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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135화 (135/195)

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 135화

38. 가면(2)

레옹 바레는 무역업자라고 들었는데 보기에는 마치 일류 식당의 프랑스 요리사 같은 모습이었다.

중년의 나이에도 어린애처럼 반질반질한 피부에 사과처럼 붉은 볼, 곱슬곱슬한 갈색 머리에 두툼한 몸집의 신사가 호탕하게 웃으며 제이든을 맞았다.

“어서 오시오. 한창 바쁘실 시기인데 내 의뢰를 받아 줘서 고맙소. 이렇게 젊은 분인데 2급 감정사라니 정말 대단하시군. 귀여운 고양이랑 토끼까지 데려오셨네.”

“예. 제게는 정신적 마스코트 같은 존재라서 감정할 때 이 친구들이 함께 있는 게 도움이 됩니다. 의뢰인께서 괜찮으시다면 감정할 때 옆에 두고 싶습니다.”

“아, 뭐 그렇게 하시오. 감정할 때 문제없으니까 데리고 다니시는 거겠지.”

귀한 물건을 내놓을 때 동물이 옆에 있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어 제이든은 꼭 미리 말을 하는데 레옹 바레는 별로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도 개를 키운다오. 옛날에 세시온 다미에르도 고양이를 데리고 다녔다는 말도 있었잖소? 감정사가 데리고 다니는 동물이라면 말썽 피우는 애들은 아니겠지.”

레옹은 너털웃음을 웃으며 비서에게 간식을 좀 가져오라고 했다.

“감정사님은 차와 커피, 어느 게 좋으시오? 커피? 그럼 커피로 하고 크림도 따로 좀 가져오게. 고양이가 좋아하겠지?”

레옹 바레의 약간 뒤쪽에 그림자처럼 서 있던 비서가 사무실 문을 열고 뭐라고 이야기를 하자 곧 다른 직원이 차와 간식을 가지고 왔다.

둥글둥글하고 몸집이 큰 레옹 바레에 비해 비서는 호리호리하고 수수한 인상의 삼십 대 남자였다. 잘 정리된 머리나 안경, 단정한 옷차림과 자세나 태도 모두 유능한 비서다운 분위기였다.

“자, 편히 드시오. 차 한잔 드신 후에 물건을 봐주시면 되겠소.”

제이든은 먼저 감정 마법으로 다과에 위험성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커피에 입을 대었다.

최근 여러 가지 일이 많았던지라 아무리 수도 한복판이고 상대의 신원이 확실하다 해도 쉽게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제이든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나서야 크림과 과자를 먹기 시작하는 아실리와 포이를 보고 레옹 바레가 감탄한 듯 손뼉을 쳤다.

“역시, 정말 훈련이 잘되어 있구려.”

아실리가 고개를 들고 약간 불만스러운 듯 냐옹 울었다.

-훈련이라니. 누가 누구를!

제이든이 얼른 말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동방에서 온 가면이라고 하셨지요?”

“그렇지. 사실은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다오. 우리 집은 대대로 무역업을 했는데, 조부님 대까지는 동부를 중심으로 활동했는데 부친께서 사업 수완이 좋으셔서 규모를 크게 늘렸지. 그 후 본사를 중부 지방으로 옮겼다가 내가 사업을 물려받으면서 드디어 수도에 입성했다오.”

레옹은 뿌듯한 얼굴로 불룩한 배를 두들겼다.

“원래는 동부 세리뉴 지방 출신이라오. 아, 감정사님은 고향이 어디신가? 우리 조셉에게 물었더니 모른다길래.”

조셉은 비서의 이름인 모양이었다.

“산골 출신이라 모르실 겁니다. 그런데 가면은 어디서 구하셨다고요?”

“아, 그렇지. 부친께서 처음 중부 지방에 지사를 마련했을 때는 카이에른 중심까지 들어오진 못하고 외곽 지역에 사무실과 창고를 차렸었다오. 우리는 각 지방의 특산물을 다루기 때문에 품목이 매우 다양하고 양도 많지. 내가 여기 사무실을 차린 후에도 창고는 그냥 유지했었는데, 얼마 전 외곽 지역의 창고를 정리했다오.”

“예에.”

“워낙 물건이 많다 보니 내가 모르던 물건도 있었고, 조셉을 보내서 창고지기와 함께 물건 확인을 시켰는데, 범상치 않은 가면이 나왔지 뭐요.”

레옹이 비서 조셉에게 눈짓을 하자 조셉이 잠시 후 낡았지만 고급스러워 보이는 나무 상자 하나를 안고 들어왔다.

그와 함께 들어온 다른 직원이 다과가 놓였던 탁자 위를 치우고 깨끗이 닦은 뒤 부드러운 벨벳 천을 깔아놓은 뒤에야 조셉이 상자를 그 위에 놓았다.

“시타 침향목 상자로군요.”

품질이 매우 좋은 침향목으로 만든 상자였다. 세월이 지나 향은 사라지고 없었지만 시타 침향목 특유의 질감이 살아 있었다.

“그렇지. 상단 일을 봐주던 감정사도 시타 물건인 것 같다고 했소.”

상단의 3급 감정사는 시타 물건인 것 같지만 자신이 동방 물건에 대해서는 밝지 못하니 동방 유물 쪽에 정통한 감정사에게 가져가 보라고 했다고 한다.

“알아보니 제이든 로스 감정사가 몇 명 안 되는 2급 감정사이기도 하고, 동방 물건에 특히 관심이 많다길래 의뢰서를 보냈지.”

손때 묻은 침향목 상자는 좋은 물건이었다. 뚜껑 위나 옆면에 섬세하게 세공된 문양도 손상이 심하지 않았다.

“시타 말기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문양이군요. 그 이전의 화조 문양에서 벗어나 추상적인 문양을 넣기 시작했을 무렵의 상자로 보이고요.”

제이든은 장갑을 낀 채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약간 녹색을 띠는 검은 가면이 상자 안에 들어 있었다.

서방 쪽에서 주로 사용하는 가죽이나 직물로 제작한 가면이 아니라 동방 대륙 특유의 종이를 굳혀 만드는 기법으로 제작된 가면이었다.

‘모양은 다르지만 한국 탈 만드는 기법이랑 비슷하지.’

제이든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의뢰 서신에 종이를 굳혀 만든 동방의 가면이라고 적혀 있어서 혹시 한국에서 차원을 건너온 탈이 아닌가 기대했는데 아니었다.

기법은 비슷했지만 형태가 전혀 달랐다. 이 탈은 이쪽 세계의 동방 대륙, 시타 시대의 물건인 게 확실했다.

잠깐 상자 안을 들여다보고 있던 제이든이 레옹 바레를 향해 물었다.

“상당히 훌륭한 가면인데, 이 정도의 물건이라면 거래 기록이 있었을 텐데요? 바레 님의 창고에 들어가게 된 경로가 있지 않겠습니까? 선친께서는 이 가면에 대해 언급이 없으셨나요?”

“나도 그게 궁금해서 장부를 찾아봤소만.”

레옹 바레는 머리를 흔들었다.

“사업차 구매하고 판매한 물건들의 거래 기록은 모두 장부에 정리되어 있는데, 이 가면은 장부에 없었다오. 부친께서 생전에 개인적으로 수집하신 물건은 장부에 없는 것들이 더러 있는데 이 가면도 아마 그런 물품들 중 하나인 것 같소.”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내 부친은 다방면에 흥미를 가진 분이셔서 여러 가지 진기한 물건을 수집하기 좋아하셨는데, 그만큼 싫증도 잘 내셨지. 아마 구입한 뒤 흥미를 잃고 창고에 그냥 보관하셨다가 잊어버리셨던 게 아닌가 싶소. 이 가면뿐 아니라 흥미로운 물건들이 창고에 몇 가지 더 있었는데, 다른 것들은 상단의 3급 감정사가 충분히 감정할 수 있는 것들이었소.”

“그렇군요.”

제이든은 조심스럽게 가면을 꺼내 보았다.

턱과 입 부분을 드러내게 되어 있고 머리부터 코까지 가리는 가면으로 얼굴 형태는 표범을 닮았다.

시타의 가면 축제는 그 역사가 길었고, 독수리나 호랑이, 곰 등 맹수의 얼굴을 본뜬 가면이 많았다.

정교한 만듦새도 그렇고 머리 뒤쪽에 쓰고 묶는 부분이 일반 헝겊이 아니라 질 좋은 비단으로 만들어진 것을 봐도 상당히 지체 있는 집안에서 사용한 가면 같았다.

가면의 앞뒤를 꼼꼼히 살펴본 후 안력을 집중해 보았으나 푸른 아우라가 피어오르지는 않았다.

환각이 보이거나 할 조짐이 없자 제이든은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최근에 내력이 보이는 유물들을 여럿 보아서 혹시 했는데, 사실 그렇게 혼이 깃들 정도의 물건이 그리 흔할 리는 없었다. 명품이라 해서 제이든에게 다 내력이 보이는 것도 아니었고.

‘아무거나 자유자재로 다 볼 수 있다면 내가 벌써 1급이 됐겠지.’

가면을 상자 안에 내려놓으려던 제이든이 잠시 머리를 갸우뚱하면서 다시 가면을 주시했다.

조금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왠지 눈 부분이 조금 거슬리는데.’

대부분의 가면이 그렇듯 눈 부분은 타원형의 구멍이 나 있었다.

제이든은 가면을 얼굴 가까이에 들고 자세히 보았다. 눈구멍의 테두리 부분에 뭔가 덧대었던 자국이 있었다.

“뭔가 색다른 게 있소?”

한참이나 가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제이든이 좀 답답했는지 레옹 바레가 물었다.

“아, 별게 아닐 수도 있는데, 이 눈 부분이 조금 마음에 걸립니다.”

“어떤 면이?”

“이 가면은 시타 말기에 시타 귀족들 사이에서 사용된 전형적인 축제용 가면입니다. 아주 희귀한 유물은 아니지만 당대 가면들 중에서는 보존이 아주 잘 된 가면이라서 상당히 가치가 높은 물건이고요. 그런데.”

제이든은 잠시 숨을 돌린 후 말을 이었다.

“언뜻 보면 눈에 띄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눈구멍 가장자리에 뭔가 덧대었던 듯한 흔적이 있습니다.”

“보통 그런 테두리에 장식을 하지 않소? 장식물이 떨어져 나간 자국 아닐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제이든은 가면의 눈 가장자리를 살짝 만져본 뒤 말했다.

“만약 단순한 장식이 아니고 눈을 막았던 가면이라면 가면 축제에 쓰인 일반 가면이 아닙니다. 제례 의식에 사용한 특별한 가면이거든요.”

하지만 그 정도의 유물이라면 내력이 보이지 않을까? 역시 그냥 축제용 가면인가.

한번 마음에 의심이 드니까 그대로 감정을 끝내기가 좀 불편했다.

“급하지 않으시다면 제게 시간을 좀 주시겠습니까? 조금 조사를 해 본 후 며칠 뒤에 한 번 더 감정을 해보고 싶습니다.”

레옹 바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시오. 원래는 카이에른 경매에 낼까 생각한 물건이긴 한데 불확실한 부분이 있다면 보류하는 게 낫겠지. 그나저나 이름값을 그냥 얻은 게 아니군. 그대로 감정을 해도 될 텐데 눈곱만큼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도 넘어가지 않는구려.”

그는 호기심을 보이며 물었다.

“그런데, 일반 축제용 가면과 의식용 가면의 가치가 많이 다르오?”

“일반 축제용 가면이라면 카이엔에도 꽤 여러 점이 들어와 있습니다. 이 가면처럼 상태가 좋은 건 몇 점 안 되지만요. 그런데 눈을 막은 가면은 제가 알기로는 아직 한 점도 들어온 적이 없습니다.”

제이든은 잠시 세시온의 서재에서 보았던 옛 고서를 떠올렸다.

“눈을 막은 제례용 가면은 그 눈 부분에 사제의 영력과 가면의 정수를 모은다는 옛 기록이 있습니다. 그저 전설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만약 눈을 막은 가면이 발견된다면 당연히 가치가 많이 다를 거라 생각합니다.”

제이든의 말을 들은 레옹 바레가 여러 번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소 흥분한 눈치였다.

“로스 감정사의 말대로 눈이 막혀 있었다면 이 가면이 최초로 발견되는 의식용 가면일 뻔했는데 아쉽군.”

“제가 좀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제이든이 스케치북을 꺼내 가면을 그리자 레옹 바레가 감탄하면서 말했다.

“그림 솜씨도 대단하군. 사문이 어디요? 젊은 나이에 이 정도 실력을 갖춘 감정사를 길러낸 걸 보면 스승이 보통 분이 아니었을 텐데.”

“사정이 있어 사문은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원 참, 나 같으면 동네방네 자랑을 하겠구먼, 고향도 비밀, 사문도 비밀이라니.”

입맛을 쩝쩝 다신 레옹 바레가 물었다.

“거, 이름은 본명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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