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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64화 (64/195)

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 64화

21. 화살 맞은 전서구(1)

“어유, 쌀쌀해라.”

언덕 위쪽에서 불어 내려오는 바람이 제법 싸늘해서 제이든이 몸을 떨었다.

“시월 말인데 벌써 꽤 춥네.”

-북부로 올라가고 있어서 더 그럴 거야.

제이든의 다리 옆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던 아실리가 대꾸했다.

깃털에 머리를 묻고 있는 새처럼 머리를 몸에 묻은 채 말하느라 야옹 소리가 웅얼거리듯 먹혀 나왔다.

“우리 포이는 안 춥니?”

“피잇, 피잇!”

제이든의 어깨 위에 올라앉아 있는 포이는 하나도 춥지 않다는 듯 머리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몸을 쭉 펴고 바람을 들이마셨다.

쭉 펴 봐야 별로 크진 않지만.

“포이 털이 더 복슬복슬해졌구나.”

겨울을 대비하느라 털이 더 길고 빽빽해졌는지 하얀 털이 더 두터워져서 포이는 아기 눈사람처럼 동글동글해졌다.

“고양이보다는 토끼가 추위에 더 강한가 보네. 오늘 바람이 차니까 아실리는 마차 안에 들어가 있을래?”

-포이는 산토끼니까 바람도 맞고 눈밭도 뛰고 그러면서 크는 거야. 집고양이는 원래 추운 거 싫어해.

아실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마차 안에 들어가긴 싫은지 꾸물꾸물 제이든의 무릎 위로 올라왔다.

-제이든도 좀 춥지? 내가 다리 따뜻하게 해 줄게.

“아이구 고마워라. 우리 아실리.”

제이든은 손을 뒤로 뻗어 마차 안쪽에서 무릎담요를 꺼내서 아실리를 덮어 줬다.

바람이 차서 옷을 하나 더 꺼내 입을까 했었는데 따스하고 말랑말랑한 고양이가 무릎 위에 있으니 작은 난로라도 하나 끼고 있는 것처럼 금방 몸이 따뜻해졌다.

어깨 위에 있던 포이가 옷을 붙잡고 꼬물꼬물 내려가더니 아실리의 옆으로 파고들었다.

추위를 타지 않아도 아실리 옆에 붙어 같이 담요를 덮고 있는 게 좋은 모양이다.

“세렌토는 이제 얼마나 남았으려나.”

-이틀 정도만 더 가면 될 거야.

제이든 일행은 모처럼 평화롭게 여행 중이었다.

브리오를 떠난 지 일주일쯤 지났고 제이든과 아실리, 포이는 베로와 함께 여유롭게 북상을 계속했다.

그동안 지나온 길에는 큰 도시가 없고 작은 마을만 계속 이어져 있어서인지 특별한 사건도 없었고 우편국에 들렀을 때도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마을의 여관에서 소박한 식사와 숙박을 하고, 여관이 없는 곳에선 민박도 하고, 시간이 맞지 않으면 마차 안에서 노숙을 했다.

“아직은 괜찮지만 이제 날이 더 추워지면 노숙은 무리겠네.”

전날 밤도 마차 안에서 잤더니 몸이 조금 뻐근했다.

제이든은 지도를 꺼내서 펼쳤다.

“이 언덕 넘어가면 리마타운이지? 리마타운은 좀 크니까 욕실 갖춘 여관이 있을 거야. 오늘은 뜨뜻한 물에 목욕도 하고 좀 편히 쉬자.”

“…….”

“아무도 대답을 안 하네?”

반응 없는 아실리와 포이를 보면서 제이든은 입맛을 다셨다.

하긴 일행 중에서 목욕이 아쉬운 건 나뿐이지.

고양이와 토끼는 다 목욕을 싫어한다.

“아, 세렌토 지나서 레타논 갈 때까지 지금처럼 평온하면 좋겠다.”

제이든이 말고삐를 놓고 기지개를 켰다.

이번 여행은 길을 떠날 때부터 워낙 사건이 많았기에 이처럼 심심할 정도로 아무 일 없는 날들이 더욱 편안하게 느껴졌다.

산이라기엔 낮고 언덕이라기엔 높은 어중간한 오르막길, 숲 사이로 뻗은 조용한 길에 베로의 발굽 소리와 마차 바퀴 구르는 소리만 규칙적으로 들렸다.

길이 외길이라 굳이 고삐를 잡고 있지 않아도 베로가 타박타박 혼자서 잘 걸어간다.

저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고 있는 제이든의 무릎에서 아실리와 포이도 잠이 들었다.

덜컹!

마차가 흔들리는 바람에 제이든은 잠에서 깨었다.

“어?”

마차가 길을 벗어나 오른쪽 숲 사이로 들어선 바람에 덜컹거리고 있었다.

“베로, 어디로 가는 거야? 큰길로 가야지.”

베로는 삯마차 회사의 말이라 길을 따라 걷는 훈련을 잘 받은 말이어서 마부가 없다 해도 어지간해서는 옆길로 새는 일이 없는데 웬일이지?

“야, 야, 마차 끌고 숲으로 들어가면 안 돼, 돌아나오기 힘들다고.”

조는 동안 발치에 떨어진 고삐를 잡으려고 제이든이 몸을 일으키려다 어이쿠 신음하면서 도로 주저앉았다. 다리가 너무 저려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제이든이 낑낑거리며 무릎에 있던 아실리와 포이를 밀어내자 고양이와 토끼는 좌석으로 밀려내려가면서 불만스러운 소리를 냈다.

“포잇!”

잠에서 깬 포이가 눈을 비비더니 발딱 일어나서 마차 앞쪽으로 앞발을 내밀었다. 귀가 안테나처럼 앞쪽으로 쫑긋 기울었다.

“왜 그래, 포이? 무슨 소리가 들리니?”

“포잇, 포잇!”

겨우 몸을 일으킨 제이든이 베로의 고삐를 잡은 뒤 바로 앉았다.

“아하, 소리가 아니라 향기였구나?”

숲 안쪽에서 라벤더베리의 향기가 풍겨 오고 있었다.

“베로, 이 먹보야. 그만 들어가. 마차 돌리기 힘들어진단 말야. 내가 따 올게.”

제이든이 베로를 멈춰 세우고 고삐를 나뭇가지에 묶는 동안 기다리지 못한 포이가 마차에서 깡충 뛰어내려 숲속으로 뛰어갔다.

“포이, 기다려, 혼자 가지 마. 실리, 어서 따라가 봐.”

마차를 단속해 놓은 제이든이 바구니 하나를 꺼내 들고 포이와 아실리의 뒤를 따라가 보니 숲 안쪽에 야생 라벤더베리 나무 십여 그루가 옹기종기 서 있었다.

“이제 끝물일 텐데 제법 많이 남아 있네. 아직 싱싱하기도 하고.”

인적이 드문 곳인지 사람이 다닌 흔적은 없었지만 새와 동물들이 따 먹었는지 열매가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제이든 일행이 먹을 정도는 충분히 남아 있었다.

포이는 좋아서 라벤더베리 나무 아래에서 깡충깡충 뛰면서 침을 꼴딱꼴딱 삼켰다.

“자, 이만큼이면 우리 일주일은 먹겠다. 아마 올해의 마지막 라벤더베리일 것 같네. 요 나무 하나만 더 따자.”

마지막 나뭇가지에 손을 뻗던 제이든은 깜짝 놀라 뒤로 펄쩍 뛰었다.

“헉, 깜짝이야!”

-왜 그래? 제이든?

“여기, 죽은 새가 걸려 있어.”

제이든은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회색 새를 다시 보았다.

“아니, 이거 비둘기 같은데? 그냥 비둘기가 아니고 전서구야!”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회색 비둘기는 일반 비둘기보다 몸집이 크고, 목에 파란 고리를 끼고 있었다.

“고리 보니 관용 전서구인데?”

자세히 보니 다리에 우편통도 달려 있었다.

“누가 이런 짓을 했지?”

근무 중인 우편집배조가 목에 걸고 있는 고리에서는 야생 동물이나 조류가 싫어하는 향이 난다.

마법사들이 특별히 제조한 것으로 사람은 맡을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는데 야생 동물이나 조류는 그 향을 맡으면 두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비행 중에 다른 동물에게 공격받는 일이 없다.

제이든은 비둘기를 조심스럽게 나뭇가지에서 내렸다.

“토리인 줄 알고 놀랐네.”

커다란 회색 비둘기는 베로데인 치안대의 토리와 많이 닮았다.

비둘기는 제이든의 손 위에서 축 늘어졌지만 가슴이 미약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죽진 않았어. 그런데 한쪽 날개가 엉망이 됐는데? 아무래도 화살에 맞은 것 같아.”

-제이든!

좀 전부터 어딘가 불안한 듯 주변을 살피던 아실리가 귀를 바짝 세우고 등을 동그랗게 말아 올렸다.

긴장한 듯 꼬리가 팡 부풀고 수염도 모두 앞으로 뻗쳤다.

-누가 있어, 제이든, 저쪽!

아실리가 나무에 가려진 쪽을 보며 야옹 우는데 부스럭! 누군가 나뭇잎 밟는 소리가 났다.

아주 가까웠다. 제이든이 그쪽으로 발을 떼자마자 버석버석 발소리가 요란해졌다.

“거기, 누구야? 잠깐만!”

제이든이 달려가자 사냥꾼 비슷한 차림을 한 사람이 얼른 돌아서서 얼굴을 가리더니 쏜살같이 나무 사이로 달려갔다.

-얼굴 봤어?

“옆모습만 조금, 금방 돌아서서 도망쳐 버렸어.”

-활을 가지고 있었지?

“응. 떨어진 새나 화살을 회수하러 왔었나 봐.”

-이거 봐, 제이든.

주변을 돌던 나무 뒤쪽에서 아실리가 제이든을 불렀다.

부러진 화살 반쪽이 나뭇잎 사이에 떨어져 있었다.

-비둘기가 화살에 맞고 떨어지면서 나무에 부딪쳐서 부러졌나 봐.

제이든은 손수건을 꺼내서 부러진 화살을 주웠다.

비둘기와 함께 치안대에 증거물로 제출할 작정이었다.

사람이 집배조, 특히 관용 집배조를 공격하게 되면 중죄에 해당해서 처벌 수위가 매우 높은데 사냥꾼이 비둘기를 쏘았을 리는 없었다.

초보 사냥꾼이 혹시 다른 새로 착각해서 전서구를 활로 쏘는 경우가 없지는 않겠지만 매우 드문 일이다.

제이든은 비둘기와 화살을 마차에 데려온 뒤 우편통을 열어 보았다.

편지가 들어 있었지만 암호로 작성되어 있어 읽을 수 없었다.

“여기서 제일 가까운 마을이 리마타운이지? 빨리 가자. 베로, 서둘러!”

베로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히히힝 울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비둘기를 살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관용 집배조가 화살에 맞는 일은 흔하지 않다.

우연이라면 모르지만 누군가 의도하고 쏘았다면 작은 일은 아닐 것이었다.

“이놈의 입이 방정이야. 내 소중한 평화가 열흘을 못 가네.”

제이든은 달리는 베로의 뒤꽁무니를 보면서 한탄했다.

리마타운은 다행히 언덕을 넘자마자 나왔고 치안대, 우편국, 동물병원이 다 갖춰진 규모 있는 마을이었다.

치안대에 비둘기를 전달하자 동물병원에 갈 필요도 없이 연락을 받은 수의사가 달려왔다.

“우편집배조의 관리는 중요하니까요. 치안대와 우편국의 집배조들을 전담 관리하는 특수동물 수의사 프랭크 리먼입니다. 다들 버드맨이라고 부르죠.”

새의 볏처럼 위로 치솟은 머리와 둥근 눈, 매의 부리처럼 구부러진 코와 긴 목을 보니 왜 버드맨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오, 다행히 목숨은 건지겠네요. 몸에 안 맞아서 다행입니다. 날개는 오래 치료해야겠습니다. 뼈가 부러졌어요. 적어도 반년 이상 비행은 무리겠는데요.”

비둘기는 주사를 맞고 날개에 압박붕대로 반깁스를 한 뒤 케이지 안에서 안정을 취하게 되었다.

그동안 우편물을 검사한 치안대원은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로스 씨, 산에서 목격하신 사람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예, 워낙 황망중이라 얼굴은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삼십 대 중반 정도였고요. 사냥꾼들이 주로 입는 녹색과 갈색이 섞인 가죽옷에다 부츠를 신고 있었습니다. 활을 메고 있었고요. 체격은 꽤 좋은 편이었고 키는 저보다 조금 작지 않았을까 싶네요.”

“갑자기 맞부딪친 사람일 텐데 눈썰미가 굉장히 좋으시네요!”

치안대원은 놀란 듯 그를 바라보았고 제이든은 멋쩍은 듯 머리를 쓸어 올리며 웃었다.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물건이든 사람이든 관찰이 습관이어서요.”

“아, 맞아요. 감정사라고 하셨지요.”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별로 도움은 되지 못하겠지요?”

“아닙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일단 전서구를 발견해 주신 것만으로도 큰일 하신 겁니다. 델리움 치안대에서 세렌토 치안대로 가는 전서구였는데 발견이 늦어지지 않아 정말 다행입니다.”

치안대원이 내용을 말해 주진 않았지만 심각한 표정으로 볼 때 꽤 중요한 내용인 것 같았다.

여관을 잡고 식사와 목욕을 마친 제이든은 방에 딸린 탁자에 턱을 고이고 앉았다.

뭔가 생각이 날 듯 말 듯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답답한 부분이 있었다.

“포잉, 포잉!”

아까 딴 라벤더베리를 냠냠 먹고 있던 포이가 깡충깡충 뛰어와서 제이든에게 라벤더베리 한 알을 내밀었다.

“응, 고마워, 포이.”

건성으로 라벤더베리를 받아 입에 넣는 제이든을 보면서 아실리가 물었다.

-왜 그래, 제이든? 정신이 딴 데 가 있는데?

“으응.”

제이든은 입에 있던 열매를 삼킨 후 아실리를 향했다.

“아까는 몰랐는데 말이야. 목욕하다 보니까 생각났는데, 산에서 도망간 그 남자, 어디서 본 거 같은 얼굴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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