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 144화
41. 유괴(3)
에른스트 치안대가 아니라 수도 치안국에서 파견 나온 치안대원들이 와서 문자 그대로 지붕부터 지하실까지 에른스트 관을 샅샅이 훑었다.
레노아에게 답신이 오기 전에 치안국에 파견 나와 일한다는 마법사가 먼저 도착했다.
치안국과 자주 일한 탓인지 마법사라기보다는 형사 같은 분위기의 중년 마법사는 치안대원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저택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포니 방과 방 밖의 창문 아래, 정원까지 한참을 조사한 마법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들어와 창문을 만져보다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바닥에 손을 댄 채 눈을 감고 있던 마법사가 잠시 후 눈을 떴다.
그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뜬 채 입을 열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아가씨와 토끼의 흔적은 창문과 침대 중간쯤의 바닥에서 누가 칼로 잘라내기라도 한 것처럼 뚝 끊어져 있습니다.”
마법사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제 추적 마법은, 땅 위에서 이동했다면 육안으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24시간이 지나지 않은 이상 그 뒤를 정확히 따라갈 수 있습니다. 공중으로 날아갔다 해도 높은 확률로 가는 길을 짐작할 수 있고요.”
그는 지팡이를 들어 가볍게 휘둘렀다.
“짐작해 보자면, 먼저 토끼가 침대에서 나왔을 겁니다. 창문 쪽으로 몇 발자국 걸어갔어요. 그 후 아가씨가 침대에서 나왔습니다. 토끼를 따라서 여기까지 왔고!”
그는 거의 창문에 가까워진 한 지점을 지팡이로 짚었다.
“여기! 여기서 아가씨와 토끼의 흔적이 증발하듯 사라져 버립니다.”
그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런 경우 대체로 여기에 공간이동 포탈이 만들어졌다고 추정할 수 있는데, 이 바닥에는 그런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그럼 날아가 버렸다는 건가?”
아카디아 백작이 물었으나 마법사는 고개를 저었다.
“날아갔다고 해도 어느 방향으로 날아갔는지 정도는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냥 딱 끊어져 있어요. 아가씨와 토끼는 창문을 통과하지 않았어요.”
창문과 침대 사이 어딘가에서 포니와 포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마법사는 조금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마치 바닥이 삼킨 것처럼.”
* * *
포니의 방은 이 층이었기에 땅과 맞닿아 있지도 않았지만, 설령 지하로 이동했다 해도 추적 마법으로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다는데, 포이와 포니의 흔적은 방바닥 그 지점에서 딱 끊겨 있는 모양이었다.
마법사는 뭔가 좀 더 알아본다고 손님방에 들어박혔다. 영상구를 꺼내 다른 마법사들과 회의 비슷한 걸 하는 모양이었다.
어디에선가 비둘기가 연이어 날아왔다가 또 날아가고, 부산스러운 상황 속에 시간이 자꾸 흘렀다.
한낮이 되어 짧아졌던 그림자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할 때까지도 아무 단서가 없어서 사람들의 속을 태울 무렵, 늦은 점심 식사를 준비하던 숙소의 하녀가 다급하게 거실로 뛰쳐나왔다.
“편지, 편지가 있어요. 식당에!”
외부인의 침입도 없었고 식당으로 드나든 비둘기나 매도 없었는데 식탁 한가운데에 불길해 보이는 검은 편지 봉투가 한 장,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나타나 있었다.
“조금 전에도 제가 식당을 지나갔는데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막 주방에서 나오니까 식탁 위에 갑자기 봉투가 있는 거예요.”
삼십 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하녀는 무서운지 손으로 몸을 감싸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고 아카디아 백작이 황급히 봉투를 집어 들려고 했다.
“잠깐, 잠깐 기다려요. 아직 만지지 마세요.”
마법사가 급히 아카디아 백작을 말리더니 지팡이를 봉투 위의 허공에서 몇 번 휘두른 뒤에야 봉투를 집어 올렸다.
안쪽의 종이를 꺼내서 펼친 마법사가 소리를 내어 읽었다.
“아이를 되찾고 싶으면 오늘 밤 자정, 중앙 사거리, 남쪽으로 세 번째 가로등 아래, 아카디아의 초승달과 함께 감정사를 혼자 보낼 것.”
“?”
편지를 읽고 난 마법사가 의아한 눈으로 제이든을 바라보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 역시 그에게 몰렸다.
“나?”
제이든 역시 당황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아카디아의 초승달이 뭐죠?”
치안대원이 물었고 제이든이 아카디아 백작 쪽을 건너다보았다.
“아카디아 가의 증표를 말하는 거 아닙니까? 초승달 모양의 문장.”
“예, 그렇긴 합니다만.”
아카디아 백작이 가슴에 손을 넣었다.
그가 옷 안에서 꺼낸 것은 목에 걸고 있던 은사슬에 이어진 초승달 모양의 목걸이였다.
은은한 회백색 광택을 띠고 있는 초승달 모양의 광석 주변으로 작은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가 장식된 펜던트인데 정작 중앙의 초승달은 알려진 보석이 아니었다.
“달의 조각이라고 하지요?”
“예. 그렇습니다. 사실은 운석이지요.”
감정 공부를 할 때 왕가의 보물이나 귀족 가에서 보유한 이름 있는 보물도 공부하고 특징을 익혀 둔다.
아카디아 가의 초승달은 꽤 유명한 물건이어서 제이든도 알고 있었지만 실물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수백 년 전 동부 아카디아 지방, 어느 날 밤 달이 하늘에서 사라지고 땅으로 떨어졌다. 사라졌던 달은 다시 떠올랐지만 옛 달은 아니었다고 한다.
오랜 시간 하늘을 비춰 줬던 옛 달은 수명을 다해 산산이 부서져 땅에 흩어졌고 다시 떠오른 달은 새로운 달이라고 했다.
부서진 달의 조각을 주운 젊은이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아카디아 가를 일으킨 선조가 되었다는 것이 아카디아의 옛이야기였다.
“사실은 개기월식이 있었고 부서져 땅에 떨어졌다는 달은 운석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운석의 조각은 아카디아 가의 보물로 전해져 내려오다가 몇 대째인가의 아카디아 백작이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를 덧붙여 세공해서 펜던트로 만들었고 그 이후 가주의 상징물이 되었다.
“이 펜던트는 물론 희귀한 보물이지만 포니의 목숨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얼마든지 내줄 수 있어요.”
아카디아 백작은 당장이라도 목걸이를 벗어서 내줄 듯이 제이든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물건 전달자로 왜 감정사님을 지명했을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가족이나 직접적 관련자가 아니니까 오히려 적당한 사람이라 고른 거 아닐까요?”
“원래 일행이 아닌데, 제이든 씨를 골랐다는 건 내부에 정보 제공자가 있는 거 아닙니까?”
“아니, 며칠 전 수도에서 계속 포니 아가씨와 같이 다녔으니까 그때부터 지켜봤다면 쉽게 알았을 겁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지만 제이든과 아실리는 석연치 않은 눈길을 서로 주고받았다.
-저 펜던트, 물론 보물이기는 하지만 상징적 의미가 더 클 텐데.
후계가 불분명하거나 경쟁이 진행 중일 때 가주의 상징인 물건이 절도나 협박에 쓰이는 일은 적지 않다. 하지만 아카디아 가는 그에 해당되지 않는다.
포니의 오빠인 아카디아 백작은 능력이나 인품 모두 인정받아서 일찌감치 백작위를 이어받아 흔들림 없는 위치에 있었다. 포니 외에는 형제도 없었고 친척 중에 감히 그와 후계를 다툴 만한 사람도 없었다.
콜레디오바 가의 상자처럼 후계자가 자신의 자격을 증명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카디아의 초승달이 없다고 해서 가주를 인정하지 않는 곳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유괴까지 해가면서 저 펜던트를 노릴 이유가 있나?
아카디아 가의 초승달은 운석이라는 게 특이하지만 팔기 쉬운 물건도 아닐 텐데. 카이엔에 하나뿐인 물건이라는데 의의를 둔다면 절도범이 수집벽이 있는 자인가?
하지만 일단 아카디아의 초승달을 노리는 거라면 원래 목표가 포이가 아닌 거겠지?
잠깐 안심하려던 제이든의 얼굴이 다시 파리해졌다.
그런데 포이를 노린 게 아니라면 혹시 토끼가 걸리적거린다고 포니만 남겨두고 포이를 어떻게 해 버릴까 봐 걱정이 된 것이다.
이래저래 걱정이 많아진 제이든이 한나절 사이에 부슬부슬 껍질이 일어난 입술을 문지르고 있는데 아카디아 백작이 물었다.
“제이든 씨. 부탁을 좀 드려도 되겠소?”
제이든은 얼른 자세를 고치면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하겠습니다.”
* * *
“거리를 통제했으니 다른 사람은 안 올 겁니다.”
에른스트 타운의 중앙 사거리, 마정석을 넣은 가로등이 노란 불빛을 비추고 있었다.
마법사와 치안대원이 해가 지기 전에 주변을 수색해 봤으나 특별한 것은 없었다.
“통제 때문에 접선자가 안 올 가능성은요?”
제이든이 묻자 마법사가 고개를 저었다.
“유괴범이 누군지는 몰라도 통제는 충분히 예상했을 거고, 애당초 누구 눈에도 띄지 않고 아가씨를 데려가고 편지를 식탁에 놓고 간 자입니다. 보이지 않게 접근할 수 있을 거예요. 혹시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제이든 씨를 건드리더라도 놀라지 마세요.”
마법사는 투명화 마법을 의심하는 것 같았다.
“접선자가 포니 아가씨를 데리고 와서 아카디아의 초승달과 교환할 가능성도 있지만, 제이든 씨를 다른 공간으로 데려갈 가능성도 있어요. 그때는 일단 저항하지 말고 따라가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예. 어쨌든 저는 전달자니까요.”
“제이든 씨가 위험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입 밖에 내어 말하지는 않지만 마법사는 제이든에게 뭔가 추적 장치도 달고 보호 마법도 쓰는 것 같은데 제이든 자신도 어디다 뭘 달았는지 몰랐다.
“아마 모르시는 게 더 나을 겁니다. 상대가 분명히 마법사 같은데, 제이든 씨가 알면 상대도 알아차릴 수가 있어서.”
“예에.”
마법사가 뭔가 주문을 외우기도 하고 지팡이로 제이든을 두드리기도 하는데 제이든은 영혼 없이 대답만 하면서 서 있었다.
아실리는 걱정이 되는지 불안한 기색으로 몇 번이나 앞발을 들었다 놨다 하며 제이든의 옆을 맴돌았지만 포이가 걸려 있었기에 아무 소리 않고 참는 모양이었다.
제이든은 아카디아의 초승달을 넣은 보석함을 품에 넣은 채 남쪽으로 세 번째 가로등 밑에 선 채 기다렸다.
자정에서 이미 한참이나 시간이 지났으나 주위는 고요했다. 치안대원들과 마법사가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겠지만 은신을 잘했는지 제이든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냐아옹.”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실리가 울었다.
위험하니까 떨어져 있으라고 제이든이 우긴 바람에 아실리는 근처의 나무 아래에서 길고양이인 척 엎드려 있었지만 한시도 제이든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째깍, 째깍, 사거리에 서 있는 시계탑의 초침 소리가 터무니없이 크게 들렸다.
가로등 밑에 선 지 거의 한 시간이 가까워 왔다.
곧 한 시가 되겠다 싶을 무렵, 제이든의 발밑에서 가로등의 그림자가 아무도 모르게 천천히 넓어졌다.
“캬옹!”
날카로운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밤공기를 찢고 그 뒤를 이어 치안대원의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제이든 씨!”
어디선가 나타난 마법사가 지팡이를 휘두르며 달려왔으나 땅에서 일어선 그림자가 이미 제이든을 꿀꺽 삼킨 뒤였다.
“사라진다!”
제이든을 삼킨 그림자가 순식간에 주르륵 줄어드는데 달려온 은회색 고양이가 그대로 그림자 속으로 뛰어들었다.
가로등 밑에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말끔한 돌바닥만 남아 있었다. 가로등의 그림자도 언제 움직였냐는 듯 가느다랗게 늘어진 채였다.
* * *
“제이든 로스!”
“……?”
“제이든 로스, 맞나?”
어둠 속에서 머리를 때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이든은 머리를 흔들면서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