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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123화 (123/195)

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 123화

34. 다시 집으로(4)

–왜 그래? 제이든, 귀가 가려워?

손가락으로 귀를 긁고 있는 제이든을 보고 아실리가 물었다.

“응, 누가 내 얘기를 하나? 갑자기 왜 이렇게 귀가 가렵지.”

귀를 긁는 제이든을 본 포이가 기다란 깜장 귀를 앞발로 잡아 내리더니 긁기 시작했다.

“포이는 왜? 형이 귀 긁는 거 보니까 너도 가렵니?”

-아이참, 제이든이랑 포이 보니까 나까지 간지럽네.

아실리도 앉아서 뒷발로 귀를 긁기 시작했다.

강아지나 고양이 뒷발이 귀까지 올라가는 거 보면 재밌단 말이지. 토끼가 앞발로 귀를 접어 내리는 것도 그렇고.

셋이 나란히 귀를 긁고 있는 모습도 남이 보면 참 웃기겠지만.

이월 중순이라 아직 날이 춥고 창밖에 보이는 나무들도 헐벗은 상태였지만 집안은 따뜻했다.

“차 한잔 끓여 마실까?”

주방에 물을 끓이러 가는 제이든의 뒤를 포이가 폴짝폴짝 따라왔다.

원래는 항상 커피를 마셨는데 니콜레타의 골동품점에서 마신 차가 입에 맞아서 찻잎을 좀 얻어 왔었다.

집에서 우려 마셔도 맛있긴 한데 골동품점에서 마신 맛에는 좀 부족한 듯해서 아쉬웠다.

차 우리는 솜씨가 부족해서 그런가? 골동품점에서는 그 은제 찻주전자가 알아서 우려 오던데.

“우리 집에도 니콜레타 님네 찻주전자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손뼉 딱딱 치면 알아서 커피나 차 끓여서 갖고 와 주고.”

-그 찻주전자가 제이든을 꽤나 마음에 들어 하던데. 우리 집에 안 오겠냐고 한번 물어볼 걸 그랬지?

“그거 렌 시대의 유물이야. 황립박물관에서도 매입하겠다고 하는 걸 안 보냈다던데. 그렇게 귀한 걸 어떻게 달라고 해?”

손사래를 치면서 주전자에 물을 올리는 제이든이 뒤에서 포이가 포잇포잇 노래하듯 외쳤다.

“뭐라는 거야? 포이야?”

폴짝거리며 공중에 손짓 발짓을 하는 포이를 보던 아실리가 생글 웃었다.

“제이든이 마법을 배우면 된다는 말 같은데?”

“허!”

제이든은 찻잔을 꺼내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찻주전자에 생명을 불어넣을 정도의 마법을 배우려면 엄청난 재능이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감정이라면 몰라도 마법사가 될 자신은 없는데.”

-그건 그래.

아실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앞발을 핥았다.

-감정사가 쓰는 감지 마법처럼 공부로 익힐 수 있는 마법도 있지만, 그 이상 수준이 되려면 타고난 마법 재능이 있어야 해. 세시온은 타고난 마나도 충만하고 마법사로서도 훌륭했지만.

아실리는 아쉬운 듯 제이든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제이든은 몸 안에 마나가 하나도 없어. 감정사 소질이 뛰어난 거 보면 마법 재능도 있을 법한데. 아마 제이든네 세상에는 마나가 없었나 봐.

“맞아. 우리 세상엔 마나가 없어.”

찻잎을 뜨거운 물에 우린 제이든이 쟁반에 찻잔을 담고 아실리와 포이의 간식도 따로 조금 담아서 거실로 들고나왔다.

“어, 눈 온다!”

어느새 창밖에 눈송이가 폴폴 흩날리고 있었다. 포이가 좋아라고 창을 향해 달려갔다.

앞발을 위로 뻗고 깡충깡충 뛰는 포이를 들어서 창턱 위에 올려주었다.

“와! 포이 이제 조금만 더 크면 혼자서 올라가겠네?”

“포잇!”

포이가 몸을 쭉 펴면서 내가 이만큼 컸다 하는 듯 가슴을 내밀어 보였다.

“그래, 그래, 많이 컸어. 우리 포이, 작년에 처음 집에 왔을 때는 힘껏 뛰어도 창턱까지 어림도 없었는데 이제 거의 창턱에 가깝게 뛰어오르는 거 보니까 진짜 많이 컸다.”

창턱에서 눈 내리는 바깥을 즐겁게 바라보던 포이가 코를 발름거리며 제이든을 쳐다봤다.

“포잉?”

“아냐, 오늘 밖에는 안 나갈 거야. 추워, 포이야.”

“피이잉…….”

실망한 듯 귀가 아래로 처진 포이가 아실리를 쳐다봤지만 아실리는 모르는 척 눈을 피하면서 꼬리 끝을 핥았다.

포이는 눈 오는 날이면 더 신이 나서 밖에 나가 뛰어다니고 싶어 하는 반면 제이든과 아실리는 따뜻한 집 안에 머물고 싶어 포이를 달래곤 했다.

“자, 과자 먹어, 과자.”

제이든이 과자를 흔들어 보이자 포이도 오늘은 외출을 단념했는지 창턱에서 팔짝 뛰어내려 깡충깡충 뛰어와서 과자를 받아들고 아작아작 먹기 시작했다.

-제이든, 이제 몸은 괜찮아?

“응…….”

제이든은 대답하고 차를 마시면서 잠시 밖을 바라보았다.

아실리가 걱정스럽게 묻는 이유는 제이든이 이틀 전 에트루리안의 서를 읽다가 쓰러졌기 때문이다.

* * *

이틀 전, 제이든은 용의 눈을 에트루리안의 서 위에 비춰 보면서 레칸도르의 금척 부분을 독해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운명을 재는 자……, 아무나 쓸 수 있는 건 아닌가 보네. 금척이 허락한다면 그대에게 정해진 날을 볼 수 있으나…… 그것이 그대가 원하는 운명은 아닐 수 있으니……, 흠.”

거울을 책 옆에 내려놓은 제이든이 금척을 살짝 만졌다.

“그러니까, 운명을 잰다는 게 결국 운명을 볼 수 있다는 건가? 금척이 허락하는 경우에 한해서?”

그는 손끝으로 금척을 가볍게 쓸면서 말했다.

“레타논에서 여기까지 함께 왔는데, 내가 운명을 볼 수 있게 허락해 주지 않겠니? 내가 집에 갈 수 있을까? 내 운명이 어떤 것이라 내가 여기 와 있는 건지.”

금척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흠, 이렇게 말로 하는 게 아닌가? 대체 어떻게 사용하는 거람.

도대체 응답할 기색이 보이지 않는 금척에서 눈을 뗀 제이든이 다시 에트루리안의 서를 들여다볼 때, 금척이 은은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에 응답하듯 에트루리안의 서 한 페이지가 살짝 넘어가면서 금척과 마찬가지로 빛무리가 번지기 시작했다.

다음 페이지를 읽을 수 있나 싶어 얼른 용의 눈을 집어 든 제이든이 거울을 책장에 비췄다.

투명해진 거울을 통해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수많은 낮과 밤이 흐른 후, 어둠의 씨앗을 품은 자들이 닫힌 문을 다시 열고 카이엔을 혼돈 속에 빠뜨리려 할 때, 약속의 아이가 나타날 것이다. 닫힌 문이 다시 열리기 전에 천 년의 약속을 지킬 자를 깨우리니, 만약 깨우지 못한다면 그 역시 영원히 깨지 못하리라.

제이든은 눈에 온 신경을 집중한 채 보이는 구절을 다시 읽었다.

무슨 말이지? 이 부분이 예언인가? 깨워야 하는 자는 누구고 깨우지 못한다면 영원히 깨지 못하는 자는 누구야? 서로 다른 사람인가?

아니 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언서라는 것들은 다 글을 알쏭달쏭하게 써 놓는 거야?

좀 명확하게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육하원칙에 맞춰 써주면 안 되나? 일곱 번째 달에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오고 마르스는 행복의 이름으로 지배하리라 이런 거 말고.

한때 지구에서 회자되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까지 끌어들여 속으로 불평하면서 계속 다시 읽어 보는 동안에 글자가 서서히 사라지고 용의 눈도 다시 불투명한 거울로 돌아왔다.

약속의 아이라, 얼마 전에 이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어디서 들었지? 누군가 말했는데, 약속의 아이가 세시온인 줄 알았는데 어쩌면…….

순식간에 제이든의 눈앞이 흐려지면서 얼음에 덮인 호수가 떠올랐다.

호수 가운데의 작은 섬, 하얀 정자에 있던 은빛 머리와 보랏빛 눈의 여자, 산호빛 입술이 움직였다.

“세시온 다미에르가 약속의 아이인 줄 알았는데, 진정한 약속의 아이는 그 후인인 모양이구나.”

카티야 씨, 맞아, 카티야 씨가 그런 말을 했었다. 어쩌면 너야말로 약속의 아이가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털썩! 제이든이 서재의 두툼한 양탄자 바닥 위로 쓰러졌다.

그의 의식이 어딘가 멀리로 날아갔다.

* * *

“조용히 해야 해, 알았지?”

정신이 들자마자 들려온 것은 몹시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였다.

제이든의 의식은 어느 건물의 복도에서 깨어났다.

하얀 벽, 하얀 천장, 그리고 복도를 나란히 걸어가고 있는 여자와 아이의 뒷모습이 몹시 익숙했다.

그는 자석에 끌리듯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저녁에 뭐 해줄까? 먹고 싶은 거 있어?”

아이를 향한 여자의 다정한 목소리,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누나!’

앞에 걸어가고 있는 여자는 분명 누나였다.

“카레? 또? 삼촌 닮았구나. 삼촌도 너만 할 때 카레를 엄청 좋아했어.”

여자와 아이를 따라가다 보니 이 건물은 병원이었다.

여자가 어느 병실 앞에서 멈추더니 문을 열고 들어섰다.

침대 위에 누워 잠들어 있는 사람은…….

“나잖아.”

병실 침대 위에서 잠들어 있는 사람은 제이든, 원래의 권재인이었다.

제이든의 의식이 침대 옆으로 이동해 누워 있는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카이엔에선 오레스 아켈리오를 봤는데 한국에선 내 몸이 혼수상태로 누워 있는 건가?

6년째 누워 있는 것치고는 너무 멀쩡한데, 설마 오레스처럼 신체 나이를 먹지 않은 걸까?

“재인아.”

누나가 부르는 소리에 제이든은 흠칫하며 자신도 모르게 응 하고 대답했으나 누나는 그를 보지 않았다.

누나는 누워 있는 재인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쓸었다.

“재인아, 오늘은 명이랑 같이 왔어.”

“삼촌, 나 왔어요.”

이상하네?

누나와 조카 명이가 나이를 거의 먹지 않았다. 누나는 얼굴이 핼쑥했지만 나이가 더 들어 보이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6년이면 초등학생이었던 명이가 훌쩍 컸어야 하는데 명이는 6년 전 헤어졌을 때와 다름이 없어 보였다.

여기는 혹시 6년이 지나지 않은 건가?

“왜 아직도 일어나질 못하니, 정신 좀 차려 보렴. 재인아.”

“삼촌, 빨리 일어나서 나랑 같이 캐치볼 해요. 혼자 연습하니까 재미없어요.”

누나와 명이의 말로 미루어 봐도 자신이 누운 지 그리 오래된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 카이엔과 지구의 시간 흐름이 다른가 보다.

만약 그렇다면 누나가 6년이나 애를 태우진 않았겠구나. 너무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제이든은 그리웠던 누나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손이라도 만져 보고 싶었지만 형태가 없는 제이든의 몸은 누나의 손을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누나, 나 잘 있어, 나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말고 밥 잘 먹고, 건강 잘 지키고 있어. 누나, 나 진짜 신기한 곳에 갔어. 마법이 있고 말하는 고양이가 있고 행운의 토끼가 있는 세상이야. 명이가 가면 아주 신이 나서 난리일걸? 나 거기서 감정사가 됐어. 고양이 스승님이 어찌나 혹독하게 단련시켰는지 진짜 실력 있는 감정사가 됐다니까, 나 거기서도 인정받고…….”

누나가 듣지 못할 걸 알면서도 소곤소곤 누나에게 이야기를 하던 제이든의 의식이 누군가 잡아당기는 듯 위로 떠올랐다.

카이엔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걸 직감한 제이든이 다급하게 말했다.

“누나, 나 이제 가야 돼.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누나, 꼭 돌아올게.”

자신의 몸이 누워 있던 침대가 사라지고, 누나와 명이의 모습이 흐려지고, 병원이 사라졌다.

다음 순간 제이든은 세시온의 서재 바닥에서 눈을 떴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는 제이든의 뺨에 눈물이 한줄기 흘렀다.

“그래도 다행이다…….”

자신이 카이엔으로 건너오면서 지구에서는 권재인이 사라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들처럼 키운 동생이 사라지는 바람에 누나가 얼마나 속을 태웠을까, 6년이나 생사도 모르고 속이 다 숯덩이가 되었겠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고 혼수상태로 누워 있었고 시간도 며칠 흐르지 않은 듯해서 다행이다. 그나마 누나가 마음고생을 덜 했을 듯해서.

제이든은 주먹으로 눈을 쓱 비빈 후 벌떡 일어났다. 잠깐 어지러워서 휘청거렸지만 몸을 바로 하고 유물이 자리 잡은 서가를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좋아. 이제 유물 두 점만 더 찾으면 된다. 그럼 여기서 내 할 일은 다 한 거지. 그리고 집에 돌아갈 매개체가 될 유물을 찾아서 누나에게 돌아가는 거야.

서재 문을 열고 나오니 문 바로 앞에 고양이와 토끼가 나란히 앉아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이든은 저도 모르게 가슴을 부여잡았다. 저쪽에 누나와 명이가 있다면 이쪽에는 아실리와 포이가 있구나.

-제이든, 무슨 생각 하는 거야?

두 마리를 바라보며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제이든을 향해 아실리가 물었다.

“니콜레타 님이 주신 배낭 말이야, 산 것도 넣을 수 있다고 했지?”

-응, 그렇긴 했는데. 왜?

“이따 한번 들어가 볼래? 연습 삼아서 포이도 데리고.”

-연습? 무슨 연습?

“아주 먼 데 갈 때 너희들 그 가방에 타고 가보면 어떨까 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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