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 66화
22. 붉은 손의 단검(1)
가슴에 강렬한 충격을 받고 숨이 턱 막혀서 한순간 깜빡 정신을 잃었던 제이든이 신음을 흘리면서 가슴을 더듬었다.
“으으!”
-제이든, 정신 차려!
가슴을 더듬던 손에 화살대가 잡혔다.
뭐지? 나 화살에 맞은 거야?
제이든은 가슴에 화살이 꽂힌 채로 비틀거리며 일어나 앉았다.
마차가 덜컹덜컹 요란하게 흔들리며 달리고 있었다. 뒤쪽을 보니 쫓아오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피잇, 피잇!”
포이가 제이든의 무릎에 매달린 채 제이든의 가슴에 꽂힌 화살을 보면서 바들바들 떨었다.
커다란 눈이 동공지진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제이든, 괜찮은 거야?
뒤쪽을 경계하고 있던 아실리가 제이든을 돌아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응, 괜찮은 거 같긴 한데.”
가슴이 몹시 아프지만 생각보다는 괜찮은 거 같은데……, 화살을 맞았는데 어떻게 괜찮지?
제이든은 조심스럽게 화살을 잡아 뽑았다.
새로 사 입은 두툼한 겨울 튜닉의 왼쪽 가슴에 정통으로 꽂힌 화살은 의외로 힘없이 빠졌다.
가슴 부분에 달린 주머니 속에 손을 넣자 카티야에게서 받았던 은화와 금화가 손에 잡혔다.
새 옷으로 갈아입으면서 여기에 넣어 놨었지.
은화를 꺼내 보자 가운데 동그랗게 구멍이 나 있고 주변으로 미세한 실금이 가 있었다.
제이든은 크게 숨을 내쉬며 은화를 꼭 쥐었다. 카티야의 선물 덕분에 살았네.
* * *
그들은 곧장 리마타운의 치안대로 돌아갔고 즉시 의사가 왔다.
구멍 난 옷과 은화, 그리고 제이든의 가슴에 남은 상처까지 확인한 의사는 혀를 내둘렀다.
“천운이네요, 천운! 은화가 막아 준 덕분에 몸에는 정말 가벼운 상처밖에 입지 않았어요. 그 주변이 며칠 아프시겠지만 정말 하늘이 도왔습니다.”
은화가 막았다고는 해도 가슴에 이 정도의 상처밖에 입지 않은 것은 정말 가진 운을 다 끌어다 쓴 거라면서 의사는 약을 발라 주었다.
“산적이 나올 만한 곳도 아니고, 바로 도시 근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혹시 누군가에게 원한 사신 일이 있으십니까?”
“아뇨, 특별히 짐작 가는 일은 없는데…….”
제이든은 말을 흐리면서 지나온 길을 돌이켜 봤다.
직업상 의뢰자가 진품이라고 믿고 있었던 유물을 가품이라고 감정하거나, 위조품을 가지고 사기를 치려고 하던 사람을 밝혀내거나 하는 일은 가끔 있었다.
그중 앙심을 품은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욕설이나 협박 정도지 실제로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 일은 없었다.
제이든이 겪은 가장 위험한 일은 지난번 글로비스의 밤의 경매에 휘말렸던 일 정도인데 이런 일은 극히 드문 경우였고.
최근에 미심쩍은 일이라면 역시 화살 맞은 전서구를 주운 일이었다.
그때 마주쳤던 사람이 아무래도 전서구와 화살을 회수하러 왔던 것 같았는데 목격자의 입을 막으려고 한 건가.
하지만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제이든은 혀를 찼다.
뭔가 생각이 날 듯 날 듯하면서 정확히 떠오르지는 않는 부분이 있어 답답했다.
“그 전서구 때문이 맞는 것 같습니다.”
마차에 박힌 화살을 조사하고 온 치안대원이 말했다.
“지난번에 주워 오신 화살과 같은 겁니다. 그 비둘기도 제이든 씨도 정말 운이 좋으셨네요. 제이든 씨는 그놈 얼굴을 못 봤다고 하셨지만 그놈 입장에선 아무래도 꺼림칙했던 모양이죠.”
“그때는 그냥 도망쳤던 자가 이제 와서 굳이 절 제거할 필요가 있을까요?”
“글쎄요. 그때는 제이든 씨가 혼자라는 걸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지요. 마차를 세워 놓고 숲에 들어가셨다고 했잖습니까? 동료가 마차에 더 있을지 모르니 빨리 사라지는 게 능사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죠.”
“그 전서구, 델리움 치안대에서 세렌토로 가는 전서구라고 했었죠?”
“맞아요.”
부상당한 전서구가 전달하려던 우편물은 이미 리마타운의 전서구가 지참하고 세렌토로 출발했다고 한다.
만약을 위해 두 마리를 따로 보냈다고 하는데, 전서구도 아니고 왜 제이든을 공격했을까?
제이든은 우편물의 내용도 모르고 활을 쏜 사람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했는데.
“아!”
제이든은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아윽!”
화살 맞은 가슴 부분이 아파서 몸을 구부리고 헐떡이는 제이든을 보고 의사가 혀를 찼다.
“그렇게 급하게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외상이야 대단찮아 보이지만 화살 맞은 충격을 우습게 보시면 안 돼요. 아마 내일쯤이면 시퍼렇게 멍이 들 겁니다. 이삼일 정도는 꽤 아플 거예요.”
제이든은 가슴을 문지르면서 급히 치안대원을 찾았다.
“왜 그러세요? 로스 씨?”
“생각났습니다. 생각났어요.”
“?”
치안대 부대장을 붙잡은 제이든이 말했다.
“그 전서구가 전하려던 우편물 말입니다. 혹시 단검에 관한 것 아니었나요?”
“단검이요?”
부대장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딱히 단검에 대한 내용은 없었는데, 왜 그러십니까?”
“그 사람이 기억났습니다.”
전서구를 찾았을 때 잠깐 봤던 옆모습, 그때는 기억나지 않았던 얼굴이었다.
그리고 버드맨의 동물병원에서 나온 후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고 돌아봤을 때 사람들 틈에서 재빨리 고개를 숙이던 어떤 얼굴.
기억났다. 그리고 그자도 제이든을 알아본 것이 틀림없었다.
“그자를 본 적이 있어요. 메이빌에서 사흘 정도 거리인 앰버타운에서요.”
신원이 불분명한 의뢰자의 의뢰를 받고 여섯 개의 동방 단검을 감정하러 갔던 앰버타운.
그때 감정하던 방의 문을 지키고 있던 덩치 좋은 사내.
문에 등을 기댄 채 사람을 눈 아래로 깔아 보던 그 칼잡이의 유난히 한기를 풍기던 얼굴이 뒤늦게 기억난 것이다.
“창문을 깨고 도망칠 때 그놈이 내 등 뒤로 손도끼를 던졌었지요. 하마터면 죽을 뻔했거든요.”
감정하러 갔다가 욕설을 듣거나 협박을 받는 경우는 있어도 그렇게 직접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산에서 봤을 때는 서로 얼핏 스치듯 본 거라 못 알아봤는데, 그놈이 저를 먼저 알아봤나 보네요.”
그자도 제이든을 못 알아봤다가 뭔가 미심쩍어서 뒤를 따랐던 모양이다.
그때 그 감정사라는 걸 알아차리고 그때 못 한 살인멸구를 이번에 하려고 했던 건가.
“흠. 로스 감정사님 말대로라면 이번 일이 그때 그 단검과 관련이 있을 수 있겠군요.”
부대장은 까끌까끌한 턱수염이 솟은 턱을 만지면서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그는 제이든을 향해 말했다.
“세렌토로 가신다고 했지요? 일정이 급한 게 아니라면 일단 숙소에서 좀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세렌토 치안대에 긴급 연락을 넣어 보겠습니다. 저희는 우연히 전서구의 내용을 알게 되었을 뿐 이 일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니까요. 전서구가 전달하던 내용을 일반인에게 누출해도 되는지도 알 수 없고요.”
치안대에서는 세렌토로 긴급 연락을 맡은 매를 날려 보냈다.
“아주 빠른 매니까 어쩌면 오늘 밤이 되기 전에 돌아올 겁니다.”
리마타운 치안대에서 붙여 준 호위가 제이든에게 말했다.
마차로 가면 이틀 거리인데 한나절 만에 왕복할 수 있다니 정말 빠른 매인가 보다 생각하며 제이든은 호위를 바라보았다.
오스틴이라는 이름의 호위는 제이든보다 서너 살 위로 보이는 남자로 날카로운 눈매와 단련된 체격이 돋보이는 사람이었다.
“혹시 세렌토의 답변이 늦어져서 매가 날기에 어둡다 싶으면 야간 우편을 맡은 부엉이가 올 거고요. 부엉이가 온다면 내일 새벽 정도에 도착하겠네요.”
“예…….”
어차피 밤 아니면 새벽에 답변이 올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세렌토에서의 연락은 뜻밖에 빨리 왔다.
이쪽에서 보낸 매가 도착하기도 전에 세렌토 측에서 매를 보낸 모양이었다.
리마타운의 전서구가 도착하자마자 답변을 보낸 것 같았다.
신변 보호를 위해 제이든 일행은 식당에 가지 않고 방에서 저녁을 먹고 난 후 쉬고 있었는데 치안대 부대장이 직접 숙소를 방문해 세렌토에서 온 기별을 전해 주었다.
“아무래도 로스 감정사님이 생각하신 일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때 앰버타운 치안대에 신고하셨지요? 그 일과 관련이 있다고 하니 아침 일찍 세렌토로 출발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도착하시면 바로 치안대로 가시고요.”
“예.”
“혹시 모르니 마차는 바꾸겠습니다. 말은 오스틴이 몰 테니 로스 감정사님은 안쪽에 계시는 게 좋겠고요.”
제이든이 탔던 마차는 옐로우 코우치의 삯마차라 특별히 눈에 띄지는 않지만 그래도 습격했던 자가 눈여겨봤을지도 모르니 마차와 말을 바꾸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베로와 정이 들어서 헤어지기가 몹시 아쉬웠지만 베로의 안전을 위해서도 여기서 베로를 돌려보내는 게 좋겠다 싶었다.
“베로, 잘 가,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
옐로우 코우치의 리마타운 지점에 베로와 마차를 반납할 때 아실리와 포이는 몹시 섭섭해했고 베로도 제이든의 목에 머리를 비벼대며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삐잉, 삐이잉.
아직 헤어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포이는 베로의 목을 껴안고 삐이이 울었지만 아실리가 잘 달래자 눈물을 닦았다.
제이든의 어깨에 올라탄 포이는 옐로우 코우치 지점을 나서면서 베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돌아보고 또 돌아보면서 작은 앞발을 흔들었다.
“우리 포이 큰일이네, 베로와 헤어질 때도 이렇게 아쉬워하는데 만약…….”
-핑?
포이가 코를 훌쩍 들이마시면서 제이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만약 나와 헤어지게 되면 우리 포이 어쩌지?’
제이든은 말을 꿀꺽 삼켰다.
언젠가 제이든이 차원을 넘어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아실리나 포이와 헤어져야 할 텐데, 그때 우리가 그 헤어짐을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데.
제이든이 걸음을 멈추고 옆을 걸어가던 아실리를 안아 올리자 아실리는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왜앵 울었다.
어깨에 있던 포이까지 내려서 가슴에 함께 껴안자 포이는 좋다고 제이든의 목을 끌어안는다.
-제이든, 베로와 헤어져서 허전하구나?
아실리가 미야옹 울면서 머리를 제이든의 가슴에 비볐다.
베로도 베로지만, 너희들 때문에 그래. 차원을 넘어가도 데리고 갈 수는 없을까?
제이든은 말없이 아실리와 포이를 꼭 껴안은 채 숙소를 향해 걸음을 옮겼고 그의 뒤를 지키면서 오스틴이 따라왔다.
* * *
“머리, 내밀지 마세요.”
포이가 바깥을 보고 싶어 해서 제이든이 안고 밖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포이가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자마자 마부석에서 오스틴의 엄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에도 눈이 달렸나.’
제이든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포이를 안으로 끌어들였다.
관용 마차인 데다 크기가 큰 탓인지 마부석 옆으로 야간용 램프와 함께 뒤쪽을 볼 수 있는 거울이 달려 있었다.
차량의 사이드 미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옐로우 코우치의 삯마차에는 없었는데.
지금 일행이 타고 가는 마차는 혹시 모를 습격을 걱정해 치안대에서 제공해 준 마차였다.
마부석에는 오스틴이 앉아서 말 두 마리를 몰고 있었다.
무려 쌍두마차여서 속도도 빨랐고 크기도 원래 타던 삯마차보다 훨씬 커서 편안했다.
하지만 제이든과 아실리, 포이는 안전을 위해 마차 안에만 있느라 세렌토 가는 길의 명물이라는 사이프러스 숲도 제대로 못 보고 강을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석조 다리도 제대로 구경을 못 했다.
호기심 가득한 포이가 밖으로 머리를 내밀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오스틴의 나무라는 목소리가 날아왔다.
세렌토에 도착할 무렵에는 포이가 볼이 뾰로통하다 못해 퉁퉁 부풀어서 토끼가 아니라 다람쥐 같았지만 어쨌거나 아무 일 없이, 예정 시간보다 더 빠르게 세렌토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제이든 씨,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나요?”
세렌토 치안대에는 낯익은 인물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레노아 양! 오랜만이네요. 정말 반갑습니다.”
사실 그렇게 오랜만은 아니지만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던 탓인지 무척 오랜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실리, 포이도 잘 있었니?”
검은 머리의 견습 마법사 겸 문관국 마법유물부 직원은 빙그레 웃으며 아실리와 포이를 한 번씩 쓰다듬어 준 뒤 제이든을 향했다.
“그럼, 이쪽으로 들어오실까요? 문관국의 객원 감정사로서 제이든 씨가 맡으실 첫 번째 일을 드리겠습니다.”
아! 그렇지. 나 문화재 관리국의 객원 감정사가 됐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