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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101화 (101/195)

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 101화

28. 지하 유적(2)

곰이 잠들어 있던 나무는 제이든 일행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오륙 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도망가야 하나?

제이든은 반사적으로 아실리와 포이를 몸으로 가리고 서면서 말과 곰의 거리를 눈으로 재어 보았다.

나무 밑동에서 빠져나오는 곰의 몸집이 그리 크지 않은 걸 보면 아직 어려 보이지만 아기 곰이 있다는 건 주변에 어미 곰이 있다는 말 아니겠어?

“꾸우웅!”

구멍 밖으로 몸을 빼내던 곰이 뭔가 불편한 듯 울었다.

“꾸에엥?”

당황한 듯 울면서 꿈틀거리는 곰을 보고 있던 제이든의 몸에서 저절로 긴장감이 빠져나갔다.

어째 계속 긴장을 유지하고 있을 수가 없는 풍경이었던 것이다.

“쟤 뭐 하니?”

-걸린 것 같은데?

제이든과 아실리가 말을 주고받는 동안 꿈틀거리며 용을 쓰던 곰은 마침내 제이든 쪽을 향해 앞발을 내밀면서 애처롭게 울었다.

“꾸우우웅!”

“…….”

아니, 진짜 걸린 건가?

제이든은 조심스럽게 몇 발짝 가까이 가 보았다.

가까이 보니까 생각보다 덩치는 제법 크지만 확실히 아기 곰이었다.

제이든과 아실리가 가까이 가자 아기 곰은 더 큰 소리로 꾸애앵 울었다.

혹시 어미 곰이 듣고 올까 봐 제이든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는데 아실리는 곰을 보고 있다가 생글 웃었다.

-엉덩이가 걸렸네.

엉덩이가 걸리다니.

만약 동면하러 나무 구멍에 들어갔던 거라면 겨울 전에 들어갔을 텐데 그새 구멍에서 못 나올 정도로 살이 찔 수가 있나?

어쨌든 아기 곰이 우는 소리를 듣고 어미가 올지도 모르니 빨리 도망치는 게 상책이다 싶어 제이든이 뒤로 물러서는데 하얀 솜뭉치가 그를 지나쳐서 깡충깡충 앞으로 뛰어갔다.

“앗! 포이야, 안 돼, 위험해!”

제이든이 미처 잡기도 전에 포이가 눈밭 위를 깡충깡충 뛰어서 곰의 코앞으로 다가갔다.

“포잇?”

토끼는 겁도 없이 곰의 코앞에다 바짝 얼굴을 들이댔지만 쫓아온 제이든이 포이를 덥석 낚아채 안았다.

“이 겁도 없는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도 모르고! 아니지, 곰 무서운 줄도 모르는 하룻토끼 같으니!”

제이든이 포이를 안고 재빨리 뒤로 물러서는데 포이가 앞발을 내민 채 곰을 향해 손짓을 했다.

“포이이, 포잇!”

“?”

포이의 손짓을 본 아실리가 냐옹 울었다.

-쟤 꺼내 주자고 하는데?

곰을 꺼내 주자고?

제이든은 황망해서 주변을 둘러보며 망설였다.

-주변에 다른 동물이 있는 기척은 없어.

“꾸애앵!”

아실리의 말에 대답하듯 곰이 꾸애앵 울면서 어린애처럼 앞발을 제이든을 향해 내밀었다.

“하, 이거 참!”

망설이고 있는 그의 앞에서 아실 리가 곰에게 살랑살랑 걸어가더니 곰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실룩실룩 냄새를 맡았다.

아실리의 흰 수염이 집중한 탓에 앞으로 새장처럼 휘어졌다.

얼굴에 비해 작아서 익살맞아 보이는 곰의 까만 눈이 반짝거리며 아실리를 마주 보다가 살짝 접히면서 입꼬리가 샐룩 올라갔다.

곰이 웃네!

곰은 천진하게 웃으면서 아실리를 향해 앞발을 내밀고 몸을 바둥거렸다.

아실리가 제이든을 향해 냐옹 울었다.

-꺼내 주자.

“허, 참, 내가 꺼낸다고 꺼내지려나 모르겠네.”

제이든은 화롯가에 벗어 놓았던 장갑을 가져와 손에 낀 다음에 곰의 손을, 아니, 앞발을 붙잡았다.

“하나, 둘, 영차!”

“꾸앵!”

“포잇!”

“하나, 둘, 영차!”

“꾸앙!”

“포잇!”

포이의 응원을 받으며 한참이나 잡아당기다 아무래도 안 빠지겠다 싶어 곰의 몸에 줄을 묶어 말에게 당기게 해봐야 할까 생각하는 참에 곰이 앞으로 쑥 튀어나오며 쿠당탕 엎어졌다.

“흐억!”

곰이 제이든을 깔고 엎어지는 바람에 그는 기겁을 하고 곰을 밀치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꾸우웅.”

그가 밀치는 바람에 눈밭에 엎어진 곰은 불만스럽게 꾸우웅 소리를 내더니 뒤뚱뒤뚱 일어났다.

엉덩이가 함지박만 한 걸 보니 나무 구멍에 끼일 만도 했겠다.

구멍을 빠져나와서 시원한지 비 맞은 대형견처럼 몸을 탈탈 털고 난 곰은 뒤뚱뒤뚱 화롯불 곁으로 가더니 킁킁 냄새를 맡으며 제이든을 쳐다봤다.

제이든이 곰을 물끄러미 마주 보고 있자 곰은 뒷발로 일어서더니 앞발을 모으고 머리를 갸웃 옆으로 기울였다.

어리광 가득한 ‘주세요오’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자세였다.

-자다가 스튜 냄새 맡고 깼나 봐.

뒷발로 일어선 곰은 머리가 거의 제이든의 가슴에 닿을 정도로 키가 컸지만 동글동글한 몸통이나 얼굴을 보면 어린 티가 덕지덕지 묻어나는 아기 곰이었다.

아기 곰이 열렬한 눈빛으로 제이든을 바라보며 앞으로 모은 앞발을 흔들었다.

이거, 안 줄 수가 없네.

바로 퍼먹으려고 덤벼들지 않고 눈치를 보는 것만도 기특해서 제이든은 그릇에 스튜를 담았다.

곰을 나무 구멍에서 빼내느라 밀고 당기고 하는 동안에 적당히 식은 스튜를 담고 빵도 한 덩이 곁들였다.

“음, 너처럼 큰 손님이 올 줄은 모르고 많이 만들지 않아서 양은 적지만 맛이나 보렴.”

불에서 좀 떨어진 나무 아래에 그릇을 놓아주자 아기 곰은 킁킁 기쁜 듯이 냄새를 맡더니 찹찹 먹기 시작했다.

“잘 먹네, 곰이 원래 야채 스튜도 잘 먹나?”

-곰은 잡식이니까 그런가 봐.

제이든과 아실리와 포이와 말은 나란히 서서 곰의 스튜 먹방을 구경했다.

스튜 한 그릇에 빵 한 덩이까지 맛있게 다 해치운 곰은 그릇 바닥까지 싹싹 설거지하듯 핥은 뒤 아장아장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덩치가 큰데도 걷는 모습은 딱 강아지들이 아장아장 걷는 느낌이었다.

아까 말이 먹고 남긴 물통에 다가온 아기 곰은 엎드려서 물을 찹찹 마셨다.

“밥 먹고 물 먹고, 할 건 다 하네.”

제이든이 헛웃음을 쳤다.

회색 아기 곰은 스튜에다 물까지 시원스럽게 마시고 난 뒤 두툼한 앞발로 배를 통통 두드리고는 커다랗게 하품을 했다.

까맣고 반짝이는 단추 두 개를 박아놓은 듯한 눈이 가물가물 감기는 듯하더니 아기 곰은 화롯불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나무 둥치에 등을 대고 앉았다.

금방 고로롱 고로롱 나직하게 코 고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잘도 자네.”

어이없는 얼굴로 곰을 바라보고 있는 제이든 옆에서 포이가 하품을 했다.

“삐이잉.”

하품을 하고 난 포이가 아실리를 잡아당기자 아실리가 썰매 쪽을 향했다.

-저 곰이 잘 자는 거 보니까 나도 졸려. 우리도 자자.

“실리, 포이야 아가라서 그렇다지만 곰이 바로 옆에 있는데 넌 잠이 오니?”

아실리는 제이든의 다리에 머리를 콩 부딪치고는 말했다.

-고양이가 절대 걸리지 않는 병이 하나 있는데, 알지?

“그야……, 불면증이지.”

-맞아!

아실리는 피식 웃는 제이든을 뒤로하고 포이와 함께 썰매 쪽으로 걸어가면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제이든도 얼른 와. 저 아기 곰은 경계하지 않아도 괜찮아. 레노아의 화롯불 옆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잖아.

“아, 그런가?”

레노아가 마법 화로를 주면서 말하기를 이 화로는 불을 피울 뿐 아니라 맹수나 적의를 가진 동물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방어하는 기능이 있다고 했다.

“티아룬 호수 북쪽에서부터 레타논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지역이라 동물이 많습니다.”

레노아는 화로의 사용법을 알려주면서 말했었다.

“마수는 사라진 지 오래됐고 맹수도 거의 없고요. 작은 동물들이 많지만 그래도 늑대나 여우 정도는 있으니까요. 혹시 노숙하시게 되면 이 화롯불이 도움이 될 겁니다.”

빛과 열을 줄 뿐 아니라 적의를 가진 동물에게서 보호막 역할도 해준다니 참 좋은 물건이다.

물론 진짜 모닥불도 비슷한 역할을 하지만 그보다 많이 업그레이드된 마도구랄까.

“마수급이 아니라면 이 화롯불의 보호 경계를 뚫고 들어오지 못할 겁니다.”

아니면 적의가 하나도 없는 어린 동물이거나.

둥근 엉덩이를 위로 치켜든 자세로 엎어져서 쌕쌕 잠들어 있는 아기 곰을 보니 절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썰매 위에 포장을 쳐서 바람을 막고 모포 속에서 난로를 하나씩 끌어안으니 춥지 않게 잘 만했다.

옆구리에 붙어 있는 살아 있는 난로도 둘 있고.

불안했던 것치고는 깊은 잠을 잔 제이든이 아침에 눈을 떠 보니 곰은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다시 겨울잠 자러 갔나 보다.”

포이가 깡충깡충 뛰어서 어제 곰이 나온 나무 구멍에 가서 들여다보더니 실망한 얼굴을 했다.

구멍이 비어 있었던 것이다.

“어제 그 구멍이 자기한테 작다는 걸 알았잖아. 그래서 아마 더 큰 구멍이나 굴을 찾아갔을 거야.”

제이든은 숲속을 두리번거리는 포이를 불러 썰매에 태웠다.

“얼른 가자. 점심때쯤엔 레타논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썰매가 달리기 시작한 뒤에도 포이는 아쉬운 듯 뒤를 돌아봤다.

아기 곰이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두어 시간 썰매를 달리니 돌로 지은 건물이 보였다.

전면에 삼 층 탑이 있고 그 뒤쪽으로 크지 않은 이 층 건물이 붙어 있다. 레타논의 경계를 지키는 초소였다.

-저기서부터 레타논이야. 진짜 오랜만에 와본다. 초소가 좀 낡긴 했지만 거의 안 변했네.

아실리가 코를 울리면서 냐옹거렸다.

초소 뒤에 붙은 건물이 레타논 치안대로 치안대장과 치안대원 두 명까지 세 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전서구 편에 공문은 받았네. 무척 오랜만의 방문객이라 반갑군.”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하고 눈가에 잔주름이 진 치안대장이 제이든 일행을 반겼다.

“그래, 유적을 조사하러 온 유물 감정사라고?”

“예, 그렇습니다. 제이든 로스입니다.”

레타논에는 일반인이 들어가려면 통행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제이든이 감정사 자격으로 마탑에서 발행받은 유적 방문 허가증과 신분증을 치안대장에게 확인받는 동안 가장 젊은 치안대원은 아실리와 포이를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뜯어보았다.

낯선 사람이 자꾸 쳐다보자 제이든의 어깨에 앉아 있던 포이는 그의 귀를 잡고 머리카락에 얼굴을 숨겼다.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치안대원은 뺨을 붉히면서 머리를 꾸벅 숙였다.

“제가 자꾸 쳐다봐서 토끼가 싫은가 봐요. 토끼와 고양이를 데리고 오신 걸 보니 신기해서.”

치안대장이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제이든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이 친구는 아직 여기 온 지 두 달밖에 안 되는 신참이어서요. 신기한 게 많을 나이기도 하죠. 이제 삼 년을 여기서 근무하면 어른이 될 겁니다.”

치안대장은 5년, 치안대원들은 3년을 근무한다고 한다.

치안대장은 쉰 정도, 선임 치안대원은 이제 서른 정도 되어 보였고 막내는 스무 살쯤 되었지 싶었다.

“자, 여기서 반 시간쯤 들어가시면 마을이랄 것까지는 없지만 여행객들과 근무자를 위한 숙소와 식사를 판매하는 곳이 있습니다. 가셔서 숙소를 정하신 후 유적지 탐방을 하시면 되겠습니다.”

썰매가 치안대를 떠나 레타논 영지의 안쪽으로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영지라고 해도 영주나 영지민이 거주하지 않는 곳이라 그런지 황막한 느낌이 강했다.

바람이 휘이잉 소리를 내며 불고, 눈 덮인 황무지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가운데 여기저기 낮은 야산이 불쑥불쑥 솟아 있었다.

눈밭인 데다가 드문드문 숲이 있는데도 왠지 사막 같았다.

-여름에 오면 더 사막 같아.

아실리가 바람을 피해 얼굴을 감추면서 종알거렸고 제이든도 무심코 대꾸했다.

“뭔가 사막의 괴수라든지 설산의 괴물 같은 게 나올 거 같은 분위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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