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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138화 (138/195)

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 138화

39. 새로운 능력(1)

계속 유들유들하고 여유가 넘치던 야바위꾼이 몹시 당황한 얼굴로 말을 더듬자 사람들은 박장대소를 했다.

“야! 이건 정말 놀랐는데요. 행운의 토끼인가요! 토끼의 선택을 믿고 이쪽 잠자리에 거신 손님이 큰 선물 받으시겠습니다!”

야바위꾼은 프로답게 금방 낯빛을 추스르고 너스레를 떨면서 피터에게 선물을 고르게 했다.

사람들은 야바위꾼의 놀란 태도도 연출의 일환이라고 생각하고 웃으며 즐겼지만 제이든이 보기에 야바위꾼은 정말 당황한 거였다.

원래 지구에서도 이런 게임은 흔한 편이지만, 승패를 야바위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기 때문에 야바위라고 하는 것이다.

마술사의 눈속임과 비슷한 것으로 숙련된 손놀림이 필요한데, 카이엔에서는 거기에 약간의 마법까지 가미되어 있는 게 더 흥미로워서 제이든도 재미있게 보고 있었고.

진짜 탁월한 실력을 지닌 도박꾼이 참전하지 않는다면 야바위꾼이 이기게 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도 못 맞히면 재미가 없으므로 중간중간 한두 번씩 손님도 이기게 해준다.

하지만 조금 전 포이가 맞힌 것은 야바위꾼이 의도하지 않은 게 확실해 보였다.

사람이 아니라 토끼였기 때문에 야바위꾼도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포이, 고마워.”

거의 제 몸만큼이나 커다란 곰 인형을 상품으로 받은 포니는 선물보다도 포이가 맞혔다는 게 더 뿌듯한 듯했다.

“자, 포니 아가씨. 상품도 받았으니 이제 다른 걸 보러 갈까요?”

“조금만 더 볼게요. 다음엔 뭐가 나오는지 보고 싶어요.”

포니가 제이든의 소맷자락을 당기자 포이도 귀를 까닥거리며 동조했다.

“그럼 조금만 더 볼까?”

이 야바위꾼의 솜씨는 상당한 데다 주사위나 구슬 맞히기가 아니라 종이접기 동물을 변신시키는 연출도 독창적이었다. 단순한 야바위라기보다는 거리 마술 공연에 가까워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다들 좀 더 보고 싶어 하는 눈치이자 아실리가 한숨을 쉬면서 제이든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제이든, 나 좀 안아줘.

아실리가 탄식하듯 미야옹 우는 바람에 제이든이 아실리를 안아 올리다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실리, 어디 아파?”

아실리는 숨을 약간 가쁘게 쉬면서 수염을 달달 떨다가 제이든의 팔에 얼굴을 파묻었다.

“왜 그래? 실리, 어디 안 좋아?”

아실리는 제이든의 팔에 얼굴을 묻은 채 코맹맹이 소리로 그르릉거렸다.

-아니양.

“아니긴, 숨도 좀 가쁘고……, 열나는 거 아니야?”

-아니야앙.

아실리는 무척 자존심이 상한다는 듯이 말했다.

-저거 보는 거 좀 힘들어서. 내가 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었다지만, 저런 거 고양이한테는 너무 치명적이야. 나 아까 나비 잡으러 나갈 뻔했어.

아, 그렇지. 백 년을 넘게 살았든 현자처럼 똑똑하든 아실리의 본신은 고양이인데.

나비며 잠자리가 눈앞에서 팔랑팔랑 맴돌고 다니는데 고양이의 사냥 본능을 억누르고 꾹 참다니, 우리 아실리가 얼마나 초인적인, 아니 초묘적인 노력을 했을까!

“미안, 미안, 내가 생각이 짧았네. 요번 판만 보고 얼른 가자.”

제이든이 아실리를 토닥이는 동안 야바위꾼은 네 마리의 생쥐를 불러내서 좌판 위를 돌아다니게 하고 있었다.

이크! 이거야말로 아실리가 보면 안 되는 거잖아.

제이든은 아실리의 눈을 가린 채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자, 이번엔 가장 큰 상품을 걸고 한 판 하겠습니다. 저기 맨 위에 걸려 있는 팔찌 보이십니까?”

생쥐 차례가 지나가고 다시 좌판을 비운 야바위꾼은 상품을 죽 걸어놓은 거치대 위 맨 꼭대기에 걸려 있는 팔찌를 가리켰다.

은은한 상앗빛 구슬을 십여 알 엮어서 만든 팔찌였다.

“이 팔찌로 말할 것 같으면, 셀레우코스 코끼리의 상아와 남해 진주로 제작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황실 분들이나 쓰실 명품은 아닙니다만 웬만한 집안이라면 혼수품으로 써도 충분할 정도로 좋은 물건입니다. 오백 골드는 충분히 나가는 상품이에요. 여러분 중에 혹시 보석상이나 감정사 일을 하시는 분 계십니까?”

사람들이 두런거리는 중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여기, 이 사람이 보석상에서 일해요.”

손을 든 사람은 자기 옆에 서 있던 친구를 앞으로 밀어냈다.

“오! 보석상에서 일하신다면 이 물건의 가치는 알아보실 수 있겠지요?”

보석상에서 일한다는 사람은 거치대 바로 밑까지 가서 한동안 팔찌를 살피고는 야바위꾼을 돌아보았다.

“예, 좋은 물건이네요. 말씀하신 가격이 적당해 보입니다.”

제이든도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였다.

코앞에서 본 건 아니라도 슬쩍 안력을 집중해서 봤더니 셀레우코스 상아와 남해 진주를 섞어 만든 게 맞았다.

명품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지만 이런 거리 공연의 상품으로 내놓기에는 과할 정도의 물건이었다.

하지만 저런 물건은 호객용 미끼 상품일 뿐 실제로 손님이 따 갈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손님에게 주는 건 인형이라든지 예쁘장하지만 값싼 장신구 정도인 거고.

“제가 말이죠, 동서남북으로 이곳저곳 안 다닌 데가 없는데 인형부터 시작해서 목걸이며 반지며 손님들이 많이 받아 가셨습니다만 이 팔찌는 벌써 삼 년째 아무도 따 가지 못했습죠. 그런데 이번엔 느낌이 좀 괜찮습니다. 팔찌의 주인이 나타날 것 같기도 한데요. 수도 카이에른이기도 하고 손님들도 훌륭한 분들이 많으신 것 같으니까요. 이 팔찌에 걸린 문제는 아직 아무도 맞히지 못했습니다만, 상품이 상품이니만큼 조금 크게 가겠습니다. 5실버를 먼저 거셔야 합니다. 단돈 5실버로 무려 500골드짜리 상품을 차지할 기회! 자, 어떤 문제가 나올지 한번 보시겠습니까?”

혀에 기름을 바른 듯 매끄러운 야바위꾼의 말이 끝나자 흥미를 느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맞장구를 쳤다.

“좋아, 어디 한번 봅시다.”

“5코퍼 짜리 마술도 재미있던데, 아무도 못 맞힌 문제라니 어떤 게 나올지 한번 보여주쇼.”

“그래, 내가 5실버 내겠소.”

상인처럼 보이는 남자 한 명이 은화 다섯 닢을 꺼내서 좌판 위에 놓았다.

“좋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사람들의 호응을 받은 야바위꾼은 마치 뭔가 꺼내려는 것처럼 상품을 걸어놓은 거치대 뒤쪽으로 들어갔다.

“자, 기다리셨죠?”

잠시 후 거치대 뒤편에서 야바위꾼이 나와서 구경하는 사람들을 향해 싱글 웃었다.

“어어?”

포니가 동그란 눈을 크게 뜬 채 입을 벌렸고 그 옆에 섰던 포이도 깜짝 놀란 듯 깡충 뛰었다.

야바위꾼의 뒤에서 그와 똑같은 야바위꾼이 한 사람 더 나왔고, 다시 또 한 명, 거치대 뒤의 공간이 그리 크지 않을 텐데 사람들이 줄줄이 걸어 나왔다.

똑같은 옷차림에 똑같은 생김새, 한 치도 다르지 않은 다섯 명의 야바위꾼이 싱글거리며 나란히 서서 관객들을 향해 큰 동작으로 절을 했다.

“자, 조금 전까지 절 보셨죠? 우리 다섯 중 누가 진짜 저일까요?”

목소리도 똑같은 다섯 명의 야바위꾼들이 손님들을 이쪽저쪽으로 보면서 어떤 이는 손을 흔들고 어떤 이는 머리를 숙이는데 동작이나 말투가 어색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오, 이번엔 사람이네.

나비나 생쥐가 나오지 않자 마음이 편해졌는지 아실리도 제이든의 품에서 머리를 빼고 야바위꾼 쪽을 쳐다봤다.

“5실버 거신 손님, 자, 맞혀 보세요.”

“허, 이것 참.”

5실버를 미리 걸었던 상인은 당황한 얼굴로 이쪽저쪽을 바라보다가 뭔가 깨달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좋아, 그런데 보기만 해야 하나? 한번 만져볼 수 있어?”

야바위꾼 다섯 명이 싱긋 웃으며 상인을 향해 저마다 손을 내밀었다.

“자, 만져보시지요.”

“자, 손님, 제가 진짭니다. 틀리지 마세요.”

“에헤이! 손님, 제 손이 더 따뜻합니다. 저야말로 진짜라고요.”

“어허. 다들 조용히 해 보쇼. 내가 만져보면 틀림없어.”

상인은 자신 있는 얼굴로 다섯 명의 야바위꾼을 조용히 시킨 뒤 한 사람씩 손을 악수하듯 잡았다 놓았다.

“허!”

그는 또 헛웃음을 뱉었다.

“이거야 정말. 이거 참 길거리에서 보는 마술로는 수준이 높은데? 설마 다섯 쌍둥이는 아니겠지?”

그는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너털웃음을 웃었다.

“도저히 모르겠네. 자신 없지만 한 명 고르긴 해야겠지?”

그는 다섯 명 중 두 번째에 선 사람을 짚었다.

“당신, 내 감으로는 당신이 진짜야!”

다섯 명의 야바위꾼이 그를 향해 머리를 숙였다.

“잘 고르셨습니다. 하지만!”

상인이 고른 야바위꾼을 뺀 네 명의 야바위꾼이 손뼉을 딱 쳤다.

“아쉽게 되었습니다.”

상인이 골랐던 두 번째 야바위꾼이 희미하게 웃는 것 같더니 허수아비처럼 풀썩 쓰러졌다.

남은 야바위꾼 중 한 명이 그가 쓰러진 자리에서 손바닥만 한 종이 인형을 주워 들었다.

정교하게 만든 종이 인형은 야바위꾼들이 입은 것과 똑같은 옷까지 입고 있었다.

“자, 상품은 못 타셨지만 선물입니다.”

우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박수를 쳤다.

음, 이 정도 공연이면 5실버가 아깝지 않은데?

제이든도 야바위를 몇 번 봤지만 이런 건 처음 봤다.

“자, 또 도전하실 분 없습니까?”

야바위꾼이 사람들을 둘러보는 동안 거치대 뒤에서 한 명의 야바위꾼이 더 나와 다시 다섯 명이 되었다.

“내가 한번 해 보지.”

관객 한 명이 더 도전했으나 역시 실패하고 말았다.

“자, 구경 많이 했으니 이제 그만 갈까?”

더 보고 있어도 누군가 팔찌를 타 갈 만한 사람은 없을 듯해 그만 가자고 포이를 안아 올리는데 포니가 발돋움을 하면서 제이든을 잡아당겼다.

“응? 왜요?”

포니가 당기는 대로 몸을 낮춰주자 포니가 제이든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제이든 아저씨, 아저씨는 맞힐 수 있죠? 감정사니까.”

“아니에요, 아가씨.”

제이든은 웃으면서 포니의 귀에 대고 마주 귓속말을 했다.

“난 유물 감정사지 사람 감정사가 아니거든. 마법사도 아니고, 저런 건 감정 못 해요.”

“아이, 제이든 아저씨. 디안느 언니가 아저씨는 진짜 진짜 훌륭한 감정사라고 그랬단 말이에요. 한번 해봐요. 네? 자, 여기!”

포니는 신뢰가 가득한 눈으로 제이든에게 아까 상품으로 받은 곰 인형을 덥석 안겨주었다.

“감정사한테 부탁할 때는 의뢰비를 내야죠? 얘가 내 의뢰비예요. 한번 봐주세요. 네?”

얼떨결에 곰 인형을 받아든 제이든은 헛웃음을 웃었다.

“그래요. 그렇게 말하니까 보기는 하겠지만 기대는 하지 마세요.”

포이와 포니가 나란히 머리를 열심히 끄덕였다.

어차피 안되는 건 알지만 포니가 이렇게 부탁하니 하는 시늉은 해야 할 듯해서 제이든은 일어서서 야바위꾼을 바라보았다.

“어라?”

그리고 자신이 더 깜짝 놀랐다.

‘뭐지?’

서 있는 야바위꾼들 뒤에서 은은한 보라색 안개가 번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얼마 전 아룬빌 마을에서 메리앤 아주머니에게서 퍼져 나오던 분홍색 안개와 비슷했다.

메리앤에게서 다정하고 따뜻한 호감, 약간의 달콤함이 느껴졌다면 지금 보이는 보라색 안개에서는 약간의 흥분과 함께 무대 위의 배우나 어릿광대 등을 연상시키는 감정이 느껴졌다.

‘왜 갑자기 이런 게 느껴지는 거지?’

제이든이 야바위꾼들을 뚫어지게 보고 있자 야바위꾼 중 한 명이 제이든을 향해 말을 걸었다.

“거기, 토끼와 고양이를 안고 계신 분, 아까 그 토끼가 잠자리를 맞혔죠? 어디, 이번엔 주인분께서 도전해 보시겠습니까?”

“아저씨, 한번 해봐요. 네?”

포니가 토끼처럼 깡충거렸고 제이든의 어깨 위에 올라간 진짜 토끼도 발을 통통 굴렀다.

“어, 음…….”

제이든이 망설이면서 뒤통수를 긁자 주위의 사람들이 격려했다.

“그래, 한번 해보쇼. 주인이 토끼보다 못하면 되나.”

“재미로 하는 거니까 한번 해보세요.”

“그럼…….”

제이든이 아실리를 내려놓은 뒤에 주머니에서 5실버를 꺼냈다.

상품이야 안 타도 그만이지만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었다.

“자, 우리 중 누가 진짜일까요?”

야바위꾼들이 나란히 서서 제이든을 보며 웃음을 머금었다.

“제 생각엔.”

좌판 앞에 바짝 다가선 제이든이 손에 들었던 은화를 튕기면서 말했다.

“다섯 명 모두 가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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