피 빠져나갈 수는 없어. 이 수도원에는 세르지오 아르카니오 님의 결계가 쳐져 있다고. 괜히 억지로 뚫고 나가려다간 몸만 상해. 결계에 부딪혔는데 기절하지 않은 걸 보면 뭔가 보호를 받는 것 같지만 그래도 소용없어.”

그는 앞으로 나오려는 족제비 사내를 한 번 더 뒤로 밀면서 말했다.

“여기 이놈처럼 성질 급한 놈한테 걸려서 괜히 못 볼 꼴 당하지 말고 도로 지하로 들어가자고. 어린 아가씨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응?”

그의 뒤에서 족제비 사내가 머리를 내밀며 씹어 뱉었다.

“죽이면 안 된다지만 팔 한 짝 정도는 괜찮겠지. 표창은 튀어나왔지만 칼이나 도끼도 안 들려나 시험해 보고 싶은데?”

제이든이 그를 힐끗 보자 족제비 사내가 말했다.

“너 나 알아봤지?”

제이든이 주위를 살피면서 툭 던지듯 말했다.

“혼자 도망쳤으면 잘 숨어서 반성이나 하지 또 나쁜 무리에 들었군.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더니.”

“저 망할 자식이.”

튀어나오려는 족제비 사내를 덩치 큰 사내가 만류하는 동안 아실리가 낮게 야옹거렸다.

-글로비스에서 밤의 경매 조직을 일망타진했을 때 한 놈이 도망쳤다더니, 저놈인가 보네.

“응, 보자마자 알아봤어. 그때 미누엘과 우리를 안내했던 그놈이잖아.”

제이든은 등에 업은 포니를 추스르며 물었다.

“포니 아가씨, 괜찮아요? 다친 데는 없어요?”

“네. 괜찮아요.”

포니는 제이든의 등에 머리를 파묻은 채였고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지만 야무지게 대답했다.

“포이, 괜찮아?”

“포이이.”

다리 밑에서 아실리에게 딱 붙어 있던 포이도 비슷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삐삐거리던 소리가 제대로 돌아온 걸 보니 아까보다는 상태가 나아 보였다.

“자, 그만 들어가지?”

덩치 큰 남자가 다시 제이든을 종용했고 제이든은 턱을 치켜든 채 말했다.

“어차피 결계 때문에 못 나간다면 여기나 안에 들어가나 마찬가지 아닌가? 지하는 아이들이 너무 무서워하는데 밝은 데 좀 있으면 안 될까?”

족제비 사내가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욕설을 중얼거렸지만 제이든은 못 들은 척 포니를 등에서 내려놓았다.

“포니 아가씨, 잠깐만요.”

제이든은 스트레칭이라도 하듯 몸을 쭉 펴고 기지개를 켠 뒤 덜렁거리는 소매가 귀찮다는 듯 아까 뜯어내고 남은 한쪽 소매를 마저 뜯었다.

뜯어낸 소맷자락을 구겨 쥔 뒤 손안에서 비비자 소맷자락이 가루처럼 부서졌다.

뭔가 수상한 걸 느낀 덩치 큰 남자가 계단을 뛰어 내려왔지만 제이든에게 닿기 직전에 소맷자락이 마치 작은 불꽃이나 꽃가루가 흩날리는 것처럼 가루가 되어 터졌다.

“없어졌다!”

족제비 사내가 외치면서 제이든이 있던 자리에 손을 내밀었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아니, 이 뜰 안 어딘가에 있을 거야.”

덩치 큰 사내가 말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금 전까지 나른한 곰 같던 눈초리가 매서워져 있었다.

“세르지오 님의 결계 안에서 공간이동 스크롤은 먹히지 않아. 보통 스크롤이 아니라 옷소매라서 방심했지만 모습을 감추는 마법 정도겠지.”

그는 침착하게 담 쪽을 향해 걸어가서 안쪽을 향해 돌아섰다.

“어린애와 고양이, 토끼가 같이 있어. 뭘 잘못 밟든 울어서 소리를 내든 하겠지. 좀 기다리면서 지켜보자.”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뜰을 두른 담벼락을 훑으며 천천히 걸었고 족제비 사내 역시 고개를 끄덕인 후 천천히 그와 반대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제이든의 허리춤을 꼭 잡고 있던 포니가 겁먹은 눈으로 제이든을 올려다보면서 소리 없이 입을 빠끔거렸다.

‘말하면 들려요?’

제이든의 포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말해도 돼요. 소리도 안 들려.”

포니가 커다랗게 숨을 내쉬었고 제이든이 말을 이었다.

“한 시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우리 모습도 안 보이고 소리도 안 들릴 거예요. 그렇지만 다른 물건을 움직이게 되면 그건 보일 수 있으니까 뭔가 잘못 만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그럼 우리 한 시간 동안에 나가는 길 찾아야 해요?”

“그게 제일 좋지만, 못 찾아도 도와줄 사람이 올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말아요. 아가씨는 진짜 용감해. 잘하고 있어요.”

포니를 안심시키는 제이든을 아실 리가 살짝 곁눈으로 보았다.

-신호탄은 먹힐까?

제이든은 대답하지 않고 머리만 살짝 저었다.

사실 제이든도 몰랐다.

소매를 찢으면 마법사가 알아차릴 수 있어서 신호 역할도 한다고 했는데, 공간이동 스크롤이 먹히지 않은 걸 보면 마법사에게까지 신호가 갔을지 알 수 없었다.

여기가 어디인지도 알 수 없어서 신호를 받았다 하더라도 마법사가 언제 올지 모르고, 왔다 하더라도 세르지오 아르카니오의 결계를 뚫고 그들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자가 돌아오기 전에 우리가 나가는 길을 찾는 게 최선인데.”

-노력해 볼게.

아실리가 입을 다문 채 담 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초록색 눈이 보석처럼 빛나고 수염이 새장처럼 앞쪽으로 뻗은 것이 완전히 집중한 모습이었다.

덩치 큰 남자와 족제비 사내는 결계의 안쪽으로 담벼락을 따라 서로 반대쪽으로 서서히 돌면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아실리가 집중하고 있는 동안 제이든은 포이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포니의 손을 꼭 잡았다.

-제이든.

한참 만에 아실리가 나직하게 고르릉거렸다.

-저기 봐, 저 나무 아래랑 노란 돌 있는 곳, 그리고 부서진 우물 자리, 저 세 군데 중 하나가 생문일 것 같은데…….

아실리는 자신이 없는 것처럼 말꼬리를 흐리면서 앞발로 피곤해진 눈을 비볐다.

“음, 수고했어.”

제이든은 아실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 조심스럽게 발 근처에 있는 돌멩이를 주워 들었다.

그는 어깨를 뒤로 당겼다가 아실리가 말한 나무 아래를 향해 돌을 집어 던졌다.

퍽 소리가 나면서 돌이 부딪친 나무 아래에서 불꽃이 튀고 돌멩이가 몇 번이나 공중에서 치지직 소리를 내며 튀어 올랐다.

물수제비 튀듯 공중에서 이리저리 튀다가 땅에 떨어진 돌멩이는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제이든은 놀라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까 보호 마법이 없었으면 저 돌멩이 꼴이 될 뻔했던 거네.

족제비 사내는 달려가서 떨어진 돌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덩치 큰 쪽은 돌이 날아온 쪽을 날카롭게 노려보면서 이쪽으로 걸어왔다.

“이거 또 던지지는 못하겠는데?”

덩치 큰 사내를 보며 제이든이 중얼거리자 포니가 제이든의 팔을 흔들었다.

“어디 던지면 돼요?”

“응?”

“내가 할 수 있어요.”

소녀는 아직도 눈물이 고인 눈에 힘을 주었다.

“저 아저씨한테 들킬까 봐 그러죠? 난 여기서 안 던질 수 있어요.”

제이든은 저절로 감탄했다.

곱게만 자랐을 어린 귀족 소녀가 이런 상황에서 울고불고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포니 아가씨, 그럼 저기 노란 돌 있는 자리 보이죠? 거기다 돌이나 나무토막이나 뭔가 던질 수 있어요?”

포니는 야무지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을 들어 올렸다.

제이든이 말한 노란 돌 근처에 굴러다니던 나무토막 하나가 둥실 떠올랐다.

“엇?”

족제비 사내가 놀라는 소리에 제이든 일행이 있는 쪽을 노려보고 있던 덩치 큰 사내가 고개를 휙 돌렸다.

나무토막이 노란 돌 위쪽으로 휙 날아갔다.

퉁!

고무공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공간이 일렁거리면서 나무토막이 물속에 빠지는 것처럼 공간을 빠져나갔다.

“저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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