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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77화 (77/195)

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 77화

23. 어떤 인연(2)

아무리 포이가 보통 토끼가 아니고 특별한 토끼라지만 아기 토끼 앞발로 던진 나뭇가지가 2미터나 날아갈 수 있나?

게다가 포이가 던진 나뭇가지는 날아간다기보다는 둥근 포물선을 그리며 살짝 공중에 떠서 가는 느낌이었다.

마치 KBO 유모 투수의 느리디느린 슬로우 커브처럼.

“포이! 어떻게 한 거야?”

제이든은 깜짝 놀라서 포이를 안아들고 말랑말랑한 앞발을 쥐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아니, 앞발이 아니고 어깨를 봐야 하나?

어깨를 손으로 꾹꾹 눌러 보자 포이는 간지러운지 피잇피잇 소리를 내면서 몸을 뒤틀었다.

오스틴과 로이드도 눈을 크게 뜬 채 포이를 들여다보았지만, 아실리는 머리를 갸웃 기울인 채 초록색 눈으로 포니를 올려다보았다.

잔뜩 웃음을 참는 얼굴로 손을 모아잡고 있던 포니가 아실리의 눈길을 느끼고는 제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게 될 리가 없는데, 포이, 한 번만 더 던져 볼래?”

제이든이 포이를 땅에 내려놓자 포이와 포니가 꺄르륵거리며 웃음을 교환하더니 자세를 잡았다.

포니가 손을 치켜올리며 신호를 주자 포이가 포잇! 소리를 내며 나뭇가지를 던졌다.

나뭇가지가 포니의 머리를 넘어가는 순간 아실리가 냥 소리를 내며 울었다.

-포니를 봐!

눈을 반짝거리며 손을 치켜올린 포니가 손가락을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었다.

“포니 아가씨!”

“네엥?”

소녀는 흠칫 몸을 움츠리며 대답했다.

제이든을 바라보는 눈이 반짝거리는 게 장난기가 가득하다.

“어떻게 하신 거죠?”

“에헤헷!”

소녀와 토끼는 엄청 재미있는 일을 해냈다는 듯이 깡충거리며 어른들의 주변을 뱅글뱅글 돌았다.

* * *

본채에 가 있던 레노아가 불려와서 제이든이 포이를 주무르듯 포니의 손과 어깨를 만져 보더니 물었다.

“아가씨, 물건을 공중에 띄울 수 있나요? 언제부터 그렇게 됐어요?”

포니가 손을 파닥파닥 흔들자 포이도 옆에서 앞발을 파닥파닥 흔들었다.

“그저껜가? 포이랑 놀고 있었는데요오. 포이가 돌멩이를 얏 하고 던졌을 때 저도 같이 얏 하고 힘을 줬더니 돌멩이가 동동 떴어요. 금방 뚝 떨어졌지만!”

소녀는 토끼와 나란히 선 채 둘이 함께 손짓발짓을 했다.

“재밌어서 포이가 돌멩이나 나뭇가지를 던질 때마다 같이 힘을 줬더니, 자꾸자꾸 더 높이 뜨게 됐어요. 이렇게, 이렇게요.”

“그렇군요. 혹시 오라버님이 그렇게 하시는 걸 본 적이 있나요?”

포니는 잠깐 눈을 또록또록 굴리더니 힘있게 머리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오라버님이 보여주신 적 있어요. 제가 더 어렸을 때 밤에 자다가 깨서 무서워서 울었는데요. 오라버님이 인형을 제 머리맡에 동동 뜨게 해주셨어요.”

아카디아 백작에게 약하지만 마법의 능력이 있다고 했는데 포니와 같이 물건을 띄우는 능력인가 보다.

레노아가 제이든 쪽을 보며 말했다.

“맞아요. 아카디아 백작님도 비슷한 형태의 마법이 발현했었어요. 하지만 포니 아가씨가 더 소질이 좋아 보이는데요. 발현한 나이도 훨씬 어리고.”

“레노아 언니, 나 마법사가 될 수 있어요? 응? 마법사?”

“글쎄요, 테스트를 해 봐야겠지만 오라버님과 부모님과도 의논을 해 봐야지요.”

아카디아 백작은 가문을 이어야 하는 장자라서 마법사의 길을 걸을 수는 없었다.

애당초 타고난 마법 능력도 너무 미약해서 마법 공부를 한다 해도 마법사가 될 수는 없었을 거라고 하지만.

“포니 아가씨는 다르지요. 재능과 노력이 뒷받침된다는 가정하에 원한다면 마법 공부를 하실 수 있을 거예요. 아카디아 백작님 가문이 그렇게 꽉 막힌 가문도 아니고.”

레노아의 말을 들은 로이드가 끼어들어 물었다.

“백작님과 포니 아가씨 두 분이 다 비슷한 능력을 발현시킨 걸 보면 아카디아 백작가 혈통에 마법의 재능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마법사가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습니까?”

“예. 아카디아 백작님처럼 취미로 즐길 정도의 마법 능력을 가진 분은 몇 분 있었다고 하는데 정말 마법사가 될 정도의 재능을 갖고 태어난 사람은 없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레노아는 포이를 끌어안고 뺨을 비비면서 ‘마법이래, 마법!’을 외치고 있는 포니에게 눈길을 주며 말을 이었다.

“어쩌면 처음으로 한 명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 * *

더스틴타운에 가는 길에는 포니와 아카디아 백작, 디안느 영애가 동행했다.

며칠 후면 헤어질 포니가 조금이라도 포이와 더 함께 있고 싶어 했기에 아카디아 백작에게 허락을 구하자 아카디아 백작이 포니만 보내기엔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함께 따라온 것이다.

백작가의 마차 두 대에 경호원들과 제이든 일행이 나누어 탔고 말을 탄 호위 기사도 한 명 동행했다.

귀족과 평민이 함께 아카데미에 다녀도 큰 차별이 없다는 카이엔의 풍토는 알고 있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같은 마차에 끼어 타는 아카디아 백작이나 디안느 영애를 보며 제이든은 좀 얼떨떨했다.

카이엔의 귀족을 처음 보는 것이 아닌데 이들 같은 귀족은 처음 봤다.

세렌토와 아카디아의 가풍이 좀 특별한지 제이든이 생각하는 귀족들의 행동과는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뭘 그렇게 보시오?”

“아니, 아닙니다.”

앞자리에 앉은 백작의 얼굴을 빤히 본 게 무례인가 싶어 제이든이 황급히 얼굴을 숙이자 아카디아 백작이 웃음을 터뜨렸다.

“신분 같은 거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하시오. 나이도 별 차이 안 나는데. 내 누이동생이 여러 번 귀찮게 했을 텐데 잘 돌봐 줘서 고맙소.”

포니를 사이에 두고 아카디아 백작의 옆자리에 앉은 디안느 영애가 제이든의 옆에 앉은 아실리와 포이를 보면서 말했다.

“토끼 덕분에 우리 포니가 마법의 재능을 발현시킬 수 있었다면서요? 고양이와 토끼가 뭘 좋아하려나. 아주 맛있는 점심을 대접할게요.”

“포잇!”

포이가 까만 귀를 쫑긋 세우면서 발딱 일어나 앉자 아실리와 포이를 사이에 두고 제이든의 옆자리에 앉았던 레노아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싱긋 웃었다.

덕분에 좋은 식당에서 근사한 점심을 얻어먹은 후 아카디아 백작과 디안느 영애가 포이와 포니를 데리고 경호원들과 함께 공원에서 쉬는 동안 제이든 일행은 더스틴타운의 골동품상을 돌았다.

여러 군데 골동품상을 돌아봤으나 딜런을 찾아왔던 노인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아카디아 백작님을 찾아왔던 골동품상도 딜런을 찾아왔던 그 노인인 것 같다고 했지요?”

“예. 크리스토 행정관에게 상인인 척하고 갔던 사람은 딜런이 보낸 사람인데, 아카디아 백작님께는 그 노인이 직접 왔었던 것 같습니다.”

딜런과 아카디아 백작이 두 사람 다 같은 말을 했다.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노인인데 말을 시작하면 왠지 홀리는 것 같았다고.

듣고 있는 동안 그 노인의 말이 다 옳고 뭐든 그 노인이 말하는 대로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게 한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단검을 팔려고 그렇게 복잡한 일을 하진 않았을 테고, 딜런을 부추겨서 세렌토의 후계 구도에 혼란을 일으키려고 한 이유가 있을 텐데.”

“그러게 말이에요. 세렌토에 별일이 없으면 좋겠네요.”

골동품상을 둘러보고 나온 제이든 일행은 공원으로 가서 아카디아 백작과 합류했다.

제이든은 이마에 손을 대고 공원에서 가깝게 보이는 뒤쪽 산을 올려다보았다.

“북서쪽이네. 레타논으로 가려면 저 산을 넘어야 할까요?”

오스틴이 산 쪽을 보면서 대답했다.

“아카디아 백작님 소유의 광산이 있어서 통제되는 지역이 있지만 일반인들이 다닐 수 있는 길도 나 있어요. 레타논으로 가신다면 저 산을 넘는 게 가장 빠른 길이긴 한데, 산길이 좀 험합니다. 제가 북부에서 올 때 저 산을 한 번 넘어 봤는데 만만치 않았어요. 보통은 산기슭을 따라 돌아가도록 난 길을 택합니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길이 편하니까요.”

산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을 본 포니가 아카디아 백작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오라버님, 저 산에 오라버님 광산이 있어요?”

“그렇단다.”

“디아나 언니의 이름을 딴 광석이 나오는 곳이죠?”

“그렇지.”

“한번 보고 가면 안 돼요? 나 여기 처음 와 보는데.”

백작은 어린 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잠깐 망설이더니 제이든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조금만 올라가면 광산 입구가 나오는데, 초입까지만 한번 보고 가겠소?”

제이든이 승낙하기도 전에 포니가 팔짝팔짝 뛰었고 그 발치에서 포이가 함께 뛰었다.

* * *

광산 입구까지는 길이 잘 닦여 있어서 마차로 쉽게 갈 수 있었다.

산 전체가 아카디아 백작의 소유이기는 하지만 산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불편할 것을 우려해 광산 주변만 울타리로 막고 통행을 통제할 뿐 사람들이 산을 드나드는 것을 막지는 않는다고 했다.

“레타논으로 갈 거면 산 중턱까지는 이 길을 이용해도 괜찮소. 원래는 광산에서 일하는 사람들만 다니는 길이지만 로스 감정사에게는 통행을 허락하지. 다만 길이 산 중턱까지밖에 뚫려 있지 않으니 거기서부터는 산길을 타야 하겠지만.”

“감사합니다.”

제이든이 산 아래쪽 길로 돌아가는 것과 산을 넘어가는 길 어느 쪽이 나으려나 머릿속으로 따져보고 있는데 마차가 덜컹거리더니 멈추었다.

“음? 도착하려면 조금 더 가야 할 텐데 왜 멈춘 거지?”

아카디아 백작이 창밖을 내다보는데 말을 타고 마차 옆을 따르던 호위 기사가 마차 옆으로 다가왔다.

“광산 쪽이 좀 어수선합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호위 기사는 금방 돌아왔다.

“통제 구역에 침입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산을 넘어왔다는데요.”

“민간인인가? 그럼 그냥 내보내면 되지 않나?”

이 광산에서는 길을 잘못 든 민간인이라면 통제 구역 밖으로 내보내고, 광물이나 장비를 훔치려는 도둑이라면 초범인 경우 경고하고 내보내고 재범이면 치안대에 인계한다.

“저, 그게…….”

기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마차 안쪽을 향해 말했다.

“여자아이랍니다. 디안느 영애를 만나고 싶다고 한답니다.”

“나를?”

디안느 영애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자아이가 이 산을 넘어왔다고?”

“혼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광산 입구 쪽에 작은 건물이 서 있었다.

현대라면 휴게소라고 할 법한 건물이었다.

사무실처럼 꾸며진 방에서 광산 책임자인 듯한 이가 아카디아 백작에게 인사를 한 뒤 설명했다.

“오늘 아침에 통제 구역으로 세 명의 침입자가 들어와 경비병에게 연행되었습니다. 삼십 대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 그리고 십 대 소녀가 한 명이었는데 셋 다 허름한 차림이었지만 남자는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신분을 밝히라고 했는데 디안느 아가씨를 만나게 해 주면 신분을 밝히겠다고 하더군요.”

낯선 자가 디안느 영애를 만나게 해달란다고 바로 만나게 해줄 수는 없지만 광산의 책임자는 디안느나 아카디아 백작의 성향을 알고 있었기에 일단 세렌토 영주관으로 비둘기를 날렸다.

그런데 답신이 오기 전에 마침 아카디아 백작과 디안느 영애가 광산으로 온 것이다.

“일단 억류해 뒀습니다만 어떻게 할까요?”

책임자가 묻자 아카디아 백작은 디안느를 쳐다보았고 디안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날 찾아왔다고 하니 누군가 보기는 해야지. 들여보내게.”

잠시 후 경비병들의 감시하에 세 명의 ‘침입자’가 방으로 들어왔다.

제이든은 습관대로 재빠르게 사람들을 훑었다.

먼저 들어온 건 서른 중반쯤의 남자.

옷차림은 평범한 마을 사람 같았지만 몸이 탄탄하고 눈매가 날카로운 게 단련된 무사였다.

무장하고 있었다더니 세 사람 중 남자만 손이 뒤로 묶여 있었지만 걸어 들어오면서 몸으로 자신 뒤의 소녀를 보호하듯 살짝 가리고 있었다.

남자 뒤를 따라 들어온 소녀는 십 대 후반쯤 되어 보였다.

역시 평범한 마을 소녀 같은 옷차림이었지만 적갈색 머리카락과 선명한 초록 눈, 얼굴이나 몸가짐이 다 범상치 않았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사람은 이십 대 후반이나 삼십 대 초반쯤의 여자였는데 역시 소녀를 조심스럽게 감싸는 자세였다.

소녀가 앞으로 나서면서 머리를 똑바로 들고 제이든 일행을 훑어보았다.

의자에 앉아 있던 디안느가 입을 열기 전에 제이든의 뒤에서 갑자기 헉 하고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났다.

“안젤리카 아가씨…….”

목소리를 따라 눈을 돌린 소녀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오스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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