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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137화 (137/195)

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 137화

38. 가면(4)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잠에서 일찍 깬 제이든이 눈을 비비며 문을 열었다.

“감정사님, 우편물이 왔습니다.”

문을 두드린 사람은 숙소에 배정된 경매위원회의 직원이었다.

일 층 회의실의 창가에는 세 마리의 비둘기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원래 개인 우편물은 우편국에 가서 확인해야 하지만 경매 기간 동안에 한해 숙소로 경매 관련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조들이 따로 배정되어 있었다.

두 마리의 비둘기는 다른 감정사에게 오는 우편물을 가지고 있었고 한 마리가 제이든에게 온 집배조였다.

“이게 제 건가요?”

제이든이 비둘기를 향해 손을 내밀자 비둘기가 재빨리 뒤로 물러서면서 담당 직원을 쳐다보았다.

직원이 수취인이 맞다는 신호를 주고 나서야 비둘기는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걸어 나와 제이든에게 한쪽 다리를 내밀었다.

“영리하네. 역시 집배조를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비둘기의 다리에 묶인 우편통에서 서신을 꺼낸 제이든이 손가락으로 비둘기의 등을 쓰다듬었다.

“고맙다. 수고했어.”

비둘기는 기분이 좋은 듯 구구 울고는 날개를 펴고 창밖으로 날아갔다.

-무슨 서신이야?

포이를 눕혀 놓고 털을 핥아 주던 아실리가 물었다.

“지안 수. 오늘로 잡혀 있던 약속을 취소해야 한다는데?”

-제이든이 보고 싶어 했던 달항아리 의뢰자였지?

“응. 카이에른으로 오는 중에 사고가 생겨서 일정을 못 맞추게 됐다네.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어.”

지안 수와의 약속이 취소되는 바람에 시간이 좀 비었다.

“아침 먹고 우편국에 가자. 칼리스타 님한테 서신 한 장 보내야지.”

칼리스타 클론에게 가면에 관한 서신을 보낸 후 우편국을 나오자 포이가 깡충깡충 뛰면서 광장 쪽을 가리켰다.

“또 분수 보러 가자고? 저번에 봤잖아.”

“포이, 포이, 포이잉.”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면서 앞발로 광장 쪽을 가리키는 포이.

“그래, 가자. 오늘은 시간도 좀 있으니 분수 보고 점심도 먹고 오지 뭐.”

광장 한쪽에 마련된 주차 공간에 마차를 세우고 분수 주변을 설렁설렁 걸어 다니며 점심은 뭘 먹을까 궁리하고 있을 때였다.

“포이! 포이! 아실리!”

어디선가 방울을 울리는 것처럼 짜랑짜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마차의 창문에서 어린 소녀가 거의 떨어질 것처럼 밖으로 몸을 내밀고 양손을 바람개비처럼 흔들었다.

“포잇!”

제이든의 어깨 위에서 포이가 깡충 뛰었고 아실리도 냐옹 반가운 소리를 내었다.

“포니 아가씨!”

방금 광장을 지나가던 마차는 아카디아 백작가의 문장을 달고 있었다. 창문에서 떨어질 뻔한 포니의 몸을 안쪽에서 누군가 끌어당겼지만 포니는 신이 나서 손을 흔들었다.

“제이든 아저씨! 안녕하세요오! 포이, 포이야! 나야, 포니! 잘 있었어?”

“포잇, 포잇!”

길에 사람도 많은데 포이가 어깨에서 뛰어내릴 기세여서 제이든은 포이를 꼭 붙잡고 마차 쪽으로 가까이 갔다.

한동안 못 봤다고 좀 자란 것 같은 포니가 얼굴 가득 반가움을 띤 채 고사리손을 내밀었고 포이가 얼른 그 손으로 옮겨갔다.

소녀와 토끼가 얼굴을 비비면서 한참 회포를 푸는 동안 창문 뒤쪽에서 아카디아 백작이 얼굴을 내밀었다.

“안녕하시오. 로스 감정사. 여기서 또 보는군요.”

“반갑습니다. 백작님. 잘 지내셨지요?”

“이맘때쯤 카이에른에 오면 로스 감정사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성으로 들어오자마자 마주치다니, 인연은 인연인가 봅니다.”

“디안느 영애도 같이 오셨습니까?”

“아니, 영애는 세렌토로 돌아갔소. 오월이 되어야 정식으로 아카디아로 오게 될 거요.”

아카디아 백작은 카이에른 경매 때문에 온 것이 아니고 다른 사업 때문에 왔다고 했다.

“겸사겸사 포니를 수도의 마법사 한 분께 보일 생각이기도 하고.”

지난번 세렌토에서 마법의 재능이 발현한 포니는 아카디아에 돌아간 후 마법사에게 테스트를 받았는데, 자질이 상당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마법사가 자기 스승에게 한번 보여 보라고 해서 이번에 카이에른 오는 길에 데리고 왔다오.”

아카디아 백작과 제이든은 서로 숙소의 주소를 주고받았다.

“오라버니, 나 포이랑 놀다가 가면 안 돼요?”

포니가 아카디아 백작의 소맷자락을 잡고 흔들었고 포이도 포니의 옷자락을 잡은 채 같이 깡충깡충 뛰었다.

“흠…….”

아카디아 백작이 잠시 사람이 북적거리는 광장을 보다가 제이든에게 눈길을 주었다.

“폐가 되지 않을까?”

“나 얌전하게 굴게요. 말도 잘 듣고, 혼자 뛰어다니지도 않고, 밥도 잘 먹고.”

손을 들어 올린 채 하나하나 접어가며 말하는 포니의 옆에서 포이도 까만 귀를 까딱이며 열심히 머리를 끄덕였다.

“둘이 굉장히 반가워하는데 같이 좀 놀게 하고 포니는 이따 숙소로 데려다 드릴까요?”

제이든이 말하자 포이와 포니가 동시에 폴짝폴짝 뛰었고, 그들을 바라보던 아카디아 백작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경호원을 붙여 드릴 테니 부탁 좀 드리겠소. 조금이라도 폐가 된다면 바로 숙소로 보내 주시오.”

마차 옆에서 말을 탄 채 따르고 있던 경호원들은 셋이었는데 한 명만 마차 옆에 남고 둘이 제이든 옆으로 왔다.

“안녕하십니까. 로스 감정사님.”

로이드는 전에도 본 적이 있었고 또 한 명은 낯선 얼굴이었다.

“포니 아가씨, 사람이 많으니까 절대 멀리 떨어지면 안 돼요. 알겠죠?”

“네!”

“포잇!”

포니와 포이는 팔짝팔짝 뛰며 분수를 보러 갔고 경호원들과 제이든이 그 뒤를 따랐다.

“경호원이 늘었네요?”

제이든이 묻자 로이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 세렌토에서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백작님이 조금 예민해지셨거든요. 디안느 아가씨와 포니 아가씨의 경호에 신경을 많이 쓰십니다.”

“그 이후 별일은 없었습니까?”

“예. 세렌토 쪽은 이런저런 일이 많았던 모양이지만 아카디아는 아무 일 없이 평화로웠습니다.”

대낮에 카이에른의 번화한 거리에서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지도 않고 포니가 나이에 비해 철이 든 편이지만, 어린애란 어디로 튈지 모른다. 혹시 길이라도 잃으면 큰일이지.

남의 집 귀한 딸을 맡은 만큼 제이든도 포니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광장에는 인형극도 있고 노래며 춤 등의 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볼거리가 많았는데, 호기심 많은 포이와 포니는 이것저것 모두 흥미를 보였다.

로이드와 함께 포니의 경호원으로 붙은 남자는 피터라는 이름이었다. 로이드보다는 좀 젊어 보였고 아이를 잘 다루는 것 같았다.

로이드도 그렇지만 피터도 제이든이 생각해 온 일반적인 경호원 이미지와는 달랐다.

아무래도 아이를 경호하기 때문인지 딱딱하지 않고 살가운 사람들로 골랐는지 경호원이라기보다는 보모 같은 느낌이 있었다.

“저런, 포니 아가씨. 또 틀렸네요!”

피터가 놀리듯 웃자 포니의 뺨이 뾰로통해졌다.

포니는 지금 동물 맞추기를 하는 좌판 앞에 서 있었다. 포니 말고도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서넛 더 있었고 어른들도 둘러서서 구경 중이었다.

동물 맞추기란 한국의 야바위 비슷한 게임이지만 이쪽 세계의 야바위에는 마법이 살짝 가미되어 있다.

“자, 이번엔 개구리입니다. 꼬마 아가씨, 어느 쪽이 진짜인지 아시겠어요?”

어릿광대처럼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야바위꾼이 좌판 위에 두 마리의 개구리를 놓고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똑같이 생긴 초록 청개구리였다.

“자, 잘 보세요.”

야바위꾼의 말이 끝나자 한쪽 청개구리가 꼬륵 소리를 내며 울었다.

“얘가 진짜 개구리입니다. 잘 기억해 두세요.”

다음 순간 개구리 두 마리가 좌판 위에서 폴짝거리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포니가 눈이 빠져라 개구리들을 쳐다봤고 포이도 제법 심각한 얼굴로 좌판을 주시했다.

“얍!”

야바위꾼이 소리를 치자 좌판 위를 뛰어다니던 개구리 두 마리가 동작을 딱 멈추고 인형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자, 어느 쪽이 진짜 개구리일까요? 한 번에 5코퍼, 동전 다섯 닢으로 맞춰 보실 수 있습니다. 맞추시면 뒤에 있는 선물을 드립니다.”

그의 뒤에는 커다란 인형이며 과자, 장난감, 장신구 등 다양한 물건들이 걸려 있었다.

“저쪽 개구리잖아, 내가 분명히 봤어.”

“아니야, 이쪽이야.”

둘러서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고 포니와 포이도 눈이 동글동글 움직이는 게 잔뜩 몰입한 듯했다.

“나, 나는 이쪽 같은데.”

포니가 말하자 옆에 있던 다른 아이가 고개를 저었다.

“저쪽 개구리가 발을 움직였어. 저쪽이야.”

야바위꾼은 느긋하게 누군가 돈을 걸기를 기다렸다.

“자, 이쪽에 걸겠소. 선물은 아래쪽 단에서 고르면 되는 거지?”

남자 한 명이 호기롭게 코퍼 동전 다섯 개를 한쪽 개구리 앞에 놓았다.

야바위꾼이 동전을 집어 바구니에 넣더니 씩 웃으며 손뼉을 딱 쳤다.

“개굴!”

소리를 내며 팔짝 뛴 것은 동전을 놓지 않은 쪽의 개구리였다.

“허!”

동전을 건 남자가 헛웃음을 쳤고 야바위꾼이 남자가 그쪽의 개구리를 집어 올렸다.

“자, 아쉽지만 선물로 이 개구리를 드리겠습니다.”

“허!”

개구리를 받아든 남자가 또 감탄했다.

조금 전까지 살아 있는 것 같던 그 개구리는 이제 보니 초록색 종이로 정교하게 접은 종이 개구리였다.

“이거 신기하네.”

사람들이 종이 개구리를 들여다보는 동안 야바위꾼은 싱글싱글 웃었다.

“자, 그럼 이번엔 좀 더 큰 선물을 걸어보겠습니다. 이번에 맞추시는 분께는 두 번째 단에 있는 선물을 드립니다.”

야바위꾼의 뒤에 있는 선물들은 위로 갈수록 가격대가 높아 보였다.

야바위꾼이 좌판 밑에서 작은 채집통을 꺼내 뚜껑을 열자 세 마리의 나비가 팔랑팔랑 날아 나왔다.

옅은 분홍빛을 띤 나비 세 마리는 좌판 위를 천천히 맴돌기 시작했고 야바위꾼이 그중 한 마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자, 잘 보십시오. 이 나비가 진짜 나비입니다.”

“오호, 좋아, 이번에야말로!”

“그래, 이번엔 맞춰야지.”

사람들이 좌판 가까이로 갔고 제이든도 어느새 홀린 듯 나비들을 지켜보았다.

좌판 위를 서로 엇갈리면서 날던 나비들이 하나씩 내려앉더니 움직임을 멈췄다.

“자, 어떤 나비가 진짜 나비일까요?”

두 마리 중 한 마리를 맞추는 것보다 세 마리중 하나를 맞추는 게 더 큰 선물을 주는 모양이지?

제이든도 흥미롭게 나비들을 바라보았다.

이번엔 아주머니 한 사람이 동전을 걸었으나 역시 나비를 맞추지 못하고 종이로 접은 나비를 받았다.

종이 나비가 정교하고 예뻐서 그것만으로도 기쁜지 그녀는 종이 나비를 만지작거리면서 기분 좋게 웃었고 야바위꾼은 또 하나의 채집통을 꺼냈다.

“자, 이번엔 잠자리를 시험해 보겠습니다.”

세 마리의 잠자리가 투명한 날개를 반짝이며 좌판 위에 내려앉자 야바위꾼이 동전을 걸라는 신호를 했다.

그때 갑자기 와르르 웃음이 터졌다.

“아니, 이건, 특별한 손님이네요.”

야바위꾼이 웃음을 참지 못하며 말했다.

“토끼 손님, 동전이 있으신가요?”

“포잉?”

깡충 뛰어 좌판에 올라앉은 포이가 잠자리 한 마리 앞에 앞발을 내민 채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게임에 너무 심취한 포이가 그만 좌판에 올라간 것이다.

“아, 이런, 죄송합니다. 포이, 이리 내려와.”

제이든이 당황해서 포이를 좌판에서 내려놓으려고 하자 포니가 옆에 서 있던 피터의 손을 막 잡아당겼다.

“피터 아저씨, 저 잠자리, 포이가 고른 거.”

“알았어요. 알았어.”

피터가 동전을 꺼내더니 포이가 가리킨 잠자리에 동전을 걸었다.

“자, 그럼!”

야바위꾼이 웃으면서 손뼉을 딱 쳤다.

다음 순간 포이가 앞에 앉았던 잠자리가 포르르 날개를 흔들면서 날아올랐다.

“우와! 토끼가 맞혔어!”

“와, 포이! 역시 포이!”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포니가 신이 나서 팔짝팔짝 뛰었지만 야바위꾼은 처음으로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아, 아니, 이럴 리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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