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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139화 (139/195)

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 139화

39. 새로운 능력(2)

좌판 뒤에 서서 미소를 짓고 있던 야바위꾼들은 물론 구경하던 사람들까지 당황한 얼굴로 제이든을 바라보았다.

“우리 다섯 명이 모두 가짜라고요? 그럼 진짜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야바위꾼 중 한 명이 어이없다는 듯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상품들 뒤! 그래, 저 상품들 뒤인가 봐. 아까 야바위꾼도 거기서 나왔잖아?”

성질 급한 구경꾼 한 사람이 큰 소리로 외쳤다.

“정말인가? 이봐! 상품들 뒤를 볼 수 있어? 저 거치대 뒤를 좀 보여줘!”

누군가 외치자 야바위꾼들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좀……. 저도 이 재주로 먹고사는데 그렇게 밑천까지 탈탈 털어버리려 하시는 건 너무하잖습니까?”

“맞아요, 맞아. 마술사가 무대 뒤까지 공개하는 거 보셨나요?”

“그래, 너무해요.”

야바위꾼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다섯 명 모두 꼭 진짜 야바위꾼 같았다.

“저 야바위꾼들이 종이로 접은 인형이라면 진짜 대단한데요. 어디로 봐도 사람 같은데.”

제이든의 옆에 섰던 로이드가 감탄하면서 말했고 제이든이 그에게 주의를 주었다.

“마술에 한눈팔지 말고 포니 아가씨 잘 보고 있어요.”

“아, 예.”

그때 거치대 뒤를 보여 달라던 남자가 사람들을 돌아보며 동조를 구했다.

“그냥 마술이면 그러려니 하고 손뼉 치면서 보겠지만 이건 돈을 걸고 진짜를 맞히는 게임이잖소. 그런데 고르라고 내놓은 것들 중에 진짜가 없다면 사기잖아. 트릭 확인을 시켜 줘야지.”

“맞소, 맞아!”

사람들이 웅성거리자 야바위꾼은 울상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 올렸다.

“예, 뭐,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하지만 아무나 거치대 뒤까지 보게 할 순 없고요. 돈을 거신 분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렇잖아요? 애초에 돈을 걸고 상품을 맞힐 기회를 받는 거니까 돈을 거신 분께만 확인시켜 드리겠습니다.”

“음, 그 말이 맞네.”

목소리 큰 남자는 귀가 얇은지 금방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제이든을 쳐다봤다.

“그럼 형씨가 확인하면 되겠군.”

야바위꾼과 제이든이 동시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확인해 보셔도 좋습니다.”

제이든이 들고 있던 은화를 좌판 위에 내려놓자 야바위꾼들이 옆으로 비켜섰다.

구경꾼들이 침을 삼키면서 거치대 뒤편을 향해 목을 빼고 기웃거렸다.

“아니, 거기가 아니죠.”

제이든이 싱긋 웃었다.

“대체 어떻게 자리를 옮겼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처음 우리에게 마술을 보여주던 야바위꾼은 여기 있습니다. 그렇죠?”

제이든은 손으로 좌판을 통 소리가 나게 두드렸다.

“아니, 젊은이, 그건 아니야.”

목소리 큰 남자가 당황한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까부터 내가 계속 보고 있었는데 거치대 뒤편에서 나오는 거라면 몰라도 거기는 들어갈 수가 없었어. 우리가 계속 보고 있었잖아.”

“맞아. 그리고 사람이 몸을 굽히고 숨어 있기엔 너무 좁아.”

“그럴까요?”

제이든이 여우처럼 샐쭉 웃으며 야바위꾼들을 훑어보자 잠시 말없이 서 있던 야바위꾼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머리를 긁었다.

“이야, 대단한데.”

“손님, 혹시 마법사인가요?”

“마법사면 이런 짓 하시면 안 되죠. 고급 마법사가 불쌍한 거리 마술사의 밥줄을 끊으면 안 되잖아요.”

“맞아요. 몇 가지 재주 익힌 걸로 밥 벌어먹는 건데.”

“마법사는 원래 이런 야바위는 못 본 척하는 게 불문율이라고요.”

야바위꾼들이 저마다 입을 내밀고 뺨을 부풀리거나 눈물을 닦는 시늉을 하면서 불평을 했고 제이든은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마법사 아니에요.”

“흥! 마법사가 아닌데 어떻게 알았지?”

좌판이 갑자기 양쪽으로 쩍 갈라지더니 야바위꾼 한 명이 그 안에서 몸을 일으키며 옷을 툭툭 털었다.

그 순간 좌판 뒤쪽에 서 있던 다섯 명의 야바위꾼은 한꺼번에 풀썩 주저앉았다.

한순간에 다섯 명의 야바위꾼은 사라지고 다섯 개의 정교한 종이 인형만이 남아 있었다.

“이야! 제가 이 공연을 몇 년이나 했는데, 가끔 나비나 잠자리를 맞힌 손님은 있어도 마지막 단계를 맞힌 분은 한 번도 없었는데, 대단하십니다.”

좌판 밖으로 나온 야바위꾼은 제이든에게 정중하게 절을 했다.

“드디어 팔찌 주인을 찾았네요. 축하드립니다.”

꼭 팔찌를 차지하고 싶었던 건 아닌데, 야바위꾼을 맞히는 데 열중한 바람에 그만 상품을 타게 된 제이든이 멋쩍게 귀를 긁적거렸다.

“그런데 정말 마법사는 아니신 거죠?”

“예,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절 찾아내신 건지 정말 신기합니다.”

“제가 감정사라 감이 좀 좋아서요.”

“아, 감정사!”

야바위꾼은 그래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듯 머리를 갸우뚱거렸지만 순순히 팔찌를 거치대에서 벗겨서 고급스러운 상자에 담았다.

“자, 여기 상품입니다.”

“이거 참, 받아도 되나 모르겠네요.”

“받으셔야지요. 모름지기 거래는 깔끔해야 하는 법입니다. 상품이 크다고 안 주면 되나요. 제가 이래 봬도 이쪽 바닥에선 나름대로 잘 나가는 사람입니다.”

야바위꾼은 언제 우는 시늉을 했냐는 듯이 정색을 하고 팔찌 상자를 제이든에게 쥐여 주었다.

“저는 이반 코트니라는 사람입니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중이지만 언젠가 또 뵐 수 있으면 좋겠군요. 감정사님은 성함이 어떻게 되시지요?”

“제이든 로스입니다.”

“오, 제이든 로스. 기억해 두겠습니다.”

태도를 보니 제이든의 이름을 아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자, 오늘 장사는 여기서 끝입니다. 다들 무사히 돌아가시고 가내 평안하시고 좋은 저녁 되시기 바랍니다.”

구경꾼들에게 인사를 하고 주섬주섬 좌판을 거두는 야바위꾼 이반 코트니를 뒤로하고 제이든 일행도 마차로 향했다.

“해 저물기 전에 우리도 숙소로 돌아가죠.”

“그럽시다. 그런데 감정사님, 진짜 어떻게 알았어요? 포니 아가씨가 좌판 바로 앞에 있어서 저도 계속 보고 있었지만 야바위꾼이 어떻게 좌판 밑에 들어갔는지 전혀 모르겠던데.”

로이드가 궁금해 죽겠다는 듯이 물었고 피터나 포니는 물론 포이까지 동그란 눈으로 제이든을 쳐다봤지만 제이든도 대답할 길이 없었다.

“어떻게 들어갔는지는 저도 모르지만 그 아래에 있다는 감이 왔거든요.”

“감이요……, 그냥 감이라기엔 완전히 자신 있게 단언하시던데.”

궁금해하는 일행에게 대충 얼버무리고 마부석에 오른 제이든은 말을 몰면서 생각에 잠겼다.

좌판은 사람이 들어가기에 너무 낮았고 제이든 역시 야바위꾼이 그 아래로 어떻게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도 그 아래에 진짜 야바위꾼이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보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야바위꾼들 뒤쪽, 거치대 뒤편에서 보라색 안개가 퍼져 나오는 게 보였다.

그 후 앞에 나와 있는 야바위꾼들이 제이든에게 말을 걸고 구경꾼들의 시선을 잡아 놓는 동안 어느새 그 안개가 좌판 아래로 이동했던 것이다.

누가 가르쳐 준 것은 아니지만 그 안개가 진짜 야바위꾼의 아우라라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원래 사람에게서 이런 안개를 본 적은 없었는데.

유물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아우라를 본 것은 지난번 메리앤의 분홍색 안개가 처음이었다.

그 후 여러 사람을 보면서 시도해 봤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야바위꾼에게서 아우라의 안개가 보인 건 무엇 때문일까?

-포니가 의뢰해서 그런 건가?

등 뒤의 마차 안쪽에서 아실리가 마부석으로 나왔다.

돌아보니 안쪽에서는 포니와 포이가 곰 인형을 베고 서로 기댄 채 잠들어 있었다. 포니는 먼 길을 오기도 했고, 둘 다 광장 구경하느라 꽤 피곤했나 보다.

“의뢰……, 그렇지, 실리, 의뢰가 맞는 것 같아!”

머릿속에 전등이 탁 켜진 것 같았다.

아룬빌 마을에서 메리앤 아주머니의 감정을 읽어 달라고 한 건 딕 노인이었다.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일축했었지만 딕 노인은 제이든에게 의뢰비라면서 채소 바구니를 떠맡겼고 제이든은 그 바구니를 받았다.

야바위꾼 때는 포니가 곰 인형을 의뢰비라고 제이든에게 안겨 주었고 제이든이 인형을 받아들고 대답을 한 이후에 야바위꾼의 안개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처구니없는 일 같지만, 내게 새로운 능력이 생긴 건가?

제이든은 고삐를 쥐고 있던 손으로 머리를 두어 번 통통 때렸다.

내가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들이면 그 의뢰에 관련해서 사람까지 감정할 수 있게 되는 건가.

채소 바구니와 곰 인형처럼 허술한 물건이라도 일단 내가 의뢰비를 받고 대답하면 의뢰를 받아들인 걸로 인정되는 거고?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능력이 생겼을까?”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제이든을 보면서 아실리도 머리를 갸우뚱 기울인 채 함께 생각에 잠겼다.

“실리, 내가 유물을 찾은 거랑 관계가 있을까?”

에트루리안의 서와 레칸도르의 금척, 그 두 가지 유물을 찾아서 제자리에 놓은 게 아무래도 새로운 능력과 관계가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 외에는 짐작가는 게 없었고.

아실리도 작은 머리를 끄덕였다.

-내 생각에도 그런 것 같아.

에트루리안의 서를 얻은 후로 유물의 내력을 보는 능력이 확연하게 발전했고, 레칸도르의 금척을 얻은 후로 사람을 감정할 수 있는 능력이 발현되었다.

감정사의 본분에 맞게 의뢰를 받고 수락해야만 발현되기는 하지만.

“그러면 남은 두 가지 유물을 더 찾으면 또 뭔가 능력이 생길지도 모르겠네.”

-아마 약속의 아이에게 필요한 능력이겠지.

제이든과 아실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마차 옆에서 말을 탄 채 따르고 있던 로이드가 다가왔다.

“일전에도 느꼈지만 감정사님은 고양이와 정말 사이가 좋으시네요. 꼭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아요.”

“하하, 제가 뭔가 생각할 게 있을 때 아실리에게 혼자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거든요.”

“하긴, 저쪽의 피터는 말에게 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대장님께 혼났을 때 말한테 하소연하는 것도 봤습니다.”

반대쪽에서 마차를 따라오던 피터가 그 말을 들었는지 씩 웃으면서 자기 말의 목덜미를 두드렸다.

“루비는 제 친구니까요.”

* * *

드디어 카이에른 경매가 시작되었지만 제이든은 통 경매에 집중하지 못했다.

예전 같았으면 경매에 무척 집중했을 텐데 이번에는 경매에 동반한 의뢰인이 없었다면 다 보지도 않고 떠났을 만큼 몰입이 되지 않았다.

“로스 감정사, 저 갑옷은 어떤 것 같소?”

“예?”

“흠, 별로인가? 왜 반응이 그렇게 떨떠름하오?”

“아닙니다. 백작님. 죄송합니다. 제가 집중력이 조금 떨어졌던 모양입니다.”

“로스 감정사가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는 물건치고는 가격이 너무 센데.”

“아닙니다. 입찰하셔도 됩니다. 진품이고 충분히 좋은 물건입니다.”

“흠, 그럼.”

제이든은 부채를 들어 올리는 로드포드 백작의 옆에서 이마의 땀을 닦았다.

로드포드 백작과 마르소 상단의 경매 상담을 해 주기로 했는데 딴생각을 하느라 집중하지 못했다.

프로가 이러면 안 되지.

그나저나 경매에 이렇게 집중을 못 한 건 처음이었다.

마음속에 빨리 경매를 끝내고 가릉빈가문 수막새를 보러 하이옌에 가고 싶은 생각뿐이어서 그런 거였다.

-오늘 경매엔 괜찮은 거 있었어?

숙소에 돌아온 제이든에게 아실리가 물었지만 제이든은 침대에 쓰러지면서 말했다.

“좋은 건 많았는데 내 눈에 들어오는 게 없어. 그냥 빨리 하이옌에 가고 싶어. 수막새도 봐야 하지만, 뭔가 거기서 나를 막 끌어당기는 게 있는 것 같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항구도시 하이옌, 고향도 아닌데 왜 자꾸 마음이 끌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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