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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68화 (68/195)

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 68화

22. 붉은 손의 단검(3)

아저씨, 젓가락이 원래 그렇게 쓰라고 나온 건 아닐 텐데 말이지요.

그런데 혹시 무고한 사람이 맞은 건 아니겠지?

제이든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눈치챘는지 오스틴이 말을 덧붙였다.

“살기가 느껴졌어요. 일반인은 아니었습니다. 동작도 빠른 놈이어서 문 열었을 때 이미 사라지고 없었잖습니까.”

“예. 전에 느꼈던 시선이랑 비슷한 느낌이긴 했어요.”

리마타운에서 등에 꽂히던 시선과 비슷하게 따끔한 기분이었다.

“오, 그걸 알아차릴 수 있습니까? 의외로 이쪽에 소질이 있으실지도 모르겠군요.”

오스틴은 빙그레 웃으며 손아래 아우를 바라보듯 제이든을 내려다보았다.

제이든의 키가 작지 않은데 오스틴은 그보다 한참 더 크다. 피니어스보다도 더 큰 것 같았다.

2미터는 못 되어도 190은 확실히 넘지 싶었다. 그렇게 큰데도 움직임이 날렵해서 조금도 둔해 보이지 않는다.

“자, 이제 가시죠. 역시 영주관에 묵기로 한 게 잘한 것 같네요.”

식당 주인에게 쪽문에 젓가락을 던진 일에 대해 해명하고 온 레노아가 일행을 이끌고 식당을 나섰다.

“포이, 왜 그래?”

어깨에 앉아 있던 포이가 가슴 쪽으로 꼬물꼬물 내려와 옷깃에 머리를 파묻는다.

안아 주면서 물었더니 포이는 조금 겁먹은 듯한 눈으로 오스틴 쪽을 보았다.

“아저씨가 젓가락 날리는 게 무서웠나 보구나? 괜찮아.”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려 주자 포이는 작은 숨을 호오 내쉬었다.

체격도 큰 사람이 갑자기 젓가락을 날려 문에 꽂는 바람에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영주관까지 가는 중에도 포이는 살짝살짝 오스틴을 훔쳐보다가 눈이 마주치면 흠칫 놀라 얼굴을 숨기곤 했다.

“제가 몸이 크니까 토끼가 무서운가 보군요.”

“포이가 원래 낯을 좀 가려서요. 며칠 더 낯을 익히면 괜찮을 거예요.”

“포오이.”

그렇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포이가 조그만 소리로 울면서 제이든의 머리카락 너머로 오스틴을 살짝 넘겨다봤다.

* * *

세렌토의 영주관은 우아하고 옛스러운 고성이었다.

지은 지 무려 600년 정도 된 건물이라고 하는데 현대식으로 바꾸지 않고 최대한 옛것을 그대로 보존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때맞춰 보수를 하고, 생활의 편의를 위해 현대식 설비를 들여놓기도 했지만 최대한 옛것을 손상하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영주관에서 손님맞이를 위해 나온 젊은 집사는 성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듯했다.

“손님용 별채는 후대에 지은 건물이고 현대식 설비가 잘 갖춰져 있으니 불편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부족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영주관의 후원에 자그마한 건물이 서너 채, 간격을 두고 세워져 있었다.

집사는 제이든 일행을 그중 한 건물로 안내했다.

본성처럼 예스럽지는 않으나 운치 있는 이 층 건물이었다.

“여기서 이틀 동안 푹 쉬시고 그다음 날 상인들이 내방할 때 입회해 주시면 되고요. 식사는 본성 주방에서 날라다 드릴 테지만 원하시면 여기 주방을 쓰셔도 좋습니다. 간단한 식재료도 준비해 뒀으니 편히 사용하시고 외부 식재료 반입도 무방합니다.”

“예, 감사합니다.”

“이 별채는 작년에 대대적으로 보수를 했거든요. 주방에는 신형 화염 마석을 설치했고 욕실의 정수석은 베르너 아쿠아 사의 제품입니다. 바로 마셔도 되는 깨끗한 물이 흐릅니다.”

“방어 마법이나 경보 장치는 없습니까?”

오스틴이 물었다.

“별채에 따로 방어 마법은 걸려 있지 않습니다. 치안대의 연락을 받고 마법사에게 연락은 해봤는데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요. 본채에도 크기라든지 여러 문제로 전체적인 방어 마법은 설치하지 않았거든요. 영주님 침실처럼 중요한 곳 몇 군데에만 따로 방어 마법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네, 하지만 영주관 전체를 경비대가 지키고 있습니다. 수십 년간 침입에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요. 경비병을 몇 명 배치해 드릴까요?”

젊은 집사는 흑마법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지 감정사의 안전에 대해 치안대가 신경을 쓰는 게 좀 의아한 눈치였다.

레노아와 오스틴이 눈짓을 주고받더니 레노아가 제이든에게 물었다.

“음, 저희끼리만 있어도 될 듯한데 제이든 씨의 의견은 어떠신가요? 경비병을 좀 배치해 달라고 할까요?”

“저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굳이 경비병을 따로 둘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오스틴도 레노아도 한가락 하는 무술가고, 제이든 자신도 제 몸 하나 건사할 자신은 있는데 공연히 낯선 경비병을 두는 게 더 신경 쓰일 것 같았다.

“잠시 후 야식거리를 좀 갖다 드리겠습니다.”

집사가 본채로 돌아간 후 오스틴과 레노아는 집 주변을 돌아보고 꼼꼼히 안전을 점검했다.

2층에 침실이 셋, 욕실이 하나 있고 아래층에는 주방과 거실, 침실 하나, 그리고 책은 없지만 책상과 의자가 갖추어져서 서재나 사무용으로 쓸 법한 방이 하나 있었다.

제이든과 아실리, 포이가 2층 침실 중 가장 안쪽 방을 쓰기로 했고 레노아가 옆방, 오스틴은 아래층의 침실을 쓰기로 했다.

방 배정을 끝내고 짐을 풀고 나자 집사가 돌아왔는지 출입구의 종이 울렸다.

문을 열자 쟁반을 든 집사가 조금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 야식거리를 가져왔는데 꼬마 아가씨가 같이 오셨습니다.”

집사의 뒤쪽에서 머리를 빼꼼 내민 것은 일고여덟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보슬보슬해 보이는 갈색 머리를 양쪽으로 묶은 아이는 눈이 크고 볼이 통통해서 깜찍한 얼굴이었다.

커다란 종이 봉지를 품에 안고 있었다.

“토끼와 고양이가 있다고 했더니, 아가씨가 사람 야식 말고 토끼와 고양이 것도 필요할 거라면서 따라오셨어요.”

아이는 제이든의 앞에 서 있는 아실리와 어깨 위의 포이를 보고 눈을 반짝이면서 쪼그리고 앉아서 종이 봉지를 열어 보였다.

당근, 사과, 상추, 비스킷 등이 들어 있는 봉지를 열어서 내용물이 보이게 아실리의 앞에 놓은 아이는 쪼그려 앉은 채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나서야 무릎을 펴고 일어났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아실리와 포이를 번갈아 본다.

“아카디아 백작님의 늦둥이 여동생입니다. 세렌토를 구경시켜 준다고 얼마 전에 데리고 오셨지요. 여기 머물고 계십니다.”

세렌토 영애가 내년에 혼인한다는 아카디아 백작에게 이렇게 어린 동생이 있구나.

작위를 물려주고 은퇴했다는 선대 백작이, 음, 매우 정정하신가 보네.

“포넬라 드 아카디아예요.”

아이가 생글 웃으며 인사했고 제이든 일행도 당황해서 인사를 받았다.

“반갑습니다. 아카디아 영애.”

아이는 작은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대답했다.

“그냥 포니라고 부르시면 돼요.”

“아가씨…….”

집사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포니는 장난꾸러기 같은 웃음을 머금은 채 아실리와 포이를 향했다.

“이름이 뭐예요? 한번 불러 봐도 될까요?”

“고양이는 아실리, 토끼는 포이입니다.”

“포이, 안녕, 난 포니야.”

제이든의 어깨 위를 바라보며 인사하고 난 아이는 다시 쪼그려 앉아서 아실리와 눈높이를 맞췄다.

“안녕, 아실리, 난 포니야.”

“야옹!”

“인사했다, 인사했어. 고양이가 나한테 인사해 줬어요!”

소녀는 볼이 빨개지면서 반짝이는 눈으로 주변 사람들을 하나하나 쳐다봤다.

아실리가 야옹 한번 해준 게 너무 좋은 모양이었다.

“자, 이제 돌아가요. 아가씨, 이분들도 쉬셔야 합니다.”

소녀는 아쉬운 모양이었지만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는 아실리와 포이에게 손을 흔들며 본채로 돌아갔다.

집사의 손을 잡고 본채 쪽으로 사라지는 소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실리가 중얼거렸다.

-근래 보기 드물게 예의 바른 아이네.

“귀족티도 안 내고.”

-동물 대하는 법도 아는 애였어. 함부로 만지려고 하지도 않고 말을 걸 때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눈높이를 맞추고.

“다음에는 포이도 인사해 주렴.”

제이든이 포이와 아실리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오고 레노아도 주위를 한번 둘러본 후 들어왔는데 오스틴은 계속 소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스틴 씨?”

“아, 네.”

오스틴은 흠칫 놀라더니 얼른 안으로 들어와 문단속을 했다.

“어리다고는 하지만 백작가의 영애인데 거리낌 없이 존대를 하고, 무척 소탈하군요.”

카이엔은 노예제도가 없고, 평민이라고 해서 크게 차별을 받지도 않는 곳이었다.

신분의 제약은 확실히 있지만 차별 문제라면 지구의 중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괜찮은 편이었다. 지방에 따라 차이는 좀 있다고 하지만.

오스틴은 포니 아카디아에게 꽤 감명을 받은 얼굴이었다.

방에 들어와서 아실리와 포이에게 사과를 쪼개 주자 포이는 좋아라고 앞발을 내밀었지만 아실리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난 사과는 됐어. 비스킷 줘.

비스킷 조각을 오물오물 먹는 아실리에게 제이든이 물었다.

“카이엔에도 옛날엔 노예제가 있었지?”

-카이엔과 에테노른, 아르카니오엔 원래부터 없었어. 하지만 다하르랑 엘데온, 로시난트와 슈라이베른에는 있었어. 통일된 뒤엔 모두 없어졌지만.

“다하르는 전사들의 나라고 엘데온은 상업국가, 로시난트도 문화가 그렇다 쳐도 슈라이베른은 좀 의외네. 성국이잖아? 금욕의 슈라이베른이라고 불렸다면서.”

-종교 국가는 성스럽기만 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아. 신앙으로도 얼마나 차별이 심한데. 슈라이베른은 금욕적이고 신실한 사람들의 나라가 맞고 훌륭한 사제도 많지만 맹목적인 신앙심의 부작용도 큰 편이었어. 다하르 다음으로 호전적인 국가로 슈라이베른이 꼽히는 걸 봐.

“흠.”

제이든이 포이 주고 남은 사과를 깨물어 먹는 동안 아실리는 비스킷을 먹고 입을 닦고 나더니 말을 덧붙였다.

-오스틴 씨, 아마 다하르 출신일 거야.

“그래?”

-기골장대한 외모에도 다하르의 특징이 있고, 젓가락 날리는 솜씨나 몸 쓰는 법, 그리고 아까 그 백작가 소녀를 봤을 때 태도 같은 거 보면 그래.

“눈도 좋다. 아까 그 아이 봤을 때 태도가 어때서? 특이한 게 없던데?”

-아까 그 포니라는 아이, 귀족가 아이치고는 태도가 지나치게 소탈했지? 어린 나이에도 사람 깔보는 귀족 아이들도 많은데.

“그렇지, 좀 특이한 아이였어.”

-제이든처럼 그냥 좀 특이한 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텐데 오스틴은 꽤 놀란 것 같더라고. 통일되고 오래 지났는데도 옛 다하르 지방엔 아직도 신분제의 색채가 많이 남아 있거든. 원래 신분 차별이 심했던 곳이고.

“삼백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그런가?”

-다하르랑 슈라이베른 지역이 유난히 그래. 옛 풍토가 많이 남아 있는 편이야.

리마타운에서 세렌토까지 급하게 달려온 여정이 꽤 피곤했던지 제이든은 아실리의 말을 듣다가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잠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아실리도 피곤했는지 제이든의 팔에 머리를 기댄 채 곤히 잠들어 있었는데 포이는 벌써 깨어서 창문턱에 앉아 있었다.

“포이, 일어났어?”

동그란 뒤통수를 보며 제이든이 말을 걸었지만 포이는 뭔가에 집중하고 있는지 돌아보지도 않았다.

뭘 보는 건가 싶어 가만가만 뒤로 다가가 보니 포이는 창틀에 앉아 커튼으로 몸을 가린 채 얼굴만 빼꼼 내밀고 바깥을 보고 있었다.

창 아래쪽 풀밭에서 오스틴과 레노아가 대련을 하고 있었다. 언뜻 보아도 둘 다 보통 수준이 아니다.

아침 운동 중인가, 둘 다 참 부지런하네.

제이든이 손가락으로 포이의 등을 톡 치자 포이는 꺅 소리를 내며 공중으로 퐁 튀어올랐다.

“미안, 미안, 놀랐어? 그렇게 집중하고 있는지는 몰랐네.”

“피이잉.”

포이가 입을 뾰로통하게 내밀었다.

“근데 뭘 그렇게 숨어서 봐? 가자, 형아가 보여줄게.”

포이를 어깨에 태우고 밖으로 나가자 오스틴과 레노아가 대련을 멈추고 인사를 했다.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계속하세요. 두 분 다 대단하시네요.”

“아뇨, 이제 끝내려고 했었습니다.”

오스틴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그만 집으로 들어갈 자세를 취하자 포이가 발을 꼼지락거리며 제이든의 귀를 잡아당겼다.

“왜? 포이?”

포이가 내려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땅에 내려 주자 포이는 제이든의 바짓자락을 붙잡고는 제이든을 한 번, 오스틴을 또 한 번 쳐다보았다.

뭘 원하는 거지? 아실리가 없으니까 통역이 안 되네.

답답한 듯 뒷발을 탕 구른 포이는 입을 꼭 다물더니 땅바닥에 있는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주웠다.

짧은 앞발을 제 딴엔 힘껏 홱 내두르더니 제이든을 올려다본다.

나뭇가지는 포이의 바로 앞에 톡 떨어졌다.

“아!”

제이든은 그제야 알아차렸다.

포에니 토끼가 지능이 높다더니 이거야 원.

“저, 오스틴 씨.”

제이든이 민망함을 참고 부탁했다.

“그, 젓가락 던지시던 거 좀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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