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143화 (143/195)

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 143화

41. 유괴(2)

비명을 지르며 복도로 뛰쳐나온 여자는 포니의 보모인 에이미였다.

잠옷 바람에 머리에 둥근 헤어클립을 만 채 정신없이 뛰어나온 그녀는 부들부들 떨며 외쳤다.

“아가씨가 없어요. 문소리도 못 들었는데!”

아실리가 쏜살같이 그녀의 옆을 지나쳤고 제이든이 그 뒤를 따라 포니의 방으로 뛰어들었다.

어젯밤 포이와 포니가 나란히 한 베개를 베고 누워 있던 침대는 텅 비어 있었다.

“포이, 우리 포이는?”

제이든이 이불을 붙잡고 와락 털었지만 포이는 보이지 않았다.

“토끼도 없네요.”

창문 가에서 바깥을 내려다보고 있던 피터가 제이든을 돌아보았다.

“창문이 열려 있었어요.”

그가 말하는 순간 아카디아 백작이 들이닥쳤다.

“어떻게 된 일이야? 포니가 없다니!”

얼굴이 허옇게 질린 그가 재빨리 방안을 훑었다.

“창문 아래에 흔적은 없습니다. 발자국도 없고요.”

언제 밖으로 나갔는지 정원 쪽에서 로이드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한동안 사람들이 경황없이 우왕좌왕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고 방문을 열어 보고 화장실을 열어 보고 법석을 떨었으나 소녀와 토끼는 보이지 않았다.

“자, 다들 정신없겠지만 잠깐 정리를 좀 해 보지.”

아카디아 백작이 머리를 부르르 흔들더니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포이와 포니는 어젯밤 10시경에 잠자리에 들었고 아카디아 백작과 제이든도 그때 아이들에게 밤 인사를 했다.

에이미는 포니의 방에 붙어 있는 작은 방에서 잤다. 그녀의 방은 복도로 나 있는 문 외에 포니의 방과 서로 통하는 문이 있었고, 그 문은 열어 두었다.

반대쪽의 옆방은 피터와 로이드가 함께 썼다. 그 방에는 포니의 방으로 통하는 문은 없었다.

방은 2층에 있었는데 옛 저택이라 층고가 높아서 일반적인 건물의 2층보다는 높이가 높았다. 창문의 위치도 사람이 뛰어내리거나 타고 오르기에는 많이 높은 편이었지만 훈련된 몸을 가진 사람이라면 못 오르내릴 것도 아니긴 했다.

“하지만 창문 아래가 화단이라서 흔적이나 발자국이 남기 쉬울 텐데 그런 건 안 보였습니다. 아직 어두워서 확실치는 않지만요.”

에이미의 비명을 듣고 잠에서 깬 피터는 즉시 방으로 들어가고 로이드는 밖으로 뛰어나가 창 아래쪽부터 바깥으로 나가는 경로를 살폈다고 했다.

“날이 밝은 후에 다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로이드가 이제야 희끄무레하게 어둠이 옅어져 가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특별히 경계하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에이미의 비명 소리를 듣기 조금 전에 어렴풋이 문소리를 듣기는 했습니다. 아가씨 방은 아닌 것 같았는데.”

“그, 그건 저예요.”

에이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화장실을 다녀왔어요. 화장실 다녀오는 길에 아가씨를 한번 보려고 들여다봤더니 아가씨가 없어서.”

그녀는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화장실을 가려고 해도 절 깨웠을 텐데. 낯선 곳인데 아가씨 혼자 방을 나갔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방을 둘러보는데 창문이 열려 있어서 저절로 소리를 질렀어요.”

“저희가 좀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하는데. 문소리를 듣자마자 일어났어야 했었습니다.”

피터가 죄스러운 듯 머리를 숙이면서 말했다.

“아니, 위험한 곳도 아니고 누가 이런 일을 예상했겠나. 우선 집안을 뒤져 보도록 하지. 아이들은 묘한 곳에 숨어서 잠들어 버리기도 하니까. 재작년이었나? 포니가 고양이를 쫓아 다락방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잠들어 버렸던 일도 있었잖아.”

아카디아 백작의 말에 따라 사람들은 흩어져서 숙소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옛 저택이라 숨을 만한 곳이 많아 보였다.

숙소 직원의 안내를 받아 지붕 밑부터 지하실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포니와 포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수색을 끝내고 아래층 거실에 모였을 때는 이미 날이 훤히 밝아 있었고 연락을 받은 치안대원도 도착한 참이었다.

치안대원은 우선 인원 파악을 했다.

아카디아 백작의 일행은 사라진 포니를 제외하고 일곱 명이었다.

아카디아 백작, 백작의 비서인 제프리, 포니의 보모인 에이미, 경호원인 로이드, 피터, 후크, 체이스.

에른스트 관의 직원 중 밤에 건물 내에 있었던 사람은 상근하는 집사인 버크, 간밤 야간 당직을 맡은 남녀 직원 한 명씩, 그리고 경비원 네 명이었다. 요리사 및 나머지 직원들은 출퇴근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쪽 분은?”

“백작님의 손님입니다. 감정사 제이든 로스 씨고요.”

경비원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특별한 것도 없었다고 했다. 에른스트 관에 설치되어 있는 방어 마법은 숙박업소에 설치하는 표준 방어 마법 중 가장 높은 기준의 마법이었는데 경고 알림도 없었고 마법이 강제로 해지된 것도 아니라고 했다.

“정밀 검사를 위해서는 마법사를 불러야 하지만 현재 확인된 바로는 그렇습니다.”

“혹시 아카디아 양을 유괴할 만한 동기가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원한이라든지…….”

치안대원의 물음에 아카디아 백작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짐작 가는 바가 전혀 없소. 원한을 살 만한 일도 없고 영지나 사업이나 모두 평화롭고 순조로운데, 물론 사업상 낯을 붉히게 되거나 서로 의견이 갈리는 경우는 있지만 최근에는 그런 일도 없었소. 이번에 수도에서 만난 거래처와도 매우 협조적인 분위기로 잘 진행되었고.”

“알겠습니다. 우선 치안대를 동원해서 주변 수색을 해보겠습니다. 추적 전문 마법사를 보내달라고 카이에른 치안국에도 연락해 놓았으니 곧 올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주시고 현재 에른스트 관에 있는 인원은 외출 금지입니다. 모두 여기 머물러 주십시오. 유괴범에게서 비둘기나 매, 음, 어떤 경로로든 연락이 온다면 바로 제게 알려 주십시오.”

카이에른에서 가장 중범죄로 치는 세 가지가 흑마법, 마약, 그리고 아동 관련 범죄인 만큼 치안대는 즉시 전력을 다해 수색에 나섰다.

애당초 카이엔은 치안이 상당히 좋은 편이고 중범죄가 많지 않은데 게다가 수도 바로 근처였다.

포니에게도 경호원이 붙어 있긴 하지만 외출 시 길을 잃을까 봐 따라다니는 정도지 숙소에서 유괴 같은 건 생각도 못 해 본 사람들이라 다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저, 다들 걱정이 많이 되시겠지만 기다리시는 동안 따뜻한 음식이라도 조금 드릴까요?”

한국이라면 호텔 지배인 격인 에른스트 관의 버크 집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절부절못하고 계속 거실을 서성거리던 아카디아 백작이 그를 돌아보고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식당으로 가죠.”

다들 입맛은 없었지만 따뜻한 차와 수프 정도로 요기를 했다.

“제이든 씨, 내가 하루 묵고 가라고 하는 바람에 이런 일에 휘말린 것 같아서 미안하군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입이 바짝 마른 채 물만 들이켜는 제이든을 보고 아카디아 백작이 한숨을 쉬었다.

“그 토끼가 제이든 씨에게 가족과 같다는 걸 압니다. 우리 포니와 같이 있다가 휘말린 모양인데, 둘 다 무사히 돌아올 거라고 믿습니다. 토끼도 꼭 신경 써서 찾도록 치안대에 부탁해 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백작님.”

아이가 없어졌는데 토끼 얘기를 꺼내기 어려워 속이 타들어 가고 있던 제이든도 조금 마음이 놓였다.

“냐아앙.”

제이든의 옆에 바짝 붙어 있던 아실리가 조그맣게 울었다.

-어쩌면 반대일지도 몰라.

“응?”

제이든이 아실리를 내려다보자 아실리는 초록색 눈으로 제이든을 올려다보면서 나직하게 목울음 소리를 냈다.

-포니 유괴에 포이가 휘말린 게 아니라 포이를 잡아가는 와중에 포니가 휘말린 걸 수도 있어.

제이든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 누군가 우리 포이가 포에니 토끼라는 걸 알아차렸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

부르는 게 값이라는 포에니 토끼, 하다못해 앞발 한쪽으로 만든 행운의 부적만 해도 같은 무게의 황금보다 값이 더 나간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이런 말을 내놓고 할 수는 없었다.

“저, 긴급 우편을 보내고 싶은데 우편국에 갈 수 있을까요?”

“어디로 보내실 건지요? 내용을 제가 확인해도 됩니까?”

그들과 함께 남아 있던 치안대원이 제이든에게 물었다.

“마탑에 아는 마법사가 있어서 도움을 구해 볼까 합니다. 문관국의 레노아 데메스 마법사에게 보낼 겁니다.”

“그럼 우편국에 가실 필요 없이 치안대의 비둘기를 쓰시죠. 우편국 비둘기보다 빠릅니다.”

치안대에서 아침에 가져온 연락용 비둘기장에는 세 마리의 비둘기가 들어 있었다. 원래는 다섯 마리였으나 두 마리는 이미 긴급 서신을 달고 날아간 뒤였다.

“얘를 쓰시죠. 마탑에 여러 번 갔던 아이라 길도 잘 압니다.”

치안대원이 꺼내 준 비둘기는 흔히 보는 회색이나 흰색이 아니라 옅은 미색에 밤색 목덜미와 날개를 가진 새였는데, 비둘기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몸집이 컸다.

우편통에 서신을 넣으라고 내미는 다리도 굵직한 것이 무척 튼실해 보였다.

“자, 빨리 좀 부탁한다.”

서신을 받은 비둘기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구구구 울더니 즉시 날개를 펴고 하늘 위로 사라졌다.

* * *

“삐이잉.”

포이가 조그맣게 울었다.

아침인가? 이상하게 머리가 무거웠다.

내가 원래 아침에 제일 빨리 깨는데.

아침에 깨서 제이든 형아 옷깃 잡아당기면서 깨우면 아실리 누나가 형 깨우지 말라고 토닥토닥하면서 안아주고, 그러면 또 잠이 오고…….

“끼이잉.”

근데 형아 냄새가 안 나는데? 아실리 누나 냄새도.

“포이야, 깼어?”

아, 포니 누나다. 맞아, 어제 포니 누나랑 같이 잤지.

포이가 포잇 울면서 머리를 쳐들자 포니가 포이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겁내지 마, 포이야. 괜찮을 거야.”

포이는 이제야 완전히 잠에서 깨어 부빗부빗 머리를 비비적거리며 포니의 품에서 머리를 쳐들었다.

포잉? 여기가 어디야?

사방이 어둠침침했다. 어딘가의 지하실 같았다.

포이와 포니는 사각형의 커다란 철장 속에 있었다. 바닥에 담요가 깔려 있긴 했지만 천장도 벽도 쇠막대로 이루어진 우리였다. 짐승을 가두는 것 같은.

“포이잇!”

포이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몸을 떨기 시작했다.

다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갑자기 무서운 기억이 밀물처럼 떠올랐다.

한참 전에, 지금보다 더 작은 아기 토끼였을 때, 너무 어려서 지금처럼 생각 같은 걸 할 수 없을 때.

토끼 굴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놀러 나왔다가 사람에게 잡혔다.

사람이라는 동물을 처음 봐서 어리바리하고 있다가 잡혔는데 자기 때문에 엄마 토끼까지 잡혔다. 엄마는 안 잡힐 수 있었는데 포이를 혼자 보낼 수 없어서 제 발로 덫에 들어왔다.

크기는 이것보다 훨씬 작았지만 이렇게 생긴 철제 우리에 엄마와 함께 갇혔다가 나중에 몸도 잘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작은 우리에 따로 갇혔다.

엄마가 갇힌 우리가 바로 앞에 있었는데 아무리 울고 창살 사이로 발을 내밀어도 닿을 듯 닿을 듯 닿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리고, 엄마 토끼는 결국…….

“피이잇!”

포이는 날카롭게 울면서 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포이, 괜찮아, 포이야. 괜찮을 거야.”

포니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포니는 야무지게 손등으로 눈물을 닦은 후 포이를 꼭 끌어안고 작은 손으로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포이야, 누나가 지켜줄게.”

포니는 방을 둘러보면서 입을 꼭 다물었다.

난 아카디아 백작 가의 딸이야. 누가 우릴 잡아 왔는지 모르지만 오라버니가 꼭 구해줄 거야.

그때까지 포이는 내가 지켜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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